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성별 이분법을 시원하게 박살내는 언니들

한국여성의전화 2017. 9. 22. 01:00

성별 이분법을 시원하게 박살내는 언니들

<부치:젠더 질서의 교란자> 피움톡톡


명희수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여성이 스스로를 진정 여성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이 많아. 여자란 건 무슨 의미지?

<부치:젠더 질서의 교란자>에는 4명의 부치가 등장한다. 체크셔츠와 짧은 머리 그리고 적극적인 태도로 대표되는 부치들은 젠더 질서에 교란을 준다. 남성의 특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전유하면서도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부치는 다양한 의심을 받는다. 남녀 이분법의 질서를 위반하고 도전하는 이들의 삶에 사람들은 “남성 흉내를 낸다”, “트랜스젠더가 분명하다” 등 편견 섞인 말을 던진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부치들은 그 오해와 편견들에 대답하며 또 다른 교란을 가져온다. 그 재치있는 대답은 결국 남녀 이분법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위선적인지 고발한다.

여성인권영화제 첫날의 마지막 작품은 <부치, 젠더 질서의 교란자>였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관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피움톡톡의 끝까지 함께했다.

이날 ‘피움톡톡’에는 김순남 성공회대 교수와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정이 패널로 참여했다. 정은 “당사자로서, 오늘 피움톡톡을 위해 체크무늬 셔츠도 준비했다. 관객 분들을 보니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는 말로 피움톡톡을 시작했다.


화장실만이라도 좀 편하게 가고 싶다

진행을 맡은 정은 “영화에도 나왔듯이, 많은 부치들이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에 애로사항이 있다.”며, 우선 관객들의 개인적 경험을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 관객은 “저는 워낙 편한 것을 좋아해서 머리도 항상 짧게 유지하고 옷도 크게 입고 다닌다. 원래는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얼마 전부터는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여성분들이 저를 보고 놀라더라. 이전까지는 여성성, 남성성의 이분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에 무관심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제 경험을 떠올리자 ‘그것도 차별이고 억압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연관되어,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관객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알릴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김순남 교수는 “사실 여성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사회에서 성중립화장실을 도입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선, 여성과 남성을 그저 분리하는 것이 과연 완전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질문해 봐야 한다. 누가 봐도 여성으로 패싱이 불가능한 부치들이 산부인과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밖에서 화장실을 갈 수가 없으니, 무조건 참다 보니 병이 나는 거다. 분리를 통해 안전성을 획득하려고 하면 그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공간이 전혀 안전할 수 없다. ‘안전’을, 그 안전을 정의하는 권력을 다시 상상하고 질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남성성을 체현하는 여성의 ‘불연속적인 삶’

한 관객은 “영화에서 젊은 부치와 나이든 부치의 연결, 부치로 살아가는 노하우 이야기가 나온다. 혹시 이런 부분을 공유해 주실 수 있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정은 “부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적으로 적기도 하지만 미디어에서 가시화되지 않고, 정보도 없다 보니 세대 간 연결이 어렵다. 혹시 부치들의 삶이 조명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를 함께 질문했다. 


김순남 교수는 '부치‘라는 정체성의 교차성을 이유로 꼽았다. “중산층 이상 계급의 직업을 가지려면 직장에서 특정한 젠더 표현을 요구한다. 현재 60대가 된 부치들 중 계속 기계공, 전기공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이 처음 직업을 구할 때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은 경리 등 ’여성적 외모‘, ’여성적 태도‘를 요구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 분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나이든 여성의 삶을 조망할 때 아무래도 전문직, 중산층의 모습올 보여 주려고 하다 보니 비전문직, 노동계급 여성들의 삶은 다시 한 번 소외된다. 영화에 소개된 사례의 경우에는 인종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에서는 청소년기의 여자아이가 ’남성적‘ 특성을 보일 경우에는 그 행동을 교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여성이 남성성을 전유하려고 하면 굉장이 불편해하고, 행동을 교정하려고 한다. 어떠한 기존의 질서가 계속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고 누군가의 행동을 교정해야만 온전히 유지될 수 있다면 그 질서가 누구의 권력에 기능하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며 ’남성성‘과 ’여성성‘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음을 환기했다.


내가 나로서 안전할 수 있는 공간

김순남 교수는 “결국 이 영화는 ‘나다운 것’에 대해 말한다. 각자 스스로답게 살고 싶어 하는데, 왜 특정한 외모나 특정한 행동 양식은 사회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가. 규범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 그 삶에서 얻어지는 가치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정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국에도 부치들끼리 이야기할 수 있는,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며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언니들을 한 번 이겨봐야 하지 않겠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끝나고 연락 부탁드린다.”고 피움톡톡을 마쳤다.

‘결국 이 영화는 나다운 것에 대해 말한다’는 김순남 교수의 말처럼, 사실 ‘부치’라는 단어도, ‘남성적’이라는 수식어도, 이들의 정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시도들도 결국 ‘나답게 사는 삶’이라는 키워드 안으로 융합될 수 있다고 느껴졌다. 젠더 질서를 교란하고, 사회의 공고한 성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균열을 내며, 매일 화장실 가기를 불편해하는 모든 부치들이 함께 이 영화를 보고 공감과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