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까지

- 픽션 <열정의 끝>, 애니메이션 <집에 오는 길> -


류희정


 <열정의 끝>, 10대의 자신의 세계. 그녀의 사소하지 않은 열정을 만나다.



 주인공 미란은 체육대회 단체 줄넘기를 연습하다가, 자꾸만 줄에 걸린다. 연습을 감독하던 담임선생님은 더 잘하는 반 친구와 그녀의 자리를 바꾸기를 원한다. 순식간에 그녀의 자리를 뺏겨버린 미란은 더 잘할 거다, 연습해오겠다고 말한다. 학교가 끝나고 미란은 매일같이 줄넘기 연습을 한다. 이전보다 그녀의 실력은 빼어나게 늘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단체 줄넘기의 걸림돌이었다. 담임선생님은 그녀의 종목을 바꾸라고 권유하다, 이내 화를 낸다. 선생님의 눈에 미란의 줄넘기는 ‘고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녀 탓에 반 친구들은 좋은 줄넘기 성적을 거두지 못할 거고, 이는 곧 체육대회 전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줄넘기는 과연 ‘고집’이었을까. 미란의 세계에서 줄넘기는 분명 ‘열정’의 조각이었을 것이다. 10대 소녀인 미란의 세계는 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학교,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 학교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욕심들. 학교가 전부인 10대 소녀에게 그것은 동시에 그녀의 세계가 된다. 그 속에서 단순한 ‘줄넘기’라는 행위는 학교 내에서-그 세계의 중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가 된다. 그녀가 매일 밤 줄을 넘을 때, 좌절했던 그 날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한 걸음씩 나아간다. 비록 타인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한 ‘넘기’일지라도, 그녀 자신에게는 스스로를 넘어야만 하는 가장 열정적인 행위-‘열정의 끝’이었던 것이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없는 단체 줄넘기와 체육대회가 시작하면서, 줄넘기에 대한 열정은 ‘끝’이 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한없이 줄을 넘으려고 했던 미란이라면, 또 다시 그 좌절의 벽을 넘어서는 열정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그것이 소녀가 소녀 자신의 세계에서 나아갔던 법이기 때문이다.


 <집에 오는 길>, 20대 그들의 세계. 일상적인 것들에 치여 사는 그녀의 세상을 사랑하다. 



 서울에는 수많은 단칸방이 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 단칸방에서 청춘을 시작했던 세대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있다. 대학은 졸업했고, 새로운 일자리도 구했지만 여전히 단칸방 인생이다. 이렇게 사는 청춘이 이 집, 저 집 서울의 야경을 채우는 불빛만큼이나 가득하다. 

 20대 주인공의 삶은 그 청춘의 삶 중에 하나의 모습이다. 팍팍하다. 작은 방에서 시작해서, 더운 날 볕 아래서 인형탈을 쓰고 홍보 아르바이트를 한다. 출근길에는 그런 일상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닥친다. 타인의 시선에서 그녀의 삶은 어쩌면 초라할지도 모른다.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했다는 그녀는 취업난 속에서 마케팅이라고 말하는 홍보 아르바이트를 한다. 꿈은 한 뼘 접혔고, 그럼에도 아등바등 살아가야만 하는 서울이라는 땅 위에서 그녀는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영화를 보고서 10대에 꿈꾸었던 20대의 모습은 어땠을까. 주인공에게도, 내게도 묻고 싶어졌다. 아마 지금의 모습보다는 더 위풍당당하고 화려한 삶이었을 것 같다. 10대 시절 책상 앞에서 꿈꾸던 것들을 직접 이루어내고, 주목받는 멋진 어른. 그러나 잘 알고 있다. 내 삶이 그렇지 않은 것을.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조금씩 생활비를 쓰고 나면, 모아둘 푼돈 하나 없이 한 달 한 달을 지내 가는 삶, 취업 준비에 막막해서 미래를 그려보기 힘든 삶. 

 그러나 주인공은 그 날 일상을 마치고서, 들어선 집에서 말한다. “그래도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해.” 타인의 눈에는 빛나지 않는 것들만 가득한, 치열한 우리네 20대의 삶을 그녀는 포근히 쓰다듬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물을 벗은 그녀의 말이었다. 출근길 사람 가득한 서울의 지하철도, 더운 날 고생에 살이 빠져서 일석이조가 되었다는 그녀의 일자리도, 단칸방 작은 그녀의 공간도 사랑한다고. 

 처음 20대의 삶을 만났을 때, 그녀도 그 때의 나만큼이나-혹은 그보다 더 크게 좌절했으리란 걸 짐작할 수 있다. 10대의 우리들이 꿈꾸어왔던 세상과 실제 세상은 너무도 달랐으니까. 하지만 그 꿈의 한 꺼풀을 벗겨내고 만난 삶과 보금자리는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만큼이나 소중하고, 아리도록 아름답다. 

