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싸우고, 이기는 ‘말하기’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말하기의 힘> 피움톡톡


린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2일,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말하기의 힘> 상영 후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영화 제목과 같은 ‘말하기의 힘’을 주제로, 재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국장과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나누었다.

<말하기의 힘>은 브라질에서 진행되었던 ‘말하기의 힘(FACES OF HARASSMENT)' 캠페인을 주제로 한다. 영화는 참여자와 촬영 장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26명의 여성의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영화에 담긴 증언은 일부고, 실제로는 140명의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으며, 이후에도 더 많은 여성이 캠페인에 참여했다고 한다. 영화의 구성은 무척 단순하다. 상영 시간 내내,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그 피해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털어놓고 자리를 떠난다.



간섭 없는 ‘말하기’

한 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울거나 말을 잇지 못하는 여성들을 보며 가슴이 아프기도, 내가 겪은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공간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저런 기회가 있었다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실컷 울 수 있었을 텐데 싶어 부럽기도 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그러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도 힘들었지만, 주변의 반응 역시도 상처가 될 때가 많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뭐 그렇게 사소한 거 가지고 그래?”, “왜 그렇게 예민해?” 같은 반응들.

피해자의 목소리로

피움톡톡에서는 많은 관객이 공감되었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한 관객은 “우리가 좀 더 쉽게 우리의 경험을 말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브라질 다큐멘터리지만, 한국 여성으로서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부분이 많았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한 관객은 “중간에 경찰관이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피해를 부정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최근에 국회의원이 ‘젠더가 뭐냐’고 질문했다는, 그런 이야기도 생각나며 겹쳐 보였어요. 경찰관이나 국회의원처럼 이런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젠더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교육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매 부소장은 “이 영화의 원제가 <FACES OF HARASSMENT>인데, 여기서 ‘face'라는 단어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민낯, 실체적 진실을 고발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는 질문에는 “저희가 2003년부터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열었는데, ‘말하기’를 위해서는 들을 사람의 존재, 태도, 그리고 들을 시간과 공간의 확보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라며 “요즘 드는 생각은, 듣기 참여자의 태도에 대해서 피해자가 ‘그렇게 들으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볼 가능성도 있겠다 싶더라고요.”라고 마무리했다. 한 관객은 “말하기에 어떠한 방식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듣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재 국장은 “스스로 자유롭게 피해를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더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영상 제작 공부 중이라고 밝힌 한 관객은 “요즘 보면 영화에서 성폭력을 묘사하는 장면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렇게 피해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오매 부소장은 “영화 등에서 피해자를 묘사할 때 역시 피해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담는 게 아니라, 이야기 맥락을 잘 살리는 노력, 즉 피해자의 존엄을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라며 피해자 자신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한 관객의 “말하기가 단순히 말하기로만 끝나지 않고 사회 변화로 이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재재 국장은 “해시태그 운동들도 그렇고 ‘말하기’를 아카이빙하고, 이 영화처럼 기록해서 사회 구조까지 지적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말은 끊임없이 부정되고 의심받는다. 그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라는 요구에 많은 피해자는 침묵 속에 갇히곤 한다. 영화는 그 침묵을 깨뜨린 결과를 보여준다. 오매 부소장은 “이 영화처럼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반성폭력 운동을 하면서 피해자에게 힘이 생겼다고 느낄 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해줄 때, 작게나마 이겼을 때 등 ‘이런 운동을 하길 잘 했다’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 순간을 위해 우리가 말하고, 또 듣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재재 국장은 “더 많은 사람이 ‘말하기의 힘’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피움톡톡을 마무리했다.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말하고 또 듣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 대신 힘 있는 말하기를 택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우리에게 그러한 변화를 향한 희망을 준다. 자리에서 일어서던 관객들의 모습에도 힘이 실린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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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아흔 살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이보다는 몸과 인지능력의 어떠함으로 삶의 끝을 떠올리는 나는, 아흔 근처에도 자기 삶을 스스로 주관하며 즐겁게 사는 두 할머니에게 화이팅을 보낸다. 부럽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래의 메모는, 두 젊은 여성감독이 카메라로 포착한, 늙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말들이다. 따스하고 각별하며, 때로는 역설적이어서 맛있고, 혹은 내 마음에 걸리적거린 장면과 대사들이다.

["미용실 사장님 메이블"]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미용실 사장님 메이블>ⓒ 한국여성의전화
파마 롤에 몇 가닥 잡히지 않는 할머니 고객의 숱 없는 머리카락, 당사자의 생전 부탁으로 시신의 머리를 염색했던 이야기, 미용 작업에 집중하는 메이블의 눈과 표정과 손길, 미용 의자에 앉으며 수다를 위해 보청기를 꽂는 할머니 고객, '내게 운전은 자유다.' '걸을 때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느껴,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이 들면 이런 순간이 와요.' (낙상은 노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이제 예순인 나도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조심한다.) '손님들이 찾아오는 한 계속 할 거야.' 자기 미용실에서 25년간 직원으로 일했던 친구 할머니랑 서로 염색과 파마해주는 장면, 미용의자에서 일어설 때나 승용차를 타고 내릴 때 피차 어정쩡하게라도 서로를 부축해주는 모습. 95세 할머니의 말, '내가 그렇게 늙은 것 같진 않아.' 검버섯과 주름이 가득한 얼굴의 클로즈업. 아름답고 강하다고 서로 칭찬하는 할머니들. 생애 동안 거쳐 온 질병들. '그 시절엔 결혼하고 일(자영업)까지 하는 여자는 우리 동네에 나 하나뿐이었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자부심. 주인공이 보관한 사진들 뿐 아니라 그녀의 시대를 설명하는 기록사진과 영상자료들을 통해 개인사 뿐 아니라 사회사를 드러낸 다큐 작업.

