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그때 그 아이는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5. 21:19

그때 그 아이는

- <밤이 오면> 피움 톡톡 현장 -

 

한국여성의전화 8기기자단 지현, 은기

 

915, CGV 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 개막작 <밤이 오면>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그때 그 아이는, 어떻게 그 시절을 보냈을까를 주제로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 정(이하: )이 진행을 맡았고,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한상희(이하: 한상희 회원), 영화감독 겸 작가 홍재희(이하: 홍 작가)가 참석하였다.

 

영화 <밤이 오면>은 가정폭력 이후를 살아가고 있는 18살 앤젤과 그의 동생 10살 애비게일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두 자매는 가정폭력 피해자이자, 살해 현장의 목격자이다. 엄마의 죽음 뒤 남은 두 사람의 삶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들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 역시 부재한다. 가해자인 아빠에 대한 복수와 이해도, 사건에 대한 망각과 치유도 오롯이 둘의 몫이다.

 



우리의 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많은 관객이 피움톡톡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앤젤과 애비 앞에 놓인 막막한 현실 앞에 관객석에선 울음을 삼키는 소리와 침묵만이 흘렀다. 누구도 쉽게 말을 내뱉기 어려운 분위기에서 정이 질문을 던졌다. “앤젤이 보냈던 두 번의 밤처럼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쓸쓸했던 밤의 기억이 있을까요?”

 

홍 작가는 앤젤도, 애비게일도 모두 자신이었다고 대답했다. 이제는 어린 시절 겪었던 가정폭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들으면 그날, 그 밤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이야기 했다. 한상희 회원은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욕을 내뱉은 밤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나의 세상이었고, 나의 울타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깨진 밤이었고, 세상이 산산조각 난 밤이었다고 답했다. 정은 홍 작가와 한상희 회원의 답에 우리 모두가 앤젤이고 애비인데요.”라고 말을 이었다. 관객들이 앤젤의 삶을 목격하며 가슴 아파하고, 밤거리를 혼자 걷는 앤젤을 보며 조마조마 했던 건 앤젤이 겪었던 그 밤을 우리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가부장의 실업은 경제적인 무능력과 사회적 지위의 추락으로 인식된다. 그 속에서 열등감에 사로잡힌 남성이 하는 일은 가장 안전하다고 확신하는 가정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이는 가부장제 의식을 가진 남성이 가족을 자신의 부속물로 삼고, 상실한 사회적 지위를 스스로 벌충하는 방식이다. 가해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의 일상은 파괴되었고, 영화 속 아버지의 대사처럼 어쨌든 그 일은 벌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정은 복수, 이해, 단절 등 폭력 피해 이후를 해석하는 다양한 형태의 이름들과 각자의 방식들이 존재한다.”고 운을 떼었다. 주인공 앤젤은 복수를 선택했고, 분노가 그녀를 추동한 결과 앤젤은 총을 든다. 홍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청소년기라는 성장과정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앤젤의 복수가 이성적인 계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본 영화의 감독이 여성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재현함으로써 원흉, 즉 가해자를 제거하는 것이 불행의 끝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밤이 오면>은 수많은 앤젤들을 재현한다. 각자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극복해나가는 방식이 다른 점들을 보여줌과 동시에 영화라는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가 또 다른 치유의 방법이 된다며 위로를 건넨다.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그 속에서 쓸쓸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일이 있고 난 이후에도 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를 살아내면서 문득 과거로 돌아가는 날이 있을 테지만, 삶을 포기할 수 없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젤의 생명력이 닿는 곳은 동생 애비게일이다. 외모에 관심이 커지고 첫 월경을 시작한 애비게일에게 앤젤은 무심한 듯 손을 먼저 내민다. 애비게일은 자신을 홀로 남겨둔 앤젤을 미워하면서도 나도 데려갈 거야?’라고 물으며 언니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앤젤와 애비게일이 함께 해변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은 관객을 울렸다. 앤젤이 나 아빠 닮았어?”라고 묻고 애비게일은 아니, 안 닮았어. 언니가 최고야라고 답하는 장면은 산산조각 난 그들의 삶을 다시 살려주고, 그렇게 두 자매는 다시 연결된다. 그리고 앤젤의 복수는 계획과 다르게 끝이 난다.

무수한 을 지내온 세상의 수많은 앤젤과 애비게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내야 한다. 정은 피해 이후에 그것을 해석하는 어려운 시간과 과정을 통해서 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관객은 과거, 현재, 미래의 앤젤과 애비,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많은 모델이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그들이 살아남길 바랄 뿐이라고 간절한 응원을 전했다. 한상희 회원은 주인공 앤젤의 이름이 영화의 취지에 부합하는 느낌이라며, “주변의 앤젤들 덕분에 잘 살아왔다. 가족이 가장 안전한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경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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