 그것은 그녀의 삶이고, 동시에 우리네 20대의 삶이다. 10대의 당신이 끝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데에 열정을 쏟았다면, 한없이 달려온 20대의 당신에게는 따뜻한 위로 한마디를 던져도 좋을 것 같다. 이젠 자신의 세계를 충분히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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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애증의 모녀관계하지만 누구보다 사랑해

결혼 전날엄마와 딸의 하룻밤 <결혼전야> -

                                                                                                   이진주



나 시집가는거 아니야결혼하는 거야!


 결혼 전날 밤엄마는 딸이 가난한 연극배우에게 시집을 간다며 걱정을 늘어놓는다딸도 돈이 안 되는 연극을 하니남편은 제대로 된 직장이 있어야 한다며 잘나가는 과거 애인의 안부까지 물으며 다소 아쉬워한다하지만 딸은 서로 좋아하는 일 그만둘 거면 그깟 결혼을 왜하냐며 소리친다사실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렇지 못한 부부특히 여성들이 많다결혼 후혹은 아이가 생기면 원하든 원치 않든 직업을 버리거나 이직하는 여성이 대부분일 것이다물론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지만 정말 본인을 위한 결정인지는 의문이다.또 딸은 시집가는거 아니야결혼하는 거야!”라고 엄마의 말을 정정하는데두 단어가 의미하는 차이점은 아주 극명하다. ‘시집은 여자가 남편의 집으로 출가한다는 여성차별적 의미로엄마의 품을 완전히 벗어나는 뉘앙스이다반면에 결혼은 남녀가 동등하게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엄마의 딸로 남으면서 단지 독립한다는 뉘앙스이다딸은 엄마의 품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고 안심시켜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최근에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아직도 가부장적인 사회인식으로 인해 결혼을 시집으로 여기는 어른들이 많다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여성들은 직장에서도 유리천장으로 고통 받는다우리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어 여성인권을 주장하고 고백한다면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아실현을 구애받는 일은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앞으로 사회적 시선을 의식한 시집이 아닌 본인을 위한 행복한 결혼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엄마를 홀로 두고 떠나는 마음

 엄마는 딸에게 닭을 먹이면서 닭이 먹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고 신신당부를 한다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엄마와 부담스러워 하는 딸은 계속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엄마는 다시는 안 올 것처럼 짐을 싸는 딸이 조금은 섭섭하지만 최대한 티를 안내려고 담담한 척을 한다딸도 그 마음을 알기에 본인도 감정을 숨긴다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음과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복잡한 마음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떠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섭섭하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한없이 죄송스럽다한편으로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당연한 존재엄마이기 때문에 내가 떠나도 잘 지내실거라는 합리화도 있을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비단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저마다의 이유로 집을 떠나는 남성의 경우에도 애틋한 마음을 공감하며 관람 할 수 있을 것이다개인적으로는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가 생각나서 자꾸 눈물이 났다외할머니가 비교적 일찍 돌아가셨는데엄마가 결혼할 때는 영화에서처럼 든든한 지원군 없이 외롭게 준비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가장 밉고도가장 사랑하는 존재

 딸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답답할 정도로 지고지순하고 참고만 살아가는 엄마를 닮지 않으려고 결심했지만어느새 엄마와 너무나 닮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이렇듯 모녀관계는 서로가 닮았기에 더 슬픈 관계이다극중에서도 엄마는 혹시나 사위가 바람기 많았던 남편처럼 될까봐 서방에게는 닭 날개를 주지 말라고 당부하고이혼한 언니가 줬다는 한복을 뺏으며 부정 탈 것을 염려한다같은 여자로써 엄마는 딸이 과거에 본인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야단치지만딸에게는 잔소리로만 들린다서로의 어긋난 애정방향 때문에 가장 밉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동시에 가장 사랑하기도 한다가끔은 우직한 엄마의 존재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내가 쓰러질 때마다 잡아주는건 그 버팀목이라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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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성폭력의 사회적 배경과 개선의 방향

-<7년간의 투쟁>-

스티어 프레드릭

 



범죄가 한 사건일 때는 개인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반복적으로, 한 단체 중심적으로 향하거나, 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시회적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학대를 당하는 아이를 돕고자 호주에서 온 봉사활동가인 샬롯 켐벨 스테판 (Charlotte Campbell Stephen)이  케냐에 도착한지 2개월만에[각주:1] 당한 집단 강간은 하나의 단일 범죄였다. 그러나 강간, 아동 성 학대와 기본적 생활의 필수품을 얻기 위한 생존 섹스 (survival sex)를 포함한 케냐에서의 수많은 성폭행 사건들을 모두[각주:2]살펴볼 때,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재판 때 한 피고 측 변호사가 증거물을 숨기거나 바꾸는 행위는 법정 모독이자 사법 방해죄였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면허를 잃거나 재판에 제외조차 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포기하도록 지속적으로 재판을 방해할 수 있었다는 체계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는 샬롯이 대처해야 했던 상황이며, <7년간의 투쟁>은 그의 투쟁을 다루면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나이로비의 빈곤한 근교에서 사는 케냐의 여성의 이야기도 해준다. 이들의 재판이 진행되지 못하게끔 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소가 있음은 물론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계속 방해되고 연기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새로운 판사에게 욺겨지기도 하고 재판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때도 있다. 피해자들이 또 다시 증언해야 하며 또다시 지독한 비극을 재경험해야 한다는 의미다. 케냐의 재판 절차가 기본적으로 느린 게 아니라,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재생하면서 절망을 느끼고 포기하게 하는 피고측의 의도적인 전략이 과정 내내 개입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방해들이 너무나 많아서 샬롯이 집당 강간을 당했음을 신고했을 때 경찰은 “케냐에서 강간 사건 재판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실은 케냐에서 강간을 당했더라도 대부분의 피해자는 신고조차 하지 않고, 신고해서 가해자를 기소하더라도 그들이 증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샬롯은 포기하지 않고, 정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기로 했으며 증언 과정에서 가해자를 직접 대면함으로써 많은 피해 여성에게 희망을 주었다.

