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여성이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 열쇠는내 욕망 알기

<빛나는 인생> 피움톡톡

 의정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노년 여성의 삶을 다룬 제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도나의 사랑>, <빛나는 인생>의 상영 이후 진행된 피움톡톡의 주제다. 106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할배의 탄생>,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를 쓴 최현숙 작가와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 활동가 정이 여성, 성소수자의 노후에 대한 빈곤한 상상력을 넘어서라는 화두를 던지고 관객과 대화했다.

행복한 노년을 꿈꾸는 관객들에게, 최 작가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이성애중심주의, 가족중심주의 등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을 벗어나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됐다. 자신의 욕망을 아는 것이어떤 연애를 할 것인가’, ‘얼마만큼의 돈을 벌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등 나이 드는 법을 결정해 나가는 열쇠였다.

한국에 레즈비언 왕국을 건설하는 법

관객들은 첫 번째로 <빛나는 인생>에서의 레즈비언 공동체가 한국에서도 가능할지 물었다. 최 작가는 주변에서 레즈비언 요양원 운영을 꿈꾸는 분을 여럿 봤다“30인 이하 노인들이 같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면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제도를 통해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활동가는 국가 제도에 침범해 레즈비언 왕국을 건설할 수도 있겠다고 말하며 관객과 함께 웃었다. 최 작가는 성소수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세력화가 중요하다국가가 청년, 노인, 여성을 상대로 공공주택을 지급하는 등 여러 지원제도를 마련하는데, 이것을 레즈비언 공동체의 시작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의 연애·결, ‘정상범위에 편입되지 않아도 괜찮아

최 작가는 이성애 중심, 가족 중심 제도 탓에 성소수자로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지만, 그 제도 속으로의 편입을 요구하기에 앞서 제도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작가는 사회가 말하는 정상으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결혼제도에서 벗어난 삶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활동가는 “<빛나는 인생>에서 24년 결혼생활은 아직 애송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듯, 오래 만나고 친밀함을 깊게 나눠야만 한다는 인식이 있다. 이게 자기 욕망이 맞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짚었다. 최 작가는 관계가 오래돼야 좋은 거고, ‘원나잇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에는 사회의 정상 이데올로기가 들어있다며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의심해봐야 한다고 했다.

 

귀농해서 공동체를 꾸린다면 어떨까

<빛나는 인생>에서 여성 공동체를 만드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던 샐리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농촌 지역을 여성의 땅으로 택했다. 관객들은 귀농해서 공동체를 꾸리는 것의 장단점이 무엇일지 궁금해했다. 최 작가는 농촌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정부가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시골의 삶을 좋아한다면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최 작가는 신자유주의적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농촌으로 가는 것이 제격이라면서도, “문화적 혜택, 의료시설에의 접근성을 포기하기 어렵다면 도시에서 공동체적 삶을 꾸려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농촌의 폐쇄성, ‘텃세가 걱정된다면

한 관객은 여성들이나, 다른 소수자들이 도시에 살고자 하는 덴 이유가 있는 것 같다농촌의 폐쇄성이 두렵기도 하고, 그 지역 문화에 어떻게 적응할지 상상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최 작가는 농촌 적응의 어려움으로 텃세가 꼽히는 데 대해, ‘텃세가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인들이 거부성이 강하다고 하지만 도시에서 온 젊은이들의 선입견이 강한 측면도 있다며 처음 농촌의 문화를 접했을 때 불편할 수도 있지만, ‘농촌 사람들은 이렇다’, ‘노인들은 이렇다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 것을 권했다. 활동가 정은 “<빛나는 인생>에선 서로 섞여 살며 일어나는 변화를 사랑이라고 말하더라. 그것을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최 작가는 먼저 좋은 관계를 만들고 난 뒤에 불편한 지점을 얘기하며 타협해 갈 수 있다우리가 농촌에 가서 살려면 그들의 삶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들의 문화와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청년세대와 노년세대의 한 마을 공동체’, 가능할까

노인들과 청년이 함께 사는 마을을 꿈꾼다는 관객이 손을 들어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물었다. 최 작가는 가능하다고 답하며 신자유주의 사회가 청년세대와 노인세대가 함께 살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젊은 층은 일터로 몰아넣고, 노인들은 요양원에 몰아넣는다며 노인들이 요양원에 수용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최 작가는 일본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일본의 한 농촌마을에 요양시설을 만들고, 주변에 유치원, 시장, 학교와 산업을 유치했더니 노인, 아이와 함께 사는 가구들이 입주했다며 이러한 공존이 가능하려면 신자유주의의 효율성 개념을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최 작가는 노인을 부담되는 존재로만 보고 요양원으로 내쫓을 생각만 하지 말고, 지역사회 안에서 노인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늙는 건 별개 아냐늙음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문제

정 활동가는 내 몸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이 사회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내가 하는 노후대비란 칼슘영양제 먹는 것밖에 없다며 노년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놨다. 최 작가는 늙는 건 별게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무릎이 조금씩 안 좋아지는 것일 뿐이라며 웃었다. “어떤 능력은 퇴화되고 어떤 능력은 확장되니까 집중할 것을 선택해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며 나는 기억력과 순발력은 떨어졌지만 통찰력이 발달하고 있다. 글 쓰는 데 그것을 활용해 살아간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늙으니까 소변이 자주 마렵다. 아까 영화 상영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왔다창피해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노화를 겪는 몸이 젊은이의 속도에 안 맞는다고 불편해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나답게살기 위한 물질적 조건

최 작가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노년을 잘 보내는데 필요한 건 결국 돈이 아닐까 생각한다나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물질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하고,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정도는 살아야 멋진 삶이라고 신자유주의 사회가 주입한 욕망인지, 내 욕망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작가는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며 관점을 세상과 나누는 일이 최 작가답게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위한 물질이 충족되면 된다고 말했다. “작은 원룸에 사는데 청소할 일이 없어서 좋다. 나한테 필요한 조건은 그 정도인 거다. 해외여행 같은 것엔 욕망이 없다.”

