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여성’의 어떤 단면들

한국여성의전화 2016. 10. 12. 03:02
‘여성’의 어떤 단면들
<비포앤애프터>, <설희>, <미용실>,<연애경험>

나현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여성’은 하나의 범주로 묶기엔 너무나 다양하다. 외모, 성폭력, 우리의 노동, 그녀의 연애 등. 수많은 층위의 경험이 ‘여성’이라는 단어에 얽혀있다.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다른 삶의 결들이 10/11(화)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4편의 단편 영화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이후’는 없다: <비포앤애프터>
이력서의 키와 몸무게를 적는 칸 앞에서 혼란을 겪게 된 주인공. 성형 전과 후가 선명히 대조된 광고 전단을 보며 변화될 자신의 몸을 상상한다. 과연 주인공은 ‘애프터’에 도달할 수 있을까. <비포앤애프터>는 여성들이 상상하는 ‘이후’가 사실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 ‘이후’는 도달 불가능한 이상인 동시에 우리의 ‘지금’을 부정하는 과오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성형수술을 시도하면 할수록 그만큼의 결점을 발견하게 된다. 외모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도무지 달성할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하다. 나는 누구이며 내가 원하는 나는 과연 존재하는가. 이러한 혼란은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 나는 없고 타인의 시각으로 점철된 나만이 존재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이같은 사회의 시선은 과연 괜찮은가?


조력과 방관 사이: <설희>
연희에게 지적 장애인인 친구 설희는 애증의 존재다. 걱정되지만 동시에 매우 귀찮다. <설희>는 연희와 설희의 양가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연희는 한편으론 설희의 위치에 공감하는 조력자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봤으며, 무뚝뚝하지만 그녀의 안위를 항상 걱정한다. 설희의 장애를 빌미로 그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주변의 남성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성들 간의 연대를 살펴볼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연희는 동시에 방관자의 위치에 서기도 한다. 연희는 설희와 어울리는 동네 오빠들의 행적이 의심되지만, 연희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배우 강림(연희 役)은 “연희는 설희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감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냉정하고 차가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며 “연희는 (설희를 도울 때 발생하는) 위협에 대한 공포감을 느낄 때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전하며 둘 사이의 복잡한 관계성을 드러냈다.


여성노동의 현실: <미용실>
미용실에서 2년 넘게 보조를 하는 지혜와 민경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지만, 그 둘의 관계는 어찌 된 일인지 점점 더 악화하고 만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그들은 여성노동자의 취약한 위치와 분절된 관계를 드러낸다. 수많은 여성이 미래가 기약되지 않은 일자리에서 일한다. 여성노동자 중 40%가 비정규직이며, 그 비율은 남성 노동자(25%)보다 높으면서 남녀 평균(32%)을 웃돌며 훨씬 높다. 그리고 그 일은 대개 많은 감정노동을 요구한다. 존엄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는 커녕 근로자로서 의무를 지게 된다.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픈 그녀들에게 주변 노동자는 동지가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쟁자다. 민경은 “오늘 하루 수고했어”라는 지혜의 말에 건성으로 “너도”라고 답한다. <미용실>은 노동시장 안 여성의 위치와 관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미애의 상처: <연애경험>
금속공장에서 일하는 미애는 갖은 성적 농담에 시달리고, 자신의 연애 여부를 사사건건 간섭 당한다. 인터넷에서 만난 '이누'와의 관계에서 돌아오는 것은 아픔뿐이다. <연애경험>은 여성이 연애 앞에서 겪게 되는 상처를 촘촘히 드러낸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강요하는 연애 지상주의다. 연애가 일종의 필수적 과제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연애하지 않는 사람은 무언가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오성호 감독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연애를 시작한 것이 자신에겐 일종의 콤플렉스였다"고 밝혔다. 왜 그의 복잡다단한 삶은 연애라는 단 하나의 기준에 의해 결점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한편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연애의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애틋한 감정을 중시하는 미애와는 달리 이누는 일방적인 섹스를 요구했다. 이렇듯 '연애경험'은 흔히 상상 되는 달콤한 것이라기보다는 상처로 가득한 쓰디쓴 것이다. 배우 구자은(미애)은 "관객들이 (이러한) 미애의 삶과 감정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