<7년간의 투쟁>은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시작한다. 샬롯은 범죄 장소에 다시 돌아가서, 8시간 동안 남자 4 명한테서 강간을 당했던 침대에 다시 누워서 그 경험을 상세하게 진술한다. 다른 피해자들과 탈출하는 과정에서 살해도 당할 뻔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섬뜩했는데도 카메라 앞에서 끔찍한 범죄를 재생하면서 사실 대로 털어놓은 침착한 말투에 나는 참 놀랐다. 그리고 그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사소해보이는 일들이 나에게 제일 충격적이었다. 예를 들어 가해자 중에 한 명이 십자 목걸이를 쓰고 있었는데, 샬롯은 그 목걸이를 잡고 좀 전에 총을 입 안에 넣었던 가해자에게 “너는 무슨 기독교 신자이냐”라고 고발하면서 계속 도전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이 다큐멘터리는 샬롯의 집단 강간 사건 재판을 중심적으로 다루었으나 강간에 대한 고발과 처벌을 방해하는 법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탐구를 하기도 하며 깡패 예방 세미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 단체, 주민을 위한 법 설명회 등 사회 발전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가의 이야기도 다룬다. 범죄와 얽힌 사회 배경에서부터 뇌물, 부패, 그리고 법적 전략까지 여러 단계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7년간의 투쟁>은 이 문제를 대처하고 정의, 개혁, 그리고 평등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케냐라는 공동체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7년간의 투쟁> 상영 후에 관람한 미국의 학내 성폭력을 다루는 올해의 개막작인 <헌팅 그라운드>, 그리고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가정폭력에 대한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을 같이 보면 여러 공통점을 살펴볼 수 있다. 여러가지의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각주:3] 차별적 상황에서 여성은 더 많은 피해 입기도 한다는 것, 또한 이 상황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해결하기에 어떤 방해들이 있는지를 고려하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몇 가지 단계를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법의 문제들이 있다. 이는 부당한 사건을 예방하는 법률, 또한 사건 발생시 처벌 법률이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률 혹은 그런 법을 시행하는 기관이 비효과적이거나 아예 부재하는 상황들이다. <7년간의 투쟁>에서 나오는 운동가에 의하면 케냐에는 상당히 강한 성범죄처벌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피고측 변호사를 증거물을 반납하지 않거나 기록을 바꿀 때 고발되지 않는 것과 같이 재판 절차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다. 이 변호사는 자꾸 재판에 몇 시간 씩 늦게 도착하지만 재판에서 제외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7년간의 투쟁>에서 집단 강간 범죄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대신 '무장 강도'를 근거로 유죄가 결정됐으며, 무장 강도는 사형으로 처벌되지만 (자동적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강간은 최대 20년 징역이데다가 실제로는 2년 징역이나 봉사활동 같은 아주 경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개혁이 필요하더라도, 강간 범죄를 고발하고 처벌하는 법률 제체와 기관이 존재한다. 한 운동가는 성범죄처벌법의 힘을 강조했으나 누구도 신고하지 않고 법이 시행되지조차 않으면 어떤 법률이 아무리 강해도 무력한 법률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불평등의 두 번째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즉 법 실행의 문제이다. 경찰이 피해자의 케이스를 무시하거나, 신고를 기록하는데도 범인을 잡거나 증거를 찾지 않는 경우도 있다. 뇌물, 부패 그리고 특히 노동 문제에 포함된 보복이나 블랙리스트도 이 단계에 포함된다. <7년간의 투쟁>에서는 샬롯이 만난 모든 경찰, 기소측 변호사, 그리고 판사들이 성실하고, 정의로운 존재로 묘사되지만, 다른 사람이 같은 상황에 빠져 있을 때에는 경찰소에서 신고를 받아주지 않거나, 가해자가 경찰이나 군인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정치 기관이 없다는 사건이 흔히 언급된다.