["할머니의 운전면허 도전기"]

남들은 평생 하던 운전도 그만두는 시기에 평생 못해본 운전에 도전하겠다는 주인공. '죽어도 합격할 거야.'라며 필기시험만 석 달째, 열 번째 떨어지고 나서 자신에 대한 분노와 한탄을 섞어 '뱃속에 큰 응어리가 뭉쳐 있는 거 같아. 진절머리가 나. 어쩜 이리 멍청하담.' 불합격을 거듭할수록 (시간 경과에 따라) 점점 더 기능이 떨어지는 노인의 몸과 인지력. 운전대를 잡은 할아버지 팔의 가늘고 하얗게 쇤 털, '아흔이 아닌 여든 아홉(!)'을 강조하는 친구. 합격 후 첫 운전연습을 마치고 '운전대를 잡으니 내가 정말 자랑스럽더라. 침착하고 즐겁게 운전했어. 몇 번 실수는 했지만.' 친구들을 모아 면허증을 자랑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한 말, '다들 안경 썼수?', 마지막 장면 : 빨간 가죽잠바에 검정 가죽장갑과 썬글라스를 쓰고 빨간 색 차를 타고 힘차게 출발하는 백발의 여성노인.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할머니의 운전면허 도전기>ⓒ 한국여성의전화
한편, 나는 의심한다. 나도 남도 불편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지만,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주인공이야 제 삶을 사는 것이니 주인공에게는 딴지를 걸지 않는다. 하지만 구태여 그 주인공들을 선택한 감독의 시선과 혹은 관객의 느낌을 의심한다.

두 영화는 캐나다의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 빈곤하지 않음, 상대적으로 건강함 등의 정체성을 가진 여성노인의 아흔 근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다큐임은 인정하다. 하지만 수많은 여성노인 중 왜 그런 정체성을 선택했는지, 감독의 경험과 사유의 한계 혹은 게으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캐나다에서 그 정체성의 상대편에 있는 여성들의 아흔 살 삶이 어떨 지를 상상해본다. 불행이나 비참 등을 상상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비주류 여성노인들에게서 예상되는 고군분투를 통해 더 다양하고 첨예한 의제들을 다루는 것이 더 좋은 다큐라는 내 소신에서 하는 말이다.

명확한 논점을 위해, 내가 만난 우리 사회 아흔 근처 여성노인들에게 돌아와, 그녀들의 일상과 그녀들에 대한 주변 덜 늙은 사람들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구술생애사 작업을 위해 내가 요즘 만나고 있는 대구 달성군 우록리 산골마을의 8090세대 여성노인들 이야기다. 그녀들은 올해도 농사를 짓고 있다. 1월에 만날 때는 '이젠 허리가 곯아서 농사는 끝'이라던 양반들이, 3월에 가니 농기구들을 챙겨 밭을 예쁘게 갈고 있었고, 8월에 가니 가뭄과 폭우에도 불구하고 젊어 하던 대로 풍성하고 깔끔하게 콩과 호박과 고추와 상추와 배추 등을 키우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구릿빛 얼굴, 지팡이를 짚어도 꼬부라진 허리와 무릎, 문맹, 뒤틀린 손가락과 몸의 상처들, 거친 말투와 모난 성격에 담긴 몸 고생과 속앓이. 열 살 근처부터 시작한 농사일이니, 경력 칠팔십년의 농사 전문가들이다. 젊은 것들은 '병원비도 안 나오니 제발 그만두라'고 타박하지만, 그녀들 말로 '눈만 뜨면 해온 일이고 눈이 안 떠져야 끝나는' 일인 그야말로 일상의 노동이다. 평생의 자립이자 자긍이었고, 아흔에도 이어지는 자기 결정이며, 젊은 것들과 세상에 대한 자기 증명이다. "우리 죽으면 이런 농사는 이제 끝이야."

새벽이든 대낮이든 도시에서 재활용품을 줍는 여남 노인들의 노동과 욕망 역시 마찬가지다. 혹 다른 선택이 없는 징그러운 고생이라면 더더욱, 우리의 태도는 동정이나 자기불안이 아닌 존중이어야 한다. 이웃으로서 할 일은 구체적 말과 손길이며, 다큐 감독과 관객으로서 할 일이라면 카메라를 통한 정치적 실천이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할머니의 운전면허 도전기>ⓒ 한국여성의전화
어떤 노동과 욕망에는 박수를 치고 다른 것에는 슬픔이니 우울 따위의 이모티콘만 불이고 마는 타성에 동의할 수 없고, 그 근거를 의심한다. '기껏해야 하루 몇 천원이나 번다고?'라는 타산은,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처지와 '몇 천원'의 돈과 보람, 그리고 그 인생에 대한 멸시와 혐오다. 각자의 속으로 들어가자면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 하는데....' 라는 자기 불안이다. 

우리 사회 가난한 노인들을 보며 심난하던 마음이 캐나다의 중산층 백인 여성노인들에 관한 영화로 좀 즐거워졌거나 부러워졌다면, 그건 기껏해야 건강함과 돈맛과 아름다움에 관한 신자유주의의 맹렬한 광고에 세뇌된 소비자의 선망이며, 보여주는 대로만 느끼는 노예 관객의 게으른 사유다. 고난을 견디며 살아낸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힘이 만들어져 있다. 혹 다큐 작업이 희망을 캐어내는 거라면, 고난을 견딘 힘 말고 어디에서 희망을 깰 수 있다는 것인가.

