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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들의 반란

한국여성의전화 2016. 10. 13. 19:30

소수자들의 반란

<이브>, <정글>, <여름밤>, <몸값>


경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정글>, <이브>, <몸값>, <여름밤>은 주체적인 여자주인공들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10.13(목) 열린 감독과의 대화에서 영화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누가 팔리는가-<몸값>, 그 여름밤 작은 희망을 보았다-<여름밤>


<몸값>은 원조교제를 위해 한 남자가 여고생인 주영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처녀’임을 재차 확인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한국사회 남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잘 반영한다. 처녀도, 여고생도 아님을 확인하자, 남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 가격을 흥정한다. 하지만 사실 진짜 흥정을 하는 쪽은 주영이다. 주영이 보여주는 반전의 줄거리는 관객들의 허를 찌르려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주영은 남성과 사회가 원하는 대로 소비되었던 여성의 이미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한편, <여름밤>에서 취업준비생인 소영과 고3 수험생 민정은 과외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난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버텨내고 있는 둘은, 과외시간을 조정하는 문제로 부딪히게 된다. 민정의 시간변경 요청은 소영의 일상을 연쇄적으로 헝클어놓고, 뒤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소영은 책임감으로 민정과의 약속을 지키려 애쓴다. 각자의 사정만으로도 버거운 세상이지만, 민정과 소영의 만남은 아직 작은 희망은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주체적인 두 주인공의 만남을 통해 삭막한 일상에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감독과의 대화는 <정글>의 박병훈 감독, <이브>의 오은영 감독과 함께 진행되었다. 관객들은 감독들에게서 연출의도, 영화에서는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인가, 동물인가-<정글>

 

대학원생인 소미는 교수의 요구에 따라 등산을 왔다. 더운 날씨에 산에 가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지만, 논문을 위한 면담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한편 측량기사인 우진은 상사에게 무시당하며 혼이 난다. 두 사람이 산에서 만난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약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산이 바로 ‘정글’이다. 우진은 소미를 화풀이 삼아 신체적으로 제압하려 한다. 하지만 소미는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폭력을 당하면 당한만큼 반격한다.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다가도 이내 무기를 찾아들고 다시 그 공포에 맞선다.


<정글>의 박병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인가, 동물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전했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하거나 만만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이 정글과 같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산이라는 설정 아래서 소미를 마음대로 괴롭히는 등산객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진 역시 과장과 동료에게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이 잘 아는 산 속에서는 맹수가 된 것처럼 소미를 공격한다. 등산객과 우진의 모습은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약자혐오의 단면이다.


예수의 땅을 떠나 비로소 찾은 자유-<이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을 두었지만, 감독은 교인들과 교회에 위선을 느낀다. 결국 종교를 믿을 수 없다고 엄마에게 고백하지만, 엄마는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원을 떠난 이브는 어디에든 갈 수 있게 되었다. 교회를 떠난 주인공 역시 주체적으로 선택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영화는 비단 종교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천국에 가는 착한 여자가 되는 대신, 우리 모두 자유를 얻는 여성이 되자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브>는 오은영 감독의 사적인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규정하는 것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고, <이브>가 탄생했다고 전했다. 감독에게는 가족과 종교가 그러했고, 여성이라는 위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종교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 고민할 때,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받아온 여성차별을 빼놓고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감독은 교회를 나가지 않고, 어머니는 감독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신다. 하지만 감독은 또 다른 이브가 되어 어디로든 가는 삶을 살고 있고, 감독의 다음 작품들 역시 감독의 행보를 따라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