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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매 순간을 직면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

한국여성의전화 2016. 10. 10. 01:47

삶의 매 순간을 직면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

- '단순한 진심'을 담은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개막작, <테레즈의 삶>


나눔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테레즈는 80대의, 죽음을 앞둔 페미니스트다. 45분 동안 그려진 68혁명 즈음부터 여성운동을 해 온 페미니스트의 삶, 오로지 정치적 삶을 살아온 사람의 끝에 대한 이야기가 담담히, 느린 리듬으로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영화는 테레즈에게 감독이 왜 지금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기를 원하는지 물어보며 시작한다. 테레즈는 그간 얘기되지 않았던 나이 듦과 죽음을 함께 용감히 마주해 나가자고 이야기하며, 감독은 물론 관객들까지 그의 죽음을 향한 여정으로 초대한다. 영화는 젊었던 테레즈의 말과 모습을 통해 테레즈의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잠자는 모습, 병원에 가는 모습과 같은 일상을 자세히 보여주며 한 노인 여성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하나의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나이의 몸으로 생활하는 노인 여성이자, 지치지 않는 페미니스트인 테레즈를 조용히 따라가는 이 작품은, 대개 미디어의 관심사 밖인 노인 여성의 삶과 죽음을 당사자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어 의미가 크다. 또한, 연출자의 개입이 두드러지지 않는 전개는 감독이 촬영하는 대상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테레즈의 삶> 스틸컷

 

테레즈의 자식들은 테레즈를 엄마가 아니라 테레즈라고 부른다. 자식들은 엄마가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이후 테레즈라는 사람이 나타났고,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만난 그는 곧 자신의 행복하지 않은결혼 생활을 청산했다. ‘엄마로만 호명되던 개인의 삶이 페미니즘을 만나 변화한다. 변화된 개인이 정상가족을 해체-재구성해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이는 어머니와 자식과의 관계를 더 폭넓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식을 낳은, 혹은 낳을 사람들이 앞으로 후대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간 중간 죽음을 마주ㄷ한 테레즈의 일상적인 고민들이 나온다. 우리는 지금까지 노인들이 늙어가는 것과 죽음을 기다리는 일상을 말할 때 귀 기울이지 않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삶에 없기에, 노인들의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한탄을 웃어넘길 뿐이다. 테레즈는 느리고 투박한 몸이 낯설다고 말한다. 자신의 몸을 점점 제어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늙어간다는 것이고,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테레즈는 이런 두려움을 담담히 맞으며 가족들이 그의 죽음을 평온하게 마주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가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젊은 세대에게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나에게도 나의 미래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다채로운 삶들과, 다양한 노인 여성의 모습이 부재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테레즈의 삶> 스틸컷



한국 미디어에 다양한여성 캐릭터란 없다. 특히 노인 여성은 굳세게 살아온 착하고 헌신적인이미지이거나 악독한 시어머니이미지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 이미지들을 오랜 시간 접해온 우리는 할머니를 외롭거나, 불쌍하거나, 헌신적이고, 구질구질하고 답답하지만, 때로는 뻔뻔하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고 소비한다. 삶의 지혜를 가르쳐줄 때도 있지만, 대개 이성적인 판단력이나 지적 수준은 떨어지는 존재로 상상한다. 그런 만큼 현재의 테레즈가 사람들과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논쟁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특히 손녀와 논쟁하는 장면이 그랬는데, 내가 상상했던 할머니라면 생각을 굽히고 듣거나 억지로 구닥다리 의견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였을 테지만, 테레즈가 손녀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듯 보였다.

 

테레즈의 과거 주장이나, 손녀와 나누는 대화는 여성이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존의 노인 여성이 재현되는 이미지는 틀렸다는 것을 테레즈의 존재가 증명했다. <테레즈의 삶>이라는 다큐멘터리는 말하고 있다. 여성의 삶이 단일하지 않고, 수많은 삶들이 모여서 구성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의 삶 또한 그러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