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여성인권영화제 '우린 흔들리지 않지'

2020년 12월 1일(화)~10일(목)

피움뷰어

영화가 끝나도 지속될 이야기들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7. 9. 20. 13:45

영화가 끝나도 지속될 이야기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가현이들>, <오늘의 자리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명희수

영화관 좌석에 앉아 객석의 조명이 꺼지면, 눈앞의 거대한 스크린은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를 제공한다.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이 지나고 나면, 팝콘이 흩어진 상영관을 걸어 나오며 때로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영화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마무리되었지만, 나에게는 기한 없이 견뎌야 할 지지부진한 일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비극적이지도않은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주제에 불안정하기까지 한 노동도 해야 한다.

아래의 두 영화는 바로 그 지점, 영화가 끝나도 지속되어야 하는 삶과그 지루한 삶의 근간이 되는 노동을 다룬다.


6,500원으로환산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나의 1시간을 위한 싸움, <가현이들>

2013년 여름, ‘알바들의인권을 지켜달라’,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출범했던 ‘알바노조’를 알고 있는 이라면 이 영화가 반가울 것이다. <가현이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이유로, 다른 직종의 ‘알바 인생’을살아오던 세 명의 가현이들이 알바노조 결성 초기부터 함께해 온 이야기를 그린다.

가현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밖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면서도 시급 6,500원짜리 알바를 구해야 하고, 친절하신 사장님께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들어야 하고, 3달도 안되어 바뀐 새로운 일터에 적응해야 한다. 가현이들은 생활 반경도, 꿈꾸는미래도 다르지만 어쨌든 당장 눈 앞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현이들은 싸우고, 연대하고, 목소리를 낸다. 한 시간에 몇 천원 더 달라고, 집세 내고 공과금 낸 다음에 고기 한 번 사 먹어 보자는 참 소박한 구호를 외치는데도 ‘정신머리가 썩었다’ 부터 ‘지옥불에떨어져라’까지 온갖 반대에 마주쳐야 하지만, 매 시간의 노동으로지속되는 지루한 매일이지만, 가현이들은 ‘그래도 아름다워야하기에’ 싸운다고 말한다. 어쩌면 영화가 끝난 후 우리의일상도, 싸워서 아름다움을 쟁취할 가치가 있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대체재로서의 삶, <오늘의 자리>

지원의 삶은 얼핏, 가현이들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기간제 교사로 남의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 소리를 들어가며 일하고, 몇 달 지나면 빼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사무실의 ‘내 자리’가 있는 삶이다. 심지어 ‘여자에게’ 그렇게도좋다는 교사 자리가 아닌가. 하지만 계약이 만료되는 시기가 다가오면,또 다른 ‘땜빵’자리와 임용고시, 그리고 그 외의 온갖 문제들 사이에서 지원의 삶은 지루한 ‘뺑뺑이’를 시작한다.

영화는 흔히 교사직이 ‘여자에게 좋다’고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남긴다.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사회에서 ‘여자에게 좋은 직장’은 무엇을 일컫는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신, 출산,육아, 간병 등에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는 직업은 결국 여성이기에 가부장제에서 요구받는역할을 쉽게 수행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가부장제에 복무하러 떠난 여성들의 자리를 맴도는, 수많은 ‘지원이들’을낳을 뿐이다.


‘내 자리’가 아닌 ‘오늘의 자리’를 찾아 말 그대로 끊임없이 떠돌아야 하는 생활은 지원에게자유가 아닌 답답함만을 안겨준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학교에서도 유목민으로 사는 방법은 알려준 적이없는데, 우리는 대체재로서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까?


영화가 끝나도 지속될 이야기들


<가현이들>과 <오늘의 자리>는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떠나 후련하게잊어버릴 수 있는 영화들은 아니다. <가현이들>의가현이들은 오늘도 스스로가 믿는 바를 위해 싸우고 있을 것이고, <오늘의 자리>의 지원은 무슨 수로든 삶을 꾸려 나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든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참 별 것 아닌 공통점이 관객과 등장인물들 사이에 꽤 질긴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누군가와 승산 없는 싸움을 하든, ‘비정규직’이란 이름 아래 끝도 없이 떠도는 유목민 생활을 하든 우리는 가현이와 지원이를 언제 어디에서 한 번쯤은 마주칠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