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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나의, 홈]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현실이야기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10. 05:07

[잔인한 나의, 홈]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현실이야기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잔인한 나의, 홈> 포스터 / 스틸컷

 

영화를 보는 내내 울음이 몇 번씩 터질 뻔했다. 영화 속 주인공.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야 할 한 사람인 ‘돌고래’ 가 울 때면 나도 울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터지려는 울음을 꾸역꾸역 눌러 담았다. 그와 비슷한 경험, 그와 같은 아픔을 간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밝은 미래를 진심으로 빌어주고 싶어졌다. 영화를 보면서 이토록 누군가의 행복을 간절하게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던 많은 관객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지극히 사실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잔인한 나의, 홈’ 은 잔인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공간이 집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집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내 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내 가족과 평안하게 사는 삶을 꿈꾼다. 길을 지나다니다 불쑥 누군가에게, 세상을 살면서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누구인 것 같냐고 묻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가족’ 이라고. 이 영화는 집과 가족이 유일한 나의 안식처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의 통념을 깨뜨린다. 영화는 불쾌하고 불편하게도 친족 성폭력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영화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친족 성폭력을 당한 돌고래가 자기에게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에게 고소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전까지도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고 15살 때 처음 아버지로부터 삽입 강간을 당한 돌고래는 집을 나와서 열림터로 가 생활하면서 아버지에게 소송을 건다. 1심 재판에서 판사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돌고래는 아버지가 무죄를 선고받은 것보다 자신의 말을 누구 하나 믿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판사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고 인정해주는 것에 기뻐하던 돌고래의 울음을 보던 순간은 안타까웠다. 가족이 나를 괴물취급하고, 외면한다. 그 순간 돌고래는 세상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떨어진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적은 외부에 있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가족인데 돌고래에게는 적이 아빠고, 나를 도와줄거라 믿었던 엄마와 다른 가족들은 나를 외면해버린다. 대체 누구를 믿고 따르고 의지해야 하는 것인가?

 

아빠에게 당한 것이 성폭력이라는 깨달음을 갖고, 고민 끝에 어렵게 엄마에게 시실을 털어놓지만 엄마는 잔인하게도 “너도 즐긴 거 아니야? 네가 먼저 유혹한 거 아니야?” 라는 믿기 힘든 질문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1심 재판에서 아빠가 무죄로 풀려나고 검사가 항소한 2심 재판에서 아버지측의 증인으로 나온 엄마는 피해자가 딸인 돌고래임에도 불구하고, 아빠 편을 든다.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사실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들은 또 다른 돌고래를 향한 폭력 같았다. 돌고래에게 가족은 아빠는 적, 엄마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믿지 않고, 동생들마저도 돌고래를 외면한다. 믿음의 반댓말은 두려움이라고 한다. 돌고래의 가족은 전부 안정적인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해 돌고래를 믿지 않았다. 사람은 때로 이기적이다. 내가 힘들어지면, 힘들어지는 원인을 외면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진실을 부정한다. 그게 나 아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도, 내 고통을 덜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문제에 직면하는 순간, 마주할 수 있는 수 많은 상황들이 있다. 돌고래 가족의 경우는, 아빠가 돌고래에게 정말로 성폭력을 행사했다고 믿는 순간 평화가 깨진다. 아빠는 당장 감방에 들어가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다. 가족들은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믿었던 아빠가 비윤리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람은 한 번 생각의 방향을 정하면 그 생각을 줄곧 일관한다. 같은 방향을 고집하느라 때로는 다른 방향에 흐트러져 있는 진실을 외면하려고도 한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굴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외로웠을 어린 소녀는 마침내 세상에 고립되었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잔인한 나의, 홈> 스틸컷

 

2심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돌고래와 주변 사람들은 노력한다. 가족은 적이어도, 돌고래의 주변에 가족보다 더 나은─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사람은 많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돌고래를 도와주는 사람은 많았다. 감독인 아오리는 물론, 열림터의 선생님.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 그리고 전 남자친구. 전 남자친구가 ROTC에 가기 위해서 증인으로 출석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분노했다. 아빠 측 변호사가 증인으로 출석한 전 남자친구에게 군대 가야지? 라며 말을 늘어놓기 시작할 때는 세상의 더러움에 자조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마침내 돌고래의 재판이 2심에서 승소로 끝나면서 보상 받았다. 판사는 돌고래의 편을 들어줬고, 돌고래의 아빠는 7년 형을 선고 받았다. 그 순간 막혀 왔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느낌, 희열마저 느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통쾌하고 벅찬 순간이었다.

 

재판을 하면서 판사가 돌고래에게 해줬던 말이 뇌리에 남았다. “세상엔 믿을만한 사람이 많이 있어요. 주변 사람들 믿고 의지해도 괜찮아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고 느낀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받는다. 이따금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왜 내 세상은 평온하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낼까? 의문과 함께 분노가 차오르지만 의지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서 웃을 수 있다.

 

재판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어느 추석날. 돌고래는 엄마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한다. 모든 상황이 끝난 직후,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화를 받는다. 평소에 딸을 대하듯이 “어딘데? 역 앞에서 전화하지 그랬어.”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녀의 대화를 보면서 나는 그래도 돌고래가 아주 가족의 끈을 놓고 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은 일어났던 모든 어지러운 문제들을 해소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폭풍이 온 뒤엔 고요해진다. 몰아치는 폭풍 뒤 잔잔하게 가라앉은 모래 바닥 위로 다시금 새로운 모래성을 쌓을 수 있다. 폭풍이 지나간 다음의 돌고래의 삶에도 새로운 모래성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우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