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피움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를 돌아보며] 9월, 쌀쌀하지만 아직 춥지 않음을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3. 12:42

 

9월, 쌀쌀하지만 아직 춥지 않음을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를 돌아보며 -

 

조용하지만 강력한 한방, 여성인권영화제

 

한여름의 무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심지어 아침, 저녁으로는 생각지 못한 추위에 몸이 움츠려진다.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의 9월이 그러하다. 9월의 공기를 꼭 닮은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9월 25일부터 28일간 열린 이번 영화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한방을 남겼다. 세상을 바꾸는 모든 영웅들이 그렇듯.

 

현실은 쌀쌀하기만 하다.
9월의 공기는 쌀쌀하다. 9월이 여전히 따뜻하다고 생각하고 나왔다가, 해가 떨어지고 나서는 냉기를 느낀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여성들의 인권,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잘 보호되는 사회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권이 잘 지켜지는 것은 이제 정치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누군가, 또는 내 자신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여성인권영화제’가 아니었다면 그 냉기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제의 ‘섹션 1.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는 인권이 보호 받지 못하는 쌀쌀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여성인권영화제’의 목적이, 그 역할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보호받아야 하지만 무참히 폭력 당하는 하나 하나의 인권들에 대한 고발 말이다.

 

그러나 아직 춥지 않다.
9월의 공기는 쌀쌀하다. 하지만 코끝이 빨개질 정도의 추위는 아니다. ‘여성인권영화제’가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려는 것은 바로 그 쌀쌀함, 춥지 않음이다. ‘섹션 2. 일상과 투쟁의 나날들’, ‘섹션 3. 그대 마음과 만나, 피움’, ‘피움 줌인: 이어달리기’, ‘피움 줌아웃: 보통의 도전’에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시되었다. 약한 여성으로서의 삶에 갇혀 있지 않고 스스로 강해져 온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인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다룬 영화들. 쌀쌀한 현실 속에 몸을 움츠리지 않고 질주하여 불태우는 많은 이야기들. 어쩌면 ‘여성인권영화제’는 인권을 억압받는 ‘현실’에 대한 고발보다 이러한 현실 속에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군가는 가볍게 다른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지만, 또 누군가는 힘겹게 인권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쌀쌀하지만 아직 춥지 않은 이유다.

 

우리는 함께 했다.

13개국 29편의 영화들은 소재도, 주제도, 표현 방식도 너무나 다양했다. 하지만 모두 한 곳을 향한다. ‘여성인권영화제’라는 조금 낯선 이름으로,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영화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인권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인권에 대한 고민은 길이 남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우리 사회, 전 세계의 인권 현주소를 보았고, 인권을 보호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느꼈으며, 그럼에도 질주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함께 했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는 그 테마처럼 4일을 위해 질주했고, 4일간 질주했다. 영화제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 함께 질주할 메시지들과 사람들이 남았을 것이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