캐나다나 한국이나 진정으로 아름답고 강한 할머니들은 많다. 나는 다른 시선의 다른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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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당신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 <꽃피는 편지>, <페루자>, <여름의 출구>, <동백꽃이 피면> -

지원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1일 목요일, CGV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진행되는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가 두 번째 날을 맞았다. 이날 ‘피움 초이스’ 부문에서 강희진 감독의 <꽃피는 편지>, 김예영·김영근 감독의 <페루자>, 안정연 감독의 <여름의 출구>, 심혜정 감독의 <동백꽃이 피면> 네 개의 작품이 연이어 상영됐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는 남은주 한겨레 기자의 진행으로, 각 작품의 감독들과 <페루자>의 주인공 ‘페루자’가 참석한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들의 ‘보내지 못한 편지’를 대신하여 - <꽃피는 편지>


<꽃피는 편지>의 주인공 ‘금’과 ‘은’은 저마다의 이유로 북한을 떠나 남한 땅을 밟았다. 북한에서 녹록하지 않았던 생활 형편을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 도전' 삼아 고향을 떠나온 ‘금’과 남한에서는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주저 없이 월남을 결정한 ‘은’. 남한의 현실 또한 팍팍하고 경쟁은 치열했지만, 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사람을 만나며 행복한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이들에게 ‘새터민’이란 이름을 붙일 때, 이들의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단순하게만 바라봤던 건 아닐까. 이 다큐멘터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꽃피는 편지>의 강희진 감독은 “‘꽃피는 편지는 북한 이탈 주민의 수기를 보고 따온 제목"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작품을 만들면서, ‘정착해야 할 사람’의 눈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포용력이 있는 공간인가를 고민하게 됐고, 실제로 꽃이 펴야 하는 건 정주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 - <페루자>

<페루자>는 신혼여행으로 세계 일주를 떠났던 부부가 에티오피아의 외딴 마을에서 소녀 ‘페루자’를 만나고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인터넷은커녕 주소도 없는 오지 여행지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익힐 정도로 총명했던 페루자. 에티오피아의 ‘조혼 풍습’과 가부장적 문화는 과거에 그녀와 그녀의 엄마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페루자가 꿈꾸는 자유로운 ‘미래’ 또한 가로막으려 한다. 하지만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공부하고 싶은 그녀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예영 감독은 작품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 “한국에 돌아온 뒤 페루자와 영상 통화하는 장면”을 꼽았다. 감독은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올 때 페루자를 두고 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페루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녀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안도감, 뿌듯한 감정을 전했다. 이 자리에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페루자도 함께 했기에 더욱 특별했다. 올해 스무 살이 되어 대학 생활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에게, 비슷한 시기에 꿈에 대해 고민하는 20대 관객들의 질문이 있었다. 페루자는 “한국에 온 것 자체로 꿈이 이뤄졌다기보단, 이분들(김예영·김영근 감독)을 만난 뒤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졌다는 점에서 이미 꿈을 찾은 것 같다"고 답했다. 많은 관객의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에 페루자는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을 했지만, 용기 있는 페루자의 모습에 그 자리의 관객들은 되려 꿈을 꿀 힘을 얻어가지 않았을까.


백번의 망설임뿐일지라도 - <여름의 출구>

여름은 덥다. 나의 ‘지금’이 너무 갑갑하고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그 더위는 더욱 괴롭기 마련이다. <여름의 출구>에서 건물 미화원 ‘현자’를 둘러싼 세상이 그렇다. 집은 수도가 끊기고, 부당 대우를 모른 척 넘어가라는 회사의 회유는 나날이 심해진다.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 세상을 떠난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회사에 맞서 같이 싸우자는 동료 ‘경화’의 목소리로 ‘현자’의 마음은 복잡하다. 세상에 처음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한다면, 누구나 ‘현자’처럼 숨 막히는 여름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 않을까.


<여름의 출구>에선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인 중년 여성의 ‘망설임'이 느껴진다. 안정연 감독은 “아무리 극영화라 해도, 급작스러운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며 인물의 심경이 천천히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작품 내내 나타나는 ‘현자’의 망설임에 대해 “막상 직접 해보면 곧잘 할 수 있음에도,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은 무언가 시도해보는 걸 두려워하도록 자라왔다"고 설명하며 영화의 주제를 풀어갔다. 어떤 선택이 ‘현자’가 겪는 지난한 여름을 끝내줄 수 있을지는 단정 짓기 어렵다. 다만 마침내 그녀가 두려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에, 그 길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 <동백꽃이 피면>

<동백꽃이 피면>의 ‘연화’는 동백꽃 하나가 떨어진 어느 날 이모의 부음을 듣게 된다. 다소 담담해 보이는 ‘연화’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이모를 두고 온갖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자 그녀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모가 어떤 삶을 살았다 한들, 그 삶에 대해 함부로 평가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을까. ‘연화’는 이모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이모와의 작은 기억, 이모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이모가 좋아했던 동백꽃을 떠올린다.


심혜정 감독은 “‘이모'는 “사랑을 따르며 살았던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작품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사랑을 막고 있는 낡은 권력과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동백꽃-‘연화’의 생리혈-이모의 빨간 잠바로 이어지는 ‘붉은 이미지’는 ‘연화’가 이모의 삶과 사랑에 교감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연화’의 아버지는 이모의 사랑을 질타하고, ‘연화’의 남편은 ‘연화’가 이모로부터 전이되는 사랑을 방해한다. 자신의 삶과 사랑에 ‘지나치게’ 솔직한 여성은 주변으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게 되며, 왜 그런 시선을 받아야만 하는가? 작품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네 편의 작품은 누군가의 지난 생애를 다시 읽게 하고,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길법한 ‘타자’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가져오기도 한다. 더불어 그녀들이 꿈꾸는 ‘미래’를 함께 응원하며 작품을 보는 ‘나’의 삶에도 용기를 불어넣는다. 위의 상영작은 9월 24일 일요일 12:00에도 만날 수 있으니 많은 관심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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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너무나 가벼워 보였지만실은 사소하지 않았던

11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작 <손의 무게> GV 현장

린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1일,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에서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작 <김장>, <손의 무게>, <미열>이 상영되었다. <김장>은 성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이 김장을 위해 할머니댁에 갔다가 다시 가해자인 이모부와 마주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손의 무게>는 고등학교 여학생의 자살을 중심으로, 데이트폭력을 현실적으로그려내는 영화이다. <미열>은 오래전 성폭력을당한 여성이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겪는 고통을 다뤘다. 이렇게 세 영화가 연달아 상영된 후, <손의 무게>의 이수아 감독과 슬아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이함께한 영화제 첫 GV가 진행되었다.

