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통해 가족사를 직면하다

- <아버지의 이메일> 감독과의 대화 -

 

 

1110일 여성인권영화제에서는, 폐막식을 진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이메일>을 상영했다. 아버지의 다사다난했던 역사들을 아버지가 보냈던 이메일을 통해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가 끝난 후, 이 영화의 연출자 홍재희 감독님과 송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가 감독과의 대화에 참가하였다.

 


 

 

Q)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영화의 아버지와 조금 비슷한데, “나는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께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A) 감독 : 용서에는 100%란 말을 쓸 수 없다 생각해요. 사람마다 온도차 있기 때문에. 다만 다큐를 만들면서 아버지라는 존재 또는 우리가 가부장제라는 제도 하에 살고 있으니까 특히나 대한민국을 이루는 사회가 남성에게 가부장이라고 하는 의미를 멍에로서 과하게 부여하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부양이나 양육이라는 것이 남성에게만 부여되는 것만이 아닌데 그게 한국사회에서는 가부장적인 또는 유교의 어떤 남성의 책임감으로 과중하게 부여가 될 때 거기서 실패하고 낙오된 남성은 마치 남성의 자격이 없는 것처럼 스스로 탓하게 되거나 자책하면서 정체성마저도 위협받는 상황까지 간 것이거든요.

 

제 아버지라는 한 사람을 떠나서 보편적으로 일반적인 의미의 사회 구조적문제를 인식하게 되면서 제 아버지를 아버지로서의 증오나 미움이아니라 한 인간, 한 남성의 이야기로서 이해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용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 이해는 머리랑 가슴으로 할 수 있지만 용서는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다르게 온 것 같다. 용서는 다큐를 만들면서 이메일의 행간을 읽어나가며 서서히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

 


 

Q) 아버지가 만약 살아 계시고 술을 마시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생각하면 감독님은 아버지께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A) 감독 :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아버지 같이 먹읍시다.”라고 얘기할 거예요. 지금은 그럴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아버지가 낯설고 멀고 어려운 존재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맞술을 먹어도 지긋지긋함을 느끼거나 환멸을 느끼는 것이 아닌 노인분과 같이 대접을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예전에는 가족 중 아무도 아버지와 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있으신 관객이라면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계속 봐야 할 때 생겨나는 무관심?’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 도피나 회피의 방식으로 철저히 무관심이 되는 상황을 아실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마지막에 말년의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것이 과거와는 달리 대화하고자 하는 요청이었을 수 있는데 아버지 당신도 타인과 피를 나눈 가족과 대화하는 방식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자신이 아닌 가족 또는 여성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집안에서 철저히 좀비나 시체 혹은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죠.

 


 

 

Q) 다큐의 재연장면에 본인이 직접 나오시기도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재연장면들을 어떻게 기획하셨고 어떤 생각이셨는지 궁금합니다.

 

A) 감독 : 다큐라는 게 현장성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상황을 재현할 때 사용한 방법이 재연이라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진정성이 깨진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렇게 가야겠다는 확신 아닌 확신이 있었던 이유는 이 이야기가 아버지의 인생이기도 하고 그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세대의 이야기기도 하고 억압받고 살아온 여성의 이야기기도 하고 집안에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자로 군림하는 남성의 이야기기도 하고요. 그 가해자인 남성 역시 시대의 한 희생양이자 피해자라는 이야기기도 하고 그 세대 자식들의 이야기기도 하고. 제 자신의 이야기기도하고. 내 가족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기 때문에 내 자신을 직면해야 된다는 생각에 내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촬영감독이 연기가 어색하다고 하긴 했지만 저는 그렇게 대답했죠. 나 연기가 안 된다고!” 이 상황은 내가 감독으로서 재연하고 있는 이 상황은 홍재희라는 이가족의 딸로서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없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찍어 달라 라고 말했었죠. 결과적으로는 내 자신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저를 남처럼 타인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저의 가족사조차도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송란희(여성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 아버지의 이메일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좋아했는데, 이 꼭지가 피움 줌아웃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있는데, 개인의 일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미뤄서 두고 보면 보편성이 획득된다. 그럼 본질을 명확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항상 개인이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개인이 구성되는가. 거기서 개인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변화시킬 수 있는가 혹은 좌절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감독님의 영화가 이 메시지와 잘 부합했다고 생각한다.

 


 

Q) 아버지가 인터넷을 배우게 된 계기는? 

