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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의 대화 [아버지의 이메일]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11. 07:52

 

아버지를 통해 가족사를 직면하다

- <아버지의 이메일> 감독과의 대화 -

 

 

1110일 여성인권영화제에서는, 폐막식을 진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이메일>을 상영했다. 아버지의 다사다난했던 역사들을 아버지가 보냈던 이메일을 통해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가 끝난 후, 이 영화의 연출자 홍재희 감독님과 송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가 감독과의 대화에 참가하였다.

 


 

 

Q)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영화의 아버지와 조금 비슷한데, “나는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께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A) 감독 : 용서에는 100%란 말을 쓸 수 없다 생각해요. 사람마다 온도차 있기 때문에. 다만 다큐를 만들면서 아버지라는 존재 또는 우리가 가부장제라는 제도 하에 살고 있으니까 특히나 대한민국을 이루는 사회가 남성에게 가부장이라고 하는 의미를 멍에로서 과하게 부여하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부양이나 양육이라는 것이 남성에게만 부여되는 것만이 아닌데 그게 한국사회에서는 가부장적인 또는 유교의 어떤 남성의 책임감으로 과중하게 부여가 될 때 거기서 실패하고 낙오된 남성은 마치 남성의 자격이 없는 것처럼 스스로 탓하게 되거나 자책하면서 정체성마저도 위협받는 상황까지 간 것이거든요.

 

제 아버지라는 한 사람을 떠나서 보편적으로 일반적인 의미의 사회 구조적문제를 인식하게 되면서 제 아버지를 아버지로서의 증오나 미움이아니라 한 인간, 한 남성의 이야기로서 이해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용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 이해는 머리랑 가슴으로 할 수 있지만 용서는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다르게 온 것 같다. 용서는 다큐를 만들면서 이메일의 행간을 읽어나가며 서서히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

 


 

Q) 아버지가 만약 살아 계시고 술을 마시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생각하면 감독님은 아버지께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A) 감독 :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아버지 같이 먹읍시다.”라고 얘기할 거예요. 지금은 그럴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아버지가 낯설고 멀고 어려운 존재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맞술을 먹어도 지긋지긋함을 느끼거나 환멸을 느끼는 것이 아닌 노인분과 같이 대접을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예전에는 가족 중 아무도 아버지와 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있으신 관객이라면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계속 봐야 할 때 생겨나는 무관심?’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 도피나 회피의 방식으로 철저히 무관심이 되는 상황을 아실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마지막에 말년의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것이 과거와는 달리 대화하고자 하는 요청이었을 수 있는데 아버지 당신도 타인과 피를 나눈 가족과 대화하는 방식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자신이 아닌 가족 또는 여성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집안에서 철저히 좀비나 시체 혹은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죠.

 


 

 

Q) 다큐의 재연장면에 본인이 직접 나오시기도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재연장면들을 어떻게 기획하셨고 어떤 생각이셨는지 궁금합니다.

 

A) 감독 : 다큐라는 게 현장성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상황을 재현할 때 사용한 방법이 재연이라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진정성이 깨진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렇게 가야겠다는 확신 아닌 확신이 있었던 이유는 이 이야기가 아버지의 인생이기도 하고 그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세대의 이야기기도 하고 억압받고 살아온 여성의 이야기기도 하고 집안에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자로 군림하는 남성의 이야기기도 하고요. 그 가해자인 남성 역시 시대의 한 희생양이자 피해자라는 이야기기도 하고 그 세대 자식들의 이야기기도 하고. 제 자신의 이야기기도하고. 내 가족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기 때문에 내 자신을 직면해야 된다는 생각에 내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촬영감독이 연기가 어색하다고 하긴 했지만 저는 그렇게 대답했죠. 나 연기가 안 된다고!” 이 상황은 내가 감독으로서 재연하고 있는 이 상황은 홍재희라는 이가족의 딸로서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없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찍어 달라 라고 말했었죠. 결과적으로는 내 자신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저를 남처럼 타인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저의 가족사조차도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송란희(여성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 아버지의 이메일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좋아했는데, 이 꼭지가 피움 줌아웃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있는데, 개인의 일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미뤄서 두고 보면 보편성이 획득된다. 그럼 본질을 명확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항상 개인이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개인이 구성되는가. 거기서 개인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변화시킬 수 있는가 혹은 좌절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감독님의 영화가 이 메시지와 잘 부합했다고 생각한다.

 


 

Q) 아버지가 인터넷을 배우게 된 계기는? 

 

A) 감독 : 첫 번째로는, 아버지가 기록하시는 것을 부단히 해오셨는데, 어머니께서 그걸 계속 버리셔서 이메일로 저에게 보내려고 배웠던 것 같다. 두 번째로는, 동생이나 내가 갈 때마다 아버지께서 인터넷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는데, 귀찮아서 핀잔을 줬더니 앞으론 부탁을 하지 않으시더라. 나중에 고교 동창을 인터뷰 하려고 갔었는데, 구청의 컴퓨터 교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세 번재로는, 재개발 비대위때 아버지께서 혼자 사무실에 남으실 때가 많았다. 그 장소에 컴퓨터가 한 대 있었는데, 이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을 또 공부하신 것 같다.

 

 

 


 

한국여성의전화 대학생기자단 최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