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여성인권영화제 '우린 흔들리지 않지'

2020년 12월 1일(화)~10일(목)

피움뷰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꿈을 꾸다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7. 9. 21. 02:23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꿈을 꾸다

<꽃피는 편지>, <페루자>, <여름의 출구>, <동백꽃이 피면>


송수민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 쪽 골대 방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뜻하는 비유로,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이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없도록 만들어진 불공평한 상태를 뜻한다.  최근 이 말은 가부장제 사회를 설명할 때 자주 쓰이곤 한다. 여성은 아무리 노력해도 남성의 자리, 즉 보편의 자리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서 공을 차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골대에 공을 넣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불공정한 세상에서도 꿈을 꾸는 여자들이 있다. 지금 소개할 네 개의 영화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 <꽃피는 편지>


영화는 탈북 이후의 삶에 주목한다. 주인공인 두 새터민 여성은 북한과는 다른 과잉경쟁사회인 남한에서의 삶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히 표현한다. 북한을 떠나는 꿈은 이뤘지만 새터민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들에 부딪히는 그들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고, 작은 성취를 하나씩 이뤄 가며 성장한다. 이 영화는 사실은 특별하지 않은 영화다. 개인의 성장기는 세상에 흔치 않은가? 그러나 이 영화는 흔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새터민, 그것도 새터민 여성의 목소리를 이토록 개인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국에 흔치 않기 때문이다.


무겁지만 경쾌하게, <페루자>

아프리카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는 에티오피아에서 페루자를 만난다.  한국인 신혼부부와 TV로 알음알음 한국어를 익힌 페루자는 금세 친구가 된다. 아프리카 몇몇 국가에서 이어지고 있는 조혼 풍습 탓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할 처지인 페루자. 한국인 부부는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페루자가 꿈을 이루는 것을 돕기로 결심한다.


이전에도 조혼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여성 폭력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많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목할만한 특징은 감독과 페루자의 관계이다. 감독은 페루자를 불쌍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으며, TV만 보고도 한국어를 익힌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의 꿈을 이루는 여정에 동참한다. 페루자 또한 감독을 멀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에게 두 사람은 좋은 친구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감독의 자리에서 페루자와 함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질 것이다. 


여름은 아직도 진행 중, <여름의 출구>


더위는 한풀 꺾인 듯하다. 이제 가을이 오려는 듯,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차 두꺼워졌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현자에게 여름은 진행 중이다. 현자는 계약직 청소노동자로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여름의 더위가 정점을 찍을 무렵 재계약 시기가 찾아온다. 그 끝까지 몰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과연 그들에게 선택권은 있는가? 극중에서 현자의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카메라는 현자의 위치를 계속 좇으며 그녀가 주인공임을 드러내지만, 그녀는 듣는 자의 위치만을 점하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Out of now'라는 것은 눈여겨 볼만 한 지점이다. 그녀는 과연 이 답답한 현재를 벗어날 수 있을까?


연민의 자격, <동백꽃이 피면>


영화는 주인공 연화가 아버지를 모시고 장례식장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를 그린다. 연화는 아버지와의 달갑지 않은 대화를 통해 이모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연민하던 이모의 삶의 실재보다 지금 그녀의 삶은 과연 행복한가? 남들 보기에 좋은 삶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그녀가 몰랐던 이모의 삶의 파편은 그녀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입으로 말해지지 않지만, 우리는 그녀의 삶이 이모의 죽음 이전과는 변할 것이라는 예감을 할 수 있다. 


보편의 꿈을 꾸는 날까지

욕망, 그리고 꿈을 꾸는 행위는 성별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남성의 경우 꿈이나 야망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경우 욕심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중년 여성의 꿈은 어떠한가? '여름의 출구'에서 재계약철이 다가오자 현자는 나이도 많으신데 뭐가 중요하냐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듣고, '동백꽃이 피면'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주인공이 무심한 남편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자 남자가 사회생활 하면 다 그런거라고 더 바라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두 남성의 발화에서 두 여성의 꿈은 온전히 지워진다. 이렇게 누군가의 꿈은 야망으로, 누군가의 꿈은 욕심으로 분류되는 것은 옳은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꿈은 욕심이 아니다. 우리의 꿈도 당신의 꿈과 같은 꿈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비록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지만 힘껏 공을 차보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