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톡톡

[피움톡톡] 낙태죄, 폐지만으로는 부족해

한국여성의전화 2019. 10. 5. 05:40

낙태죄, 폐지만으로는 부족해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톡! <베이 베이> -

 

재인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자살을 시도한 후 살인죄로 기소된 사람이 있다. 2011,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주여성 베이 베이 슈아이(이하 베이 베이)는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태아는 사망했다. 이후 베이 베이는 인디애나 주 당국에 의해 살인 및 태아 살해 미수 혐의로 기소된다. 다큐멘터리 <베이 베이>는 낙태죄가 폐지된 미국에서 태아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베이 베이를 따라가며 여성의 재생산권이 침해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후 6개월,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낙태죄가 비범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아 살인 혐의로 기소된 베이 베이는 지난 4월 낙태죄가 폐지된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지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에 대해 지난 104낙태죄 폐지만으로는 부족해라는 제목으로 <베이 베이> 상영 후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인권문화국 활동가 재재가 진행을 맡고, 한국여성민후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제이,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최현정 변호사가 패널로 참여했다.

 

'피움톡톡'을 진행 중인 패널들

 

임신중단을 불법이 아닌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로

<베이 베이>가 베이 베이 슈아이의 재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인만큼, 피움톡톡에서도 자연스럽게 한국에서의 낙태죄 폐지 이후 법적인 논의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관객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규정한 후 현재 공백이 있는 상태이다. 이후 만들어질 법에 독소조항 없이 어떤 식으로 법을 구성해야 할지 궁금해졌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제이는 새로운 법을 도입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비교하지 않고, 임신중지를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 중 무엇이 우위에 있는지 판단하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더욱 진보된 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다.

 

임신중단을 위해 어쩔 수 없던 이유가 있어야 하는 여성들

다른 관객은 영화 속에서 베이 베이가 아이를 안고 울고 있는 사진이 등장할 때 충격적이었다고 말하며 이 고통을 오롯이 견뎌야 할 베이 베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재재 역시 베이 베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그런 장면을 보여준 것 같았는데, 여성의 임신중단에 있어 왜 계속 어쩔 수 없음을 설명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최현정 변호사는 임신중단을 이야기할 때 특정한 고정관념을 가진다면, 임신중단이 여성의 권리로써 적극적으로 논의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의 모습을 한 가지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제이는 재작년에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임신중지 당사자 모임을 운영했던 이야기를 하며 임신중단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여태껏 불법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담아주는 것을 찾기 어려웠다. 지금부터 이런 이야기를 할 때이고, 이런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법에 반영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며 보다 많은 여성이 임신중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이들을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낙태죄 폐지, 그 이후의 이야기들

낙태죄, 폐지만으로는 부족해라는 제목처럼, ‘낙태죄라는 법 이외에도 여성의 임신중단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 관객은 베이 베이가 자살을 시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남성이 임신을 알게 된 후 본인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라며 성관계를 하면서도 책임의 차이가 크고, 이런 점에 대해 많은 사람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제이 역시 단순히 피임 방법을 알려주는 성교육으로는 부족하고, 특히 이성애 관계 안에서 어떻게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지 등 더 포괄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여성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관객의 의견에 동의했다.

낙태죄, 폐지만으로는 부족해라는 주제로 나눈 40여 분간의 피움톡톡에서 임신중단과 관련한 법적인 내용에 머무르지 않고, 관계 형성, 교육, 건강, 접근성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피움톡톡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낙태죄 폐지 이후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