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그들을 가두지 못 한다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톡! <날아오르다> -

은강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

103일 목요일, 여성인권영화제 일반상영시간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상영회가 열렸다. 가정폭력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날아오르다> 상영회로, 여성의전화와 함께하는 피해당사자와 회원들을 초청한 자리였다.

 

여성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르다>는 가정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어느 주말 교외에 모여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연대로 나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사회는 이들을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실제 이들이 겪은 피해와 그것을 지나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과정은 모두 다르다. 뮤리엘 루카이저는 1968년 발표한 시에서 한 여자가 자기 삶에 대해 진실을 말한다면 세상이 터져 버릴 것이라 썼다. 그 시구처럼, '피해자'라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이들의 목소리는 정형화된 가정폭력의 이미지에 균열을 낸다. 또한 흔하게, 그리고 다양한 양상으로 발생하는 현실의 가정폭력과 그 가운데 살아 숨 쉬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저마다 다른 이들을 묶어주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이다. 생존자들은 자신을 힘들게 했던 그 모든 것을 지나 지금 이 자리에 섰다. 자기 자신을 희생자로 말하지 않겠다는 스크린 속 한 여성의 선언은 영화 바깥의 여성의 수동적인 위치를 뒤집고 그들 모두가 제각각 주체적인 발화자임을 명시한다.

 

우리는 가정폭력 생존자입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여성들은 연대를 다짐하며 '증언을 나누자'고 말한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피움톡톡은 증언을 나누는 바로 그 현장이었다.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우리는 가정폭력 생존자입니다'라는 제목 앞에 <그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붉은 노을, 가정폭력 피해당사자 2, 그리고 여성학자 김홍미리가 우뚝 섰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부터 각자의 경험까지 공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경험을 용기 내어 들려주었다. 아이 때문에 참아왔지만 결국 아이에게 폭력이 대물림 될까 봐 두려워 신고를 결심했다는 이야기, 이혼을 결심하고 가장 힘이 들었을 때 친한 친구가 결국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줘 견딜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특히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원가족에 의한 폭력을 경험한 한 당사자는 미성년자 여성이 폭력 피해 당사자가 될 때 겪는 어려움을 진솔하게 들려주며 가정폭력의 논의를 확장하기도 했다.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가정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와 젠더 불평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졌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음에도 피해자는 확인하지 않고 가해자와만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거나 피해자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가해자가 피해자의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귀가조치를 취한 이야기는 많은 이에게 공분을 샀다.

 

어둠을 지나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며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피움톡톡에 자리한 관객들은 모두 한 번씩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말이 끊기곤 했다. <날아오르다>에서도 그런 장면이 종종 나왔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짧은 침묵, 인터뷰 중 못 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모습 등.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한자리에 모인 이들의 눈에는 생기가 있고 목소리는 결연하다. 이들은 오전부터 모은 불쏘시개에 불을 붙여 불꽃을 만들고, 거기에 자신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을 태우는 의식을 한다. 함께여서 가능한 결말이었다. 현장에서도 참가자들을 격려한 것은 관객은 목소리와 박수였다.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고통과 눈물을 넘어서는 연대였다.

여성학자 김홍미리는 앞서 상처가 치유되거나 망각되는 게 아니라 당사자와 통합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견해를 어떤 논문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없었던 게 되거나 완전히 잊혀질 수 없다. 하지만 그걸 안고도 우리는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이 자리에 없지만 어디선가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하며 피움톡톡을 마무리 지을 때, 붉은 노을 님은 딱 한 마디를 건넸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또한 어둠 속에 있을 때는 막연한 두려움이 점점 차오르지만, 용기를 내 그 어둠을 헤치고 나온다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덧붙였다.

영화 속의 한 여성이 컴컴한 복도와 계단을 지나 옥상 문을 열어젖히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다. 날아오를 준비는 끝났다. 자유로워지려는 이들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의 문을 열 것이다.

블로그 이미지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