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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복날], [갑과 을] 내 안의 군사주의 마주하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2. 19:21

스포일러 주의.




내 안의 군사주의 마주하기 / [], [복날], [갑과 을] / 12.09.22 



<창The Window>, ⓒ연상호


 

 “보통 인권 영화를 보는 사람은 자신은 착하다고 착각한다. 그런 면을 뒤집어 보고 싶었다. 당신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고, 또 관객이 가해자가 되는 기분을 느껴 보게 하고 싶었다. -연상호 감독, 서울신문 인터뷰 중

 

 

나도 누군가에게 가해자였다 

 

  옴니버스 인권만화책 <사이시옷>(창비.2003.최규석 외)에서 <>을 먼저 접했다. 어느 정도 연대의식으로 구입한 만화책이었고, 익숙한 불편함에 대한 페이지들은 쉽게 넘어갔다. 장애,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새삼 불편함을 느낄 만한 주제들은 없었다. 그러나 <>에서 나는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가해자에게 더 감정을 이입해버린 것이다.

 

  <>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짬밥이 비슷해 막내가 상병인 정철민의 분대의 방 문에는 창문이 없다. 족구대회에서 매년 우승하는 모범 분대지만 고문관 홍영수가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긴다. 소염기가 뭔지 외우지를 못하고, 관등성명도 우렁차게 못 댄다. 분대의 아버지와 같은 인간적인 정철민 병장은 일대일로 홍영수를 교육한다. 교육은 효과를 보이고, 자신의 유토피아가 구축되었다며 흐뭇해한다.

  그러나 홍영수의 군장에서 깔깔이와 공기를 넣은 비닐봉지가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고 분대는 얼차려를 받는다화가 난 정철민은 홍영수를 구타하고, 홍영수는 다음날 자살을 기도한다. 정철민은 영창에 가고 분대는 해소된다. 보름 남짓의 영창 생활 후 돌아와 정철민은 창이 생긴 분대 방에 돌아와 눕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가족들은, 유토피아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만화를 보고 느꼈던 찝찝하고 불쾌한 감정은 영화를 보고도 마찬가지였다. 또 가해자, 정철민에게 더 이입해 버렸다. 단체생활을 하면서 누군가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느꼈던 경험들을 돌이켰다. 대학 강의에서 하는 조모임만 해도 그렇다. 각자 맡아서 하기로 한 것들을 해오지 않으면 화가 난다. 수련회, MT, 농활, 등등 누군가와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 규모의 일이라면 으레 모자라거나 빠지는 구석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른 구성원들이 피해를 입거나 전체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너무나도 쉽고, 자연스럽게 그 모자란구성원 개인의 자질을 탓한다.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한다면 질책 받아도 마땅한가? 물론 피해와 문제는 이미 일어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다. 그럼에도, 질문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일인가요?”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돌이켜보면 모자란 구성원이 아니라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서야. 그리고 다시 한 번 돌이켜본다. 나의 실책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용서하고 타인의 실책에 너무 쉽게 분노했던 기억들을. 반성한다. 나와 타자의 경계를 허물 생각이 없었음을.


 

구조만 바꾼다고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던 주인공 <갑과 을A and B>, ⓒ김진황



교복입었던 가해자가 자전거를 타고,

 군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과거의 피해자에게 치이는 것은 

피해와 가해가 순환하는 폭력의 구조에 대한 감독의 비유였을까? 

<복날Hot Summer Day>,  ⓒ이은상


 

 

  군대 내 폭력은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처럼 보인다. <갑과 을>에서 주인공은 선임에게 당한 폭력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도 누군가의 선임이었고 가해자였다. 그리고 그 기억은 너무 쉽게도 이미 잊혔다.

  <복날>에서는 해병대 전우회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제대한지 2년이 지났음에도 군대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배의 별명을 듣고 웃었다는 이유로 정강이를 차이면서도 충성!’으로 인사한다. 주인이 어제 죽은 맹인안내견을 개 파는 선배 집에서 받아 데려오다가 잃어버린다. 개를 찾다가 동창을 만난다. 학교에서는 그가 주인공을 구타했지만 사회로 나오니 자신은 해병대 전우고 그는 상근이 되어있다. 그의 앞에서 주인공은 담배를 피우던 고등학생의 뺨을 때린다.

  개인을 둘러싸고 수많은 권력 관계가 과거와 현재에 교차되며 얽혀있고 그 관계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구조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따져 묻기가 힘들다. 최후에 웃는 자는, 없다. 오고 가는 주먹과 발길질 속에 전우애가 싹트나? 그럴리가. 앞 면은 증오이고 뒷 면은 폭력인 페르소나가 상황에 따라 바라 보는 방향을 달리하며 개인의 내면에서 불쑥 불쑥 튀어오를 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균질하지는 않다. 누군가에게는 눈 딱 감았더니 지나간’ 2년일수도,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차라리 갈망하게 되는 2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징병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징병제 폐지가 군대 내 폭력 근절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변화는 가능하다. 군대 내 폭력은 근절될 수 있다. 고 믿는다. 폭력이 일어 날 가능성은 항상 있다. 특정 공간에서는 더 높은 개연성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폭력이나 배제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분열된 자아를 화해시키며 타자에게 나아가기  

 

  먼저 내 안의 군사주의를 마주하자. 나에게 권위적으로 굴었다고 불쾌했던 기억에서, 내가 먼저 그를 그런 태도로 대하지 않았는지 떠올려본다.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인지 돌이켜본다. 나의 피해 경험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가시화하지만 수많은 순간들에 나는 또한 가해자였다. 피해 경험과 가해 경험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히 어떤 균열이 자아에 일어난다. 아프지만 똑바로 쳐다보자.

  자아를 화해시키려 계속 노력하며 타자에게 나아가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겠지, 믿음으로 희망하며.  



* 연상호 감독 인터뷰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82101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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