 

어떻게 죽고 싶은지 알아야 나이 드는 법도 알게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이날의 중요한 화두였다. 최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어디까지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노년은 남의 돌봄을 받으면서도 독립성, 주체성,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각자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작가는 내 마지막을 정하고 나니 무엇을 추구하며 살지 더 명확해졌다며 나이 드는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는 어떻게 죽을지를 결정하는 일도 포함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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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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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를 향한 어떤시선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 <회상> -

채연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영화 <회상>은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메트의 파편화된 기억을 시점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그녀의 기억에서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녀의 가족과 그녀가 지원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밀러이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밀러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회상> 상영 이후 진행된 피움톡!!<여성폭력을 마주한 얼굴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여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선을 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진행을 맡고 <혼자서 본 영화>의 저자이자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인 정희진이 함께하였다.

여성폭력 피해자들의 수많은 얼굴을 그대로 마주하기

영화가 다루는 가정폭력에 대해 정희진은 여성폭력 가운데에서도 가정폭력은 가정이라는 제도 하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나이, 계급, 인종과 같은 사회적 변수가 미치는 영향이 다른 폭력보다도 적다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학력 여성이든 저학력 여성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나이가 많은 적든 상관없이 여성들이 일단 가정 내에서 성역할 규범에 묶이고 남성과 상호작용하는 과정 자체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는 피해자 정체성을 갖기가 쉽고 외부에서도 이들을 피해자화 하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피해자 여성의 대응과 리액션이 핵심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피해 당사자와 가해자 간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가정폭력에 대응하는 개인의 매뉴얼이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가정폭력 피해자의 반응을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다양한 피해자의 모습을 재현하는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회상>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모습을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정희진은 피해는 하나의 사건이자 에피소드로서 발생하는데 이 피해가 마치 여성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처럼 만들면서 피해자화하는 사회와 구조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는 모든 행위나 피해는 상황과 맥락이지 그 사람의 인생이나 본질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이를 위해 주인공들이 투쟁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영화는 여성의 삶에서 일부분일 수 있는 폭력을 그 개인의 정체성의 전부로 보는 우리의 시선을 비틀어낸다. 피해자 여성에게는 폭력 이외의 사회적 관계와 경험 등이 있고 이에 대한 개인의 대응과 실천은 삶의 궤적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아무도 누구를 구원해줄 수 없다.

주인공 메트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밀러를 지원하고 돕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계속해서 일그러지고, 그러한 일방향적 관계도 아닌 것처럼 묘사된다. 이에 대해 정희진은 아무도 누구를 구원해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비록 영화에서 메트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활동을 하지만 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거짓말을 하기도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더하여 메트와 남편 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결국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는 밀러가 메트의 도움으로 폭력에서 벗어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자기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구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변화할 뿐이다.

 

혼란 속에서 찾는 새로운 가능성

관객들은 영화 전반에 대해 과거와 현재 시점이 지속적으로 교차되면서 등장인물의 상황과 전 반적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고 혼란스럽다는 평을 전했다. 이에 대해 정희진은 이러한 전개 방식이, 구조는 간단하지만 개인의 복잡한 상황과 맥락이 관여되어 문제의 해결이 어렵고 혼란스러운 가정폭력의 특징을 잘 살렸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한 관객은 남녀 사이는 둘만이 안다라는 말은 방관자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피해를 입은 당사자 또한 간단하지 않다고 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누군가가 고통받을 때 그건 두 사람의 문제야라고 말하며 방관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했다. 정희진은 문제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으로 이분화되지 않기 때문에 구조 속에서 개인의 실천과 대응이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가부장제 하에 있지만 모두가 같은 가부장제 상황을 겪는 것은 아니고, 같은 상황에서도 개인은 다르게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서 정희진은 변화의 가능성을 찾았다. 구조가 고정된 것이라면, 그리고 개인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들을 임파워링할 때, 성차별적 구조는 무너지는 것이다.”라는 정희진의 말은 우리가 구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준다.

사회는 혼란스럽고, 그 속의 개인은 더욱 혼란스럽다. 하지만 왜 우리는 여성폭력 피해자에게는 혼란을 허용하지 않는가? 정희진은 이러한 혼란을 재현하고 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인식론의 자원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 혐오는 끊임없이 여성의 경험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의미화할 수 있는 여성의 언어를 억압한다. 따라서 결국 페미니즘은 의미 투쟁이자 해석 투쟁일 수 밖에 없다. 영화 <회상>은 혼란 속에서 새로운 여성의 언어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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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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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가깝고도 먼 관계 속의 연대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 <연락처> <쓰라린 바다> <프라이머리 컬러스> <그녀> <파티전 거리>-

 

