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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후회하는 것들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5. 02:26

우리가 후회하는 것들

<혐오 파괴자> <무지개 너머>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우정


 여기 두 명의 여성이 있다. 이들은 암을 이겨냈거나 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죽음과 가까워진 경험을 통해 그들이 가장 후회한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참지 않을 것인지가 중요해요 / 혐오 파괴자 

 2017년 독일 베를린. 제3제국 이후 65년이 지났지만, 이곳에는 나치 독일과 홀로코스트를 찬양하며 외국인과 반대 세력을 향한 혐오를 표방하는 극우 테러리스트들이 여전하다. 이르멜라 슈람은 그곳에서 25년 동안 약 85,000장의 네오나치 스티커와 그래피티를 지워왔다. 어느 출근길, 그는 네오나치 스티커를 보고도 모른 척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 나치 스티커를 없애지 않았지?” 자문하며 부끄러워했다. 슈람이 퇴근하고 와서도 그 스티커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바로 자신이 행동하는 한 사람이 되기로 한다. 열쇠로 스티커를 긁어내며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던 그 날은, 이후 25년의 시작이 되었다. 7년 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엄청난 기적이라는 암을 18년째 이겨내고 있는 슈람은 그것이 이 일과 자신의 강인함 덕이라고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강해지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저 거울 속의 나를 직면할 힘을 갖고 싶어요.”

 슈람의 행동은 국가의 지원은커녕 제재를 받고 있고 그의 집에는 위협의 메시지를 담은 우편물이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가 두려운 것은 그 누구의 위협보다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삶을 사는 것이기에. 2016년 10월, 슈람은 그래피티를 지우려고 사용한 스프레이 때문에 공공기물파손죄로 기소되었고,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은 누구인가. 슈람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분명 거절당하겠지 하지만 두렵지 않아 / 무지개 너머 

  2015년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 레니는 사랑하는 여성들과 행복한 생일 파티를 보내고 있지만 그런 그도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다. 어머니를 여의고 68세에 떠난 뉴질랜드 여행에서 만난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레니는 그 사람이 자신과의 관계를 주변에 비밀로 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이별을 고했다. 어릴 때부터 여성에게 사랑을 느껴왔지만 그 여성들은 모두 이성애자였고, 레니는 거절당할 것 같으면 자신이 먼저 마음을 접어버리곤 했다. 머리에 생긴 혹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레니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사랑하며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레즈비언으로서 마음껏 사랑하며 활짝 웃는다.


 “친구들은 가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답한다.”


 이젠 더 이상 거절이 두렵지 않다는 레니. 첫사랑과의 기억에 미소 짓는 레니에게 친구들은 그의 SNS 계정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레니는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재회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도 누군가의 혐오나 비난이 두려워, 하고 싶은 일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어져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이며 지금 행동하지 않았을 때 후회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후회를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삶에서 후회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어도 우리에겐 후회 ‘뒤’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무언가 후회하고 있다면, 후회 뒤에 오는 그들의 생생한 삶을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만나보자. 우리에게 너무 늦은 후회란 없다. 슈람과 레니가 우리에게 용기가 되어주었듯 우리도 누군가의 용기가 되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