그러나 강간 범죄를 신고하기 힘든 이유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해자임을 알게 되면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경우도 많다. 어떤 피해자들은 피해자인데도 자책하기도 하고 강제로 당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명예로 받아들이기도 하다. <7년간의 투쟁>에서는 그러한 문제들이 자꾸 언급된다. 많은 피해 여성들이 부끄러워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임을 알게 되면 다시 성폭력을 당할 확률이 높아지는 게 끔찍하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독하고 비극적인 것은, 때로는 가해자가 가족이라면 가족 내에서도 신고하는 것을 막는다. 비뚤어지게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해자를 보호하면서 (주로 여성인)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운다. 그러나 케냐뿐만 아니라 <헌팅 그라운드>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학교의 명예 혹은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해서 교직원들 그리고 다른 학생까지도 피해자를 탓하고 위협하기도 한다. 가해자는 더욱 더 심했다. 법적 제도가 아무리 발전되었어도 이러한 문화적인 요소는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하게끔 하는 꼭 바꿔야 하는 문화다.

각 단계에서의 자세한 문제는 각 문화와 법적 제도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를 살펴보면 운동가들이 더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화에서 비롯된 불편등을 법적으로 해결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불평등에 대한 문화적, 대중적인 반발이 강할 때 관리할 법적 제도가 없으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7년간의 투쟁>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한국에 거주하는 백인으로서 흥미롭던 점은, 샬롯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선택해서 소수민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모국을 떠나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법원이나 수업에서 영어를 사용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곳, 그리고 특히 샬롯이 근무하는 빈곤한 근교에서, 스와힐리어를 사용한다), 도처에 보이는 소수민족되고, 그리고 케냐처럼 생활 수준에 큰 차이가 나는, 나라로 이동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다. 한 장면에서 샬롯은 양이 많고 멀리서 보이는 언덕이 있는 들판에 앉아 있다. 그 경치를 보고 진정하고, 안심을 느끼고, 다른 데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감정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던 감정이었다. 봉사활동, 즉 이타적인 의도로 케냐로 갔는데도 2개월만에 집단 강간을 당하게 됐단 사실을 살펴보면 그녀는 케냐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인상적이다. 케냐를 원망하지 않고, 빈곤, 억압, 그리고 차별에 시달리는 케냐의 사람들을 계속 도우려고 노력한다. 너무나 괴로운 상황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투쟁해서 자신의 고통을 용기와 힘으로, 자신의 개인적 비극을 사회적 희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불만족스러운 점이 없지는 않다. 특히 민족간의 관계를 충분히 탐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고측 변호사는 인종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비난했다고 샬롯을 단 한 번 (거짓으로) 고발했고, 케냐 여자들은 백인 여자도 강간 당할 수 있음에 놀랐단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 외에는 인종 차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대중, 법체제가 부당한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샬롯을 계속 지원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와 다르단 점을 살펴보면 샬롯이 (상대적으로) 돈이 많은, 백인 호주 주민인 여성이기 때문에 다르게 취급하지 않았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피부보다도 경제적으로 강대국인 호주 (이 다큐멘터리를 지원한 나라) 에서 왔다는 게 더 중요했을 수도 있지만 <7년간의 투쟁>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분명히 다큐멘터리가 이슈에 접근하면서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 방식은 케냐 사람을 타자화할 위험을 적게 만들기는 하지만 교수와 민권 운동가인 미셸 알렉센더 (Michelle Alexander)가 주장했다시피 탈인종화된 (post-racial) 사회가 되고 싶은 목적만으로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7년간의 투쟁>은 전반적으로 잘 촬영한, 생각하게 만드는,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인 샬롯은 지독한 경험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정의를 이루고자 부당한 제체와 끝까지 투쟁하는 강하고 대단한 인물이다. “강간 사건 재판에 이기는사람이 없”는 나라에서 샬롯 켐벨 스테판은 불가능한 것을 실현했으며 그녀의 성공을 통해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수많은 피해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이 다큐는 재판을 다루는 것 외에서도 전염병인 강간을 허락하는 사회 배경을 탐구하기도 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조직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7년간의 투쟁> 은 문제를 파악하는 뿐만 아니라, 개선 방향을 제공하고, 무엇보다도 희망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1. Davey, M. ‘I will not be silenced’: fight for justice that gave Kenyan Rape victims a voice The Guardian 2015/03/12 [본문으로]
  2. 영화에 나오는 한 성폭력 예방 수업에서 아는 사람 중에 강간을 당한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모른다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본문으로]
  3. 여기서 정의롭지 못한 상황은, 범죄나 피해 그자체보다도 범죄를 고발하거나 피해를 보상하지 못하게 하는 불평등하고 부당한  체계에 대해서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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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학내에서 ‘학내 성폭력’을 외치다
- 다큐멘터리 <헌팅 그라운드> -

 

 21세기 대학은 기업이다.

 대학이란 어떤 공간인가. 지식의 상아탑, 학문의 전당. 사람들에게 각인된 대학의 이미지는 이와 같은 고고한 이미지로부터 시작된다. 사회가 시장 자본주의 속에서 돈과 경쟁으로 물들어 버린대도, 대학은 언제까지나 정결하게 제 자리를 지킬 것만 같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미지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이라는 ‘이미지’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이야기 해보자. 진짜 우리 사회의 대학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가.

