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싸우고, 이기는 ‘말하기’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말하기의 힘> 피움톡톡


린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2일,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말하기의 힘> 상영 후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영화 제목과 같은 ‘말하기의 힘’을 주제로, 재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국장과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나누었다.

<말하기의 힘>은 브라질에서 진행되었던 ‘말하기의 힘(FACES OF HARASSMENT)' 캠페인을 주제로 한다. 영화는 참여자와 촬영 장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26명의 여성의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영화에 담긴 증언은 일부고, 실제로는 140명의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으며, 이후에도 더 많은 여성이 캠페인에 참여했다고 한다. 영화의 구성은 무척 단순하다. 상영 시간 내내,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그 피해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털어놓고 자리를 떠난다.



간섭 없는 ‘말하기’

한 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울거나 말을 잇지 못하는 여성들을 보며 가슴이 아프기도, 내가 겪은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공간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저런 기회가 있었다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실컷 울 수 있었을 텐데 싶어 부럽기도 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그러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도 힘들었지만, 주변의 반응 역시도 상처가 될 때가 많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뭐 그렇게 사소한 거 가지고 그래?”, “왜 그렇게 예민해?” 같은 반응들.

피해자의 목소리로

피움톡톡에서는 많은 관객이 공감되었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한 관객은 “우리가 좀 더 쉽게 우리의 경험을 말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브라질 다큐멘터리지만, 한국 여성으로서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부분이 많았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한 관객은 “중간에 경찰관이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피해를 부정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최근에 국회의원이 ‘젠더가 뭐냐’고 질문했다는, 그런 이야기도 생각나며 겹쳐 보였어요. 경찰관이나 국회의원처럼 이런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젠더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교육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매 부소장은 “이 영화의 원제가 <FACES OF HARASSMENT>인데, 여기서 ‘face'라는 단어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민낯, 실체적 진실을 고발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는 질문에는 “저희가 2003년부터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열었는데, ‘말하기’를 위해서는 들을 사람의 존재, 태도, 그리고 들을 시간과 공간의 확보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라며 “요즘 드는 생각은, 듣기 참여자의 태도에 대해서 피해자가 ‘그렇게 들으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볼 가능성도 있겠다 싶더라고요.”라고 마무리했다. 한 관객은 “말하기에 어떠한 방식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듣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재 국장은 “스스로 자유롭게 피해를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더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영상 제작 공부 중이라고 밝힌 한 관객은 “요즘 보면 영화에서 성폭력을 묘사하는 장면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렇게 피해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오매 부소장은 “영화 등에서 피해자를 묘사할 때 역시 피해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담는 게 아니라, 이야기 맥락을 잘 살리는 노력, 즉 피해자의 존엄을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라며 피해자 자신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한 관객의 “말하기가 단순히 말하기로만 끝나지 않고 사회 변화로 이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재재 국장은 “해시태그 운동들도 그렇고 ‘말하기’를 아카이빙하고, 이 영화처럼 기록해서 사회 구조까지 지적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말은 끊임없이 부정되고 의심받는다. 그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라는 요구에 많은 피해자는 침묵 속에 갇히곤 한다. 영화는 그 침묵을 깨뜨린 결과를 보여준다. 오매 부소장은 “이 영화처럼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반성폭력 운동을 하면서 피해자에게 힘이 생겼다고 느낄 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해줄 때, 작게나마 이겼을 때 등 ‘이런 운동을 하길 잘 했다’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 순간을 위해 우리가 말하고, 또 듣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재재 국장은 “더 많은 사람이 ‘말하기의 힘’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피움톡톡을 마무리했다.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말하고 또 듣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 대신 힘 있는 말하기를 택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우리에게 그러한 변화를 향한 희망을 준다. 자리에서 일어서던 관객들의 모습에도 힘이 실린 듯 보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침묵을 깨고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그들이 여기에 있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시티 오브 조이> -


김단비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총총 가벼운 발걸음 끝에 저녁을 먹으러 가는 여성들. 몸짓은 제각각이지만 춤을 추며 기쁨과 행복에 젖어 있는 여성들. 색색의 색연필로 자신의 ‘보지’를 그려내고 까르르 웃어대는 여성들. 이곳은 콩고의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쉼터이자, 그들을 리더로 양성하는 기관,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이다.


