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톡톡

[피움톡톡] 대학에도 만연한 강간문화, 더 ‘잘’ 싸워보려면

한국여성의전화 2019. 10. 6. 03:26

대학에도 만연한 강간문화, 싸워보려면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톡!! <대학 내 #미투 운동의 연결고리> -

 

한국여성의전화 9기 기자단 오늘

미투 운동이 시작되고 정치계, 법조계, 예술계 등 온갖 분야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성폭력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각종 단톡방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동기간 성폭력, 선후배 간 성폭력, 교수의 성폭력 사건이 속속들이 밝혀졌다. 몇몇 대학에서는 이런 흐름에 대한 백래시로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이러한 대학 내 성폭력과 미투 운동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앤드유(& YOU)>는 미국 대학의 한 성폭력 피해자가 사건 이후 어떻게 대처하고 삶을 이어나갔는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5명의 여성 중 1명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미국 대학에서 주인공이 겪은 피해는 꽤 전형적인사건이었다. 사건 당시 목격자도 있었지만 사건 절차가 길어질수록 왜 그때 술에 취했어?’ ‘왜 가해자와 단둘이 해변에 갔었어?’와 같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늘어났다. 가해자와 공간 분리가 되지 않아 매일 가해자를 마주 쳐야 했지만, 주인공은 천천히 일상을 회복해나가면서 친구들과 함께 반성폭력학생연대(SASV)’를 조직하고 활동을 이어나간다.

105일 오후 3, <앤드유>를 포함한 4개의 단편영화 연속 상영 후에 대학 내 #미투 운동의 연결고리라는 제목으로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대학 공동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직접 대처해 본 자유인문캠프 전 기획단 안태진 패널과, 자유인문캠프 현 기획단이자 중앙대 A교수 성폭력 사건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김누리 패널이 참석하여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진행은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 정이 맡았다.

피움톡톡은 백래시에 맞서 성평등한 대학 만들기, 더 잘 싸우는 법이 궁금해!’라는 부제에 맞게, 공동체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을 나누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앤드유>에 나오듯 사람들은 자신이 알던 동료나 친구가 성폭력 가해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그 대처가 더욱더 까다로워진다.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가해자의 가해 사실을 알리고 가해자가 적절한 처벌을 받도록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피움톡톡에 자리해 준 패널들은 어떻게 공동체 내의 성폭력을 공론화한 뒤 가해자에게 사과문을 받아내고 가해자를 퇴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먼저 두 패널은 사건 개요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자유인문캠프는 2010년부터 중앙대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교육 운동단체로 자본화된 대학사회의 흐름에 균열을 내기 위해 연속강연, 영화제, 오픈토크 등의 행사를 주최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라고 한다. 성폭력은 캠프 기획단 내에서 발생했다. 가해자는 공동체의 원년 멤버로, 학부생들 사이에서 박사과정생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여성 구성원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해자가 전, 현 신입 구성원을 대상으로 다수의 가해를 했다는 사실을 공유하게 된다. 이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깊이 논의했다.

두 패널은 사건 해결을 위해 내린 결정이 바로 사례집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가해자의 권위주의적인 언행과 성폭력 사례를 전부 모아 글로 정리하여 묶은 것이다. 당시는 미투 운동 이전이었고 지금처럼 대학 내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가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피해자가 다른 구성원들이 전면부정 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기록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 피해자들은 장장 4개월에 걸쳐 가해 사례집을 만들었다. 그 후에는 전체 회의에서 사례집을 공유할 경우 다른 구성원들끼리 따로 모여 가해자를 지지하는 등의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에, 개별 구성원 한명 한명에게 사례집을 공유한 후에 전체 회의를 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서 대처법을 생각해야 하는 현실은 분노스럽지만, 신중한 판단 덕분에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프로그래머 정은 미투 운동 이후 공론화를 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지만,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이들처럼 전략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사례집을 공유한 이후 다행히 다른 구성원들도 가해자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이전 기획단까지 모여서 문제 해결을 위해 깊게 고민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2~3번씩 내부 총회를 하고, 모든 회의의 회의록을 정리해서 남겼다고 한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지금 이렇게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그때 정리를 잘 해놓아서 그런 것 같다고 안 패널은 밝혔다. 특히 형사적 절차를 밟기보다 이처럼 공동체 내부에서 분주하게 노력했던 것은, 가해자가 여러 차례에 걸쳐 성폭력을 행할 수 있게끔 했던 공동체의 내부 문화와 구조를 되돌아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로 사건 이후, 자유인문캠프는 이전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동체가 되었다고 한다. 김 패널은 모든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환경의 특성을 고려해서 각자 할 수 있는 역할과 범위만큼 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관객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우려한 부분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안 패널은 공동체 내에서 해결하려면 명예훼손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가해 사실을 알려야 공동체 내에서 그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패널은 공익성이 인정되면 명예훼손으로 판결 날 가능성이 적다는 자문을 받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그래서 ‘A교수라고 칭하는 등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이 사실적시가 공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논리의 틀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공동체 내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공동체 내에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가해자에게 더 큰 권력이 있는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무엇이 해결한 것인지 정의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을 내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 준 두 패널 덕분에, 공동체와 피해자를 보호하면서도 성폭력 사건에 대처하는 방법에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더 많은 피해자가 가해자들로 인해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