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여성인권영화제 '우린 흔들리지 않지'

2020년 12월 1일(화)~10일(목)

피움뷰어

[7년간의 투쟁] 성폭력의 사회적 배경과 개선의 방향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2015. 9. 19. 20:07

성폭력의 사회적 배경과 개선의 방향

-<7년간의 투쟁>-

스티어 프레드릭

 



범죄가 한 사건일 때는 개인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반복적으로, 한 단체 중심적으로 향하거나, 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시회적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학대를 당하는 아이를 돕고자 호주에서 온 봉사활동가인 샬롯 켐벨 스테판 (Charlotte Campbell Stephen)이  케냐에 도착한지 2개월만에[각주:1] 당한 집단 강간은 하나의 단일 범죄였다. 그러나 강간, 아동 성 학대와 기본적 생활의 필수품을 얻기 위한 생존 섹스 (survival sex)를 포함한 케냐에서의 수많은 성폭행 사건들을 모두[각주:2]살펴볼 때,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재판 때 한 피고 측 변호사가 증거물을 숨기거나 바꾸는 행위는 법정 모독이자 사법 방해죄였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면허를 잃거나 재판에 제외조차 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포기하도록 지속적으로 재판을 방해할 수 있었다는 체계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는 샬롯이 대처해야 했던 상황이며, <7년간의 투쟁>은 그의 투쟁을 다루면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나이로비의 빈곤한 근교에서 사는 케냐의 여성의 이야기도 해준다. 이들의 재판이 진행되지 못하게끔 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소가 있음은 물론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계속 방해되고 연기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새로운 판사에게 욺겨지기도 하고 재판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때도 있다. 피해자들이 또 다시 증언해야 하며 또다시 지독한 비극을 재경험해야 한다는 의미다. 케냐의 재판 절차가 기본적으로 느린 게 아니라,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재생하면서 절망을 느끼고 포기하게 하는 피고측의 의도적인 전략이 과정 내내 개입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방해들이 너무나 많아서 샬롯이 집당 강간을 당했음을 신고했을 때 경찰은 “케냐에서 강간 사건 재판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실은 케냐에서 강간을 당했더라도 대부분의 피해자는 신고조차 하지 않고, 신고해서 가해자를 기소하더라도 그들이 증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샬롯은 포기하지 않고, 정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기로 했으며 증언 과정에서 가해자를 직접 대면함으로써 많은 피해 여성에게 희망을 주었다.

<7년간의 투쟁>은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시작한다. 샬롯은 범죄 장소에 다시 돌아가서, 8시간 동안 남자 4 명한테서 강간을 당했던 침대에 다시 누워서 그 경험을 상세하게 진술한다. 다른 피해자들과 탈출하는 과정에서 살해도 당할 뻔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섬뜩했는데도 카메라 앞에서 끔찍한 범죄를 재생하면서 사실 대로 털어놓은 침착한 말투에 나는 참 놀랐다. 그리고 그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사소해보이는 일들이 나에게 제일 충격적이었다. 예를 들어 가해자 중에 한 명이 십자 목걸이를 쓰고 있었는데, 샬롯은 그 목걸이를 잡고 좀 전에 총을 입 안에 넣었던 가해자에게 “너는 무슨 기독교 신자이냐”라고 고발하면서 계속 도전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이 다큐멘터리는 샬롯의 집단 강간 사건 재판을 중심적으로 다루었으나 강간에 대한 고발과 처벌을 방해하는 법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탐구를 하기도 하며 깡패 예방 세미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 단체, 주민을 위한 법 설명회 등 사회 발전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가의 이야기도 다룬다. 범죄와 얽힌 사회 배경에서부터 뇌물, 부패, 그리고 법적 전략까지 여러 단계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7년간의 투쟁>은 이 문제를 대처하고 정의, 개혁, 그리고 평등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케냐라는 공동체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7년간의 투쟁> 상영 후에 관람한 미국의 학내 성폭력을 다루는 올해의 개막작인 <헌팅 그라운드>, 그리고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가정폭력에 대한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을 같이 보면 여러 공통점을 살펴볼 수 있다. 여러가지의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각주:3] 차별적 상황에서 여성은 더 많은 피해 입기도 한다는 것, 또한 이 상황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해결하기에 어떤 방해들이 있는지를 고려하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몇 가지 단계를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법의 문제들이 있다. 이는 부당한 사건을 예방하는 법률, 또한 사건 발생시 처벌 법률이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률 혹은 그런 법을 시행하는 기관이 비효과적이거나 아예 부재하는 상황들이다. <7년간의 투쟁>에서 나오는 운동가에 의하면 케냐에는 상당히 강한 성범죄처벌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피고측 변호사를 증거물을 반납하지 않거나 기록을 바꿀 때 고발되지 않는 것과 같이 재판 절차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다. 이 변호사는 자꾸 재판에 몇 시간 씩 늦게 도착하지만 재판에서 제외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7년간의 투쟁>에서 집단 강간 범죄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대신 '무장 강도'를 근거로 유죄가 결정됐으며, 무장 강도는 사형으로 처벌되지만 (자동적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강간은 최대 20년 징역이데다가 실제로는 2년 징역이나 봉사활동 같은 아주 경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개혁이 필요하더라도, 강간 범죄를 고발하고 처벌하는 법률 제체와 기관이 존재한다. 한 운동가는 성범죄처벌법의 힘을 강조했으나 누구도 신고하지 않고 법이 시행되지조차 않으면 어떤 법률이 아무리 강해도 무력한 법률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불평등의 두 번째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즉 법 실행의 문제이다. 경찰이 피해자의 케이스를 무시하거나, 신고를 기록하는데도 범인을 잡거나 증거를 찾지 않는 경우도 있다. 뇌물, 부패 그리고 특히 노동 문제에 포함된 보복이나 블랙리스트도 이 단계에 포함된다. <7년간의 투쟁>에서는 샬롯이 만난 모든 경찰, 기소측 변호사, 그리고 판사들이 성실하고, 정의로운 존재로 묘사되지만, 다른 사람이 같은 상황에 빠져 있을 때에는 경찰소에서 신고를 받아주지 않거나, 가해자가 경찰이나 군인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정치 기관이 없다는 사건이 흔히 언급된다.