재인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영화 <연락처>에는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머무르는 쉼터에 갑자기 찾아온 가해자가 등장한다. 영화 <쓰라린 바다>에는 가정폭력 가해자인 남편을 피해 낯선 곳에서 일하며 딸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고, 영화 <그녀>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엄마와 딸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담았다. 영화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한 명의 주인공이 카메라 앞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강요받았던 침묵을 꺼내놓는다. 영화 <파티전 거리>는 오디션을 보러 가는 주인공이 아이가 혼자 남겨졌다는 전화를 받은 후 엄마로서의 역할과 커리어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다섯 영화는 모두 가정폭력 생존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음에도 엄마와 딸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네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이에 대해 영화 상영 이후 ‘<'엄마와 딸'이라는 연대> - 폭력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엄마와 딸, 그 가깝고도 먼 관계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서재인 시설장이 진행을 맡고,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칼리가 패널로 참여했다.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 엄마와 딸

상영된 네 영화 모두 가정폭력이라는 상황 속에서 엄마와 딸의 연대에 대해 다룬 만큼,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엄마와 딸의 연대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피움톡톡이 시작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칼리는 빨리 가정폭력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조급했던 자신과는 다른 엄마를 보며 왜 엄마는 결단을 내리지 않지?’, ‘왜 선택을 하지 않지?’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 한 명만 노력하는 관계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에 있어 그 행동을 이끄는 것과 동시에 연대하는 관계 속에서 엄마와 딸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축한 말이었다.

 

서재인 쉼터 시설장 역시 폭력 상황을 오랫동안 견디고 참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자녀이고, 역설적으로 쉼터에 오게 만드는 것도 자녀라는 말을 듣곤 했다며 엄마와 딸이 같은 여성으로써 삶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런 경험을 기반으로 딸들이 엄마를 더 지지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연락처>에서 재현된 가해자의 폭력과 경찰의 무능함, 그리고 지금

서재인 시설장이 쉼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후 피움톡톡은 자연스럽게 쉼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첫 번째로 상영되었던 영화 <연락처>는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 생존자 쉼터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비공개 쉼터에 무단으로 침입했고, 경찰이 이에 방관했던 사건에 관해 서재인 시설장은 추운 겨울날 힘들게 피신하던 사람들을 보면서 굉장히 분노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경찰은 가정폭력 위험성 척도 등 여러 대응책이 마련했지만, 여전히 가정폭력 현장에서는 이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여전히 폭력적인 가해자와 무능한 경찰

영화에 등장한 가정폭력 가해자들과 경찰에 분노를 표하는 관객도 있었다. 피해자들이 가정폭력 피해로부터 치유를 받는 동안 폭력적인 가해자들과 무능한 경찰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지 묻는 말에 서재인 시설장은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경찰이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부족한 젠더 감수성 때문이고, 가정폭력 가해자 역시 정신적인 문제가 있기보다는 아내와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엄마와 딸의 연대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모두의 연대를 강조하는 말이었다.

 

엄마와 딸은 같은 시간을 다른 나이로 만나고, 같은 여성이지만 다른 역할로 서로를 대하는 사이이다. 그만큼 그들의 관계는 어렵고, 역설적으로 그 관계는 소중하다. 엄마와 딸의 연대를 그린 네 작품을 통해 이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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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질문해야 할 시간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 <최강레드!>-

 

하안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최강레드!>는 경쾌한 리듬의 음악에,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미식축구팀의 이미지로 시작되는 영화다. 하지만 강렬한 이미지 속 군데군데 모자이크 처리가 되고 깨져 보이는 영상효과처럼, 오프닝은 이 활기찬 풍경 속에 수많은 뒤틀림과 의문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영화는 2012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스튜번빌에서 발생한 미성년자 강간사건의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다큐멘터리로, 가해자의 가족들과 지역사회 방관자 때문에 은폐될 뻔한 이 사건이 피해자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의 연대와 노력으로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105일 토요일 밤, 13회 여성인권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최강레드!>가 두 번째 상영과 피움톡톡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가해자들과 방관자들이 그것은 강간까지는 아니다’, ‘피해자가 그 파티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사건의 본질을 부정할 때 객석에서는 서늘한 분노마저 느껴졌고, 기가 막힌 헛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후 진행된 피움톡톡에서도 이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강간문화 돌파하기를 주제로 한 이번 대담의 진행에는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이, 게스트로는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참여하여 관객과 함께 서로의 질문과 대답이 되어주었다.

 

그들이 놀이처럼 쓰는 강간이라는 단어, 우리의 언어로 전복시키기

영화에서 가해자들은 경찰 앞에서 그것은 강간이 아니었다라고 입을 모아 주장하면서도, 막상 유출된 사건 영상에서는 자신의 행위를 분명히 강간이라고 표현하고 그것이 즐거운 놀이인 것처럼 묘사한다. 오매 부소장은 그동안 많은 활동가가 강간 카르텔 철폐를 외치는 것과 같이 강간이라는 단어를 가시화, 구체화하며 그 심각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와 같은 강간문화는 그 무게감을 훼손하며 가해자들의 유희와 흥분의 언어로 뺏어가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강간문화가 단지 특정한 개인의 일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또 은폐하려고 하는 공동체에 원인이 있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최선혜 소장은 꾸준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며 성폭력 공론화는 공동체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공동체 입장에서는 숨기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사건을 잘 해결하고 드러내면 왜 치부가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가해자에게 더 많은 질문과 책임을, 피해자에게는 더 많은 연대를