‘피해자의 틀’을 깨는 피해생존자

  전쟁 성폭력을 겪은 피해생존자의 모습.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가. 당신과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모습은 몹시 전형적이고 제한적이다.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묘사되곤 하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제한적인 통념은, 성폭력 피해생존자가 피해를 씻어내고 극복하기 어렵게 한다. ‘피해자는 아프다’라는 통념은, ‘피해자는 아파야 한다’는 당위로 확장되어, 피해자의 모습을 가둬버린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적극적이고 강한 피해자보다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피해자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된 사회 안에서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다양한 색깔의 피해자생존자들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각자 다른 고유한 색깔을 지닌 여성들의 모습이 겹치고 겹쳐, 웃음과 치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피해자생존자들이 정말 다양하구나, 맞다 모든 사람은 다 다양하지’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다. 전쟁 성폭력이라는 피해는 그들 삶의 일부일 뿐, 결코 삶 자체를 규정지을 수 없다는 사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당연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왔던 그 진실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상처는 나누는 만큼 줄어든다. 치유로 나아가는 공감의 힘


  물론 '피해자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처는 상처 자체로 아픈 것이며, 그 상처를 충분히 아파하고, ‘아픈 나’를 애도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로 나아갈 수 있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그 과정을 담백하게 따라간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에서 혼자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가만히 서로에게 귀 기울여주고 그 피해의 고통에 말없이 함께 아파한다. 토해내듯이 자신의 고통을 말하는 사람, 자신의 아픈 감정을 직면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말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말하기를 모두 ‘함께’ 들어내고 ‘같이’ 아파해낸다. 이때 나만 경험했던 아픔은 모두가 경험했던 아픔으로 확장된다. 그렇게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의 수료자 제인은 말한다.

이 곳에 오기 전, 나는 이 고통을 겪은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깨달았어요. 난 혼자가 아니란 걸.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의 프로그램인 ‘자신의 마음 표현하기’ 시간. 누군가는 어린 딸을 보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생각나 미워했지만, 이젠 딸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에서 치유와 공감을 경험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정서적으로 성장한 만큼, 타인을 돕고 사랑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사람을 구함으로써 하나의 세상을 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침묵으로 구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의 여성들이 침묵해야 했던 피해를 목격하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부수는 순간, 침묵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자기 자신으로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얼마나 따뜻한지도 느꼈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전쟁 성폭력’에 관한 다큐멘터리지만, 아프고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함께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1000명의 여성이 수료하고 1000명의 리더를 얻은 공간, 영화<시티 오브 조이>를 당신과 함께 보고 싶다. 그럼으로써 침묵을 깨고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폭력, 그 이후의 삶

- 국내작 <김장>, <손의 무게>, <미열>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린

피해자에게 굴레를 씌우는 사회

스무 살 무렵 수업 과제로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형상화 방식과 그에 따른 2차 가해’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썼다. 이 보고서를 쓰면서 이 사회 전체가 2차 가해에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피해자의 삶은 계속되고, 그들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상처를 안은 채로 계속 살아가는데, 사회에서는 온갖 잔인한 표현을 쓰며 피해자에게 굴레를 씌우고 있었다. 결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충격적인 ‘흥밋거리’에 불과한 것처럼도 보였다. 표현하는 방식이 어딜 가나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가해자와 철저히 수동적인 피해자, 그리고 피해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까지. 현실에서는 가해자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평범한 사람인 경우가 많고, 피해자의 삶은 계속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최근 개봉한 <청년경찰>, <VIP> 등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중대한 범죄를 너무 세세하게 묘사하고 단순한 소재로 소비해버렸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김장>, <손의 무게>, <미열>, 이 세 작품은 여성들의 피해 그 이후의 삶을 중점적으로 조명한다. 쉽게 찾아보기 힘든 영화인 셈이다.


