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여성운동가 47,000명이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국여성의전화 2016. 10. 15. 04:30

여성운동가 47,000명이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메이커스>


김하영 페미디아

 

<피움 줌인> 섹션의 리뷰를 쓴 여성주의 정보생산자조합 페미디아는, 여성과 여성주의 여성운동에 관련된 외신을 번역하고, 국내/외 연구를 소개하며, 여성주의적 시선의 비평을 싣는 온라인 여성주의 매체입니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 4차 세계여성회의(이후 베이징회의)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여성 인권을 신장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여겨지는 사건이다. 여성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성명서와 구체적인 행동강령에 189개 국가가 서명함으로써 여성인권신장에 대한 국제적 동의를 끌어낸 것도 성과지만 전세계의 여성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사건이라는 의의도 있다. <메이커스>는 옛날 이야기 내지는 전설처럼 느껴지는 베이징회의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열기를 재현해준다.



 

이 성공적인 회의에도 우여곡절은 있었다. 서구 언론은 인권이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중국에서 회의가 열리는 모순을 짚어내며 여성회의에 회의적이었고, 중국 정부는 200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서 밀린 후였기 때문에 국제행사를 연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여성운동가들은 베이징회의가 여성인권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을 예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때는 1990년대 초,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원하면 지구 반대편의 여성운동도 샅샅이 살필 수 있지만, 그 당시 여성이 다른 지역에 있는 여성의 상황에 대해 들으려면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어려웠고, 직접 만나는 장을 마련하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베이징에서 열리는 유엔 공식회의와 동시에 진행되는 세계여성회의 비정부기구(NGO)포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비자와 숙소만 있으면 된다는 소식을 듣고 전세계 여성운동가들은 일제히 뛰어들었다.1995년 가을이 되자 전세계의 여성이 베이징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화이러우에 모였다. 유엔 회의 참가자 1 7천명을 제외하고도 여성 운동가의 숫자는 3만을 거뜬히 넘겨 중국 당국을 당황케 할 정도였다.[1]

 

예상 밖의 숫자에 놀란 중국 정부가 가진 불안은 수준급이었다. 여성운동가들이 에이즈 양성 레즈비언이며 입국하는 날 공항에서 나체로 행진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침대 시트를 준비시켜 유사시에 몸을 덮어버릴 수 있도록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웃음을 준다. 그런 발상 자체가 우스꽝스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여성주의자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웃통을 까고 시위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남성혐오자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기 때문에 당시의 공무원들이 어떻게 그 발상에 도달했는지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거의 반정부조직으로 간주한 중국 정부는 여성운동가들을 국민에게서 격리하듯 비정부기구포럼의 장소를 화이러우로 옮겼다. 열악한 시설이었지만 여성운동가들은 제각기 이슈를 가지고 나와 서로에게 알렸다. 영어를 몰라도 상관이 없었다. 모두가 자국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참여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있는 영역에서는 알지 못했던 전쟁 강간에 대해서, 할례에 대해서, 일본군위안부여성에 대해서, 인신매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인권이 여성인권이고 여성인권이 인권이라는 것을 이번 번으로 확실히 합시다.


"If there is one message that echoes forth from this conference, let it be that human rights are women's rights and 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 once and for all."

 

아직도 여성인권신장에 대해서 말하면 인권으로 되받아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왜 장애인 인권, 아동인권, 노동자인권, 전반적인 인권을 논하지 않고 여성의 권리만 주장하냐는 것이다. 즉 인류에게는 인권신장이라는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고, 여성인권신장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식의 구분이다. 2002년 선거를 앞둔 개혁당 내에서 성폭력에 대한 비판을 해일 이는데 조개줍기에 비유한 사건을 안다면 이런 구분이 친숙할 것이다. 아직도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고 여성의 요구들은 대의에 묻히는 지금, 20년 전 여성인권이 인권이고 인권이 여성인권임을 못박은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은 답답한 여성주의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줄 것이다.



 

베이징회의는 국가가 여성을 보는 관점을 바꿨고, 이 때 완성된 베이징행동강령은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여성차별을 공격하는 무기이자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아직도 길이 멀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회의에서 완강한 반대로 레즈비언의 권리가 성문화되지 못한 것부터 시작해 회의에서 다루지 못한 여성문제들, 새롭게 생겨나는 여성문제들에 대한 세계 각지의 운동가들이 대항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대책을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5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는 것과 그 파급적인 효과는 베이징회의가 앞으로의 여성운동에게 준 희망이다.

 

회의 이후 21년이 지난 지금, 페미니즘은 인터넷을 타고 젊은 세대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2016 한국에서 논의되는 문제는 디지털성범죄, 데이트폭력, 아이돌 성상품화 등 베이징회의에서 논의된 것과는 다른 문제들이다. , 현재 여성에 대한 폭력은 인터넷, 대중문화, 그리고 소비주의와의 결합으로 1995년과는 다른 모습으로 여성을 억압하고 있고, 그에 따라 대응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의 목소리는 주류가 되지 못하고 현실 차별은 가려지고 있는 상황, 이 속에서 변화를 외치다가 지쳐 막막해질 때면 잠깐 1995년도으로 돌아가 화이러우에 모인 여성운동가들에게서 에너지를 받아오자. 거듭된 방해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관철시키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이 우리 세대의 페미니스트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1] World Conferences on Women, UN Women, http://www.unwomen.org/en/how-we-work/intergovernmental-support/world-conferences-on-women(확인 날짜201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