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피해자 함께 외치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돼요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톡! <최강레드!> -

채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완전 뻗어버렸잖아. 이 여자애 데리고 뭐한 거야.”

103일 목요일, 13회 여성인권영화제 개막작인 <최강레드! Roll Red Roll>가 상영됐다. 미국 오하이주 스튜턴빌을 휩쓴 악명 높은 2012년 강간 사건의 배후를 긴밀하게 쫓는 이 다큐멘터리는 가해자들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담긴 한 음성메시지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가해자들이 강간을 문화로서 조성하고 있는 현실을 낱낱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저녁, 스튜번빌에서 유명 미식축구단 최강레드 선수들이 한 여성을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날 아침, 피해자에겐 친구들의 문자와 사진이 쇄도한다. 그건 바로 피해자로 보이는 피해 사진과 그를 확인하는 문자들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지?’ 피해자는 두려움에 떤다. 다 같이 술 마신 것 빼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튜턴빌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강레드 선수들의 강간 사건은 그렇게 한 마을을 뒤집어 놓는다.

본격적으로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수사가 진행되지만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되는 선수 트렌드와 말릭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힘쓰고, 언론조차 사건에 관심이 없다. 마을 사람들은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며 2차 가해를 일삼고 사건의 중심은 점차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행실로 향한다. 그 가운데, 범죄사건을 기록하는 블로거 프리니는 강간에 가담한 가해자들의 문자와 트위터들을 업로드하며 사건의 전말을 공개한다. 피해자를 향한 비하 발언들이 난무하는 증거들. 프리니는 이 모든 것들이 공개되면 더 이상 피해자를 향한 비난이 멈출 것이라 확신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 가족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다.

걔넨 절대 나쁜 아이들이 아니에요.”

피해자는 그 곳을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부분에서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봐요.”

어른들은 침묵하고 친구들은 피해자를 탓한다. 그들은 강간으로 마을의 평화가 깨졌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보다 마을의 분열이 더 우선시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이 마을은 남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를 위험에 몰아넣고 있진 않은가, 대체 이 평화는 누구의 것이고 어떻게 유지되는 것인가.’

 

#스튜번빌 점거 #우리는 피해자를 지지합니다

마을은 가해자를 옹호하는 목소리로 잠식되어간다. 하지만 누군가의 용기는 반드시 진실을 낳게 되는 법. 그 목소리를 깨뜨리는 용기는 레드 팀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시작된다. 어나니머스 가면을 쓴 익명의 학생은 가해자 중 한 명인 마이클의 강간 증거 동영상을 유포하고 마을의 강간 문화를 폭로하며 전쟁을 선포한다. 이후 스튜번빌은 피해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많은 이들의 외침으로 점거된다.

그리고 마침내, 정의는 수많은 지지와 연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자신의 진술이 불가피했던 상황 속에서 입증해야 할 점은 피해자의 심신장애 중 성적행위가 있다는 것의 증거였다. 그렇기에 수많은 인터넷 속 사진과 동영상들은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피해자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는 사건을 미국 사회의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중요한 핵심이 되었고 끝내 그간 유력한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트렌드와 말릭은 유죄를 선고받게 된다.

영화 <최강레드!> 상영이 끝나고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닷의 진행에 따라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 손경인 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 최경숙 한국여성의전화 회원과의 피움톡톡이 이어졌다. 이 날엔 성폭력을 놀이삼아 권장하고, 공조하는 남성 카르텔, 한국의 레드팀에 맞서 싸우는 지원자의 역할과 전략과 같은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피움톡톡'을 진행 중인 패널들

피해자를 어떻게 비난하고, 어떻게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는지 성폭력의 특성들이 잘 보이는 영화였다

세 분의 공통적인 영화 감상평이었다. 손경인 사무국장은 여성에게는 일상을 파괴하고, 인생에서 큰 타격을 주는 사건인데 남성들에게는 놀이처럼 되는 이 인식의 차이를 극명히 볼 수 있었다고 밝히며 범죄라고 생각하는 인식 차이에 주목했다. 이어 최경숙 회원은 피해자들의 언어를 모아서 연대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알리면서 관행을 바꾸어나가는 투쟁이 필요하지 않나라며 이러한 인식의 갭을 좁히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지지하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우리가 싸워야 할 '한국의 레드팀'은 누구일까. 배복주 대표는 그건 한국의 수사기관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폭력사건 같은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매우 중요한데, 국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보다는 물적 증거에 의존해 수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방안을 강조했다. 현재 많은 미투 참여자들이 가해자들에 의한 무고, 명예훼손 피소와 같은 역고소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것이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기보다 국가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강간 문화를 해체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다.

끝으로 한 관객은 누군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해주는 문화도 필요하지만, 어린아이일 때부터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하지 말라를 넘어서 하지 않아야 함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앞으로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역할은 새로운 가능성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피해자들의 말하기에 반응하는 지지와 연대 그리고 함께하는 투쟁은 앞으로의 성폭력 없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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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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