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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의 대화: 23도씨, 우리 공주님] 상상으로 그려낸 현실세계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 22:08

 

상상으로 그려낸 현실세계

<23도씨>, <우리 공주님> -

 

18회차에 상영한 영화는 한국 단편모음으로, 외로운 노년 여성을 그린 <23도씨>, 딸을 지키고자 살인을 저지른 <우리 공주님>, 외모로 성적을 평가하는 재치있는 내용의 <외모등급>,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 대한 자전기를 담은 <친밀한 가족>이다. 
감독과의 대화에는 <23도씨> 탁세웅 감독과, <우리공주님> 사희옥 감독, 그리고 배우 한지수가 함께했다.

 

 

<23도씨>

 

23이라는 숫자는 인간이 따듯함을 느끼는 최소한의 온도이자, 가장 사랑받는 성경구절인 시편 23편에서 따왔다고 한다. 감독은 <23도씨>라는 제목을 통해 주인공 할머니가 느끼고 싶었던 최소한의 사람의 온도를 은유적으로 나타냈다.
영화 속 외로운 할머니의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외로울 때마다 119를 불렀던 할머니. 가족도 이웃도 아무도 오지 않는 할머니와 접촉하는건 119대원들과 사회복지사 뿐이다. 이 장면에서 한 관객은 “사회복지사, 구급대원들의 개입에서 오히려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사회적인 개입’이 할머니에게 더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있는것 같다”는 질문을 했다. 이에 감독은 제도가 필요없다는 의미가 아닌 인간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더 초점을 맞췄으며, 할머니가 원했던 것은 함께 나누어 먹는 따듯한 밥 한 끼, 따듯한 애정과 관심이었다는 영화의 의미를 전달하였다.


괜히 출동했다는 표정을 짓는 119대원에게 밥 한 끼만 먹고 가라는 할머니의 대사는, 일찍 출근하는 내게 밥 한 숟갈만 먹고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 아닌 부탁을 떠올리게 한다. 이른 출근을 하는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밥 한 끼를 차리는 엄마의 모습, 이를 외면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멀어져 가는 우리들의 목소리는 영화 속 할머니가 자식에게 했던, 그리고 그 자식이 외면했던 환상 속 과거와 맞물리며 우리들이 쉽게 지나쳤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성냥 하나에 타오르는 할머니의 추억, 기억, 그리고 그 끝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홀로 돌아눕는 외로운 얼굴뿐이었다. 그녀는 결국 싸늘한 죽음이 되어 119대원에게 발견된다. 처음 각본을 받았을 때 성냥팔이 소녀가 떠올랐다는 탁세웅 감독은, 노년의 외로움과 슬픔, 가난, 처절함을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연출했다.


아름답게 그려져 더욱 슬펐던 이 장면은 “환상적이기에 더 비극적인 상황”을 표현했다는 감독의 설명과 함께 씁쓸한 현실을 되새기게 하였다. 이는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인간으로써 다가가는, 그리고 따듯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우리 공주님>


“아이구 우리 공주님-” 흔히 아빠들이 딸에게 하는 말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사희욱 감독은, ‘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피해자라고 생각할까?’ 이 의문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쾌한 감독님의 답변 덕분에 유독 질문이 많았던 이 영화는, 주인공이 자신의 딸을 괴롭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학생을 살해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감독은 착각이 빚어낸 살인이 마치 '사이코패스'로 착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영화의 내용을 조금 수정하기도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누구보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택시기사 순철이 살인마가 되는 과정까지는 어쩌면 점점 잔인해지는 사회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의 배우인 한지수씨는, 첫 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겁 없는 반항끼 어린 10대의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된 할머니와 자녀를 위한 살인자가 된 아빠. 상상으로 그려냈지만 영화가 끝난 뒤 느껴지는 씁쓸한 마음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느 영화들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약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극도한 불신과 불안이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느껴지면서, 내게 반추한다. “나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119대원이었다면 가스가 끊긴 할머니를 위해 밀린 가스비를 다 내어줄 수 있었을까. 나의 자식에게 끔찍한 일을 하려는 가해자를 태운 택시기사였다면 순순히 그의 말을 들었을까. 쉽게 나오지 못하는 대답 속에서, 현실과 이와 다르지 않을거라는 막막한 감정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황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