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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가족사진] 그들이 가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10. 03:59

그들이 가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 영화 흑백가족사진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흑백가족사진> 스틸컷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바로 엄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나는 아직 '엄마'가 아니라서 이 말의 의미를 몸소 체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 엄마를 비롯해 주위의 어머니들을 보며 평범한 여성이 어머니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변화하고, 강인해질 수 있는지는 안다. 내가 감상한 영화 흑백가족사진속 어머니 '올가' 역시 과거에는 그저 평범한 여성이었으리라.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올가는 피부색이 다른 17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그들과 함께 지낸다. 비록 시설도 열악하고, 최고급의 음식이나 환경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흰색 피부를 가진 순수 우크라이나인들의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한 우크라이나에서 유색인종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이 가족 구성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국적이 우크라이나임에도 외국인 취급을 당하는 이들의 생각을 담아내고, 그들의 생활을 아주 가까이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단순히 영화 속의 이야기만을 따라가다 보면 이 작품이 여성인권영화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아동인권이나 인종차별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 그러나 올가와 아이들이 이렇게 한 가정 안에 모이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곱씹어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핵심은 올가와 아이들의 생활보다는 이 가족이 어떻게 형성되었느냐에 있는 것 아닐까.

 

올가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분명 그들을 낳아준 친엄마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아이들을 버리기로 결정했고, 그로써 올가의 가족이 형성되었다. 물론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혼혈아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배척받고 차별당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책임져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훨씬 큰 책임을 가졌다는 인식. 이런 점들이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올가의 입장에서 바라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가는 여러 엄마들이 사회적 분위기에 못이겨 외면한 아이들을 국가 대신에 껴안으며 스스로 강인한 어머니의 자리를 자처하고 있다. 영화를 보며 가장 화가났던 부분이기도 했는데, 예고도 없이 올가의 집을 찾은 국가기관측 사람들이 "여긴 아이들이 생활하기에 정말 끔찍하네요." 등의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는 장면이었다.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위해 올가의 집을 방문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대목이었다. 이 때, 올가가 그들에게 받아친 말을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로 꼽고 싶다. "국가가 우릴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이러죠?".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흑백가족사진> 스틸컷

 

이 영화 속에서 국가는 요란한 말 뒤에 숨은 방관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회의 구성원인 한 개인이 그릇됨을 인식, 책임을 짐은 물론, 개선해야만 한다고 몸소 보여줌으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이는 여성만의 책임인가? 왜 세상에는 미혼부보다 미혼모가 훨씬 많은 걸까?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오늘 밤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답하기 어려운 의문들을 던져주며 영화는 희망적이지도,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은 상태로 끝이 난다. 이 가족의 미래는 우리들에게 달렸다는 듯이.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이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