<김장>, 겉으로는 평화, 깊어지는 상처



<김장>에서 주인공 영주는 김장 때문에 친척 집에 갔다가 성폭력 가해자인 이모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영주는 가해자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을 불편해하지만, 정작 가해자는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 머물지 못하는 영주를 자주 비춘다. 영주가 없는 집안은 화목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피해자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가해자를 피해 다녀야 하는 상황은, 친척 사이에 일어난 성폭력이기에 더욱 두드러진다. 작품을 보면서 가족 내 성폭력을 다루었던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이 떠올랐다. 이 다큐 속에서는,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다른 가족에게 털어놓자 ‘너만 조용히 하면 우리 가족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장면이 등장한다. 가정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이렇게 가정 속 폭력은 쉽게 은폐된다. 영화 내내 영주를 옥죄어 오는 반쪽짜리 평화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아니면 실체를 드러내게 될까?


<손의 무게>, 너무나 일상적인 폭력



한국 사회의 데이트폭력에 관한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데이트폭력의 피해를 보았다는 말에 ‘어쩌다 그런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는 ‘누가 봐도 특출나게 비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사람인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또한, 어떤 사람을 만났든지 간에 그 사람을 만난 피해자가 아니라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에 전적인 잘못이 있지만 사회는 흔히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손의 무게>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던 고등학생 연인에게 사실은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그려낸다. 이 영화는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겉으로는 누구보다 애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또 이로 인해 데이트폭력 자체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피해자가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경우도 있음을 시사한다. 연인의 일상을 감시하고 간섭하는 것이 낭만적인 연애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데이트폭력 피해자에게는 피해를 피해라고 말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미열>, 이제 곧 열이 내릴 거야



영화는 남편과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은주가 오래전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의 검거 소식을 듣는 데서 시작된다. 성범죄 피해자의 상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미열이 잘 돌보고 쉬게 하면 금방 내리듯이, 상처를 극복할 방법도 분명히 존재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이 영화가 성범죄를 비롯한 많은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열이 오른 것처럼 힘들지 몰라도 다시 또 괜찮아질 수 있을 거란 희망 말이다. 어쩌다 상처가 덧나 아플 때도 있겠지만, 곧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영화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국 미디어에서 피해자를 묘사하는 전형적인 방식 대신, 세 작품은 아픔을 잊기도 하고, 고통에 빠져들기도 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여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몇몇 장면에는 진심으로 화가 나기도 했고, 결말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본 후 ‘그래도 삶은 지속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폭력을 당한 이후 완전히 삶이 끝난 것처럼 그리는 기존의 미디어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지금도 많은 여성이 힘들었고 끔찍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여성인권영화제 찾아가는 이동상영회 IN 태백가정폭력상담소

헌팅 그라운드, 움직임의 시작



여성인권영화제FIWOM은 2011년부터 매년 ‘여성인권영화제 지역상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성인권영화제 지역상영은 서울에서만 진행되던 여성인권영화제를 확대하여 더 많은 지역 주민이 여성인권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2017년에는 7월 한 달 동안 찾아가는 이동상영회를 개최하여 총 11편의 상영작을 20개 지역 43개 기관에 나누었습니다.


본 후기는 2017년 7월 12일 태백가정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헌팅 그라운드' 상영회 후기입니다.



- 영화를 보는 내내 다른 사람들이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답답하고 속상하였다.


- 미국 같은 잘 사는 선진국에서는 잘 대처하는 줄 알았는데, 권력이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화가 났다.


- 젊은 시절 성폭력에 의해 결혼한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고, 지금은 남편의 학대에서 벗어 살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였고, 현재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성폭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힘 있는 사람에 의해 덮으려는 사람들과 일반적인 사람들의 피해자들의 약한 모습들이 겹쳐지는 것들이 힘들었고, 그들이 젊은이 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 어떻게 사회가 가해자가 살아가기에 더 쉬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더 화가 났다.


- 영화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주변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성폭력피해자, 가해자라는 말보다 정말 생존자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 성폭력을 대학에서 대처하는 것 보다는 국가에서 대처하는 것이 더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 어린학생들이 대단하다. 처음 시작은 한명의 약한 어린 피해자에서 시작하였지만, 여러 명이 모여서 작은 힘을 보여준 것 같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용기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졸업을 하고서도 연계하여 다른 사람들을 돕는 시너지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본받을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람들 돕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여겨진다. 내가 피해자라고 해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과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다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아팠다.


