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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헨바흐로 돌아가기 / 철의 시대] 그들은 여전히 역사의 폭력의 연장선 위에 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10. 19:30

 

 

[라이헨바흐로 돌아가기] & [철의 시대]

- 그들은 여전히 역사의 폭력의 연장선 위에 살고 있다

 

                                       


[라이헨바흐로 돌아가기]

  세계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폭력이 한바탕 세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전쟁은 끝났지만, 과연 전쟁을 겪었던 이들에게도 전쟁은 끝난 것일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일인 여성 요하나와 유대인 소녀 마냐는 경비원과 수감자의 신분으로 만났다. 종전 이후 오십여 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피해자인 마냐도, 전범국민의 낙인을 지닌 채 살아가는 요하나도,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들은 여전히 과거의 폭력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그녀들이 겪은 거대 폭력은 말 그대로 너무나 거대해 그녀들의 삶에 깊숙이 배여 있었다. 그녀들에게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눈앞에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한 것이었고, 그 아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녀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또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추억이 있던 곳과 전쟁의 고통과 죽음이 완연했던 곳들을 거닐면서, 발걸음을 멈추고,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노년이 된 마냐와 요하나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닌 똑같이 폭력을 겪고 아픔을 공유한 자로써 만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라이헨바흐로 돌아가기> 스틸컷

 

 

  하지만 그녀들의 진술과 기억은 엇갈린다. 마냐는 요하나가 수용소에서 자신을 도와주었던 경비원이었다고 확신 하지만 요하나는 끝내 부인한다. 요하나가 정말 경비원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차마 과거 자신의 국가가 저지른 폭력의 피해자 앞에서 직접 과거를 직면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영화는 끝내 요하나가 수용소에서의 경비원이었는지 확실히 가르쳐주지 않은 채 둘이 함께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으로 끝난다.

 

  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있던 자들은 모두 피해자다. 그리고 폭력은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게 퍼부어진다. 요하나는 전범국민이나 수용소 경비원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써 침묵과 복종, 아들과의 이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전범국민으로서의 죄책감을 겪어야 했으며, 여성이기에 종전 후 나치행위에 대한 보복이란 미명 아래 자행 되었던 집단강간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종전 후 독일여성 십만 명이 집단강간을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요하나의 처절했던 상황과 사투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더불어 과거의 폭력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과거와 과거의 폭력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직면해야 하는지, 외면해야 하는지, 그도 아니면 지워야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거대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전범국과 피해국이 있기 이전에 상처받은 개인들이 있었으며, 폭력의 잔해는 각각의 개인에게 다른 기억과 경험과 모양으로, 하지만 똑같이 깊은 아픔으로 생생하게 존재했다. 영화는 이처럼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의 거대 폭력을 당사자들의 진술을 통해 담담하게 보여준다.

 

 

[철의 시대]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철의 시대> 스틸컷

 

 

 

  엄마는 말한다. 자신이 남편과의 불화와 투옥생활을 해가면서까지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건강한 정치와 양성평등을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또 말한다. 자신은 여전히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때의 일을 직접 입으로 말하기 힘들다고. 엄마는 이처럼 사회구조의 부조리에 확고하고 완고하게 직면하고 투쟁 하지만, 정작 기억과 삶 속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과거의 폭력에 대해선 직면하기 두려워한다.

 

  엄마만이 과거 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폭력의 잔해는 엄마의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진다. 이 도시에서 태어난 모두는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곳에서는 끊임없이 안개와도 같은 연질의 것이 흘러나온다. 이 연질의 것에는 아마도 이러한 질문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폭력이 왜 기인한 것인지, 왜 우리가 그 폭력을 당했어야 했는지, 아직까지 개인의 것으로 존재하는 폭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안개처럼 불투명하고 정체모를 이 질문들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도시의 모두의 구멍을 그만 막아줄 방법은 없는 것일까. 마치 거대 폭력에 죽어간 이들에 대한 추도문을 낭송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김민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