 


숨겨진 진실, 그 속의 폭력

<손의 무게>는 행복해 보였던 소미와 지훈 사이에 사실은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는 몇 가지 장면과 대사를 교차시킴으로써 데이트폭력이 쉽게 은폐되고 피해자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끝난 후 GV가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영화 구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첫 번째로 질문한 관객은왜 주인공을 청소년으로 선정했는지 물었다. 이에 감독은 “학교라는공간의 특성상, 굉장히 좁고 모든 사람이 작은 일이라도 서로 다 알게 되는 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고싶었다”고 답했다. 데이트폭력 가해자인 지훈을 왜 모범생으로설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꼭 평소에도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훈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계속 나왔는데, 감독은 “지훈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슬아 활동가는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에게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변명이 ‘사랑해서그랬다’는 건데, 지훈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서 스스로가 잘못했다고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고 덧붙였다. 감독은 “지훈은 여자친구가 죽은 걸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그것 역시도 ‘사랑의 기억’으로 포장하는 겁니다.”라고말을 이어갔다.

 

그건 로맨스가 아니야

영화에서 시사하려던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객의 질문에 감독은 “데이트 폭력이 나쁘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지만, 우리 주변에서 정말흔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해자와 주변 사람들 모두 지금 일어나는 일이 데이트폭력이란것조차 인식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데이트폭력은 여러 형태의 폭력 중에서도 사랑으로 포장되기쉬운 폭력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달콤하게 들리는 말들이 사실은 무서운 집착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고도 덧붙였다.

 

현실 속의 데이트폭력

영화가 무척 현실적이어서 공감하며 봤다는 반응도 많았다. 한 관객은 “요즘 청소년들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이 저희 때와는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속 소미의 주변 사람들이 소미의 행실을 탓하는 걸 보니 저희 때와 크게 달라진게 없는 것 같아 놀랐습니다.”라며 이러한 현실이 바뀌려면 어떤 개선 방안이 있을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감독은 “남자친구가 나에게 해코지할지 모른다, 주변에서 나를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며 “친한 가족이나 친구조차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말을 연애하면서생기는 푸념이나 행실을 잘못해서 일어난 일로 치부하는데, 이런 분위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더 두려워하는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슬아 활동가는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가 정착한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더 개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마무리했다.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는 데이트폭력을 ‘사랑하니까 연인 사이에서 흔히 있을 수있는 일’로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시각으로 인해, 분명히폭력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폭력을 폭력이라고 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아주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도 많은 데이트폭력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딘가에 소미와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소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관객들은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수아 감독과 함께 데이트폭력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사회적 인식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 내 주변에도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묻어 버린 폭력이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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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성별 이분법을 시원하게 박살내는 언니들

<부치:젠더 질서의 교란자> 피움톡톡


명희수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여성이 스스로를 진정 여성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이 많아. 여자란 건 무슨 의미지?

<부치:젠더 질서의 교란자>에는 4명의 부치가 등장한다. 체크셔츠와 짧은 머리 그리고 적극적인 태도로 대표되는 부치들은 젠더 질서에 교란을 준다. 남성의 특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전유하면서도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부치는 다양한 의심을 받는다. 남녀 이분법의 질서를 위반하고 도전하는 이들의 삶에 사람들은 “남성 흉내를 낸다”, “트랜스젠더가 분명하다” 등 편견 섞인 말을 던진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부치들은 그 오해와 편견들에 대답하며 또 다른 교란을 가져온다. 그 재치있는 대답은 결국 남녀 이분법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위선적인지 고발한다.

여성인권영화제 첫날의 마지막 작품은 <부치, 젠더 질서의 교란자>였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관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피움톡톡의 끝까지 함께했다.

이날 ‘피움톡톡’에는 김순남 성공회대 교수와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정이 패널로 참여했다. 정은 “당사자로서, 오늘 피움톡톡을 위해 체크무늬 셔츠도 준비했다. 관객 분들을 보니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는 말로 피움톡톡을 시작했다.


화장실만이라도 좀 편하게 가고 싶다

진행을 맡은 정은 “영화에도 나왔듯이, 많은 부치들이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에 애로사항이 있다.”며, 우선 관객들의 개인적 경험을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 관객은 “저는 워낙 편한 것을 좋아해서 머리도 항상 짧게 유지하고 옷도 크게 입고 다닌다. 원래는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얼마 전부터는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여성분들이 저를 보고 놀라더라. 이전까지는 여성성, 남성성의 이분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에 무관심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제 경험을 떠올리자 ‘그것도 차별이고 억압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연관되어,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관객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알릴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김순남 교수는 “사실 여성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사회에서 성중립화장실을 도입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선, 여성과 남성을 그저 분리하는 것이 과연 완전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질문해 봐야 한다. 누가 봐도 여성으로 패싱이 불가능한 부치들이 산부인과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밖에서 화장실을 갈 수가 없으니, 무조건 참다 보니 병이 나는 거다. 분리를 통해 안전성을 획득하려고 하면 그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공간이 전혀 안전할 수 없다. ‘안전’을, 그 안전을 정의하는 권력을 다시 상상하고 질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남성성을 체현하는 여성의 ‘불연속적인 삶’

한 관객은 “영화에서 젊은 부치와 나이든 부치의 연결, 부치로 살아가는 노하우 이야기가 나온다. 혹시 이런 부분을 공유해 주실 수 있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정은 “부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적으로 적기도 하지만 미디어에서 가시화되지 않고, 정보도 없다 보니 세대 간 연결이 어렵다. 혹시 부치들의 삶이 조명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를 함께 질문했다. 


