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톡톡

[피움톡톡] 페미니즘은 상상력, 마치 SF처럼

한국여성의전화 2019. 10. 4. 03:52

페미니즘은 상상력, 마치 SF처럼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톡! <SF는 페미니즘을 꿈꾸는가> -

 

하안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103일 목요일,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의 피움톡톡이 열린 CGV 아트시네마 2관은 늦은 밤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열띤 질문과 답변으로 활기가 넘쳤다. 대담에는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을 쓴 김현 시인이, 그리고 '어슐러 르 귄'의 저서를 다수 번역한 이수현 번역가가 함께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앞으로 나아갔기에 더 위대한 작가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SF작가 어슐러 르 귄의 삶을 찬찬히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로, 어슐러 르 귄의 생애 전반과 작가로서의 성찰 역시 담아내고 있다. 진행자와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으로 르 귄이 <어둠의 왼손>에 대해 여성주의적인 비판을 받은 이후 달라진 모습을 꼽았다. 한 관객은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서 고민하는 것이 존경스럽다고 영화를 본 소감을 남겼고, 김현 시인은 오랜 시간 동안 본인의 작업을 발전시켜나가면서, 여성주의적 시각을 유지하거나 넘어서면서 작품을 쓰는 그런 작가가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느꼈다고 말했다.

 

SF가 여성주의를 말하고, 여성주의가 SF를 말하다

이어서 본 피움톡톡의 부제인 ‘SF가 그린 여성, 그리고 SF가 품은 변화의 가능성에 대하여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이수현 번역가는 SF가 기본적으로 여기 없는 것을 상상하는 장르이기에,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해야 하는 여성주의에 최적화된 장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르 귄은 특유의 세계관 창조 능력으로 그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성별 구분이 없는 세계를 작품에 등장시키기도 했고, 그의 동료 작가였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와 옥타비아 버틀러는 여성이 우주여행과 시간여행의 주인공이 되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객석에는 SF문학에 비교적 익숙한 관객도, 생소하게 느끼는 관객도 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공통적으로 르 귄을 포함한 다른 여성 SF 작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모습을 보였다. 이수현 번역가는 이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여성 SF 작가의 약진이 일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옥타비아 버틀러의 <>, 여성 SF작가들의 앤솔로지 <혁명하는 여자들>, 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 등을 추천했다.

 

상상력으로 이어가는 우리의 여정

한 관객은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 활동하게 되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답답해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냥,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영화를 보고 큰 위로가 되었다고 소감을 남겼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소리 높여 외치며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 우리에게는 잠시 멈추어 서서 미래, 혹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세계를 상상하는 것도 필요할 테다. 어슐러 르 귄이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부지런히 상상하고, 성찰하고, 지속적으로 썼던 것처럼 말이다. 이에 관련해 진행자와 관객 모두 영화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어슐러 르 귄의 소설 중 한 구절을 되새기며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 피움톡톡은 끝을 맺었다.

 

나는 말할 거야, 조금 더 가자고. 조금 더 걸으면 메추라기 소리도 들릴거야. 그러면 너는 말할거야. 여기가 맞지? 조금 쉬자, 아직 더 가야 해.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