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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메일] 아버지, 무엇을 원망해야 하나요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11. 02:19

[아버지의 이메일] 아버지, 무엇을 원망해야 하나요

 

    

    대한민국처럼 크지 않은 땅덩어리 내에서, 짧은 역사 속 이렇게 시대적 격변을 맞이한 국가가 어디 있을까. 식민 통치 이후 분단의 아픔, 이념 대립으로 인한 6.25 전쟁과 베트남 참전까지. 대략 반세기 안에 별의별 일이란 일은 다 겪고, 더불어 경제 성장까지 이룩해 내어야 했으니 안 힘들리 없다. 그리고 이 격동의 세월 속 정말 힘든 삶을 살아오신 세대가 바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다. 이제는 인생의 노년기에 접어 들어 삶을 마무리 할 준비를 하는 수많은 역경의 자화상들. 그 중에서도 영화는 이북 실향민이었던 한 아버지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살아 생전 한번도 가족의 일에 제대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어느날 돌아가셨다. 그리고 메일을 통해 둘째 딸에게 43통의 일생 회고식의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산산조각 나서 다시는 맞출 수 없게 된 가족사진 액자에 찔린 것처럼 아픈 이야기지만, 영화는 담담하고 유쾌하게 아버지의 삶을 통해 자신의 가족의 모습을 재조명한다. 늘상 참다운 길은 '돈'을 버는 삶이라 생각하여 좁은 남한이 아닌 다른 터전에서 제 2의 삶을 꿈꾸셨던 아버지. 감독의 아버지는 이민에 실패하고 인생의 반 이상을 술로 얼룩진 채 가족에게는 등을 진 채 사셨다.  '실향민.' 어쩌면 그분에게는 그 단어가 평생의 명찰과 같은 역할을 한, 다시 말해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 버린' 상태에 놓여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평생 술을 벗삼으며 고독과 외로움을 남과 공유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떠나갔다. 영화에서 감독은 '나쁜 남편이자 배울 것 없는 아버지였던 아버지' 로 기억되는 그의 삶을 이메일을 통해 자세히 깨닫고 이를 계기로 남은 가족들과 새로이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사실을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라 해도 자신의 가족사와 같은 내면을 면밀히 관찰하고 되짚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영화는 시종일관 솔직하고 담담하다. 인생의 허허로움이 전이되면서 동시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전쟁의 참변을 겪은 사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고난을 겪은 한 가족을 엿보면서 공감되고,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같은 시대를 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필자의 가족 생각에 새삼 감사함마저 느껴졌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용서'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단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를 하기까지에는 지금까지 지속된 그들의 고통이 너무 컸음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이들은 알리라. 가족 중 누구도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괴로웠던 순간이 있을지언정 그를 부정할 수는 없고. 그만의 책임으로 모든 것을 돌리기엔 사회 또한 너무 각박했음을. 그 누구에게도 진정 속내를 터놓고 대화하지 못했던 아버지. 그는 남편이기 이전에 가진 것 없는 한 탈북자였고, 그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오래동안 살던 집을 내주기 싫어하는, 유일하게 자신의 정착을 받아준 곳에 애착심을 가진 외로운 한 사람이었다. 작품이 끝날 무렵 아버지가 북으로 돌아가 잊고 지냈던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꾸었다는 감독의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 어찌 원망만 하며 살 수 있겠나. 이제 원망조차 할 아버지도 떠나고 말았는데. 아니, 애초에 그들은 무엇을 원망하며 살아야 했던 걸까, 라고.

 

 


제 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조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