- 문제가 대두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편하게 쉬쉬 한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면 관심을 두지 않는 일이 주변에서 많았고,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였다는 미안함을 느꼈다.


- 죽을 만큼 힘든 상황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전염병은 누구나 걸린다. 폭력은 전염병과 같이 국가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전염병을 치료하듯이 폭력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움직임은 시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였던 것 같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여성인권영화제 찾아가는 이동상영회 IN 서울북부해바라기센터

'내 몸'의 권리를 위한 싸움, 파도 위의 여성들



여성인권영화제FIWOM은 2011년부터 매년 ‘여성인권영화제 지역상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성인권영화제 지역상영은 서울에서만 진행되던 여성인권영화제를 확대하여 더 많은 지역 주민이 여성인권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2017년에는 7월 한 달 동안 찾아가는 이동상영회를 개최하여 총 11편의 상영작을 20개 지역 43개 기관에 나누었습니다.


본 후기는 2017년 7월 11일 서울북부해바라기센터의 해바라기 문화모임에서 '파도 위의 여성들' 상영회 진행 후기입니다.




낙태 합법 vs 불법, 찬성 vs 반대에 대한 실상을 전세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작품이자, 여러 국가의 여성의 힘, 생생한 목소리와 연대감을 보여주는 뜻깊은 작품이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 의 직원들이 관람한 덕분에 소감의 내용도 다채로웠는데 일부를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사후피임약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는데, 임신중절약은 처음 듣는다. 새로운 정보에 대한 적잖은 충격도 있었고, 과연 우리나라 국민의 알권리는 잘 지켜지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남자로서 임신한 여성의 입장을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 태아의 생명은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당연히 중요하다 생각했었는데, 산모의 존재가 새로이 각인되어 생명의 소중함이 곱절의 무게로 느껴졌다.


약의 부작용에 대한 부분이 염려스러웠고, 이 영화에서 소개된 중절약이 우리나라 약국에 보편적으로 취급될 시의 부작용 (제약회사 영리추구에 급급하게 된다던지, 소비자의 무분별한 남용 발생 등) 이 우려된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 등 안전하고 인증 받은 기관을 중심으로 저변을 늘려갈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원치 않는 아이의 임신은 여성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양육부담으로 인한 가족문제, 사회문제의 불씨가 된다. 또한 안전하지 않은 전통적 낙태방법으로 소중한 여성의 생명을 잃느니 ‘파도위의여성들’과 같은 운동이 적극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다큐형식의 영화라 극적인 사건전개나 흥미를 이끄는 요소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일방적인 지식전달의 내용도 아니라서 전반적으로 밍밍한 느낌이다.


‘파도위의 여성들’ 단체 활동가들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오랜 항해와 낯선 이국, 배타적인 시위대들에도 굴하지않는 그들의 씩씩함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여성인권영화제 찾아가는 이동상영회 IN 일본군'위안부'세미나

찾아가는 이동상영회 후기, 우리가 서로의 용기다



여성인권영화제FIWOM은 2011년부터 매년 ‘여성인권영화제 지역상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성인권영화제 지역상영은 서울에서만 진행되던 여성인권영화제를 확대하여 더 많은 지역 주민이 여성인권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2017년에는 7월 한 달 동안 찾아가는 이동상영회를 개최하여 총 11편의 상영작을 20개 지역 43개 기관에 나누었습니다.


본 후기는 2017년 7월 9일 일본군 '위안부' 세미나의 '헌팅그라운드' 상영회 진행 후기입니다.






#1

통계로 보면 미국의 대학에서 여성 1/5이 성폭력 경험이 있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사회는 적어도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 


미국 역시 강간사건이 발생하면 대개의 경우 가해자를 추궁하기 보다 '피해자'를 의심하거나, 단속하려고 든다.  피해자 여성에게 '얼마나 저항했나' 묻는다.  


대학이라는 시스템은 물의 자체를 싫어한다(부정한다).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심각하게' 취급하겠다하지만,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가해자 처벌 역시 솜방망이 수준(하루 근신하거나, 방학 동안 정학을 결의하거나, 벌금 75달러를 물거나...)이다.  대학은 주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조치를 취하며,  결국 피해자를 '침묵하도록' 만든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제기하는 사건들 가운데 실제로 가해자 학생을 퇴학하는 경우는 1/10~1/50 정도이다.  그 가운데 검사가 기소하는 사건은 다시 1/5 정도로 떨어진다.  왜 이렇게 대학사회는 가해자를 보호하는가? 