 치열한 입시 경쟁과 ‘인 서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서열화된 대학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입학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해당 대학이 어떤 학문을 어떻게 가르쳐주는가 보다는 해당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얻을 수 있는지가, 사람들의 더 큰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21세기 우리 사회의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기보다는 대학의 이름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점차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업화된 대학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그/그녀들의 일이 끝나는 것이라면 문제는 없다. 대학은 그들의 이미지를 굳건히 유지하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유지/상승하는 데에 힘쓰면 된다. 그러나 대학은 상품이면서 동시에 해당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자 울타리가 된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그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기 때문이다.

 대학의 울타리는 그들에게 놓인 높은 벽이었다.

 이처럼 학생들은 대학 속에서 살아가고, 이 대학 속에서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또한 학부모들은 대학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대학의 이미지는 언제나 정의로웠고 고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들에게 놓인 대학을 보며 깨닫는다. 그들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대학의 울타리는 타인에게 높은 만큼이나 그들 자신에게도 한없이 높은 벽이었다는 것을.

 대학이 가진 명예로운 이미지라는 틀 속에 갇힌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학내 성폭력의 생존자임을 밝힐 수도 없게 만들었다. 대학은 명백한 피해자인 그들에게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로 도리어 비난하고, 사건을 은폐하고자 했다. 생존자를 보호하는 데에 앞장서기는 커녕 학교에 더 많은 기부금을 끌어올 수 있는 촉망 받는 가해자의 대변을 하기에 바빴다. 영화 속에서 논해진 대다수의 미국 대학은 성폭력 사건을 인정함으로써 학내 학생들을 가해자의 사냥터(헌팅 그라운드)에서 보호하기 보다는, 현재의 명예 유지와 기부금을 끌어올 수 있는 재원-가해자를 택했다. 생존자들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그들이 겪은 경험조차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대학의 벽 앞에서 더욱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상영작 헌팅그라운드 스틸 컷>

 

 “당신이 겪기 전까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Till it happens to you, you don't know.)”

 대학의 울타리 속에 은폐된 학내 성폭력 문제는 자신이 성폭력 생존자임을 외쳤던 두 명의 여학생들에 의해 미국 사회는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외면하는 학교 당국과 함께 그들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은 ‘거짓말’이라며 외면했던 사회에게, 그들은 말했다. 가장 사적이고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이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며, 어느 날 성폭력을 당했다. 나는 성폭력의 생존자다.’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이해해보려 노력하지도 않았던 그 하나의 울림은 미국 전역의 아우성이 되었다. 생존자들은 연대했고, 생존자들이 아닌 이들도 연대했다. 학내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던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 속에서 수면 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만약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10만 명의 학생들이 내년에도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할 것입니다.”

 대학은 자신의 명예로움을 지키기 위하여 생존자들의 고백에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귀를 열었을 때 정작 불명예스러운 것은 성폭력 생존자들의 고백이 아닌 귀를 막았던 대학 자신이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건 가장 불명예스러운 부정(不正)한 대학의 모습이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생존자들의 연대와 지지는 그들의 대학을 바꾸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 원동력을 추동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고백과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지지였다. 변화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어떠한가. 최근 ‘고대 의대생 사건’와 같이 수면위로 드러난 학내 성폭력 문제조차 대학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불명예스러운 일로 학교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10만 명의 학생들이 내년에도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할 것입니다.” 라는 영화의 문구처럼 한국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학내 성폭력이 그저 가끔의 특별한 이슈로만 드러났던 건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조건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제 고개를 들어 살펴보자. 이제 미국의 그(녀)들이 고백의 힘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생존자들의 고백에 귀 기울여 보자. 대학의 벽을 넘지 못한 학내의 목소리에 따뜻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자.

 그녀들의 고백과 우리들의 따뜻한 연대가 만날 때 우리 사회의 변화도 시작될 것이다.

글. 류희정_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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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미국 수녀들은 왜 교황청과 싸웠는가?

[2015 제9회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 ④] <주님은 페미니스트>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의 생존과 치유를 지지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2006년에 시작된 영화제입니다. '고백의 방향'을 주제로 한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 어떤 이야기,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극장에서 19개국 29편의 영화로 만나게 될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기자 말


* 필자 이미영은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주님은 페미니스트> 스틸컷



지난 2015년 4월 16일,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교황청과 미국 여성수도자 대표기구인 여성수도자지도자회의(Leadership Conference of Women Religious, 이하 LCWR)가 싸움을 끝내고 화해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 아니 가톨릭 신자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대부분의 사람은 그 기사가 무슨 의미인지는커녕 그동안 미국 여성 수도자들이 교황청이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사를 관심 있게 본 이는 한국의 여성 수도자들, 그리고 몇몇 가톨릭 여성신학이나 여성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초청작 <주님은 페미니스트(Radical Grace)>는 ‘버스를 탄 수녀들(Nuns on the bus)’이라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세 수녀, 시몬(Simone Campbell), 진(Jean Hughes), 크리스(Chris Schenk)의 활동을 통해 이 사건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미국 여성 수도자들은 왜 조사를 받았는가?


