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톡톡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자 <델마와 루이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10. 14. 01:39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자

— <델마와 루이스> 피움 톡톡 취재



지혜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의 네 번째 날인 10월 13일 저녁,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1)가 상영되었다. 여성인권영화제는 피움 줌인(FIWOM ZOOM IN)의 고전 부문으로 이 작품을 선정했다. 페미니즘 로드무비의 선례를 남긴 <델마와 루이스>, 2016년 서울의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트는 것엔 어떤 의의가 있을까. 






남성 권력으로부터 탈주하기


 붉은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초록색 오픈카 한 대가 평원을 가로지른다. 카메라는 익스트림 롱쇼트로 자동차의 질주를 담아낸다. 오픈카에는 두 젊은 여성,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루이스(수잔 서랜든)가 타고 있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후 멕시코를 향해 도망가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 남자친구, 자신을 강간하려던 이름 모를 남성으로부터 도망가는 중이지만. 사뭇 들뜬 그들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는 동안, 경찰차 한 대가 화면에 잡힌다. 경찰차는 경적을 울리며 오픈카를 추격한다. 하지만 이들은 경찰에게서 총을 빼앗고, 경찰을 경찰차 속에 감금해버린다. 델마는 말한다. “난 뭔가를 이미 건너왔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이들을 쫓아오는 ‘남자’들의 수는 늘어난다. 무장 군인들과 경찰차, 헬리콥터의 추격이 이어진다. 일반적인 살인 사건이나 절도 사건의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치고 지나치게 많은 병력이 두 여성을 향한다.



우리는 이미 페미니즘을 건너왔다


 <델마와 루이스> 상영 이후, 게스트를 초대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피움 톡톡’이 진행되었다. 게스트로 여성학자 정희진이 초대되었고 고미경 여성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토크는 21세기에 <델마와 루이스>를 다시 보는 의미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었다. 한 관객은 “난 이미 뭔가를 건너왔고, 돌아갈 수 없어”라는 델마의 대사를 인용하며 페미니즘을 접하고 난 뒤 자신이 그렇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영화가 지금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온 나라가 나서서 두 여성을 가부장제의 울타리 안으로 돌려놓으려 하는 영화 속 풍경이, 온 사회가 페미니즘을 접한 여성들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지금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른 관객 하나는 “페미니즘을 이제 막 접했는데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언제나 질식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페미니즘을 배우고 전에는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되니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희진은 “나 역시 분노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간의 행복, 불행은 (의외로) 페미니즘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모르기 전으로 되돌아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 페미니즘을 하든 하지 않든 인간의 삶은 힘든 일 투성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모르고 시종일관 권력을 행사하는 중년 남성의 삶에도, 주체가 되기를 거부한 채 남성 권력에 순응하는 여성의 삶에도, 고통이나 불행은 존재한다. 


 정희진의 말은 지금 이 시기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고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적 사유는 현실적 장벽으로 인해 순간순간의 번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불행은 아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페미니즘과 관계없이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미 페미니즘을 건너왔고, 페미니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는 페미니스트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도 숨어있다. 델마를 떠올려보자. 친구와 여행가는 간단한 문제조차 남편의 눈치를 보던 델마는, 자신을 희롱하는 사람을 응징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섹스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이처럼 페미니즘적 사유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델마 옆에 루이스가 있었듯, 페미니즘적 사유를 즐겨 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 역시 그런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고, 우리는 일종의 동료로서 서로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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