관객과 진행자 모두 <최강레드!>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화가 다른 미디어들에서 사건을 다뤘던 방식처럼 피해자의 진술만을 요구하지 않고 철저히 가해자와 방관자의 언행, 행동에 대한 증거로 사건을 설명했다는 점이었다. 가해자의 어설픈 거짓 진술이 결국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고 그들이 저지른 폭력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질 때, 사건은 투명해지고 우리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명확히 보게 된다. 오매 부소장은 평소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질문들, 가령 네 말이 과연 진실인지’, ‘가해자를 처벌할 생각이 있는지등의 물음들이 너무나 윤리적인 것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들로 가득하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2차 가해를 멈추고 그 시간에 가해자들에게 더 많은 질문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들의 범죄사실을 증명하고, 고발하고, 알려지기까지에는 수많은 연대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가해자들의 가족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하면서도 옳은 일을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범죄 블로거 알렉스 고디드와, 법원 앞으로 가면을 쓰고 뛰쳐나와 몇십 년 전의 강간 피해 사실을 용감히 고백하는 여성들이 있기에 묻힐 뻔한 진실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절망적으로 보일지라도, 변화는 계속되고 희망은 있다

한 관객은 이에 대해 영화를 보고 강간문화가 만연했던 학창 시절을 떠올렸고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것을 어떻게 줄이거나 없앨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 큰 역할을 한 범죄 블로거 알렉스 고더드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나 가해자들의 근황을 추적하는 포스트를 올렸는데, 한 가해자는 출소 후 멀쩡히 학교의 대표 선수로 활약하는 등 여전히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미미하고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오매 부소장은 우리가 바라는 모습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유의미한 변화의 단초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피해자의 집에 찾아가 마이크를 들이밀던 기자들이 먼저 활동가에게 어떻게 취재하는 것이 윤리적일까요?’라는 질문을 하고, 성희롱이 난무하는 단톡방에서 용감하게 그것을 제보하는 사람이 드물지만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들은 우연한 것들의 합이 아니라, 분명히 페미니스트들이 집회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청원하고, 연대한 것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따뜻한 박수 소리로 <최강레드!>의 피움톡톡은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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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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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여성인권영화제 <게임의 규칙> 피움톡톡 현장

민정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게임의 규칙>에는 미국의 10대 운동선수들이 등장한다. 텍사스주의 레슬링 선수 맥, 코네티컷주의 육상 선수 앤드라야, 뉴햄프셔주의 스키 선수 세라가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트랜스젠더이다.

남성과 여성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선택한 성으로서 경기에 임하는 것은 불공정한가? <게임의 규칙>은 세 선수와 주변 사람들-가족, 연인, 감독 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해 105일 토요일, 여성인권영화제에서 피움톡톡이 열렸다. 영화제의 수석 프로그래머 란희 활동가가 진행을 맡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홀릭 대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리나 활동가가 참여해 이야기를 나눴다.

 

트랜스젠더가 부딪히는 장벽

다큐멘터리에서 세 선수들은 많은 것과 맞서 싸운다. 우선 사회가 만들어놓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의 이미지와 젠더 이분법이다. 홀릭 대표는 트랜스여성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문제에서 늘 가해의 위치로 얘기되거나, 그들이 생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는다고 지적했다. 리나 활동가는 성별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인터섹스선수인 세메냐 선수의 예를 들며 여성성과 남성성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맥과 앤드라야, 세라는 젠더 디스포리아(출생 시 지정된 자신의 성별에 대해 느끼는 신체적 불쾌감)를 느끼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들의 성을 부정한다. 성전환수술(SRS)을 받아야만 이들의 성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정책은 생물학적 기준으로만 성을 판단하는 사회적 시선이 드러난다.

앤드라야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통계와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게임의 규칙>에 따르면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이 40% 이상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회적 차별과 정체성의 혼란에 부딪히면서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겪는 위기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홀릭 대표와 리나 활동가는 입을 모아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지워져있다고 말한다. 특히 경직된 한국 스포츠계에서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고, 트랜스젠더 성별을 바꾸는 법 자체가 없는 우리나라 현실을 지적했다. 또한 트랜스젠더 관련된 통계도 없을뿐더러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관도 턱없이 부족함이 지적되었다. 실태 파악이 선행되지 않으니 정책적 해결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이란

맥은 트랜스남성으로 남성 선수들과 레슬링 경기를 하는 것이 소원이지만 태어났을 때의 성별을 따라야 한다는 주의 정책에 따라 여성부에 출전한다. 반대로 트랜스여성인 앤드라야는 성 정체성에 따라 경기를 출전할 수 있는 규정 덕에 원하는 대로 여성 선수들과 겨룬다. 이 두 선수는 모두 그들의 출전은 공정하지 않다는 사람들의 거센 비판을 받는다. 그렇다면 공정한 규칙이란 무엇인가.

