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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이 마음에 안 들면 차버려!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6. 03:09

밥상이 마음에 안 들면 차버려!

 - <누가 소현씨를 울렸나><인사3팀의 캡슐커피><물물교환><자유로> GV 현장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현경


여자를 미워하는 건 쉬운 일이다. 특히 내가 여자라면, 여자를 미워하는 건 더 쉽다. <누가 소현씨를 울렸나>, <인사3팀의 캡슐커피>, <물물교환>, <자유로>에서도 다른 여자를 미워하는 여자들이 나온다. <누가 소현씨를 울렸나>에서 나라 주임은 출산 휴가를 앞둔 지현 대리에게 “매번 여자 휴게실에 가 있으면서 언제 다해요?”라고 비아냥거리며 프로젝트를 빼앗는다. <인사3팀의 캡슐커피>에서 수아 대리는 계약직 민주를 잘라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물물교환>에서는 동생과 단둘이 생활하는 일영이 구청에서 지원받은 생리대 택배 박스를 누군가 훔쳐 가고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의 친구들은 일영에게 등을 돌린다. <자유로>에서 택시기사인 여진은 싹싹하고 애교 많은 친구인 주희를 지긋지긋하게 생각한다. 


명절에 큰집에 모여 밥을 먹을 때, 남자 밥상과 여자 밥상은 다르다. 여자의 밥상은 거실 어느 구석에 펼쳐져, 작은 상 위에 남자의 밥상 조합과는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인사3팀의 캡슐커피>에서 수아는 애초에 자기 담당도 아니었던 남자 상사의 인사 업무를 떠안는다. 그 업무는 계약직 민주를 자르는 일이고 수아는 불합리한 일을 저질러야 한다. 계약직 민주는 대리인 수아가 기피하는 믹스 커피 타기와 술자리에서 부장 비위 맞추기 등에 자진한다. <물물교환>에서 생리대 박스를 잃어버렸다는 일영의 말에 구청 직원은 “학생이 생리대를 더 가져가면 다른 학생이 쓸 게 없잖아요.”라며 죄책감을 주는 핀잔을 놓는다. <누가 소현씨를 울렸나>와 <자유로>에서는 주인공과 다른 여성의 외모를 비교하며 평가하는 남성들이 등장한다.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여자들의 밥상에는 적은 양의 이상한 맛을 가진 음식이 놓여 있다. 우리는 그 좁고 별로 손대고 싶지 않은 밥상에서 경쟁해야 한다. <자유로>와 <인사3팀의 캡슐커피>에서 여진과 수아는 밥상을 뒤집어버린다. 그 방식은 당연하게도 연대를 통해 이루어진다. 여진, 수아, 소현, 일영이 그랬듯, 여성들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서로를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인 경우가 많다. 미움을 극복하고 연대로 구조에 균열을 내는 두 주인공의 시원한 행동을 보면, 내 지난날까지 돌아보게 된다.


9월 15일 12시 GV 현장에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실감 나게 담아낸 감독들을 만나보았다. 감독들은 각자 왜 영화를 찍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인사3팀의 캡슐커피>의 정해일 감독은 "처음부터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다"며 "그러나 남성이 주인공이 되었을 때 회사 안의 권력다툼으로 보여질 가능성이 있었고, 여성 캐릭터가 회사 생활 등의 영화 내용을 보다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주인공으로 정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수아와 민주가 겪는 일이 단순한 권력다툼이 아님을 시사했다. <물물교환>의 김다영 감독은 "'깔창 생리대'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되었다"며 "경제적 취약계층의 삶을 면밀히 알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전했다. 


<누가 소현씨를 울렸나>의 이길우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제 또래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주변에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처음에는 남성을 위주로 썼는데, 여성이 훨씬 더 걸림돌이 많은 것을 느끼고 여성으로 주인공을 바꾸게 되었다"고 밝혔다. 객석에서 함께 한 <누가 소현씨를 울렸나>의 임선우 배우는 "여성에게는 임신과 출산이 자연스러운 일이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 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이 영화를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앞으로 여성이 대상화되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다뤄질 수 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GV를 통해 감독들의 생각과 경험을 들으며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 여성의 현실을 드러내며, 동시에 그 현실을 돌파해 나갈 상상력을 제공하는 피움 초이스의 미래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극장을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