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연단에서 외침을

<폴리티컬 애니멀>


이소연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여성의 일상 곳곳에 억압이 있다. 매일 차고 다니는 브래지어가 대표적이다. 가슴이 쳐지면 어때? 젖꼭지가 보이면 어때? 늘 고민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작은 가슴을 들여다볼까, 드러난 젖꼭지를 헐뜯을까 두려워 ‘노브라’로 외출한 적은 없다. 집에서라도 마음 편히 노브라로 지내면 좋으련만 아빠와 함께 살고 있어 노출이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내 몸이 브래지어에 익숙해져 버렸다. 언제쯤 내 몸에 자유가 찾아올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폴리티컬 애니멀 Political animals>은 변화란 바로 나 자신의 외침과 행동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다.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듯 작은 외침이 모여 커다란 변화를 만든다. <폴리티컬 애니멀>은 티끌들의 투쟁에 관한 역사다. 영화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이어받은 레즈비언 정치인 네 명의 연대와 투쟁을 기록했다. 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함께 힘을 합쳐 끊임없이 행동한 결과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시민결합Domestic partner registration, 동성결혼 법제화를 이루어냈다.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들의 외침이 낸 균열이 쌓이고 쌓여 남성 중심 사회를 조금씩 부술 수 있었다.


“여성이 단두대에 설 수 있다면, 연단에도 설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참정권을 요구하며 여성의 인권을 외쳤던 올랭프 드 구주는 죽고 없지만, 그녀의 외침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몸짓을 통해 할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도 여성들의 움직임 덕분에 남성 중심 사회의 맥을 이어오던 호주제를 뿌리 뽑을 수 있었고, 최근에는 ‘강남역 10번 출구’에서의 외침으로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한국 사회에 공기처럼 퍼져 있음을 직면할 수 있었다. 여성의 연대가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가 어딜 감히 나서”라는 구닥다리 생각이 여전히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투쟁은 지난한 싸움이 될 테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하기도 하다. 일본의 정치학자 가라타니 고진이 말했듯, 데모를 함으로써 데모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폴리티컬 애니멀>은 개인들이 모여 변화를 이뤄낸 역사를 비추며,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디든 연단이니 그저 말하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더 많은 여성들이 나서고 설칠수록, ‘여성들이 떳떳하게 자신의 몸짓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균열의 시작 아닐까?


그러니 여성들이여, 일상의 연단에서 외치고 행동하자. <폴리티컬 애니멀>의 주인공 실라 쿠셀이 말하지 않았나. “나쁜 여자가 되어야 해요.” 변화를 위해서라면, 나쁜 여자가 되어도 좋다. 내가 노브라로 다님으로써 ‘노브라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익숙해져야 하는 쪽은 바로 남성 중심적 사회다. 여성의 자연스러운 몸에, 여성의 외침에, 여성의 몸짓에 이 사회는 익숙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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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