김순남 교수는 '부치‘라는 정체성의 교차성을 이유로 꼽았다. “중산층 이상 계급의 직업을 가지려면 직장에서 특정한 젠더 표현을 요구한다. 현재 60대가 된 부치들 중 계속 기계공, 전기공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이 처음 직업을 구할 때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은 경리 등 ’여성적 외모‘, ’여성적 태도‘를 요구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 분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나이든 여성의 삶을 조망할 때 아무래도 전문직, 중산층의 모습올 보여 주려고 하다 보니 비전문직, 노동계급 여성들의 삶은 다시 한 번 소외된다. 영화에 소개된 사례의 경우에는 인종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에서는 청소년기의 여자아이가 ’남성적‘ 특성을 보일 경우에는 그 행동을 교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여성이 남성성을 전유하려고 하면 굉장이 불편해하고, 행동을 교정하려고 한다. 어떠한 기존의 질서가 계속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고 누군가의 행동을 교정해야만 온전히 유지될 수 있다면 그 질서가 누구의 권력에 기능하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며 ’남성성‘과 ’여성성‘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음을 환기했다.


내가 나로서 안전할 수 있는 공간

김순남 교수는 “결국 이 영화는 ‘나다운 것’에 대해 말한다. 각자 스스로답게 살고 싶어 하는데, 왜 특정한 외모나 특정한 행동 양식은 사회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가. 규범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 그 삶에서 얻어지는 가치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정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국에도 부치들끼리 이야기할 수 있는,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며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언니들을 한 번 이겨봐야 하지 않겠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끝나고 연락 부탁드린다.”고 피움톡톡을 마쳤다.

‘결국 이 영화는 나다운 것에 대해 말한다’는 김순남 교수의 말처럼, 사실 ‘부치’라는 단어도, ‘남성적’이라는 수식어도, 이들의 정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시도들도 결국 ‘나답게 사는 삶’이라는 키워드 안으로 융합될 수 있다고 느껴졌다. 젠더 질서를 교란하고, 사회의 공고한 성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균열을 내며, 매일 화장실 가기를 불편해하는 모든 부치들이 함께 이 영화를 보고 공감과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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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모든 가현이들과 지원이들에게 내미는 손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가현이들>, <오늘의 자리> 감독과의 대화 현장


명희수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여성인권영화제의 첫째 날,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처한 여성들의 현실을 그린 두 편의 영화가 함께 상영되었다. <오늘의 자리>는 기간제 교사로, 휴가를 얻어 떠난 이들의 자리를 때우며 유목민같은 비정규직 생활을 하는 지원의 삶을 다룬다. ‘내 자리’가 아닌 ‘오늘의 자리’를 찾아 떠도는 지원에게, 지원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역시나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현이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이유로, 다른 직종의 ‘알바 인생’을 살아오던 세 명의 가현이들이 ‘알바노조’ 결성 초기부터 함께해 온 이야기를 그린다. 세 명의 가현이들은 ‘알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처음 만났고, 알바노조 활동을 시작으로 각자의 미래를 꾸며 나간다. 이 날 감독과의 대화에는 감독 가현이, 윤가현 감독이 함께했다.


카메라 뒤의 이야기

윤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나를 비롯해 대학을 안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청년들을 많이 만났다. 이 영화가 그런 친구들에게 스스로 하고 있는 노동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감독과의 대화를 열었다. 이어, ‘영화에서 더 하지 못해 아쉬운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 있는가’라는 관객의 질문에, 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청년 이외의 연령층, 그리고 여성에게 더욱 억압적인 노동환경을 이야기했다. “우선, 불안정한 일자리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다. 저나, 다른 가현이의 어머니들도 불안정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사신 분들이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늘 존재했고 그곳에는 항상 사회적 약자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제가 여성이면서 알바노동자이다 보니 일하는 곳에서 요구 받는 것이 더 많다. 이사를 하려고 짐 정리를 하는데, 머리 망 4개와 단화 4개를 발견했다. 직종마다 요구하는 차림이 다르다 보니까 갈색 단화, 검은색 단화, 굽 있는 단화, 없는 단화, 리본이 있는 단화, 없는 단화를 전부 사비로 구입해야지만 알바를 할 조건을 갖출 수 있는 거다. 이렇게 불안정한 일자리에서도 여성은 더 많은 것을 요구받는 현실을 담고 싶었다.”고 감독 스스로의 경험을 공유했다.

관객들 역시 이에 공감했다. 한 관객은 “저는 눈이 나빠 안경을 쓰고, 화장을 잘 안 하는데 처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렌즈를 끼고 화장을 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콘텍트렌즈와 화장품을 구입했던 기억이 났다”고 말했다.


