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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이지 않은 성 (Intersexion)] 남성과 여성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곳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8. 03:21

<두 개이지 않은 성 (Intersexion)> -  남성과 여성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곳

 

 

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두개이지 않은 성 : Intersexion> 스틸컷

 

 

  간성.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단어는 염색체와 상관없이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특징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이들이 맞이하게 되는 첫 세상도 그리 익숙한 풍경은 아니다. 이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규정할 수 없음’으로 세상을 처음 마주한다. 그러나 이렇게 낯설게 느껴졌던 간성인이 2000명 중에 1명꼴로 태어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에 300만명도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결코 그렇게 먼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성별을 신체적 구조를 통해 정해왔다. 음경이 있으면 남성이고 질이 있으면 여성이었다. 이렇게 굳어진 이분법적 구조는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들을 틀린(wrong)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간성으로 태어난 그들은 항상 숨어 살아야 했고 이웃이나 친구들을 사귈 수 없음은 물론, 가족마저도 그들을 감추기에 바빴다. 의사들은 그들을 도와주겠다며 조금 더 가깝다고 판단되는 성으로 그들의 성별을 정해버리곤 했다. 이를 통해 그들의 겉모습은 멀쩡해졌을지도 모르나, 속은 만신창이처럼 너덜너덜해졌을 뿐이다.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몸도 아팠지만, 그들의 마음은 더욱 갈기갈기 찢어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겉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속을 어루만져 줄 따뜻함이었다. 배가 나온 사람은 원래 서서 소변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서서 소변을 보는 것으로 남성이라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는 한 간성인의 유머 아닌 유머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수술 후, 여성 혹은 남성이 된 간성인들에게 사회는 성역할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제 여성(혹은 남성)이 되었으니 여성(혹은 남성)처럼 행동하라’고 말이다. 여성의 모습도 있고 남성의 모습도 가진 그들에게 타인이 정해버린 성별대로 살라는 것이다. gender는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정하는 삶의 방향이다. 그들의 생물학적 성을 정했다고 한들 그들의 정체성까지 정할 수는 없다.

 

 이 영화의 화자를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말한다. 수술 후 그들의 삶은 망가졌다고... 즉,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한 그들에게 억지로 부여해 준 그 삶은 망가진 삶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아저씨라 불러도 대답하고 아줌마라 불러도 대답한다고 했다. 남과 여로 나누어진 사회가 아닌 한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나와 같은, 그리고 당신과 같은, 다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