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우리는 ‘혼자인 채로 함께’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6. 19:12

우리는 ‘혼자인 채로 함께’

좋은 부모 대소동/ 레즈비언, 카메라, 액션/ 미세스 맥커쳔 피움톡톡 이야기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석희진


9월 16일, CGV 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의 상영작 《좋은 부모 대소동》, 《레즈비언, 카메라, 액션》의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젠더학 연구자 유화정이 출연하고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정이 진행을 맡았다. 연구자 유화정은 미국 퀴어 영화가 발전해 온 역사를 간단히 언급하며 피움톡톡의 서문을 열었다. 또한 90년대의 퀴어인권영화가 이성애중심주의 사회 안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면, 현재는 일상을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삶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서사가 변화하였다는 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We are good parents! 우리는 너무 좋은 부모야! 

좋은 부모 대소동은 인권감수성을 겸비한, 진보적 가치관을 지닌 부모가 딸에게 ‘이성애 중심주의적’ 가치관을 무의식중에라도 강요한 건 아닐까 우려하는 모습을 묘사한 코미디 영화이다. 영화는 유쾌한 묘사를 통해 웃음과 함께 우리 사회의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도록 만든다.


피움톡톡에서는 미디어 속의 다양한 성소수자 모습에 대한 재현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본 영화처럼 새로운 상상력을 열어주는 다양한 표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양한 모습의 재현 그 전에 퀴어-레즈비언을 주제로 한 미디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진단도 이어졌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미세스 맥커쳔

미세스 맥커쳔(토마스)은 자신이 잘못된 몸을 갖고 태어났다는 생각에 휩싸여있다.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며 지내왔지만 새로운 학교에서 개최되는 댄스파티를 변화의 계기로 삼는다. 이는 학교 선생님과 어머니 그리고 친구 트레버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위계의 승리자가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위계질서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폭력일 수 있다는 고민와 깨달음을 주는 영화이다. 


피움톡톡에 참가한 한 관객은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트레버가 미세스 맥커쳔을 ‘여성’이라 생각하고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며, 자신도 통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전했다. 영화 말미의 트레버가 친구로서 ‘온전한 모습’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미세스 맥커쳔의 정체성이 구체적으로 호명되지 않은 것도 많은 여운이 남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서로의 대답이 된 기록들  

《레즈비언, 카메라, 액션》의 방점은 ‘기록의 중요성’에 찍혀있다. 이 영화는 하위문화에서 시작된 퀴어-레즈비언 영화의 제작자, 평론가들의 이야기이다.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퀴어영화의 역사와 제작 과정, 그리고 퀴어인권운동의 의제와 함께 발맞춰 발전해온 역사를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담아냈다. 

연구자 유화정은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그린 미국드라마 ‘L Word’를 언급하며 그 드라마를 통해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삶의 모델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는 경험을 나누었다. 따라서 미디어는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재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매체라는 것을 강조하였고, 이와 같은 예시가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활동가 정 역시 이러한 드라마가 없었다면 개인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감상을 전했다.  


피움톡톡의 열띤 분위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 관객은 ‘레즈비언 에티튜드’, 접할 수 있는 미디어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실제 한국의 퀴어-레즈비언영화는 제작이 미국에 비해 활발하지 않고 상업영화 역시 손에 꼽기 때문이다. 때로는 퀴어에 관한 왜곡된 시선을 주입시키기도 한다. 이에 연구자 유화정은 실제로 한국 퀴어-레즈비언 영화의 제작비율이 20%가 채 되지 않는다며, 영화의 상업성이 보증되어야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미국 역시 시장논리의 필요성에 의해 퀴어영화가 보급된 역사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퀴어인권운동의 역사가 발전하고 있는 만큼 우리 사회속에서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던져야 하는 물음들

연구자 유화정은 자신이 가장 감명 깊게 느낀 구절을 공유하며 피움톡톡을 마무리하였다.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어디서든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성애가 자연스럽고, 그러한 모습이 영화, 드라마 등 어디든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이 된 것이고, 성소수자는 강제적 이성애 규범을 강요당하는 현실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영화를 통해 다양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였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무력한 물음 앞에서, 세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운동을 기억해야하고 이러한 노력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제시해주는 작품이었다. 또한, 페미니즘이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기 위해 시작된 움직임이라면, 적극적인 연대가 서로에게 대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경험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