‘공감’이함께 나아가는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윤가현 감독은 감독과의 대화를 마치며,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알바가 뭘까’를 많이 고민했다. 감독과의 대화를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알바가 아니라고 말하며 알바를 타자화하더라. ‘나는 장시간 노동자니까 알바가 아니야’, ‘나는 계약 기간이 기니까 알바가 아니야’. 하지만 불안정한 노동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자영업자도, 대기업정규직도 ‘안정적 일자리’라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불안정한 일자리와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텐데, 어떻게 하면 이 분들을 현장에서 돕고, 법을 통해 보호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우리의 매일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노동, 그렇기에 이 두 영화는 우리의 일상에 더욱 직접적으로 말을 건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 가현이였던 적이 있고, 지원이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윤가현 감독의 말처럼, 두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느낀 공감이 답답함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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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남성적 시각의 여성상을 벗어나서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


메리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11회 여성인권영화제를 통해 선보이는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에서는 그동안 남성사회에서 통용된 수동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욕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들을 그리고 있기에, ‘여자라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을 옥죌 수밖에 없던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사실은 터프할지도, <더 헌트>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폐지를 찾아다니는 할머니를 바라볼 때면, 그동안 미디어에서 접해왔던 힘이 없고 고독한 모습의 할머니를 떠올려서 종종 착잡한 기분이 들곤 하였다. 하지만 영화 <더 헌트>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희순할매와 이화동에 새로 온 부안할매가 폐지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뒤튼다. 희순할매는 새로 굴러들어온 돌멩이가 자신의 구역에서 활개를 치는 모습에 이를 악물고 화를 낸다. 또한, 폐지를 먼저 줍기 위해 골목을 전투적으로 달리는 두 할매의 경쟁은 그간 미디어에서 보아왔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노인과는 대조된다. 이처럼, 15분간 이루어지는 희순할매와 부안할매의 터프한 러닝타임은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던 편견을 인식하게 한다.


저는 특별한 아이인가요, <동경소녀>


동경소녀(Wandering Girl)는 현실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사진 속 특별한 대상을 동경하는 선아를 지칭한다. 영화 속 선아는 형남의 자동차에 놓여있는 노호혼(태양광을 받으면 흔들거리는 인형)과 같다. 좋아하는 사람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희망에 흔들거리며 춤을 추는 선아의 마음은 이내 어른들의 폭력으로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누군가는 선아가 자발적으로 사진의 모델이 되고 싶어서 하지 않았느냐며 무기력한 선아의 모습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선아가 동경의 대상을 보여주던 카메라를 두고 힘없이 떠나는 모습이 특별한 존재를 동경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까?


특별한 존재를 동경하는 욕망은 선아를 포함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기획 하에 촬영된 여성들이 원치 않는 모습으로 소비된다면, 작가가 변형한 여성상이 카메라를 통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선아가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한 책임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영화 속 남성들이 선아의 욕망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았으면 한다.


예쁘다고 하지 마세요, <노브라 해방기>

신애는 자신의 졸업 작품 <노브라 해방기>를 통해 노브라 전사를 꿈꾼다. 주위 사람들은 신애를 향해 쇼윈도에 전시된 인형처럼 예쁘고 잘 웃는, 그리고 살짝 멍청한 여자가 되라고 강요하지만, 신애는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고 목소리를 내면서 쇼윈도 인형의 역할을 거부한다. 이와는 반대로, 예빈은 신애를 향해 화를 내는 재혁에 맞장구를 치며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여성을 보여준다. 가부장제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예빈이지만, 우리는 예빈의 입장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신애와 예빈에게 예쁜 아가씨들이 뭐하다 밤늦게 이제 들어가하며 간섭하는 택시 아저씨처럼 우리의 일상이 가부장제에 잘 순응하고 있는지 숨을 쉬듯이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코르셋을 여성을 향한 프레임에 비유해서 사용하곤 한다. 코르셋은 역사와 함께 사라졌지만,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사회의 감시는 지속해 왔기에, 신애는 쇼윈도 인형으로서 존재하길 강요하는 브래지어와 같은 사회를 벗어 던지고 싶어 <노브라 해방기>를 꿈꿨을 것이다.


제일 먼저 무너진 건 내 몸이 아니라 의지였다, <여자답게 싸워라>


대회 전날에 응원보다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철없이 운동한다며 푸념을 늘어트리는 부모님, 그리고 여성 주짓수 파이터를 향한 남성들의 편견이 어린 시선들...... 주짓수 파이터 이윤영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자라서 막내 단원을 향해 세게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관장님의 특별 대우는 강한 상대와 싸우고 싶은 윤영에게는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을 넘어서 내가 여자라서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을까? 이윤영은 우리나라 유일 여성 주짓수 블랙 벨트 이희진 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른 사람과 자신의 플레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을 듣는다. 강한 상대를 기준으로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가는 것은 다른 사람의 플레이에 내가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강한 사람을 이기기에 불리할뿐더러 자신의 한계에만 집중하게 된다. 반면, ‘나의 플레이를 인정하는 것은 성()을 포함한 나의 특성을 결함이 아니라 나만의 싸움 방식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여자는 강해, 여자처럼 섬세하게 움직여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여자답게 싸워라>는 비단 이윤영 개인의 이야기 혹은 스포츠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남성의 플레이에 맞추어 강함의 기준이 정해진 경기장은 남성과는 다른 조건을 갖춘 여성을 여자라서라는 말과 함께 결함을 지닌 존재로 치부한다. 결국, 강해지고 싶어도 남성 중심의 사회가 변형한 여성의 의미 안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플레이를 인정하라는 이희진 관장의 말은 윤영과 우리가 무너진 의지를 다시 세우고 여자답게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여성의 진정한 모습, 가부장제의 수동적 여성상을 벗어나서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는 공통으로 가부장제가 여성상을 어떻게 왜곡하려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다. 특히 <노브라 해방기>에서 신애와 예빈의 주체성을 앗아가는 상징적 도구인 브래지어는 <여자답게 싸워라>의 이윤영이 남성 중심 경기장에서 여자라서 배려의 대상으로 구분되는 형태로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싸움으로 인해 육체가 무너지기 전에 자신을 결함을 지닌 여성으로 한계를 지어버리는 배경에는 가부장제가 내세운 수동적 여성상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특성을 약점이 아닌 무기로 인정한 이윤영이 싸워라 나답게, 여자답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가부장제가 정해둔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플레이를 찾는 응원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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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꿈을 꾸다

