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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약속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6. 01:54

'우리‘의 약속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 <자하의 약속> 리뷰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김지현


<자하의 약속>은 ‘여성기훼손(Female Genital Mutilation)’이라는 악습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자하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하는 세상에 나온 지 2일 만에 여성기훼손을 당하고 15살의 나이에 중년 남성과의 강제결혼으로 뉴욕에 끌려간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고통과 후유증, 그리고 폭압적인 결혼생활. 결국 자하는 첫 번째 결혼으로부터 탈출하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10년 뒤, 자하는 그녀 자신과 같이 여성기훼손을 당한 여성들의 삶을 파괴하는 악습을 중단하고자 고향인 감비아로 돌아가는데... 영화 <자하의 약속>은 자하의 진술을 통해서 그녀의 삶과 가족에 대한 기록으로 전개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주권을 되찾기 위해 뿌리 깊은 사회적 억압과 맞서 싸우는 자하의 삶과 정신이 담겨 있다. 


여성기훼손, 관습인가 악습인가

여성기훼손(FGM, Female Genital Mutilation/Cutting)은 의료행위와 무관하게 여성의 생식기 일부를 절제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여성기훼손은 주로 15세 이하의 여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유니세프(2018)에 따르면 하루에 6,000명의 피해자들이 발생하며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전 세계 30개국에서 최소 2억 명의 여성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입고 있으며 그 수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여성 여성기훼손은 심각한 통증과 함께 지속적인 출혈, HIV, 요도감염, 불임 등의 부작용을 겪으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른다.


여성기훼손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종교적 오해이다. 이슬람 국가 전체가 여성기훼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반대로 여성기훼손을 실시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종교와 상관없이 이를 전통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여성기훼손이 지역적, 문화적 요인들의 결합으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여성 억압의 실천이라는 의미이다. 단지, 여성의 ‘올바른’ 결혼 생활을 위해서 순결을 보존하고, 외도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종교 교리에서도 여성기훼손을 강요하지 않음에도 이는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사회, 문화적 규범으로 작동한다. 혹은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또한 많다. 


특히 이것이 지역적 문화로 자리한 국가에서는 시술 과정 또한 매우 문제적이다. 주로 동네에 절제술을 집행하는 나이 많은 여성들이 있는데, 이들은 마취 없이 녹슨 면도칼이나 주사기를 재활용한다. 여성기훼손 관습 국가들의 경우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 또한 매우 낮아 위생과 이후의 질병, 증상들에 대한 지식도 부족한 실정이다. 악습이자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여성기훼손은 처녀성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여성에 대한 종교적, 문화적 억압이다. 이는 재생산을 목적으로 한 성관계마저 평생 고통스러운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사람들은 여성기훼손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여성의 결혼이나 집안의 사회적 지위에 타격을 우려하여 이를 대물림할 수밖에 없다. 종교적 명목뿐만 아니라 오랜 관습을 따르기 위한 문화로서, 혹은 미적인 이유로도 여성기훼손은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한국의 예를 들자면, 서울 시내를 비롯한 인터넷 광고 배너에는 ‘꽃잎’수술, ‘이쁜이’수술이라고 적힌 소음순 성형, 질 성형이 꽤 많이 등장한다. 성적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 생식기의 미용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은 한국의 ‘성형’문화와 더불어 여성이 일상적인 성적 대상화에 노출되어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준비된 ‘아름다움’을 간직해야한다는 것 이상이 아니다. 이는 여성기훼손, 혹은 수술이 멀리 있지 않으며, 가부장제의 폭압이 여성의 생식기에까지 번진 것이기 때문에 ‘후진’ 문화권 혹은 ‘개발도상국’으로 지칭되는 지역만의 일이 아니며, 문화적 타자화를 경계해야 한다.   

여성기훼손은 조혼을 부추긴다


여자 어린이가 성기 절제술을 받고 나면 전통∙문화적 관점에서 ‘여성’으로 받아들여진다. 법적 성인 연령과는 무관하게 피해 여자 어린이/청소년들은 강제적으로 조혼을 하게 되고 조기 임신과 출산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며,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 또한 학업을 중단해야 하거나 교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교육권을 박탈당한다. 이는 여성기훼손과 조혼이라는 악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없게 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과거 한국에서 ‘여성은 낫 놓고 ㄱ자도 몰라야 한다’며 글을 읽고 쓰거나 교육을 받지 못하게 했던 것과 같이 여성을 문화적으로 억압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성기훼손, 조혼, 여성의 교육권 박탈로 이어지는 관습들과 이를 지속시키는 비논리적인 설명들은 여성을 가부장제에 종속시키는 폭력이자 인권 유린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나이로비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찰스 올릉가는 “여성기훼손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여성의 처녀성을 강조하고, 여성들이 ‘진정한 여성’으로 성숙하기 위해서 스스로 여성기훼손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불평등한 결혼은 강조하지 않는다”며 여성기훼손과 조혼의 강력한 연관성을 설명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가부장제의 폭력에 대해서 비판했다. 일련의 장치들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이는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억압의 산물이자 현재진행형의 과정이다. 



‘우리’의 약속

자하는 여성기훼손 반대운동 단체인 “Safe Hands For Girls”를 설립하여,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감비아의 여성기훼손 금지법 제정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감비아 전체에 더 이상 여성기훼손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청소년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기훼손에 대한 논의가 국가 전체적으로 활발하게 논의하게 함으로써 이를 지속하게 하는 오해와 지식들이 대한 이해를 향상시키고자 한다. 여아와 여성청소년들의 교육을 확대하기 위해서 미국 커뮤니티에서 아프리카계 이민자 및 난민 소녀들을 대상으로 건강과 미래에 대한 선택을 현명하게 내릴 수 있도록 교육 지원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자하는 이런 노력들로 2018년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선정되었으며 “한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의 산 증인”, “감비아에서 실질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음에 놀랍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국가 등장 이후, 시공간을 초월하여 여성의 성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는 단 한 번도 여성 자신의 것인 적이 없었다. 국가와 가부장제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써 여성을 체제 내에 종속시키는 방식으로 결탁하여 자가 생식한다. 여성에게 순결함과 처녀성을 강요하는 것에서부터 비혼 임신과 비혼모에 대한 낙인, 임신중절 불법화, 성매매 여성에 대한 악마화, 인구관리를 위해 여성의 몸을 이용하는 것까지. 하지만 여성의 몸은 더 이상 성적 대상화, 기계화, 혹은 폭력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자하의 약속>은 자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절실함이다. 더불어 생존자 모두의 굳건한 의지이자, ‘우리’의 딸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싸움이다. 자하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공론화하고, 성과 재생산의 권리가 여성 스스로에게 있도록 싸운다. 이 싸움에 함께 하고 싶다면, 그리고 자하의 놀라운 싸움이 궁금하다면 <자하의 약속>을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고 함께 외치자. "My body, My Cho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