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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나의, 홈] 잔인한 직면 보다 더한 회피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10. 03:05

잔인한 나의,

다큐멘터리/ 77/ 감독 아오리

 

"잔인한 직면 보다 더한 회피"                                  

 

 

제 7회 여성인권영화제 <잔인한, 나의 홈> 포스터

 

잔인한 나의, 홈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직면되기 어려운 친족 성폭행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 소재의 무거움 때문에 어두운 영화를 생각했었다. 영화의 분위기는 소재의 특성보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다. 최대한 무감각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때문에 돌고래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소재가 주는 무게감 보다 '돌고래'의 여정이 주는 감정의 변화는 잔잔하게 파고들어 예상치 못한 때에 나를 무너뜨렸다. 돌고래는 범행 사실을 부인하는 아버지와 믿어주지 않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떠나 집을 나왔다. 나는 사실을 안 순간이 직면의 도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고래가 세상과 맞닿드린 것은 중학교때 아버지의 범행사실을 안 후도 친구들에게 토로한 이후도 아니었다. 몇차례의 상담후 변하지 않는 가정의 모순된 논리를 벗어나 집을 나왔을 때 돌고래의 직면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던 깜깜한 앞날에 감사함이라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돌파하고 있는 지금의 투쟁이 재판의 승소가 마냥 기쁠 수는 없었다. 돌고래가 지키고 싶고 이 승소를 함께 하고 싶은 가족들은 돌고래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상처를 낳았다.

 

돌고래는 말했다. "이제는 믿고 싶어요."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인 가족이 불신의 표본이 된 돌고래의 말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믿고 싶다는 말 끝에는 아직 치유되지 못한 '외로움'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돌고래가 원한다고 치유될 수 없는 곪아버린 상처 중 하나였다. 돌고래가 추석에 집에 내려갔을때 엄마 외 동생들은 돌고래를 보는 것을 거부했다.

 

돌고래와 엄마가 메신저를 보내는 장면에서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그들의 복잡한 심경이 전해져왔다. 가정을 지키고 싶지만 딸도 포기할 수 없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가족의 구성원으로써 내쳐진 기분을 느끼는 딸. 둘의 마음은 서로를 포기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메신저에서는 어떠한 감정적 교감도 찾을 수 없어 보였다. 문자 메세지에 드러난 오해와 묵은 감정의 대립보다 더한 응축된 서로를 향한 표출되지 못한 마음이 느껴졌다. 엄마는 분명히 돌고래에게 안식처가 되주지 못하지만 돌고래를 포기하지 않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 어쩌면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돌고래는 피해자임에도 자신의 말이 믿어지지 못하고 되려 가해자로 불리는 친인척들의 비난 속에 꿋꿋이 삶을 개척한다. 이러한 몸부림에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동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방순회 상영을 했을때, 어머니들의 반응이 돌고래의 어머니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들도 돌고래를 가정의 파괴자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영화를 감상한 어머니들이 동화된 것은 돌고래가 아닌 돌고래의 어머니였다. 이것은 돌고래의 어머니처럼 그들이 자식을 낳은 어머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같은 시대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주입된 인식은 그들이 가진 가정에 대한 인식을 뒤틀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유지를 위한 희생이 정당화가 되어온 그들의 삶. 이들은 이제껏 얼마나 많은 희생들이 있었기에 이렇듯 당연하게 참아야한다고 생각할까? 살아온 이들의 삶 속에 얼마나 많은 회피가 있었을지 지레 짐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유지된 이들의 울타리는 과연 견고할 수 있을까? 돌고래의 가장 외로운 직면의 순간의 가족 되어 준 것은 친족이 아닌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판사는 재판 후 돌고래를 불러 이야기 했다. “생각보다 주변에는 너를 도와줄 사람들이 많다.” 영화는 범죄의 직면 뿐 아니라 가정이란 개념에 대해 재정립하게 만들었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잔인한 나의, 홈> 스틸컷

 

영화를 보는 내내 억눌려 있는 나의 인권의식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돌고래의 가족들에게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내가 돌고래의 자매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내가 돌고래 편에 설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고소한다고 했을때 그것을 도울 수 있을까? 돌고래의 자매들에게 아버지는 남들과 똑같이 평범한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수감시키는 법적형벌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질문은 확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범죄를 저지른 자가 당연하게 받아야 되는 형벌을 고민하는 내 모습에서 모순된 나의 인권의식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드러나지 않은 2차 가해자가 될 가능성은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높다고 할 순 없지만 낮은 인권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것은 내가 뱉는 말들이 머릿 속에서 만들어진 사실일 뿐 진실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정답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내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영화를 통해서 부셔질 것이라고는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아는 인권에 대한 '정답'이 고정된 것이 아닌 '내 삶' 속에 동행하는 해답이 되기를 기대한다.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 지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