<꽃피는 편지>, <페루자>, <여름의 출구>, <동백꽃이 피면>


송수민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 쪽 골대 방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뜻하는 비유로,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이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없도록 만들어진 불공평한 상태를 뜻한다.  최근 이 말은 가부장제 사회를 설명할 때 자주 쓰이곤 한다. 여성은 아무리 노력해도 남성의 자리, 즉 보편의 자리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서 공을 차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골대에 공을 넣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불공정한 세상에서도 꿈을 꾸는 여자들이 있다. 지금 소개할 네 개의 영화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 <꽃피는 편지>


영화는 탈북 이후의 삶에 주목한다. 주인공인 두 새터민 여성은 북한과는 다른 과잉경쟁사회인 남한에서의 삶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히 표현한다. 북한을 떠나는 꿈은 이뤘지만 새터민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들에 부딪히는 그들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고, 작은 성취를 하나씩 이뤄 가며 성장한다. 이 영화는 사실은 특별하지 않은 영화다. 개인의 성장기는 세상에 흔치 않은가? 그러나 이 영화는 흔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새터민, 그것도 새터민 여성의 목소리를 이토록 개인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국에 흔치 않기 때문이다.


무겁지만 경쾌하게, <페루자>

아프리카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는 에티오피아에서 페루자를 만난다.  한국인 신혼부부와 TV로 알음알음 한국어를 익힌 페루자는 금세 친구가 된다. 아프리카 몇몇 국가에서 이어지고 있는 조혼 풍습 탓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할 처지인 페루자. 한국인 부부는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페루자가 꿈을 이루는 것을 돕기로 결심한다.


이전에도 조혼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여성 폭력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많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목할만한 특징은 감독과 페루자의 관계이다. 감독은 페루자를 불쌍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으며, TV만 보고도 한국어를 익힌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의 꿈을 이루는 여정에 동참한다. 페루자 또한 감독을 멀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에게 두 사람은 좋은 친구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감독의 자리에서 페루자와 함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질 것이다. 


여름은 아직도 진행 중, <여름의 출구>


더위는 한풀 꺾인 듯하다. 이제 가을이 오려는 듯,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차 두꺼워졌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현자에게 여름은 진행 중이다. 현자는 계약직 청소노동자로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여름의 더위가 정점을 찍을 무렵 재계약 시기가 찾아온다. 그 끝까지 몰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과연 그들에게 선택권은 있는가? 극중에서 현자의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카메라는 현자의 위치를 계속 좇으며 그녀가 주인공임을 드러내지만, 그녀는 듣는 자의 위치만을 점하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Out of now'라는 것은 눈여겨 볼만 한 지점이다. 그녀는 과연 이 답답한 현재를 벗어날 수 있을까?


연민의 자격, <동백꽃이 피면>


영화는 주인공 연화가 아버지를 모시고 장례식장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를 그린다. 연화는 아버지와의 달갑지 않은 대화를 통해 이모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연민하던 이모의 삶의 실재보다 지금 그녀의 삶은 과연 행복한가? 남들 보기에 좋은 삶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그녀가 몰랐던 이모의 삶의 파편은 그녀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입으로 말해지지 않지만, 우리는 그녀의 삶이 이모의 죽음 이전과는 변할 것이라는 예감을 할 수 있다. 


보편의 꿈을 꾸는 날까지

욕망, 그리고 꿈을 꾸는 행위는 성별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남성의 경우 꿈이나 야망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경우 욕심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중년 여성의 꿈은 어떠한가? '여름의 출구'에서 재계약철이 다가오자 현자는 나이도 많으신데 뭐가 중요하냐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듣고, '동백꽃이 피면'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주인공이 무심한 남편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자 남자가 사회생활 하면 다 그런거라고 더 바라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두 남성의 발화에서 두 여성의 꿈은 온전히 지워진다. 이렇게 누군가의 꿈은 야망으로, 누군가의 꿈은 욕심으로 분류되는 것은 옳은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꿈은 욕심이 아니다. 우리의 꿈도 당신의 꿈과 같은 꿈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비록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지만 힘껏 공을 차보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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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영화가 끝나도 지속될 이야기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가현이들>, <오늘의 자리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명희수

영화관 좌석에 앉아 객석의 조명이 꺼지면, 눈앞의 거대한 스크린은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를 제공한다.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이 지나고 나면, 팝콘이 흩어진 상영관을 걸어 나오며 때로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영화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마무리되었지만, 나에게는 기한 없이 견뎌야 할 지지부진한 일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비극적이지도않은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주제에 불안정하기까지 한 노동도 해야 한다.

아래의 두 영화는 바로 그 지점, 영화가 끝나도 지속되어야 하는 삶과그 지루한 삶의 근간이 되는 노동을 다룬다.


6,500원으로환산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나의 1시간을 위한 싸움, <가현이들>

2013년 여름, ‘알바들의인권을 지켜달라’,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출범했던 ‘알바노조’를 알고 있는 이라면 이 영화가 반가울 것이다. <가현이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이유로, 다른 직종의 ‘알바 인생’을살아오던 세 명의 가현이들이 알바노조 결성 초기부터 함께해 온 이야기를 그린다.