'강간문화'는 보편성을 띠지만 미국의 특수성도 작용한다.  미국 대학내 남성사교클럽의 산업적인 측면은 어마어마하다.  해마다 엄청난 금액을 대학에 기부하는 동문들이 바로 남성사교클럽 출신이다.  또한 그들은 사교클럽의 기숙사를 학생들에게 따로 제공하며(대학은 해당 기숙사의 운영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남성사교클럽이 신입생들에게 '강간클럽'으로 불려도 통제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나와도 어떤 식으로든 '조용한 해결'을 도모한다.  피해자들은 성폭력 자체도 끔찍하지만 이후 믿었던 학교로부터, 가해자들로부터, 가해자들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거짓말쟁이'로 취급당한다.  어쩌면 이 뒤의 경험이 훨씬 끔찍할 것이다.  


그래도 변화는 '용기있는' 피해자들의 행동으로부터 나온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서 비슷한 경험의 당사자들을 찾고, 같이 이야기나누며, 사례를 수집한다.  학교의 구성원들에게 호소하며, 기자회견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대학내 성폭력을 없애기 위한 긴 싸움을 시작한다.   


피해자 여성들의 용기있는 증언과 행동도 눈부시지만, 그들의 슬픈 표정과 눈빛 자체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지금 바로!" 

"우리가 서로의 용기다!!"



#2

  영화를 감상하기 이전에 찾아본 영화 내용에서 이 영화가 미국 대학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래도 한국하고는 다르겠지’였다. 한국의 매스컴을 통해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 피해자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는 문제들이 미국에서는 심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틀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미국 대학에서의 성폭력 문제들은 한국의 경우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남자 사교클럽이나 학생선수와 관련된 케이스에서는 미국 대학 내 성폭력 문제가 한국보다도 심각한 문제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았던 미국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씁쓸함과 함께 착잡함을 동시에 느꼈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학 내부는 폐쇄적이었고, 그 안에서 발생한 문제는 대학의 평판 등에 의해서 그 죄를 제대로 묻지 못한 채 은폐되었다. 이것은 성폭력 문제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또한 대학 밖 사회와 마찬가지로 여성은 대학 내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겪은 상처에 사건 처리가 진행되면서 또 다른 상처를 입어 이중고를 겪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더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피해 여성들의 움직임이었다. 영화 속 상처를 입은 여성들은 죄를 제대로 묻지 않는 대학들에 대하여 용기를 내어 항의하였고, 대학 밖으로도 목소리를 내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여성들의 용기에 의해 국가가 움직였고, 영화에 따르면 현재 100여 곳에 가까운 미국 대학들이 조사를 받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노력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한 여성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야겠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또 다른 것은 왜 사회는 이들에 대해 진작 관심을 가지지 않았냐는 것이다. 


  대학을 포함하는 사회가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사건이 일어난 초기부터 제대로 대응하였다면, 상처를 입은 이들이 굳이 나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사회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개개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사회라는 구조적인 상황이 일개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타락한 개인의 이야기로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개개인을 바꾸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학내에서 ‘학내 성폭력’을 외치다
- 다큐멘터리 <헌팅 그라운드> -

 

 21세기 대학은 기업이다.

 대학이란 어떤 공간인가. 지식의 상아탑, 학문의 전당. 사람들에게 각인된 대학의 이미지는 이와 같은 고고한 이미지로부터 시작된다. 사회가 시장 자본주의 속에서 돈과 경쟁으로 물들어 버린대도, 대학은 언제까지나 정결하게 제 자리를 지킬 것만 같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미지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이라는 ‘이미지’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이야기 해보자. 진짜 우리 사회의 대학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가.

