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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현이들과 지원이들에게 내미는 손

한국여성의전화 2017. 9. 22. 00:59


모든 가현이들과 지원이들에게 내미는 손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가현이들>, <오늘의 자리> 감독과의 대화 현장


명희수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여성인권영화제의 첫째 날,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처한 여성들의 현실을 그린 두 편의 영화가 함께 상영되었다. <오늘의 자리>는 기간제 교사로, 휴가를 얻어 떠난 이들의 자리를 때우며 유목민같은 비정규직 생활을 하는 지원의 삶을 다룬다. ‘내 자리’가 아닌 ‘오늘의 자리’를 찾아 떠도는 지원에게, 지원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역시나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현이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이유로, 다른 직종의 ‘알바 인생’을 살아오던 세 명의 가현이들이 ‘알바노조’ 결성 초기부터 함께해 온 이야기를 그린다. 세 명의 가현이들은 ‘알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처음 만났고, 알바노조 활동을 시작으로 각자의 미래를 꾸며 나간다. 이 날 감독과의 대화에는 감독 가현이, 윤가현 감독이 함께했다.


카메라 뒤의 이야기

윤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나를 비롯해 대학을 안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청년들을 많이 만났다. 이 영화가 그런 친구들에게 스스로 하고 있는 노동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감독과의 대화를 열었다. 이어, ‘영화에서 더 하지 못해 아쉬운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 있는가’라는 관객의 질문에, 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청년 이외의 연령층, 그리고 여성에게 더욱 억압적인 노동환경을 이야기했다. “우선, 불안정한 일자리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다. 저나, 다른 가현이의 어머니들도 불안정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사신 분들이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늘 존재했고 그곳에는 항상 사회적 약자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제가 여성이면서 알바노동자이다 보니 일하는 곳에서 요구 받는 것이 더 많다. 이사를 하려고 짐 정리를 하는데, 머리 망 4개와 단화 4개를 발견했다. 직종마다 요구하는 차림이 다르다 보니까 갈색 단화, 검은색 단화, 굽 있는 단화, 없는 단화, 리본이 있는 단화, 없는 단화를 전부 사비로 구입해야지만 알바를 할 조건을 갖출 수 있는 거다. 이렇게 불안정한 일자리에서도 여성은 더 많은 것을 요구받는 현실을 담고 싶었다.”고 감독 스스로의 경험을 공유했다.

관객들 역시 이에 공감했다. 한 관객은 “저는 눈이 나빠 안경을 쓰고, 화장을 잘 안 하는데 처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렌즈를 끼고 화장을 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콘텍트렌즈와 화장품을 구입했던 기억이 났다”고 말했다.


‘공감’이함께 나아가는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윤가현 감독은 감독과의 대화를 마치며,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알바가 뭘까’를 많이 고민했다. 감독과의 대화를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알바가 아니라고 말하며 알바를 타자화하더라. ‘나는 장시간 노동자니까 알바가 아니야’, ‘나는 계약 기간이 기니까 알바가 아니야’. 하지만 불안정한 노동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자영업자도, 대기업정규직도 ‘안정적 일자리’라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불안정한 일자리와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텐데, 어떻게 하면 이 분들을 현장에서 돕고, 법을 통해 보호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우리의 매일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노동, 그렇기에 이 두 영화는 우리의 일상에 더욱 직접적으로 말을 건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 가현이였던 적이 있고, 지원이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윤가현 감독의 말처럼, 두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느낀 공감이 답답함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