2009년, 교황청은 미국 여성 수도회의 70~80% 정도가 가입한 대표기구인 LCWR이 심각한 교리적 일탈 등을 보인다는 미국 내외 여러 주교들의 고발에 따라 조사를 시작하였다. 고발자들은 미국 수녀들이 동성애와 피임, 낙태, 여성사제 운동 등 가톨릭교회에서 금지하는 교리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인다며, 이들의 수도 생활이 가톨릭 신앙과 어울리지 않고 교도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4년여에 걸친 조사 이후, 교황청은 2012년부터 미국 주교 3명을 임명해 최대 5년에 걸쳐 LCWR의 전면 개조를 진행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미국 수녀들에 대한 교황청 조사와 제재가 시작된 결정적 계기는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던 의료보험 시스템 개혁 법안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당시 미국 주교회의는 이 법안이 피임과 낙태를 조장하는 법이라며 반대 의견을 내놓았고, LCWR은 대다수의 가난한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개혁법을 지지하며 주교단과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주교단의 결정이 교회의 공식 입장인 가톨릭교회의 제도 안에서, 교도권을 지닌 주교회의와 ‘다른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냈다는 것은 제도로서는 크게 위협을 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왜 수녀들은 주교단과 다른 선택을 했을까? 



수도복을 벗고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간 수녀들


영화는 그 이유를 버스를 탄 수녀 중 한 명인 진 수녀의 활동을 통해 설명한다. 진 수녀는 수도복을 입지 않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출소하는 이들을 도우며, 성인이 되도록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운 교사이기도 하다. 수도복을 입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진 수녀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특정 종교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장벽 없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편견이나 격의 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수도복을 벗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흰색이나 회색 또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두건을 쓴 수녀의 모습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의 수녀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 평상복 차림으로 활동한다. 50년 전 폐막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교회가 문을 열고 세상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세상 한가운데서 섬기는 교회가 되겠다고 선포한 것을 실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수도복을 벗은 미국의 수녀들은 목소리 없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사회의 변화를 요구했고, 존중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그들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지난 40여 년을 미국 수녀들은 정의, 평화, 인권 활동에 앞장서 왔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강보험개혁법이 추진될 때, 교도권과의 대립을 무릅쓰고도 이 법의 제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주님은 페미니스트> 스틸컷



버스를 탄 수녀들, 세상과 교회를 움직이기 시작하다


그러나 이 일로 미국 주교회의와 부딪치면서 교황청 고발과 조사가 시작되자, 수녀들은 당황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몸 바쳐 온 교회로부터 자신의 활동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실망하고, 가톨릭교회 교리에 어긋난다고 파문될 위기에 직면하면서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녀들은 교회의 제재에 침묵하며 따르기보다는, 이 문제의 발단이 된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 개혁 법안에 대해 알리는 ‘버스를 탄 수녀들’ 캠페인을 시작한다. 사회정의 활동을 하던 시몬 수녀는 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이 법안이 가톨릭 사회교리의 정신에 부합하다는 사실을 설득하였다. 신자나 비신자 여부를 떠나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버스를 탄 수녀들을 응원하고 격려하였고, 그동안 수녀들이 낮은 곳에서 함께 해주었듯이 교황청 조사로 위기에 처한 수녀들을 지지하며 함께하였다. 


하지만 보수적인 종교 분위기 안에서 수녀들이 공공연하게 교도권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모습, 정치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두고 한쪽에서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 일이라며 반대하였다. 아동 성추행이라는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사제보다 수녀들이 하는 일이 동성애와 낙태를 조장하기에 더 나쁘다는 한 남성 반대자를 만나고 난 후, 시몬 수녀는 오랫동안 할 말을 잃고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중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진 수녀는 평생 그리스도교 신앙에 충실하게 살아온 수녀들을 조사하는 교회,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교계제도의 현실을 보며, 현재 가톨릭교회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과연 이 제도가 옳은 것인지를.


가부장적인 종교 제도에 의문을 품다


한국 사회에서는 천주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한 역사와 전통 덕분에 가톨릭교회를 비교적 진보적인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서구 유럽이나 미국 사회에서 가톨릭교회는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이다. 이혼, 피임, 낙태, 동성애 등 가정과 성 윤리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 또한 가톨릭은 세계 주요 종교 중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종교이다. 


크리스 수녀는 이 제도가 과연 예수의 정신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질문하며,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중심지인 로마로 떠난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여성들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직분으로 봉사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 크리스 수녀는 예수 그리스도가 결코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었고 초대 교회의 신앙인들은 그 정신을 올곧이 살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간 로마에서 새 교황의 선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삼은 첫 번째 교황의 선출은 미국 수녀들 앞에 놓인 미래에 희망의 징표로 여겨졌다. 실제로 교황청은 2014년 말, 미국 여성수도회와의 대화를 통해 귀를 기울이는 걸 배울 수 있었다며 LCWR의 입장을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올해 4월, LCWR에 대한 미국 주교단의 조처를 마무리하도록 한 것이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주님은 페미니스트> 포스터



