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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은 것에도 휘청거렸고, 여전히 그렇다

한국여성의전화 2016. 10. 13. 11:00

우리는 작은 것에도 휘청거렸고, 여전히 그렇다

 <세희> <여름의 끝> <연지> <전학생>

 

 

문정_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세희>, <여름의 끝>, <연지>, <전학생>은 소녀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과 그로 인한 성장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10월 12일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네 편을 좀 더 깊이 있게 만나 보았다. 감독과의 대화는 한계레 신문 남은주 기자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세희>의 서유리 감독,<여름의 끝>의 하희진 감독, <연지>의 오정민 감독, <전학생>의 박지인 감독과 <세희>의 세희역을 맡았던 배우 임은조, <전학생>의 수향 역을 맡았던 배우 박수연이 함께 하였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나를 향하길 바랐던 그때 - <세희>

 

고등학교 1학년 세희는 연극부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함께다닌 친구 윤희만 연극부 오디션 제의를 받게 된다.

 

<세희>의 서유리 감독은 고등학생들의 자격지심, 열등감 같은 감정들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열등감은 자신이 못났다는 자기비하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윤희와 같은 친구를 보며 사실은 세상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어도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동시에, 신념을 무너뜨리는 그 친구를 부정하고 때로는 열등감을 느낀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의 하나는 세희와 윤희처럼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알 수 있다. 세상은 누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며, 그저 모두에게 각자의 세상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아니야, 내가 너 같은 줄 알아?’¹ - <여름의 끝>[각주:1]

 

소라는 흔히 말하는 ‘범생이’이다. 그런 소라에게 어느 날 은별이 다가온다. 어른스러운 옷차림, ‘너 남자친구 있어?’라고 묻는 순진한 얼굴과 제멋대로인 성격은 모두 소라에게 낯설기만 하다.

 

자신과 너무나 다른 은별을 통해, 소라는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소라는 은별과 멀어지는 것을 택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사실 소라는 은별이 아니라, 은별과 닮은 자신의 모습과 멀어지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는 마치 처음으로 되돌아간 듯 은별과 새 친구의 모습으로 끝을 낸다. 소라는 다른 친구를 만나며 은별과 그랬던 것처럼,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여름의 끝> 하희진 감독은, 영화 첫 장면이 자신의 실제 어린 시절 기억을 토대로 한 것이라 말했다. 스스로 잊으려 했던 그 장면을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어 <여름의끝>을 만들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감독은 ‘자신에게 거대한 충돌이 오고 그것을 회피하는 과정은 평생에 걸쳐 일어날 것’이라 말하며 영화를 통해 ‘성인이 되기까지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때가 있다 - <연지>

 

친구들과 바닷가에 간다고 분주한 연지는 어머니께서 싸주신 김밥 열 줄과 함께 을왕리로 향한다. 그러나 연지의 생일 파티를 위해 먼저 가 있겠다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 ‘연지’는 ‘친구를 갖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무시당해 비참한 상태이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이 매일매일의 과제였던 그 시절에 친구를 사귀는 것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니까. 그러나 연지는 너무나 의연하게 행동한다. 울지도않고 절망하지도 않는다. 이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섬세함이 돋보였다는 사회자의 말에, 오정민 감독은 자신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하였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이런 성격이 연지의 ‘아무렇지 않은 척’과 맞닿아 현실성 있게 그려낼 수 있었다고 답했다.

 

너무 큰 상처는 아파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에, 연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상처에 골몰하기엔 상처가 너무 커서 외면하듯 그 일에 의연해지는 것이 차라리 나을 때가 있다. 그래서 열심히 김밥을 먹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연지가 차라리 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안녕, 그 짧은 말을 수백 번 되뇌던 하루 - <전학생>

 

새터민인 수향은 내일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타지에서 처음으로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수향은 긴장되고 걱정스러운 하루를 보낸다.

 

영화 중간중간 수향은 계속 첫인사를 연습한다. 특히 수향은 새터민이기 때문에, 친구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크다. 수향처럼 어떤 관계에 새롭게 들어갈 때에는 긴장되고 걱정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과 ‘나’사이의 간극이 나를 소외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은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전학생>의 박지인 감독은 새터민인 한 초등학생이 전학을 가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화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에서, 학생이 새터민인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은 새터민 학생을 놀리고 조롱하였고 결국 새터민 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고한다. 수향도 이 학생처럼 울었을까? 그는 초등학생이 아니니까, 그저 속으로만 울었을까? 마지막 수향의 머뭇거리는 얼굴은 수향이었던 어떤 날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1. ¹<여름의 끝> 소라의 대사 中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