관객들은 스포츠 자체가 협소한 규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기량을 줄 세워서 평가하는 시스템이며, “결국 사람이라면 모두 신체적 조건이 다르게 태어나기 때문에 애초부터 모두가 공정할 수 있는 기준 자체를 만들 수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마이클 펠프스처럼 팔다리가 긴 선수가 수영을 재패한다고 해서 그들을 경기에서 배제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리나 활동가는 유독 트랜스젠더 선수들이 만드는 성과는 트랜스젠더라는 조건 하나로 부정하거나 반대로 시혜적인 시선으로 칭찬하는현실을 언급하며 공정한 기준 자체에 의문을 던졌다.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이 아니라 , 앤드라야, 세라이기 때문에 그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들이 타고난 성질을 바꿨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여성 혹은 남성은 타고난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

절대적으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존재하기 어렵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란희 활동가는 피움톡톡을 마무리하며 기존에 정해진 게임의 규칙 안에서 그것의 공정성을 묻는 것을 넘어서 누가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해진 규칙 아래에서 고군분투하는 트랜스젠더 개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여성과 트랜스젠더 간의 갈등으로 문제를 본다면 모두가 지는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강자의 논리로 이득을 보는 집단과 차별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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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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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도 만연한 강간문화, 싸워보려면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톡!! <대학 내 #미투 운동의 연결고리> -

 

한국여성의전화 9기 기자단 오늘

미투 운동이 시작되고 정치계, 법조계, 예술계 등 온갖 분야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성폭력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각종 단톡방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동기간 성폭력, 선후배 간 성폭력, 교수의 성폭력 사건이 속속들이 밝혀졌다. 몇몇 대학에서는 이런 흐름에 대한 백래시로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이러한 대학 내 성폭력과 미투 운동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앤드유(& YOU)>는 미국 대학의 한 성폭력 피해자가 사건 이후 어떻게 대처하고 삶을 이어나갔는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5명의 여성 중 1명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미국 대학에서 주인공이 겪은 피해는 꽤 전형적인사건이었다. 사건 당시 목격자도 있었지만 사건 절차가 길어질수록 왜 그때 술에 취했어?’ ‘왜 가해자와 단둘이 해변에 갔었어?’와 같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늘어났다. 가해자와 공간 분리가 되지 않아 매일 가해자를 마주 쳐야 했지만, 주인공은 천천히 일상을 회복해나가면서 친구들과 함께 반성폭력학생연대(SASV)’를 조직하고 활동을 이어나간다.

105일 오후 3, <앤드유>를 포함한 4개의 단편영화 연속 상영 후에 대학 내 #미투 운동의 연결고리라는 제목으로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대학 공동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직접 대처해 본 자유인문캠프 전 기획단 안태진 패널과, 자유인문캠프 현 기획단이자 중앙대 A교수 성폭력 사건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김누리 패널이 참석하여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진행은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 정이 맡았다.

피움톡톡은 백래시에 맞서 성평등한 대학 만들기, 더 잘 싸우는 법이 궁금해!’라는 부제에 맞게, 공동체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을 나누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앤드유>에 나오듯 사람들은 자신이 알던 동료나 친구가 성폭력 가해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그 대처가 더욱더 까다로워진다.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가해자의 가해 사실을 알리고 가해자가 적절한 처벌을 받도록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피움톡톡에 자리해 준 패널들은 어떻게 공동체 내의 성폭력을 공론화한 뒤 가해자에게 사과문을 받아내고 가해자를 퇴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먼저 두 패널은 사건 개요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자유인문캠프는 2010년부터 중앙대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교육 운동단체로 자본화된 대학사회의 흐름에 균열을 내기 위해 연속강연, 영화제, 오픈토크 등의 행사를 주최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라고 한다. 성폭력은 캠프 기획단 내에서 발생했다. 가해자는 공동체의 원년 멤버로, 학부생들 사이에서 박사과정생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여성 구성원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해자가 전, 현 신입 구성원을 대상으로 다수의 가해를 했다는 사실을 공유하게 된다. 이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깊이 논의했다.

두 패널은 사건 해결을 위해 내린 결정이 바로 사례집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가해자의 권위주의적인 언행과 성폭력 사례를 전부 모아 글로 정리하여 묶은 것이다. 당시는 미투 운동 이전이었고 지금처럼 대학 내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가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피해자가 다른 구성원들이 전면부정 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기록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 피해자들은 장장 4개월에 걸쳐 가해 사례집을 만들었다. 그 후에는 전체 회의에서 사례집을 공유할 경우 다른 구성원들끼리 따로 모여 가해자를 지지하는 등의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에, 개별 구성원 한명 한명에게 사례집을 공유한 후에 전체 회의를 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서 대처법을 생각해야 하는 현실은 분노스럽지만, 신중한 판단 덕분에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프로그래머 정은 미투 운동 이후 공론화를 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지만,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이들처럼 전략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사례집을 공유한 이후 다행히 다른 구성원들도 가해자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이전 기획단까지 모여서 문제 해결을 위해 깊게 고민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2~3번씩 내부 총회를 하고, 모든 회의의 회의록을 정리해서 남겼다고 한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지금 이렇게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그때 정리를 잘 해놓아서 그런 것 같다고 안 패널은 밝혔다. 특히 형사적 절차를 밟기보다 이처럼 공동체 내부에서 분주하게 노력했던 것은, 가해자가 여러 차례에 걸쳐 성폭력을 행할 수 있게끔 했던 공동체의 내부 문화와 구조를 되돌아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로 사건 이후, 자유인문캠프는 이전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동체가 되었다고 한다. 김 패널은 모든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환경의 특성을 고려해서 각자 할 수 있는 역할과 범위만큼 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관객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우려한 부분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안 패널은 공동체 내에서 해결하려면 명예훼손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가해 사실을 알려야 공동체 내에서 그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패널은 공익성이 인정되면 명예훼손으로 판결 날 가능성이 적다는 자문을 받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그래서 ‘A교수라고 칭하는 등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이 사실적시가 공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논리의 틀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공동체 내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공동체 내에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가해자에게 더 큰 권력이 있는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무엇이 해결한 것인지 정의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을 내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 준 두 패널 덕분에, 공동체와 피해자를 보호하면서도 성폭력 사건에 대처하는 방법에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더 많은 피해자가 가해자들로 인해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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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싸움은 이제 시작되었다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 <네티즌> -

채연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다큐멘터리 영화 <네티즌>은 각기 다른 사이버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세 여성을 보여준다.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들은 언어적 성폭력과 허위 사실 유포, 사이버 불링, 불법촬영물 유포 등 다양한 형태의 사이버성폭력을 겪는다. 그러나 여성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는 부재하고, 사이버성폭력은 사소한 문제로 치부된다.