끝나지 않은 여정


싸움은 끝났다. 건강보험개혁법도 통과되었고, 미국 주교단의 감독도 끝났다. 그러나 수녀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전처럼 가난한 이들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가 살 것이지만, 가톨릭교회의 구조를 바꾸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수녀들은 지난 40년 동안 가난한 이들 한가운데서 이들을 보살피고 돌보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갈 뿐 아니라, 그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 역시 평등하고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는가를 질문하게 했다. 그것은 과격한(radical) 것이지만, 은총(grace)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사실, ‘주님은 페미니스트’라는 제목보다 원제의 ‘래디컬 그레이스’가 더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잘 담아낸다고 보인다. 래디컬(radical)이란 말은 ‘급진적’이란 뜻뿐만 아니라 ‘근본적’이라는 뜻도 담고 있는 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예수의 복음 정신은 결코 남녀를 차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이들, 여성들에게 더 열린 신앙이었다. 그 근본적인 정신으로 돌아가는 노력은 현재의 교계제도에 질문을 던지고, 설득하고, 함께 바꿔나가야 할 일이라 과격하지만,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은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득 지금의 한국 천주교회 현실을 떠올려보게 된다. 급진적인 저항은커녕 여성에 대한 이야기조차 사라진 오늘의 현실에서, 이 영화가 어떤 울림을 전할 수 있을까? 2015년은 가톨릭교회가 ‘봉헌생활의 해’로 보내면서, 우리 시대의 수도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 특히 여성수도자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지금 우리 시대의 수도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톨릭교회 안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지, 공의회 정신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끝>


주님은 페미니스트 Radical Grace 

레베카 패리쉬 Rebecca Parrish

2015 | Documentary | 78' | Italy, USA

09. 17. Thu. 13:20 피움 톡!톡! Fiwom Talk!Talk! 7관

09. 20. Sun. 14:00 1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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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온전한 ‘나'로서의 엄마가 되기 위해서

[2015 제9회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 ①]  픽션 다큐멘터리 <10개월> 



 글쓴이_갱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10개월> 스틸컷



출산은 ‘나'로서의 끝인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인 걸까. 친정엄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후자라고 이야기해주었지만, 소중한 이들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나의 두려움은 늘 전자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기였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임신이 어려운 편에 속했고, 그 때문에 파트너와 난임 클리닉을 오가며 임신을 기다렸다. 물론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을 때 기뻤고 행복했으나, 확실히 오랜 시간 공들여 아기를 맞을 준비를 했다고 해서 임신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10개월>의 주인공인 올리비아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의 상황을 불안해하고 힘겨워한다고 해서 그녀가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 불안감에는 묘한 죄책감이 깃든다. 아기를 뱃속에 두고 나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이, 엄마로서 결코 느껴서는 안 되는 불경함 같았기 때문이다. 불안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나는 안정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히스테릭해졌다. 올리비아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거동을 극히 삼가야 하는 산모였기에, 근 두 달간을 밖에 나가지 못하면서는 점점 우울함에 빠져들었다.


그런 때에는 “아기를 위해 견뎌야지." 혹은 “지금은 아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지.” 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어쩌고, 아기만?” 이라는 말이 울컥 올라왔으나, 그 말을 목구멍 밖으로 뱉었던 건 겨우 한 번이었다. 고작 한 번이었지만, 내 말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고 당황한 사람들은 에둘러 이렇게 얘기해주었다. “아기가 곧 너지. 아기 생각하라는 게 너를 생각하라는거지 뭐.”



나에게 허락된 것들


그들의 말은 오래 마음속에 남아 내 마음을 휘저었다. ‘아기가 곧 나’라는 말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내 안에 그만큼이나 모성이 없는 걸까 싶어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나 아직 얼굴조차 보지 못했고, 살결 하나 만져보지 못한 아기를 단지 배 속에 있다는 추상적인 느낌만으로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건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닐까.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10개월> 스틸컷



집에 머무르는 올리비아의 시선은 늘 테라스 바깥을 향한다. 그러나 그녀가 바깥을 바라보더라도, 늘 같은 장소, 같은 시선일 뿐이다. 다른 각도로 바깥을 바라볼 수조차 없다. 그저 하나의 앵글만이 그녀에게 허락된 최대의 시선일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말동무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 또한 오직 파트너 한 사람뿐이다. 임신부 카페에 가입해보면 알겠지만, 많은 임신부가 이 시간을 힘겨워한다. 밖을 원활히 나갈 수 있었고,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있었으며, 해야 할 일들이 있었던 시간과 강제로 분리되어 홀로 집에 남겨졌을 때 그녀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기껏해야 ‘태교 바느질', ‘태교 음악 감상', ‘태교 영화' 정도가 있을 뿐이다. 많은 임신부가 자신을 ‘남편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강아지'라고 표현한다. 올리비아도 이 시간을 끔찍이 힘들어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건 응당 그녀 혼자의 몫인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올리비아에게 친구들이 꽃을 바치는 장면이 나온다. 축하의 의미였겠지만, 올리비아의 시선으로는 그것이 관에 누웠을 때 사람들이 다가와 추모의 꽃을 바치는 것과 유사하게 그려진다. 그들이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모성성은 한편으로 올리비아라는 자아에 고하는 사형 선고인 것이다.


