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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의대화] 소녀들의 거친 성장기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5. 9. 19. 15:26

소녀들의 거친 성장기

-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토끼의 뿔/열정의 끝/집에 오는 길/청춘이냐!]


세경_한국여성의전화 대학생 기자단



성장한다는 것은 순간순간 찾아오는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상영작 속 성장기에 있는 10대 여자아이들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내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고난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만 하고, 다시 시작해야만 했던 소녀들의 다양한 순간을 소개한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토끼의 뿔> 스틸컷



세상의 현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 <토끼의 뿔>, 한인미 


12살. 이제 막 몸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 여자 아이들은 변화가 시작된 서로의 가슴을 만져본다. 세상으로 발을 처음 내딛는 12살 희정이에게 현실을 몰랐던 대가는 가혹하다. 희정이는 단지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모으려고 했고, 책방 오빠의 친절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뿐이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호되게 혼이 나고, 오빠에게는 성폭행을 당한다. “너도 그랬어?”라고 친구 새봄이에게 물어보는 희정이의 모습은 마치 “세상은 원래 다 이런 거야?”라고 물어보는 듯하다. 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가슴 아프다. 하지만 아직 희정이의 가슴은 다 자라지 않았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열정의 끝> 스틸컷



현실 속 좌절의 순간 - <열정의 끝>, 곽은미


체육 대회에서 단체 줄넘기에 참가하기로 한 미란이는 계속 줄에 걸린다. 담임선생님은 미란이에게 단체 줄넘기에서 빠질 것을 권유하고 미란이와 선생님 사이 갈등은 극에 달한다. 줄넘기를 하지 말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오기를 부리듯 계속해서 하겠다고 말하는 미란이는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이일까. 줄넘기를 못하는 미란이를 잘하는 다른 아이와 기계 부품을 바꾸듯 교체해서 단체 줄넘기를 ‘잘’하게 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체육대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담임선생님의 체육대회를 향한 열정의 끝은 무엇이었을까.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집에 오는 길> 스틸컷



그저 덤덤하게 살아내야 하는 순간 - <집에 오는 길>, 오상아 


26살 주인공은 강남역에서 소주병 모양의 인형탈을 쓰고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일을 마케팅의 일종이라고 그러니 자신은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무심한 듯 말한다. 일할 곳은 있었지만 연봉이 적어서, 집에서 거리가 멀어서 하지 않았다는 말은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 창문으로 보이는 한강 주변 야경을 보면 자신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는 그녀. 한강 주변 야경을 너무 좋아한다는 말이, 서울에서 ‘서울러’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이 여자 홀로 치열한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이 고단하다는 말로 들리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집에 오는 길> 스틸컷



다시 시작해야하는 순간 - <청춘이냐!>, 유아람


주인공은 부상을 당해 삶의 전부였던 달리기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고시원을 떠나는 날, 주인공은 그동안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방안의 창문을 열어보기로 한다. 주인공의 모든 삶, 미래까지도 달리기에 맞추어져있었다. 하지만 달리기라는 틀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자신의 전부였던 틀이 사라져버리자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은 처음에는 쉽게 열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여는 방법은 쉬웠다. 그저 창틀에 있는 긴 막대를 치워버리기만 하면 된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창문 밖에서 어떤 풍경을 보았을까. 



18일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에서, <토끼의 뿔> 한인미 감독은 ‘작년에도 제 작품이 초청되었는데, 여성인권영화제와의 인연이 깊은 것 같다’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청춘이냐!> 유아람 감독도 여성인권영화제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모두 10대 소녀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데,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냐는 물음에 한인미 감독은 “아이들이 몸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사회의 벽에 부딪힌 후, 세계관이 바뀌는 순간을 다루고 싶었다”고 밝혔다. 유아람 감독은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을 당시 20살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처럼 창밖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던 제 자신과 주변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한인미 감독은 주인공의 친구 캐릭터가 갖는 의미에 대한 관객의 질문에, “새봄이는 희정이보다 더 성숙하다. 발육도 더 빠르고 성적 접근에 대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잘 모르는 희정이에게는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동경할 일이 아닌 데도 친구를 동경하게 되는 장면을 넣어서 긴장을 유발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유아람 감독은 주인공 외의 인물을 동물로 표현한 이유에 대해, “사람으로 그리고 나니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게 보였다. 사람들 마다 모두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확실하게 표현하고자 동물들로 캐릭터를 바꿨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