한국은 그 문제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가? 105<네티즌> 상영 이후 진행된 피움톡톡은 허용된 범죄, 여성폭력?’이라는 제목으로 영화와 한국의 사이버성폭력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이버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효린과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이자 수석 프로그래머 란희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전히 온라인 공간은 안전하지 않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의 성립은 영화 <네티즌>이 보여주는 문제를 한국 사회도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사성은 불법촬영물이 올라오고 강간 모의가 행해졌던 커뮤니티 사이트인 소라넷' 폐쇄 운동에 동참했던 여성들이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법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이다. 효린은 피해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여전히 자원 없음과 법제도의 부재를 느낀다면서 여전히 온라인 공간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만약 내가 영상이 유포된 피해자라면 어디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대처방식도 공유되었다. 우선 피해사실에 대한 증거와 촬영물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정부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삭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 외에 형사고소나 심리치료 등 사건에 대한 지원은 한사성이나 여러 성폭력 상담소에서 받을 수 있다. 효린은 특히 만약 피해를 경험한다면 혼자 절망감에 매몰되기보다, 어렵겠지만 용기있기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이버폭력의 특성상 영상이 계속해서 재유포될 수 있기에 완벽하게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삭제가 곧 피해 회복이 아니며, 삭제 지원 외에도 피해자의 권위 회복과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지원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무엇이 피해자의 용기를 가로막는가

한 관객이 영화에서 피해자가 법적 조치를 취했을 때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는 수정헌법 제 1조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였는데, 한국에서는 피해자가 법적으로 조치를 취했을 때 마주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 효린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촬영물이라고 명시한 점을 맹점으로 지적하였다. 이로 인해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피해촬영물이 얼마나 음란한가를 판단하여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자신이 촬영되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과 이를 저장하고 유포하는 것에 동의한 것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동의여부를 판단할 때 적극적 저항 등의 엄격한 요건이 요구된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더하여 피해촬영물이 유포되는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수사를 못한다고 하거나, 청소년의 경우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등 사이버성폭력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태도 또한 언급되었다.

더불어 한국에서 피해촬영물이 유통되는데 핵심으로 작동했던 웹하드 카르텔과 그를 건설한 양진호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진호는 국산야동이라고 칭해지는 피해촬영물을 유통하고,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필터링 업체와 디지털 장의사 업체를 운영함으로써 수천억 원을 벌어들였다. 효린은 양진호가 현재 기소된 상태이며, 그에 대한 관심이 그의 갑질 폭행 사건에 쏠리는 것에 우려했다. 그리고 기소 혐의가 성폭력특별법 정범이 아닌 방조범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끝까지 사건을 지켜보고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이버 성폭력 문제는 어떻게 근절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사이버 성폭력 문제가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이버 성폭력 문제가 어떻게 근절될 수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효린은 사이버성폭력 문제가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전통적 성폭력 문제와 별개의 분절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미 현실에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사이버성폭력만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뿌리깊은 가부장제를 균열내고 박살내야한다고 말했다. 란희는 이에 대해 피해자 인권 보장과 전 사회적 인식 개선, 가해자 처벌 세 가지 요소가 균형을 맞추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사이버폭력의 문제는 단지 사이버 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산업의 구조를 바꾸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개개인들이 연대해야한다. 이 시간이 변화를 만들기 위한 기나긴 싸움에 동참하게 되는 첫 발걸음이 되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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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여자들, 투쟁하는 여자들

- <마리엘르와 모니카> & <여성의원> 피움톡톡 현장 -

 지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10월 5일, CGV 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제13회 여성인권영화제(13th Film Festival For Women's Rights) 상영작인 <마리엘르와 모니카>와 <여성의원>의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나눔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가 진행한 이 날 행사의 주제는 ‘왜 여성정치인어야 하는가’였다. 출연자로 함께 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하 정 의원)과 신지예 녹색당 공동 운영위원장(이하 신 위원장)은 각각 한국의 여성 정치인으로서 겪었던 생생한 경험을 공유하며 현장을 더욱 풍성하게 꾸며주었다.

모니카와 카르멘

  <마리엘르와 모니카>와 <여성의원>은 모두 복잡한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여성 정치인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전개하는 투쟁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우선 <마리엘르와 모니카>는 빈민가 출신 흑인 레즈비언으로서 브라질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마리엘르와, 그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전 사회적 혐오에 대항하여 투쟁을 이어나가는 마리엘르의 파트너 모니카의 삶을 다룬다. <여성의원>의 주인공 카르멘 카스티요 역시 라틴계 출신 청소노동자 여성으로서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시의원 활동에 참여하며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싸워나간다. 피움톡톡 현장은 두 영화의 분위기만큼이나 열기가 넘쳤다. 출연자들은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꾸준하게 정치하고 투쟁하는 모니카와 카르멘의 모습에 굉장히 공감되었다는 말로 운을 띄웠다. 특히 신 위원장은 “여성에게 있어 투쟁은 삶의 일부분”이라는 영화 속 대사가 기억에 남고, 거기에 더해 정치판의 가부장성과도 싸우는 인물들이 정말 인상 깊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왜 여성정치인이어야 하는가?