임신부에게 정말 필요한 것


그러므로 임신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태교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 생겨날 엄마라는 정체성, 그리고 아기에 대한 관계성을 사유하는 일이다. 모성이라는 단어는 이 복잡한 문제를 너무나 쉽게 하나로 봉합해 버린다. 생각해보라. 단지 임신을 했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엄마'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다. 파트너와 연애를 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반려자가 되기 위해 서로를 맞추어 나가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처럼 엄마와 아기에게도 그러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건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나는 아직 아기를 낳지 않았고, 따라서 바깥출입이 아직까지 거의 불가능하다. 앉아있는 것조차 할 수 없었기에 늘 누워만 있어야 했다. 누워서 온갖 책들을 읽었지만 배가 불러옴에 따라 그조차도 힘들어졌고, 숨이 가빠져 쉬이 잠들 수조차 없었다. 이 시간 동안 ‘엄마'라는 정체성은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고통의 시간을 더욱 버겁게 만들어주는 단어일 뿐이었다. 


이런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건 많은 언니들이었다. 언니들은 내 고통에 공감해주었고, 내 고민에도 귀를 기울여주었다. 아기용품을 보내주면서 ‘사실 너의 임신을 축하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서두를 연 한 언니의 편지는 오히려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녀들도 모두 같은 시간을 견뎌냈고, ‘내게 과연 모성이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과 더불어 가끔 아기가 심하게 보챌 때마다 아기가 미워지게 되는 그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해주었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10개월> 스틸컷



결국, 엄마가 되어서도 나는 ‘나'다. 엄마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강해지거나,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산부인과 의사는 임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더욱 불안해지고 강박적이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설명해주곤 했다. 따라서 임신부는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 신성성보다는 오히려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보장이 더 필요한,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온 ‘나' 그 자체다. 심리적인 영역에서도 그렇지만, 다시금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회적 보장 역시 절실하다. 올리비아가 다시 연극 무대에 설 수 있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들이 모여 불안감은 증폭되기에 이른다. 


지금 내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내 아이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언젠간 나와 같은 시간을 겪을 수 있다. 그러면 그때 나는 자신 있게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는 너를 위해 ‘나'를 포기하지 않았노라고, 그러나 너를 사랑하는 것만은 틀림없으며, ‘나'로서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음을 네게 보여주고 싶었노라고 말이다. 


<끝>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정보

10개월 Olmo and the Seagull

페트라 코스타, 레아 글롭 Petra Costa, Lea Glob

2015 | Documentary | 82' | Denmark

09. 17. Thu. 17:30 12관

09. 20. Sun. 13:40 피움 톡!톡! Fiwom Talk!Talk! 7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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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고백’의 힘'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 개막



*강수희_한국여성의전화 대학생기자단






매번 다른 슬로건을 선보였던 여성인권영화제가 올해는 ‘고백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찾아왔다. 말하기는 목소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오프닝은 소리 댄스 프로젝트(명지혜, 이민숙)의 춤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고백하기 직전의 숨소리, 이 고백을 할까, 말까 망설이며 이리저리 까딱이는 발. 소리 댄스 프로젝트의 동작 하나에 500여 명의 관객이 숨죽여 공연에 집중하는 가운데, 9월 16일 7시, 서울시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올해 19개국 29편의 영화를 상영하게 될 여성인권영화제 고미경, 손명희, 오영란 집행위원장은 ‘전화로, 이메일로, 맨얼굴로 전해 온 뜨거운 고백 덕분에 조금씩 나아져 온 여성인권의 현실’과 더욱 퍼져나갈 고백의 힘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 고백이 가져왔던, 가져올 변화를 탐구하고자 한다’는 말로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의 개막을 선언했다.


개막을 축하하는 축사는 특별한 손님이 함께했다. 가정폭력 생존자인 ‘수지 엄마’ 윤필정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비상구와 같은 역할을 해준 여성의전화가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며 “참고 견디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도 많은 아픔을 겪고 있는 수많은 여성분이 소중한 나를 찾길 바란다”며 뜻깊은 축사를 전했다.





개막작 헌팅그라운드는 미국 대학 내 성폭력의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로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성폭력이란 사건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임을 힘 있게 드러내는 영화였다. 생존자들의 단단한 고백의 목소리들이 연대하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올해 여성인권영화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고백의 방향”과 맞닿아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성폭력 상담원교육 수료를 받은 지인을 따라 개막식에 참석했다는 관람객 유진(27)은 "성폭력 상담원 교육의 과정이나 실제 사례에 대해 전해 들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폭력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며 개막작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날 진행을 도운 영화제 스태프 정민(25)은 "많은 분이 오셔서 개막식에 참여하는 것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게 보람 있었다 "원래 영화제 스태프 활동만을 생각했으나,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서 더 많은 사람이 여성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제가 있는 영화제, 소통하는 영화제, 즐기는 영화제,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제, 그리고 행동하는 영화제라는 다섯 가지 모토를 가진 여성인권영화제는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서울극장에서 진행된다.


 www.fiwo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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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질주'

9.25~9.28 아리랑시네센터

 

주최. 한국여성의전화

 

영화제 스케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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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5-28 한국여성의전화 주최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질주' 상영작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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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5-28 한국여성의전화 주최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질주' 거리캠페인 - 홍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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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