 

A) 감독 : 첫 번째로는, 아버지가 기록하시는 것을 부단히 해오셨는데, 어머니께서 그걸 계속 버리셔서 이메일로 저에게 보내려고 배웠던 것 같다. 두 번째로는, 동생이나 내가 갈 때마다 아버지께서 인터넷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는데, 귀찮아서 핀잔을 줬더니 앞으론 부탁을 하지 않으시더라. 나중에 고교 동창을 인터뷰 하려고 갔었는데, 구청의 컴퓨터 교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세 번재로는, 재개발 비대위때 아버지께서 혼자 사무실에 남으실 때가 많았다. 그 장소에 컴퓨터가 한 대 있었는데, 이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을 또 공부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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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메일]

용서는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객관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나의 아버지를 정의해 보자면 대략 이렇다. 전쟁을 겪은 부모님 세대를 위로하고,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주역이었으며, 근면 성실한 태도로 자녀들을 부족함 없이 부양한 베이비부머 세대. 그러나 개인적이고 감정적으로 그를 바라보면 어느 새 자랑스러운 한국사회의 주역은 미움의 대상으로 바뀐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아버지를 무척 미워했고 사이도 좋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아예 아버지를 망각해 버리고 말았는데 그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까닭이다. 그의 기일마다 별 수 없이 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려야 하긴 했지만 제사가 끝나고 나면 나는 다시 내 기억을 봉쇄해 버렸다. 불편한 마음을 상기하기 싫었고 망각은 여러모로 편리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이런 망각의 늪에서 끌어올린 것이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이다. 딸이 아버지의 죽음 후 그가 보낸 43통의 이메일을 통해 아버지의 인생과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형식의 이 영화에는 내 아버지와 같기도 다르기도 한 또 한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공부를 하겠다며 이북에서 목숨을 걸고 월남한 이래, 그 한 개인의 인생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파병, 중동건설 붐, 88올림픽, 그리고 재개발 붐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흘러간다. 북한에서 월남한 아버지의 부친이 다섯 번의 재혼을 거듭한 덕분에 아버지는 계모들의 모진 구박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것도 모자라 20대 청년이 된 아버지가 사업에 크게 성공하자 계모는 소송을 냈고 이것은 그의 첫 성공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베트남 파병에 자원하여 경제적 재기를 꿈꿨으나 때 이른 철수로 실패했고, 사우디에서 일하며 호주로의 이민을 시도하지만 아내 집안으로 인한 연좌제 때문에 그 시도 역시 실패하고 만다. 이렇듯 계속되는 실패에 낙심한 그는 방에 앉아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해 버린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술을 마셨고, 아내와 자식들을 폭행했으며 직업을 갖지 않음으로써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내던진다. 그리고 알콜중독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이렇듯 영화는 한 개인과 국가의 역사를 촘촘히 엮으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이 세밀하게 잘 짜인 내러티브 덕분에 영화는 개인과 역사, 가장과 인간 존재, 남자와 아버지 사이를 오가며 풍부한 결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훌륭한 아버지이기는커녕 지탄받아 마땅한 나쁜 아버지가 분명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인 딸은 물론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버지가 보낸 43통의 이메일 때문이다. 그 이메일들은 이 구제불능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진실, 혹은 속마음을 우리로 하여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만드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글로 표현되는 이메일이 아버지라는 곤혹스러운 존재와 직면하는 데에 완충제 역할을 하는데, 거리두기의 방식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를 좀 더 객관화 시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점점 감독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메일들을 통해 그가 비록 수십 년간 가족들을 괴롭히는 무능한 가장이었고 가해자였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 현대사라는 풍랑에 휩쓸려 희망을 거세당한 채 살아야 했던 피해자이기도 함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역시 아버지의 이메일이 보내 온 화해의 손길을 담담하게 잡아주려 하고 있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바라본다면 조금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 나는 내 깊은 무의식 안으로 구겨 넣었던 아버지를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그랬기에 용서는 기억하기에서 시작된다.”는 영화 속 내레이션은 특히 가슴을 울렸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용서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안에서 아버지의 부인으로 오랜 시간 고통 받았던 감독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폭행 당한 후 도망치듯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감독의 언니는 말한다. “남의 상처를 들춰서 아프게 하지 말라.”.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하는 그들을 보며 깨닫는다.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우리가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듯 아직 용서나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가족들 역시 존중받아야 함을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그녀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싶을 때 과거의 가 아니라 현재의 로 하여금 고통을 준 상대방을 만나게 하라고. 과거의 고통 받은 나 자신은 당연히 상대를 용서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지만, 현재의 는 고통을 이겨냈고 그만큼 성장했으니 말이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언제고 상처받던 그 때의 나로 수십 번씩 돌아가던 내게 상당히 깊었던 대목이었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아버지의 이메일> 속 아버지는 이메일을 통해 남은 가족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지난 날 고통받은 시간에 대해 사과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이해하는 한편 이메일을 통해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간 치유 받는다. 한국의 아버지 담론이 내포하는 무심하고 무능한 많은 아버지들. 그러나 사실은 그들도 영화 속 아버지들처럼 사회의 풍랑 속에서 표류하고 있진 않을까. 용서와 화해를 위해 그를 기억해 보려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마음의 눈을 크게 떠보리라 다짐한다. 나의 아버지가 언제고 나에게 보냈을지 모를 이메일들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에 답신하기 위해서 

