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내 삶의 진실
<이야기 The tale>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김의정
성폭력 피해 경험을 스스로 확인해가는 과정
제니는 성공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대학교수로 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제니가 13살 때 쓴 글을 읽고 "넌 피해자다", "상담을 받아보라"고 한다. 제니는 불편해한다. 처음엔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피해를 자각한 이후에는, '나는 피해자다'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체적으로 나서서 그 사건의 배경과 맥락, 이후 자신의 삶까지 이해해보려고 한다. 누구도 제니의 경험과 삶을 함부로 규정지을 수 없다.
<이야기> 속의 진실들
13살의 제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48살의 제니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상한 점들을 발견하고, 과거에 묻어둔 진실을 파헤친다. 어린 자신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가해자들은 무엇을 이용했는지 짚어보며 그 여름이 남긴 상처를 섬세히 들여다본다. 제니의 시선은 주변 여성들의 삶도 살펴보고 이해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 쓰는 과정에서 제니는 여러 감정을 겪고 변화한다. 아픈 진실을 직접 찾고 맞서는 제니의 모습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피해자다움'을 부순다. 복합적으로 그려진 제니의 괴로움은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제니의 상처는 단순하지 않다. 겉보기엔 괜찮은 삶을 살아온 것 같지만, 오랫동안 제니를 괴롭혀온 고통과 그 원인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성폭력이 무엇인지, 아동 성폭력이 어떤 지점에서 더 비가시화 되는지 목격하게 된다.
힘든 영화, 그러나 강한 영화
성폭력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장면이 있어 관람에 유의해야 한다. 피해를 자각해가는 주인공과 함께 심경의 변화를 겪는 일도 고통스럽다. 힘든 영화가 맞다. 그러나 강한 영화다. <이야기>는 성폭력 피해를 과거에 덮어두었던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그 경험을 재맥락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어렵지만, 치유의 첫 발걸음일 수 있다. 영화는 또 다른 삶의 '시작'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에는, "한 때는 너무도 강해 보였던 사람들의 역겨운 진실은 오직 말로써만 힘이 있을 뿐 이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쓴 13살의 제니가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다시 이해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마주하려는 48살의 제니가 있다. 또한 그 이야기를 <이야기>라는 영화로 풀어낸 감독 제니가 있다. 제니를 만나고 많이 아팠지만, 내 이야기를 다시 써볼 용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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