가현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밖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면서도 시급 6,500원짜리 알바를 구해야 하고, 친절하신 사장님께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들어야 하고, 3달도 안되어 바뀐 새로운 일터에 적응해야 한다. 가현이들은 생활 반경도, 꿈꾸는미래도 다르지만 어쨌든 당장 눈 앞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현이들은 싸우고, 연대하고, 목소리를 낸다. 한 시간에 몇 천원 더 달라고, 집세 내고 공과금 낸 다음에 고기 한 번 사 먹어 보자는 참 소박한 구호를 외치는데도 ‘정신머리가 썩었다’ 부터 ‘지옥불에떨어져라’까지 온갖 반대에 마주쳐야 하지만, 매 시간의 노동으로지속되는 지루한 매일이지만, 가현이들은 ‘그래도 아름다워야하기에’ 싸운다고 말한다. 어쩌면 영화가 끝난 후 우리의일상도, 싸워서 아름다움을 쟁취할 가치가 있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대체재로서의 삶, <오늘의 자리>

지원의 삶은 얼핏, 가현이들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기간제 교사로 남의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 소리를 들어가며 일하고, 몇 달 지나면 빼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사무실의 ‘내 자리’가 있는 삶이다. 심지어 ‘여자에게’ 그렇게도좋다는 교사 자리가 아닌가. 하지만 계약이 만료되는 시기가 다가오면,또 다른 ‘땜빵’자리와 임용고시, 그리고 그 외의 온갖 문제들 사이에서 지원의 삶은 지루한 ‘뺑뺑이’를 시작한다.

영화는 흔히 교사직이 ‘여자에게 좋다’고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남긴다.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사회에서 ‘여자에게 좋은 직장’은 무엇을 일컫는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신, 출산,육아, 간병 등에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는 직업은 결국 여성이기에 가부장제에서 요구받는역할을 쉽게 수행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가부장제에 복무하러 떠난 여성들의 자리를 맴도는, 수많은 ‘지원이들’을낳을 뿐이다.


‘내 자리’가 아닌 ‘오늘의 자리’를 찾아 말 그대로 끊임없이 떠돌아야 하는 생활은 지원에게자유가 아닌 답답함만을 안겨준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학교에서도 유목민으로 사는 방법은 알려준 적이없는데, 우리는 대체재로서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까?


영화가 끝나도 지속될 이야기들


<가현이들>과 <오늘의 자리>는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떠나 후련하게잊어버릴 수 있는 영화들은 아니다. <가현이들>의가현이들은 오늘도 스스로가 믿는 바를 위해 싸우고 있을 것이고, <오늘의 자리>의 지원은 무슨 수로든 삶을 꾸려 나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든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참 별 것 아닌 공통점이 관객과 등장인물들 사이에 꽤 질긴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누군가와 승산 없는 싸움을 하든, ‘비정규직’이란 이름 아래 끝도 없이 떠도는 유목민 생활을 하든 우리는 가현이와 지원이를 언제 어디에서 한 번쯤은 마주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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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침묵을 깨고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그들이 여기에 있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시티 오브 조이> -


김단비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총총 가벼운 발걸음 끝에 저녁을 먹으러 가는 여성들. 몸짓은 제각각이지만 춤을 추며 기쁨과 행복에 젖어 있는 여성들. 색색의 색연필로 자신의 ‘보지’를 그려내고 까르르 웃어대는 여성들. 이곳은 콩고의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쉼터이자, 그들을 리더로 양성하는 기관,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이다.


‘피해자의 틀’을 깨는 피해생존자

  전쟁 성폭력을 겪은 피해생존자의 모습.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가. 당신과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모습은 몹시 전형적이고 제한적이다.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묘사되곤 하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제한적인 통념은, 성폭력 피해생존자가 피해를 씻어내고 극복하기 어렵게 한다. ‘피해자는 아프다’라는 통념은, ‘피해자는 아파야 한다’는 당위로 확장되어, 피해자의 모습을 가둬버린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적극적이고 강한 피해자보다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피해자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된 사회 안에서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다양한 색깔의 피해자생존자들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각자 다른 고유한 색깔을 지닌 여성들의 모습이 겹치고 겹쳐, 웃음과 치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피해자생존자들이 정말 다양하구나, 맞다 모든 사람은 다 다양하지’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다. 전쟁 성폭력이라는 피해는 그들 삶의 일부일 뿐, 결코 삶 자체를 규정지을 수 없다는 사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당연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왔던 그 진실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상처는 나누는 만큼 줄어든다. 치유로 나아가는 공감의 힘


  물론 '피해자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처는 상처 자체로 아픈 것이며, 그 상처를 충분히 아파하고, ‘아픈 나’를 애도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로 나아갈 수 있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그 과정을 담백하게 따라간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에서 혼자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가만히 서로에게 귀 기울여주고 그 피해의 고통에 말없이 함께 아파한다. 토해내듯이 자신의 고통을 말하는 사람, 자신의 아픈 감정을 직면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말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말하기를 모두 ‘함께’ 들어내고 ‘같이’ 아파해낸다. 이때 나만 경험했던 아픔은 모두가 경험했던 아픔으로 확장된다. 그렇게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의 수료자 제인은 말한다.

이 곳에 오기 전, 나는 이 고통을 겪은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깨달았어요. 난 혼자가 아니란 걸.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의 프로그램인 ‘자신의 마음 표현하기’ 시간. 누군가는 어린 딸을 보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생각나 미워했지만, 이젠 딸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에서 치유와 공감을 경험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정서적으로 성장한 만큼, 타인을 돕고 사랑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사람을 구함으로써 하나의 세상을 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침묵으로 구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의 여성들이 침묵해야 했던 피해를 목격하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부수는 순간, 침묵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자기 자신으로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얼마나 따뜻한지도 느꼈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전쟁 성폭력’에 관한 다큐멘터리지만, 아프고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함께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1000명의 여성이 수료하고 1000명의 리더를 얻은 공간, 영화<시티 오브 조이>를 당신과 함께 보고 싶다. 그럼으로써 침묵을 깨고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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