 치열한 입시 경쟁과 ‘인 서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서열화된 대학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입학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해당 대학이 어떤 학문을 어떻게 가르쳐주는가 보다는 해당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얻을 수 있는지가, 사람들의 더 큰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21세기 우리 사회의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기보다는 대학의 이름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점차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업화된 대학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그/그녀들의 일이 끝나는 것이라면 문제는 없다. 대학은 그들의 이미지를 굳건히 유지하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유지/상승하는 데에 힘쓰면 된다. 그러나 대학은 상품이면서 동시에 해당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자 울타리가 된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그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기 때문이다.

 대학의 울타리는 그들에게 놓인 높은 벽이었다.

 이처럼 학생들은 대학 속에서 살아가고, 이 대학 속에서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또한 학부모들은 대학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대학의 이미지는 언제나 정의로웠고 고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들에게 놓인 대학을 보며 깨닫는다. 그들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대학의 울타리는 타인에게 높은 만큼이나 그들 자신에게도 한없이 높은 벽이었다는 것을.

 대학이 가진 명예로운 이미지라는 틀 속에 갇힌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학내 성폭력의 생존자임을 밝힐 수도 없게 만들었다. 대학은 명백한 피해자인 그들에게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로 도리어 비난하고, 사건을 은폐하고자 했다. 생존자를 보호하는 데에 앞장서기는 커녕 학교에 더 많은 기부금을 끌어올 수 있는 촉망 받는 가해자의 대변을 하기에 바빴다. 영화 속에서 논해진 대다수의 미국 대학은 성폭력 사건을 인정함으로써 학내 학생들을 가해자의 사냥터(헌팅 그라운드)에서 보호하기 보다는, 현재의 명예 유지와 기부금을 끌어올 수 있는 재원-가해자를 택했다. 생존자들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그들이 겪은 경험조차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대학의 벽 앞에서 더욱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상영작 헌팅그라운드 스틸 컷>

 

 “당신이 겪기 전까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Till it happens to you, you don't know.)”

 대학의 울타리 속에 은폐된 학내 성폭력 문제는 자신이 성폭력 생존자임을 외쳤던 두 명의 여학생들에 의해 미국 사회는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외면하는 학교 당국과 함께 그들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은 ‘거짓말’이라며 외면했던 사회에게, 그들은 말했다. 가장 사적이고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이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며, 어느 날 성폭력을 당했다. 나는 성폭력의 생존자다.’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이해해보려 노력하지도 않았던 그 하나의 울림은 미국 전역의 아우성이 되었다. 생존자들은 연대했고, 생존자들이 아닌 이들도 연대했다. 학내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던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 속에서 수면 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만약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10만 명의 학생들이 내년에도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할 것입니다.”

 대학은 자신의 명예로움을 지키기 위하여 생존자들의 고백에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귀를 열었을 때 정작 불명예스러운 것은 성폭력 생존자들의 고백이 아닌 귀를 막았던 대학 자신이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건 가장 불명예스러운 부정(不正)한 대학의 모습이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생존자들의 연대와 지지는 그들의 대학을 바꾸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 원동력을 추동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고백과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지지였다. 변화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어떠한가. 최근 ‘고대 의대생 사건’와 같이 수면위로 드러난 학내 성폭력 문제조차 대학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불명예스러운 일로 학교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10만 명의 학생들이 내년에도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할 것입니다.” 라는 영화의 문구처럼 한국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학내 성폭력이 그저 가끔의 특별한 이슈로만 드러났던 건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조건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제 고개를 들어 살펴보자. 이제 미국의 그(녀)들이 고백의 힘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생존자들의 고백에 귀 기울여 보자. 대학의 벽을 넘지 못한 학내의 목소리에 따뜻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자.

 그녀들의 고백과 우리들의 따뜻한 연대가 만날 때 우리 사회의 변화도 시작될 것이다.

글. 류희정_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신고
블로그 이미지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마취]

 

내과 진료실 침대에 마취된 환자가 누워있다. 방 안에는 의사와 환자 둘 뿐. 그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폭력을 목격하고야 만 지현은 다른 간호사들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다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주저한다. 자기도 모르는 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피해자를 찾아가보지만 피해자는 진실을 알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삶에 균열을 가져온 지현에게 되려 원망을 쏟아낸다. 가해자인 병원장은 자신의 범행이 목격된 사실 조차 모르고 있다. 가해자의 양심적 가책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갈등만 더해간다. 더 이상의 폭력을 묵인할 수 없는 지현은 스스로 피해자가 되기를 선택하며 침대 위에 올라간다.

