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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적 시각의 여성상을 벗어나서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7. 9. 21. 16:55

남성적 시각의 여성상을 벗어나서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


메리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11회 여성인권영화제를 통해 선보이는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에서는 그동안 남성사회에서 통용된 수동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욕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들을 그리고 있기에, ‘여자라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을 옥죌 수밖에 없던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사실은 터프할지도, <더 헌트>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폐지를 찾아다니는 할머니를 바라볼 때면, 그동안 미디어에서 접해왔던 힘이 없고 고독한 모습의 할머니를 떠올려서 종종 착잡한 기분이 들곤 하였다. 하지만 영화 <더 헌트>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희순할매와 이화동에 새로 온 부안할매가 폐지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뒤튼다. 희순할매는 새로 굴러들어온 돌멩이가 자신의 구역에서 활개를 치는 모습에 이를 악물고 화를 낸다. 또한, 폐지를 먼저 줍기 위해 골목을 전투적으로 달리는 두 할매의 경쟁은 그간 미디어에서 보아왔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노인과는 대조된다. 이처럼, 15분간 이루어지는 희순할매와 부안할매의 터프한 러닝타임은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던 편견을 인식하게 한다.


저는 특별한 아이인가요, <동경소녀>


동경소녀(Wandering Girl)는 현실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사진 속 특별한 대상을 동경하는 선아를 지칭한다. 영화 속 선아는 형남의 자동차에 놓여있는 노호혼(태양광을 받으면 흔들거리는 인형)과 같다. 좋아하는 사람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희망에 흔들거리며 춤을 추는 선아의 마음은 이내 어른들의 폭력으로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누군가는 선아가 자발적으로 사진의 모델이 되고 싶어서 하지 않았느냐며 무기력한 선아의 모습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선아가 동경의 대상을 보여주던 카메라를 두고 힘없이 떠나는 모습이 특별한 존재를 동경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까?


특별한 존재를 동경하는 욕망은 선아를 포함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기획 하에 촬영된 여성들이 원치 않는 모습으로 소비된다면, 작가가 변형한 여성상이 카메라를 통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선아가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한 책임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영화 속 남성들이 선아의 욕망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았으면 한다.


예쁘다고 하지 마세요, <노브라 해방기>

신애는 자신의 졸업 작품 <노브라 해방기>를 통해 노브라 전사를 꿈꾼다. 주위 사람들은 신애를 향해 쇼윈도에 전시된 인형처럼 예쁘고 잘 웃는, 그리고 살짝 멍청한 여자가 되라고 강요하지만, 신애는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고 목소리를 내면서 쇼윈도 인형의 역할을 거부한다. 이와는 반대로, 예빈은 신애를 향해 화를 내는 재혁에 맞장구를 치며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여성을 보여준다. 가부장제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예빈이지만, 우리는 예빈의 입장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신애와 예빈에게 예쁜 아가씨들이 뭐하다 밤늦게 이제 들어가하며 간섭하는 택시 아저씨처럼 우리의 일상이 가부장제에 잘 순응하고 있는지 숨을 쉬듯이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코르셋을 여성을 향한 프레임에 비유해서 사용하곤 한다. 코르셋은 역사와 함께 사라졌지만,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사회의 감시는 지속해 왔기에, 신애는 쇼윈도 인형으로서 존재하길 강요하는 브래지어와 같은 사회를 벗어 던지고 싶어 <노브라 해방기>를 꿈꿨을 것이다.


제일 먼저 무너진 건 내 몸이 아니라 의지였다, <여자답게 싸워라>


대회 전날에 응원보다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철없이 운동한다며 푸념을 늘어트리는 부모님, 그리고 여성 주짓수 파이터를 향한 남성들의 편견이 어린 시선들...... 주짓수 파이터 이윤영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자라서 막내 단원을 향해 세게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관장님의 특별 대우는 강한 상대와 싸우고 싶은 윤영에게는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을 넘어서 내가 여자라서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을까? 이윤영은 우리나라 유일 여성 주짓수 블랙 벨트 이희진 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른 사람과 자신의 플레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을 듣는다. 강한 상대를 기준으로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가는 것은 다른 사람의 플레이에 내가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강한 사람을 이기기에 불리할뿐더러 자신의 한계에만 집중하게 된다. 반면, ‘나의 플레이를 인정하는 것은 성()을 포함한 나의 특성을 결함이 아니라 나만의 싸움 방식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여자는 강해, 여자처럼 섬세하게 움직여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여자답게 싸워라>는 비단 이윤영 개인의 이야기 혹은 스포츠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남성의 플레이에 맞추어 강함의 기준이 정해진 경기장은 남성과는 다른 조건을 갖춘 여성을 여자라서라는 말과 함께 결함을 지닌 존재로 치부한다. 결국, 강해지고 싶어도 남성 중심의 사회가 변형한 여성의 의미 안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플레이를 인정하라는 이희진 관장의 말은 윤영과 우리가 무너진 의지를 다시 세우고 여자답게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여성의 진정한 모습, 가부장제의 수동적 여성상을 벗어나서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는 공통으로 가부장제가 여성상을 어떻게 왜곡하려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다. 특히 <노브라 해방기>에서 신애와 예빈의 주체성을 앗아가는 상징적 도구인 브래지어는 <여자답게 싸워라>의 이윤영이 남성 중심 경기장에서 여자라서 배려의 대상으로 구분되는 형태로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싸움으로 인해 육체가 무너지기 전에 자신을 결함을 지닌 여성으로 한계를 지어버리는 배경에는 가부장제가 내세운 수동적 여성상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특성을 약점이 아닌 무기로 인정한 이윤영이 싸워라 나답게, 여자답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가부장제가 정해둔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플레이를 찾는 응원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