 

 


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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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메일] 아버지, 무엇을 원망해야 하나요

 

    

    대한민국처럼 크지 않은 땅덩어리 내에서, 짧은 역사 속 이렇게 시대적 격변을 맞이한 국가가 어디 있을까. 식민 통치 이후 분단의 아픔, 이념 대립으로 인한 6.25 전쟁과 베트남 참전까지. 대략 반세기 안에 별의별 일이란 일은 다 겪고, 더불어 경제 성장까지 이룩해 내어야 했으니 안 힘들리 없다. 그리고 이 격동의 세월 속 정말 힘든 삶을 살아오신 세대가 바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다. 이제는 인생의 노년기에 접어 들어 삶을 마무리 할 준비를 하는 수많은 역경의 자화상들. 그 중에서도 영화는 이북 실향민이었던 한 아버지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살아 생전 한번도 가족의 일에 제대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어느날 돌아가셨다. 그리고 메일을 통해 둘째 딸에게 43통의 일생 회고식의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산산조각 나서 다시는 맞출 수 없게 된 가족사진 액자에 찔린 것처럼 아픈 이야기지만, 영화는 담담하고 유쾌하게 아버지의 삶을 통해 자신의 가족의 모습을 재조명한다. 늘상 참다운 길은 '돈'을 버는 삶이라 생각하여 좁은 남한이 아닌 다른 터전에서 제 2의 삶을 꿈꾸셨던 아버지. 감독의 아버지는 이민에 실패하고 인생의 반 이상을 술로 얼룩진 채 가족에게는 등을 진 채 사셨다.  '실향민.' 어쩌면 그분에게는 그 단어가 평생의 명찰과 같은 역할을 한, 다시 말해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 버린' 상태에 놓여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평생 술을 벗삼으며 고독과 외로움을 남과 공유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떠나갔다. 영화에서 감독은 '나쁜 남편이자 배울 것 없는 아버지였던 아버지' 로 기억되는 그의 삶을 이메일을 통해 자세히 깨닫고 이를 계기로 남은 가족들과 새로이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사실을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라 해도 자신의 가족사와 같은 내면을 면밀히 관찰하고 되짚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영화는 시종일관 솔직하고 담담하다. 인생의 허허로움이 전이되면서 동시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전쟁의 참변을 겪은 사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고난을 겪은 한 가족을 엿보면서 공감되고,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같은 시대를 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필자의 가족 생각에 새삼 감사함마저 느껴졌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용서'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단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를 하기까지에는 지금까지 지속된 그들의 고통이 너무 컸음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이들은 알리라. 가족 중 누구도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괴로웠던 순간이 있을지언정 그를 부정할 수는 없고. 그만의 책임으로 모든 것을 돌리기엔 사회 또한 너무 각박했음을. 그 누구에게도 진정 속내를 터놓고 대화하지 못했던 아버지. 그는 남편이기 이전에 가진 것 없는 한 탈북자였고, 그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오래동안 살던 집을 내주기 싫어하는, 유일하게 자신의 정착을 받아준 곳에 애착심을 가진 외로운 한 사람이었다. 작품이 끝날 무렵 아버지가 북으로 돌아가 잊고 지냈던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꾸었다는 감독의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 어찌 원망만 하며 살 수 있겠나. 이제 원망조차 할 아버지도 떠나고 말았는데. 아니, 애초에 그들은 무엇을 원망하며 살아야 했던 걸까, 라고.

 

 


제 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조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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