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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적은 여자? 그럼 남자는?

한국여성의전화 2016. 10. 13. 11:10



여자의 적은 여자? 그럼 남자는?



<슈발리에>


나율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절대 네 친구를 믿지 마, 그녀는 핑크 립스틱을 숨기고 있거든.' 최근 한 화장품 회사의 파우치에 쓰인 이 문장은 많은 여성에게 항의를 받았다. 그 이유는 여자가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만으로 친구와 경쟁한다는 전제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이 문장뿐만 아니라 여성비하의 용도로 쓰이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생산된다. 그러나 수컷 새처럼 몸을 부풀리며 동성을 적대시하는 남성의 존재는 어째서 부인하려는 것일까? 이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면 당신은 '슈발리에'를 더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남자를 정하는 게임

호화 요트로 여행을 온 남성들은 저녁을 먹으며 ‘슈발리에’라는 게임을하기로 한다. 이들 중 ‘누가 가장 종합적으로 최고인가’를 가리는 다소 우스운 게임이다. 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의 행동을 하나 하나 감시하며 평가한다. 요트라는 한정된 공간은 관객에게 팽팽한 긴장감과 몰입을 선사한다.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관찰자적 시점은 본격적 인 게임과 함께 시작된 남성들의 팽팽한 긴장감과 우스꽝스러운 경쟁을 더욱 조밀하고 침착하게 응시한다. 이들의 행동에 대한 감정적인 개입이 존재하지 않는 연출은 관객은 이 집단적 이기심을 마치 옆에서 보는 것처럼 직접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슈발리에'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기사(knight) 또한 이들을 반어적으로 비꼬 장치이다. 영화의 플롯은 간결하지만, 남성들의 관계에서 보이 는 대사는 거된 품격과 위태로움, 공격성과 유치함을 넘나들며 블랙 코미디의 저력을 과시한다. 수많은 영화제에 후보로 오르고 <제59회 런 던 국제 영화제>에서 대상을 거머쥔 슈발리에는 멀리서 모든 상황을 관 망하는 듯한 연출 감각과 과시욕 넘치는 남성들의 우스운 행동이 단연 돋보이는 영화이다. 


요트 위에 남아있는 것

경쟁이 심화될수록 ‘최고의 남성’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져간다. 영화는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지배자에 위치했던 이들이 자신의 위치를 필사적으로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끝없이 미끄러져 내리는 과정을 그린다.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여성영화, 그래서 특별한 이 영화가 더욱 의미 있는 까닭은 게임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구조가 친구였던 이들을 순식간에 폭력적인 경쟁 관계로 몰아 넣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졸렬한, 혹은 야만적 행위는 점차 거세진다. 그럼에도 이 위트 있는 블랙코미디는 다양한 개그 요소로 빛난다. 정말 여자의 적은 여자인가? 이쯤 되면 “여자는 우정보다 사랑, 남자는 사랑 보다 우정”이라고 외치던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