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모녀관계, 하지만 누구보다 사랑해
- 결혼 전날, 엄마와 딸의 하룻밤 <결혼전야> -
이진주
나 시집가는거 아니야, 결혼하는 거야!
결혼 전날 밤, 엄마는 딸이 가난한 연극배우에게 시집을 간다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딸도 돈이 안 되는 연극을 하니, 남편은 제대로 된 직장이 있어야 한다며 잘나가는 과거 애인의 안부까지 물으며 다소 아쉬워한다. 하지만 딸은 서로 좋아하는 일 그만둘 거면 그깟 결혼을 왜하냐며 소리친다. 사실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렇지 못한 부부, 특히 여성들이 많다. 결혼 후, 혹은 아이가 생기면 원하든 원치 않든 직업을 버리거나 이직하는 여성이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지만 정말 본인을 위한 결정인지는 의문이다.또 딸은 “시집가는거 아니야, 결혼하는 거야!”라고 엄마의 말을 정정하는데, 두 단어가 의미하는 차이점은 아주 극명하다. ‘시집’은 여자가 남편의 집으로 출가한다는 여성차별적 의미로, 엄마의 품을 완전히 벗어나는 뉘앙스이다. 반면에 ‘결혼’은 남녀가 동등하게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엄마의 딸로 남으면서 단지 독립한다는 뉘앙스이다. 딸은 엄마의 품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고 안심시켜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회인식으로 인해 결혼을 ‘시집’으로 여기는 어른들이 많다.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여성들은 직장에서도 유리천장으로 고통 받는다. 우리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어 여성인권을 주장하고 고백한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아실현을 구애받는 일은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사회적 시선을 의식한 ‘시집’이 아닌 본인을 위한 행복한 ‘결혼’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엄마를 홀로 두고 떠나는 마음
엄마는 딸에게 닭을 먹이면서 닭이 먹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엄마와 부담스러워 하는 딸은 계속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엄마는 다시는 안 올 것처럼 짐을 싸는 딸이 조금은 섭섭하지만 최대한 티를 안내려고 담담한 척을 한다. 딸도 그 마음을 알기에 본인도 감정을 숨긴다.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음과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복잡한 마음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섭섭하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한없이 죄송스럽다. 한편으로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당연한 존재, 엄마이기 때문에 내가 떠나도 잘 지내실거라는 합리화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비단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집을 떠나는 남성의 경우에도 애틋한 마음을 공감하며 관람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가 생각나서 자꾸 눈물이 났다. 외할머니가 비교적 일찍 돌아가셨는데, 엄마가 결혼할 때는 영화에서처럼 든든한 지원군 없이 외롭게 준비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가장 밉고도, 가장 사랑하는 존재
딸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답답할 정도로 지고지순하고 참고만 살아가는 엄마를 닮지 않으려고 결심했지만, 어느새 엄마와 너무나 닮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듯 모녀관계는 서로가 닮았기에 더 슬픈 관계이다. 극중에서도 엄마는 혹시나 사위가 바람기 많았던 남편처럼 될까봐 서방에게는 닭 날개를 주지 말라고 당부하고, 이혼한 언니가 줬다는 한복을 뺏으며 부정 탈 것을 염려한다. 같은 여자로써 엄마는 딸이 과거에 본인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야단치지만, 딸에게는 잔소리로만 들린다. 서로의 어긋난 애정방향 때문에 가장 밉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동시에 가장 사랑하기도 한다. 가끔은 우직한 엄마의 존재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내가 쓰러질 때마다 잡아주는건 그 버팀목이라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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