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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 방관자에게 남겨진 것들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11. 00:43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 방관자에게 남겨진 것들  

 

 

같은 공간, 각양각색의 동년배들이 엮인 공동체라면 언젠가 한번은 마주 할 법한 교내 폭력. 불편하겠지만, 피하고 싶겠지만 '학교 폭력'이라는 문제는 그 어느 순간 다가와 사회의 핵심적인 이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폭력을 가한 자들과 피해를 입은 자들 사이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외면하고 방관하는 자들. 폭력을 가하고 받은 당사자들은 아니지만, 여전히 소행성처럼 빗겨간 채로 문제의 궤도를 돌고있는 영화 속 '그들'을 보면서, 우리 중 그저 떳떳하기만 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여기 비슷한 듯 다른 유형의 세 방관자들이 있다. 폭력이 일어난 지점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문제와 마주치고 대한다.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반항하고자 하지만 회환으로 가득찬 현실 앞에 굴복하고, 누군가는 방관자의 탈을 쓴 가해자가 되어 더 큰 상처를 새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앞으로의 문제에 직접 부딪혀 보기로 결심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오리엔테이션> 스틸컷

 

서로 다른 세 편의 영화인 오리엔테이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장 자리는 각각 대학교, 여고, 남고에서의 교내 폭력을 다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양새로 학교 폭력의 일부를 묘사하는 영화는 각각의 마찰 속에서의 주인공의 시점을 빌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한 청춘들의 고뇌를 잘 표현한다.

 

특히 오리엔테이션과 더도 말고의 경우는, 영화 가장자리에 비해 이야기의 내레이션 구조가 은유적이고 함축화 되어있다. 선배들에게 기합을 받는 자리, 혼자 벗어난 정은이 사실을 폭로하고자 대자보를 붙이기로 결심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 부딪히는 과정, 자신의 물건을 훔친 것 같은 독서실 친구의 집에 찾아가 자기 것과 같은 물건을 보고 그 친구를 범인으로 오해하고 때리지만, 실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여고생의 이야기. 두 작품 모두 여성 감독들 특유의 돌려 말하기 기법으로 문제를 직면하는 과정에 있어서 표현방법이 유한 편이다.  

 

반면 마지막 작품인 가장자리는 짧은 러닝 타임 내에 방관자가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가장자리'에서는 피해자의 발언을 통해 '폭력' 의 방관자들의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를 잘 말하고 있다. 절실하게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비밀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한때는 피해자였던, 이 불쌍한 영혼을 보며 방관자였던 주인공에게는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과연 이 사실을 발설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그 어떠한 선택을 내리기도 전에 영화는 다시금 환기시킨다. '학교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그냥 너희들이 하던 대로 조용히 해주면 돼.. 너희 항상 그랬잖아, 내가 맞을 때."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가장자리> 스틸컷

 

지금도 사회 어딘가에서는 어떠한 이유를 붙여 무차별한 구타와 집단 따돌림, 신체적 언어적 가해행위가 행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고 선뜻 '그러면 안된다' 라고 나서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그 표적이 자신이 되질 않길 바라면서, 소속된 집단에서 도태되지 않기를 원하면서 들리는 외침을

덮고, 보이는 잔혹함을 가리고, 토해내는 절망을 막는다. 

 

대다수의 폭력 사태는 시기가 지나면 일단락되고 얼토당토 않게 마무리된다. 우습게도 피해를 입은 학생들은 다수의 침묵 속에서 제 2차, 3차의 상처로 자취를 감추지만, 가해자들은 떳떳한 경우가 많다.  

 

결코 마침표로 끝나는 법이 없는 학교 폭력 사태. 또 다시 반복되는 아픔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더 이상 방관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것? 상처입은 영혼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네는 것? 아니, 무엇보다도 모든 문제를 물음표인 상태로 남겨두는 것. 쉽게 해결되었다 여기지 않는 자세. 어쩌면 그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직면의 힘' 참으로 좋은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제의 핵심이었던 이 메시지를 가장 잘 관통하는 파트가 바로 이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섹션이 아닐까 싶다.  

 

 


 

제 7회 여성인권영화제_피움뷰어 조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