  나눔 활동가는 이러한 답변에 이어 ‘왜 여성정치인어야 하는가’라는 핵심 질문을 던졌다. 두 출연자는 사실 이것이 너무나 ‘간단한 문제’라고 답했다. 여성은 우리나라 인구의 약 1/2을 차지하고 있고, 그만큼 적절히 대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여성 국회의원이 단 17%밖에 되지 않고, 그래서 ‘정치인의 얼굴’은 주로 중장년-중산층-남성으로만 상상된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성들, 특히 여성주의적 관점을 지닌 이들이 정치판에 더 많이 들어가서 우리가 발붙인 실제 삶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출연자들은 강조했다.

  또한 정 의원은 자신보다 앞서 도전한 여성 롤모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힘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컨대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들은 해외 파견이나 대통령 특사와 같은 중요한 일정에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정치인으로서의 성장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 의원은 자신보다 더 경험 많은 여성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관련 문제를 지적하고 관행을 변화시키려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장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이렇듯 경험의 가능성을 확장해나가는 투쟁은 여성들로 하여금 세상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만든다.

  이에 여러 관객들은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변화시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질문했다. 신 위원장은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개개인이 출마하는 것, 출마자를 지지하는 것, 여성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지는 것 등을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정 의원 역시 정치는 “물과 공기와 같아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정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제도권에 도전해야 한다”고 전했다.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그들의 삶에서 우러난 경험을 갖고 기성 정치 환경과 구도에 최대한 침투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페미니스트 정치가 필요하다

  이번 피움톡톡의 또 다른 화두는 <마리엘르와 모니카> 속 모니카가 끊임없이 강조한 ‘혐오 정치에 대항하는 애정과 연대의 정치’였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화가 전개되는 듯한 현상이 포착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 위원장은 관객들의 이러한 질문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현 시국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오와 폭력의 단어로 소수자들을 배척하지 말고, 모두가 연대하며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꿈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 의원도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진 모든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 현실을 바꾸는 데에 도전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관객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일상에서 투쟁해나가야 한다”는 신 위원장의 말과 “우리 모두가 반드시 변화된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살면 좋겠다”는 정 의원의 말에 큰 박수를 보냈다. <마리엘르와 모니카>와 <여성의원>이 불어넣어 준 더 넓은 정치적 상상력이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주리라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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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만으로는 부족해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톡! <베이 베이> -

 

재인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자살을 시도한 후 살인죄로 기소된 사람이 있다. 2011,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주여성 베이 베이 슈아이(이하 베이 베이)는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태아는 사망했다. 이후 베이 베이는 인디애나 주 당국에 의해 살인 및 태아 살해 미수 혐의로 기소된다. 다큐멘터리 <베이 베이>는 낙태죄가 폐지된 미국에서 태아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베이 베이를 따라가며 여성의 재생산권이 침해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후 6개월,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낙태죄가 비범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아 살인 혐의로 기소된 베이 베이는 지난 4월 낙태죄가 폐지된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지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에 대해 지난 104낙태죄 폐지만으로는 부족해라는 제목으로 <베이 베이> 상영 후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인권문화국 활동가 재재가 진행을 맡고, 한국여성민후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제이,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최현정 변호사가 패널로 참여했다.

 

'피움톡톡'을 진행 중인 패널들

 

임신중단을 불법이 아닌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로

<베이 베이>가 베이 베이 슈아이의 재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인만큼, 피움톡톡에서도 자연스럽게 한국에서의 낙태죄 폐지 이후 법적인 논의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관객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규정한 후 현재 공백이 있는 상태이다. 이후 만들어질 법에 독소조항 없이 어떤 식으로 법을 구성해야 할지 궁금해졌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제이는 새로운 법을 도입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비교하지 않고, 임신중지를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 중 무엇이 우위에 있는지 판단하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더욱 진보된 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다.

 

임신중단을 위해 어쩔 수 없던 이유가 있어야 하는 여성들

다른 관객은 영화 속에서 베이 베이가 아이를 안고 울고 있는 사진이 등장할 때 충격적이었다고 말하며 이 고통을 오롯이 견뎌야 할 베이 베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재재 역시 베이 베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그런 장면을 보여준 것 같았는데, 여성의 임신중단에 있어 왜 계속 어쩔 수 없음을 설명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최현정 변호사는 임신중단을 이야기할 때 특정한 고정관념을 가진다면, 임신중단이 여성의 권리로써 적극적으로 논의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의 모습을 한 가지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제이는 재작년에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임신중지 당사자 모임을 운영했던 이야기를 하며 임신중단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여태껏 불법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담아주는 것을 찾기 어려웠다. 지금부터 이런 이야기를 할 때이고, 이런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법에 반영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며 보다 많은 여성이 임신중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이들을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낙태죄 폐지, 그 이후의 이야기들

낙태죄, 폐지만으로는 부족해라는 제목처럼, ‘낙태죄라는 법 이외에도 여성의 임신중단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 관객은 베이 베이가 자살을 시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남성이 임신을 알게 된 후 본인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라며 성관계를 하면서도 책임의 차이가 크고, 이런 점에 대해 많은 사람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제이 역시 단순히 피임 방법을 알려주는 성교육으로는 부족하고, 특히 이성애 관계 안에서 어떻게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지 등 더 포괄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여성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관객의 의견에 동의했다.

