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당신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한국여성의전화 2017. 9. 22. 01:43

당신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 <꽃피는 편지>, <페루자>, <여름의 출구>, <동백꽃이 피면> -

지원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1일 목요일, CGV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진행되는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가 두 번째 날을 맞았다. 이날 ‘피움 초이스’ 부문에서 강희진 감독의 <꽃피는 편지>, 김예영·김영근 감독의 <페루자>, 안정연 감독의 <여름의 출구>, 심혜정 감독의 <동백꽃이 피면> 네 개의 작품이 연이어 상영됐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는 남은주 한겨레 기자의 진행으로, 각 작품의 감독들과 <페루자>의 주인공 ‘페루자’가 참석한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들의 ‘보내지 못한 편지’를 대신하여 - <꽃피는 편지>


<꽃피는 편지>의 주인공 ‘금’과 ‘은’은 저마다의 이유로 북한을 떠나 남한 땅을 밟았다. 북한에서 녹록하지 않았던 생활 형편을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 도전' 삼아 고향을 떠나온 ‘금’과 남한에서는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주저 없이 월남을 결정한 ‘은’. 남한의 현실 또한 팍팍하고 경쟁은 치열했지만, 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사람을 만나며 행복한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이들에게 ‘새터민’이란 이름을 붙일 때, 이들의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단순하게만 바라봤던 건 아닐까. 이 다큐멘터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꽃피는 편지>의 강희진 감독은 “‘꽃피는 편지는 북한 이탈 주민의 수기를 보고 따온 제목"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작품을 만들면서, ‘정착해야 할 사람’의 눈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포용력이 있는 공간인가를 고민하게 됐고, 실제로 꽃이 펴야 하는 건 정주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 - <페루자>

<페루자>는 신혼여행으로 세계 일주를 떠났던 부부가 에티오피아의 외딴 마을에서 소녀 ‘페루자’를 만나고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인터넷은커녕 주소도 없는 오지 여행지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익힐 정도로 총명했던 페루자. 에티오피아의 ‘조혼 풍습’과 가부장적 문화는 과거에 그녀와 그녀의 엄마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페루자가 꿈꾸는 자유로운 ‘미래’ 또한 가로막으려 한다. 하지만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공부하고 싶은 그녀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예영 감독은 작품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 “한국에 돌아온 뒤 페루자와 영상 통화하는 장면”을 꼽았다. 감독은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올 때 페루자를 두고 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페루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녀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안도감, 뿌듯한 감정을 전했다. 이 자리에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페루자도 함께 했기에 더욱 특별했다. 올해 스무 살이 되어 대학 생활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에게, 비슷한 시기에 꿈에 대해 고민하는 20대 관객들의 질문이 있었다. 페루자는 “한국에 온 것 자체로 꿈이 이뤄졌다기보단, 이분들(김예영·김영근 감독)을 만난 뒤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졌다는 점에서 이미 꿈을 찾은 것 같다"고 답했다. 많은 관객의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에 페루자는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을 했지만, 용기 있는 페루자의 모습에 그 자리의 관객들은 되려 꿈을 꿀 힘을 얻어가지 않았을까.


백번의 망설임뿐일지라도 - <여름의 출구>

여름은 덥다. 나의 ‘지금’이 너무 갑갑하고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그 더위는 더욱 괴롭기 마련이다. <여름의 출구>에서 건물 미화원 ‘현자’를 둘러싼 세상이 그렇다. 집은 수도가 끊기고, 부당 대우를 모른 척 넘어가라는 회사의 회유는 나날이 심해진다.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 세상을 떠난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회사에 맞서 같이 싸우자는 동료 ‘경화’의 목소리로 ‘현자’의 마음은 복잡하다. 세상에 처음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한다면, 누구나 ‘현자’처럼 숨 막히는 여름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 않을까.


<여름의 출구>에선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인 중년 여성의 ‘망설임'이 느껴진다. 안정연 감독은 “아무리 극영화라 해도, 급작스러운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며 인물의 심경이 천천히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작품 내내 나타나는 ‘현자’의 망설임에 대해 “막상 직접 해보면 곧잘 할 수 있음에도,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은 무언가 시도해보는 걸 두려워하도록 자라왔다"고 설명하며 영화의 주제를 풀어갔다. 어떤 선택이 ‘현자’가 겪는 지난한 여름을 끝내줄 수 있을지는 단정 짓기 어렵다. 다만 마침내 그녀가 두려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에, 그 길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 <동백꽃이 피면>

<동백꽃이 피면>의 ‘연화’는 동백꽃 하나가 떨어진 어느 날 이모의 부음을 듣게 된다. 다소 담담해 보이는 ‘연화’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이모를 두고 온갖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자 그녀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모가 어떤 삶을 살았다 한들, 그 삶에 대해 함부로 평가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을까. ‘연화’는 이모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이모와의 작은 기억, 이모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이모가 좋아했던 동백꽃을 떠올린다.


심혜정 감독은 “‘이모'는 “사랑을 따르며 살았던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작품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사랑을 막고 있는 낡은 권력과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동백꽃-‘연화’의 생리혈-이모의 빨간 잠바로 이어지는 ‘붉은 이미지’는 ‘연화’가 이모의 삶과 사랑에 교감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연화’의 아버지는 이모의 사랑을 질타하고, ‘연화’의 남편은 ‘연화’가 이모로부터 전이되는 사랑을 방해한다. 자신의 삶과 사랑에 ‘지나치게’ 솔직한 여성은 주변으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게 되며, 왜 그런 시선을 받아야만 하는가? 작품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네 편의 작품은 누군가의 지난 생애를 다시 읽게 하고,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길법한 ‘타자’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가져오기도 한다. 더불어 그녀들이 꿈꾸는 ‘미래’를 함께 응원하며 작품을 보는 ‘나’의 삶에도 용기를 불어넣는다. 위의 상영작은 9월 24일 일요일 12:00에도 만날 수 있으니 많은 관심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