 

 

[열정의 기준]

 

사회복지사 미영은 가정폭력 피해자인 은지를 쉼터에서 지내도록 도와주고 돌봐 준다. 그러나 은지는 남편의 애원과 홀로 된 불안감에 고민을 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린다. 미영은 심판자 역할을 자처하며 더 이상의 도움을 거부하는 은지를 구출해내기 위해 은지의 남편과 대면하고, 급기야 그로부터 폭행을 당한다. 양수가 터진 채 은지는 미영을 노려보며 나가라고 말한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밤늦은 시간, 인적 드문 골목에서 두 여자가 만난다. 중년의 여자는 맨발로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젊은 여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젊은 여자는 낯 모르는 타인으로 인해 자신의 안전과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다. 벌벌 떨며 말을 더듬는 중년의 여자에게 단지 주머니 속의 몇 천원을 건네줄 뿐이다. 그녀는 “아줌마, 집에 가면 안 돼요.” 한 마디를 건넨 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방관자들]

 

관객은 CCTV의 시점으로 주인공 소녀를 바라본다. 주인공 여학생은 주변 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한다. 상습적인 언어폭력, 신체폭력, 성폭력에 노출돼 있지만 목격자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것은 엘리베이터에, 지하 주차장에, 쓰레기장에, 모텔 복도 곳곳에 도처 해 있는 CCTV 뿐이다. CCTV는 무엇을 찍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소녀는 폭력이 목격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이 발견한 카메라 앞에서 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카메라 앞으로 다가와 관객에게 경종을 울린다. 당신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왜 보고만 있는가.

 

 

위의 네 단편작들은 ‘목격자와 증인들’이라는 테마로 한 자리에 모였다. 흥미로운 점은 각 작품들에서 가해자는 주체도 아닐뿐더러 아예 사건에서 제외된다. 피해자와 목격자의 관계, 갈등, 선택으로 이야기가 구성되고 전개되어간다.

 

 

우선 피해자들은 단순한 약자가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나름의 선택을 한다. 때로는 진실을 덮어놓기를 ‘선택’하기도 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려고 하기도 한다.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목격되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는 꽤나 새로운 서술방식이다. 영화들은 피해자를 약자로 종속시켜버리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그들 나름의 판단을 하고, 도움을 청하고, 선택을 하는 과정을 통해 객체가 아닌 주체로 거듭난다. 때로는 자신을 약자로 규정지어버리려는 목격자에게 반발을 하기도 하면서(‘열정의 기준’).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목격자들의 시선이다. 목격자들의 대처방식은 다양하다. ‘마취’의 목격자 지현은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며 급기야는 피해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열정의 기준’의 미영은 피해자의 영역에 침범해 들어가 직접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젊은 여자는 최소한의 도움만을 주고, ‘방관자들’에서의 CCTV, 즉 관객(더 나아가 우리 모두)은 제목 그대로 사건을 방관할 뿐이다. 누구는 나서서 증인이 되고 누구는 증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여기서 영화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자로 남을 것인가. 증인이 될 것인가 방관자가 될 것인가. 증인이 되는 일은 개인의 삶에 큰 균열을 가져올 수 있으며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우리가 증인이 되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면 멋대로 증인이 되어줄 수도 없다. 이는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버릴 간단한 문제가 아닐 테다.

 

머리가 복잡하시겠지만, 나는 이렇게 (간편하게!) 결론을 내리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증인이 되든 방관자가 되든 선택하라. 시간의 흐름이 멋대로 결정하게 내버려두지 말고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행위를 선택하는 것이다. 설사 당신이 방관자가 되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숙고 끝에 택한 선택이라면 누구도 당신의 선택을 쉽게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웹기자단_ 수연

저작자 표시
신고
블로그 이미지

피움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될 것입니다.”
 
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첫날 상영된 <은실이>는 개봉 초부터 ‘애니메이션 판 <도가니>’라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은실이>는 지적 장애인인 은실이의 죽음과 남겨진 그녀의 아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시골 마을 공동체에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부를 알 수 없는 아기는 은실이에게 직ㆍ간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고,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에 의해 은실이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주인공 스스로를 포함해, 가해자였음을 깨달아가는 영화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 했다. <은실이>의 공동연출을 맡은 김선아ㆍ박세희 감독이 영화제를 찾아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Q : <은실이>가 실화인가요?
 