그러나 강간 범죄를 신고하기 힘든 이유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해자임을 알게 되면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경우도 많다. 어떤 피해자들은 피해자인데도 자책하기도 하고 강제로 당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명예로 받아들이기도 하다. <7년간의 투쟁>에서는 그러한 문제들이 자꾸 언급된다. 많은 피해 여성들이 부끄러워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임을 알게 되면 다시 성폭력을 당할 확률이 높아지는 게 끔찍하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독하고 비극적인 것은, 때로는 가해자가 가족이라면 가족 내에서도 신고하는 것을 막는다. 비뚤어지게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해자를 보호하면서 (주로 여성인)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운다. 그러나 케냐뿐만 아니라 <헌팅 그라운드>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학교의 명예 혹은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해서 교직원들 그리고 다른 학생까지도 피해자를 탓하고 위협하기도 한다. 가해자는 더욱 더 심했다. 법적 제도가 아무리 발전되었어도 이러한 문화적인 요소는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하게끔 하는 꼭 바꿔야 하는 문화다.

각 단계에서의 자세한 문제는 각 문화와 법적 제도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를 살펴보면 운동가들이 더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화에서 비롯된 불편등을 법적으로 해결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불평등에 대한 문화적, 대중적인 반발이 강할 때 관리할 법적 제도가 없으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7년간의 투쟁>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한국에 거주하는 백인으로서 흥미롭던 점은, 샬롯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선택해서 소수민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모국을 떠나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법원이나 수업에서 영어를 사용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곳, 그리고 특히 샬롯이 근무하는 빈곤한 근교에서, 스와힐리어를 사용한다), 도처에 보이는 소수민족되고, 그리고 케냐처럼 생활 수준에 큰 차이가 나는, 나라로 이동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다. 한 장면에서 샬롯은 양이 많고 멀리서 보이는 언덕이 있는 들판에 앉아 있다. 그 경치를 보고 진정하고, 안심을 느끼고, 다른 데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감정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던 감정이었다. 봉사활동, 즉 이타적인 의도로 케냐로 갔는데도 2개월만에 집단 강간을 당하게 됐단 사실을 살펴보면 그녀는 케냐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인상적이다. 케냐를 원망하지 않고, 빈곤, 억압, 그리고 차별에 시달리는 케냐의 사람들을 계속 도우려고 노력한다. 너무나 괴로운 상황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투쟁해서 자신의 고통을 용기와 힘으로, 자신의 개인적 비극을 사회적 희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불만족스러운 점이 없지는 않다. 특히 민족간의 관계를 충분히 탐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고측 변호사는 인종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비난했다고 샬롯을 단 한 번 (거짓으로) 고발했고, 케냐 여자들은 백인 여자도 강간 당할 수 있음에 놀랐단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 외에는 인종 차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대중, 법체제가 부당한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샬롯을 계속 지원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와 다르단 점을 살펴보면 샬롯이 (상대적으로) 돈이 많은, 백인 호주 주민인 여성이기 때문에 다르게 취급하지 않았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피부보다도 경제적으로 강대국인 호주 (이 다큐멘터리를 지원한 나라) 에서 왔다는 게 더 중요했을 수도 있지만 <7년간의 투쟁>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분명히 다큐멘터리가 이슈에 접근하면서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 방식은 케냐 사람을 타자화할 위험을 적게 만들기는 하지만 교수와 민권 운동가인 미셸 알렉센더 (Michelle Alexander)가 주장했다시피 탈인종화된 (post-racial) 사회가 되고 싶은 목적만으로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7년간의 투쟁>은 전반적으로 잘 촬영한, 생각하게 만드는,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인 샬롯은 지독한 경험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정의를 이루고자 부당한 제체와 끝까지 투쟁하는 강하고 대단한 인물이다. “강간 사건 재판에 이기는사람이 없”는 나라에서 샬롯 켐벨 스테판은 불가능한 것을 실현했으며 그녀의 성공을 통해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수많은 피해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이 다큐는 재판을 다루는 것 외에서도 전염병인 강간을 허락하는 사회 배경을 탐구하기도 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조직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7년간의 투쟁> 은 문제를 파악하는 뿐만 아니라, 개선 방향을 제공하고, 무엇보다도 희망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1. Davey, M. ‘I will not be silenced’: fight for justice that gave Kenyan Rape victims a voice The Guardian 2015/03/12 [본문으로]
  2. 영화에 나오는 한 성폭력 예방 수업에서 아는 사람 중에 강간을 당한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모른다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본문으로]
  3. 여기서 정의롭지 못한 상황은, 범죄나 피해 그자체보다도 범죄를 고발하거나 피해를 보상하지 못하게 하는 불평등하고 부당한  체계에 대해서 말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