낙태죄, 폐지만으로는 부족해라는 주제로 나눈 40여 분간의 피움톡톡에서 임신중단과 관련한 법적인 내용에 머무르지 않고, 관계 형성, 교육, 건강, 접근성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피움톡톡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낙태죄 폐지 이후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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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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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피해자 함께 외치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돼요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톡! <최강레드!> -

채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완전 뻗어버렸잖아. 이 여자애 데리고 뭐한 거야.”

103일 목요일, 13회 여성인권영화제 개막작인 <최강레드! Roll Red Roll>가 상영됐다. 미국 오하이주 스튜턴빌을 휩쓴 악명 높은 2012년 강간 사건의 배후를 긴밀하게 쫓는 이 다큐멘터리는 가해자들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담긴 한 음성메시지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가해자들이 강간을 문화로서 조성하고 있는 현실을 낱낱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저녁, 스튜번빌에서 유명 미식축구단 최강레드 선수들이 한 여성을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날 아침, 피해자에겐 친구들의 문자와 사진이 쇄도한다. 그건 바로 피해자로 보이는 피해 사진과 그를 확인하는 문자들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지?’ 피해자는 두려움에 떤다. 다 같이 술 마신 것 빼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튜턴빌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강레드 선수들의 강간 사건은 그렇게 한 마을을 뒤집어 놓는다.

본격적으로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수사가 진행되지만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되는 선수 트렌드와 말릭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힘쓰고, 언론조차 사건에 관심이 없다. 마을 사람들은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며 2차 가해를 일삼고 사건의 중심은 점차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행실로 향한다. 그 가운데, 범죄사건을 기록하는 블로거 프리니는 강간에 가담한 가해자들의 문자와 트위터들을 업로드하며 사건의 전말을 공개한다. 피해자를 향한 비하 발언들이 난무하는 증거들. 프리니는 이 모든 것들이 공개되면 더 이상 피해자를 향한 비난이 멈출 것이라 확신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 가족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다.

걔넨 절대 나쁜 아이들이 아니에요.”

피해자는 그 곳을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부분에서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봐요.”

어른들은 침묵하고 친구들은 피해자를 탓한다. 그들은 강간으로 마을의 평화가 깨졌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보다 마을의 분열이 더 우선시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이 마을은 남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를 위험에 몰아넣고 있진 않은가, 대체 이 평화는 누구의 것이고 어떻게 유지되는 것인가.’

 

#스튜번빌 점거 #우리는 피해자를 지지합니다

마을은 가해자를 옹호하는 목소리로 잠식되어간다. 하지만 누군가의 용기는 반드시 진실을 낳게 되는 법. 그 목소리를 깨뜨리는 용기는 레드 팀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시작된다. 어나니머스 가면을 쓴 익명의 학생은 가해자 중 한 명인 마이클의 강간 증거 동영상을 유포하고 마을의 강간 문화를 폭로하며 전쟁을 선포한다. 이후 스튜번빌은 피해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많은 이들의 외침으로 점거된다.

그리고 마침내, 정의는 수많은 지지와 연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자신의 진술이 불가피했던 상황 속에서 입증해야 할 점은 피해자의 심신장애 중 성적행위가 있다는 것의 증거였다. 그렇기에 수많은 인터넷 속 사진과 동영상들은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피해자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는 사건을 미국 사회의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중요한 핵심이 되었고 끝내 그간 유력한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트렌드와 말릭은 유죄를 선고받게 된다.

영화 <최강레드!> 상영이 끝나고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닷의 진행에 따라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 손경인 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 최경숙 한국여성의전화 회원과의 피움톡톡이 이어졌다. 이 날엔 성폭력을 놀이삼아 권장하고, 공조하는 남성 카르텔, 한국의 레드팀에 맞서 싸우는 지원자의 역할과 전략과 같은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피움톡톡'을 진행 중인 패널들

피해자를 어떻게 비난하고, 어떻게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는지 성폭력의 특성들이 잘 보이는 영화였다

세 분의 공통적인 영화 감상평이었다. 손경인 사무국장은 여성에게는 일상을 파괴하고, 인생에서 큰 타격을 주는 사건인데 남성들에게는 놀이처럼 되는 이 인식의 차이를 극명히 볼 수 있었다고 밝히며 범죄라고 생각하는 인식 차이에 주목했다. 이어 최경숙 회원은 피해자들의 언어를 모아서 연대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알리면서 관행을 바꾸어나가는 투쟁이 필요하지 않나라며 이러한 인식의 갭을 좁히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지지하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우리가 싸워야 할 '한국의 레드팀'은 누구일까. 배복주 대표는 그건 한국의 수사기관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폭력사건 같은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매우 중요한데, 국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보다는 물적 증거에 의존해 수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방안을 강조했다. 현재 많은 미투 참여자들이 가해자들에 의한 무고, 명예훼손 피소와 같은 역고소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것이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기보다 국가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강간 문화를 해체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다.

끝으로 한 관객은 누군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해주는 문화도 필요하지만, 어린아이일 때부터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하지 말라를 넘어서 하지 않아야 함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앞으로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역할은 새로운 가능성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피해자들의 말하기에 반응하는 지지와 연대 그리고 함께하는 투쟁은 앞으로의 성폭력 없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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