박세희 조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이주여성단체에도 방문하고 지적장애인들 돌봐주시는 의사에게도 자문을 구했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은실이>가 실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희가 수집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서 마을과 캐릭터를 창조하고 원하는 목표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은실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 실화를 연상시켰을 것 같습니다.
 
Q : 영화가 열린 결말로 끝난 것 같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걸 많이 남겨두셨습니다. 결말에 대해서 정확히 말을 안 해주신 이유가 있나요?
 
김선아 어느 정도는 결말을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은실이가 낳은) 아이가 어떻게 커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은 관객들의 몫입니다. 미래를 희망적으로 본 사람은 그 아기가 은실이와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관적으로 본 사람은 아이가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태어나서 앞으로의 삶이 무척 걱정된다고 하시기도 합니다. “현실 고발이라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편견과 모순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Q : <은실이>를 통해서 여성인권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나요?
 
김선아 영화를 만들면서 여성인권이나 현실고발, 사회적 의무감에 만들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어두워서 싫었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편견,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 여성임에도 여성에게 갖는 편견, 성(性)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순, 본인들의 욕망과 콤플렉스에서 파생되는 파국 등이었어요. 인권문제라기보다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박세희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죄의식이 희석되는 것 같은 것을요. 저희들의 주제 의식에 있어서 다방면에서 공동체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Q : 영화에서 다양한 형태의 폭력들이 나오고, 그 폭력을 대하는 캐릭터도 다양합니다. 방관자도 있고, 개입하려 노력하는 사람도 보입니다. 그 중 이주여성이 은실이의 폭력에 개입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주여성 캐릭터가 인상 깊습니다.
 
김선아 씨족 중심인 시골 공동체 사회에 베트남 이주여성이 시집을 왔어요. 그 이주여성이 이방인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방인으로서 은실이와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은실이와 약간의 동질감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Q :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으면 영화의 내용이 더욱 충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워낙 내용이 충격적이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나요?
 
박세희 (은실이가 혼자 출산하는) 첫 장면이나 성폭력 장면 등이 충격적입니다. 첫 장면을 실사로 촬영한다면 1년 8개월 제작 기간 상의 문제도 있었고, 어린이의 성추행 장면도 아역 배우에게 연기 지도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고민이 있습니다. 여러 문제로 애니메이션이어야만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두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묘사도 애니메이션으로 할 수 있습니다.
 
Q : 앞으로 두 감독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선아 각자 다른 걸 준비하고 있습니다. <은실이> 영화를 하면서 여성과 성(性)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성경과 성(性)’이라는 주제로 시나리오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은실이>처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센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박세희 단편이고 밝은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입니다. (은실이를 통해서) 어두운 감정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졌고, 여성들 사이의 감정들, 불안증, 드러나지 않은 공포심 같은 것을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하게 될 작품은 어두운 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이 불편한 감정을 언젠가는 다시 기억하고 꺼내는 영화가 되었으면”
 
Q : 최근에 <도가니>나 <은실이>같은 영화들이 많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불편함과 분노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곧 그 감정들이 사라집니다. 이 영화를 보고 현실을 살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코멘트가 있으신지요?
 
김선아 <은실이>를 <도가니>와 많이들 비교하십니다. 하지만 <도가니>는 가해자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었다는 겁니다. 분노하고 끝내잖아요. “저 나쁜 놈들~”하고 맙니다. 저희는 ‘그 가해자가 당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에 여러 캐릭터를 심은 것이 당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관객이 느끼는 것이 분노가 아니라 찜찜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순간이라도 그 찜찜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영화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찜찜함이 쌓인다면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은 움직임이 모여서 큰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박세희 영화가 주는 불편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영화가 주는 역할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죄책감을 늘 지니고 있겠어요. 하지만 마주했던 죄책감을 한번 더 생각해보았으면 해요. <은실이>는 개개인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오늘의 이 불편한 감정을 언젠가는 다시 기억하고 꺼내는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수희 이지연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