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은 회복되어야 한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시체가 된 여자들> 피움톡톡


예원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지하철역 출구에서 들려온 여성들의 외침과 <82년생 김지영>에서 드러난 외침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성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고자 하는 외침이다. 9월 23일 저녁. 이 외침에 대한 두 영화가 상영됐다. <시체가 된 여자들>과 <여성 해방으로 좌회전>이 그것이다. 두 영화의 연이은 상영 이후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의 8번째 피움톡톡이 진행됐다. 송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의 진행 하에 배우 김꽃비, 영화평론가 정민아, 영화감독 홍재희가 함께 했다.


시체가 되는 여성들

“시체가 진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너무 놀랐어요.” 한 관객은 <시체가 된 여자들>을 보고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우리는 여성이 죽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다. 물에 떠 있기도 하고, 절벽에서 굴려지기도 한다. 피를 흘리기도, 깨끗하기도 하며 눈을 감거나 뜨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다루어지는 만큼, 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암사자들>, <아버지의 이메일> 등을 연출한 홍재희 감독은 <시체가 된 여자들>을 통해 시체 단역 배우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에 사용된 기존 드라마와 영화 클립들을 사전에 접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시체 장면들만을 모아 보니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 시체 자체가 포르노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젊고 예쁜 여성들이 시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영화 서사에 필수적이지 않은데도 카메라가 여성의 몸을 훑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대해 배우 김꽃비는 죽은 여성의 포르노적 소비가 비공식적으로 장르화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상력의 빈곤이 낳은 장르

그렇다면 비공식적 장르는 무엇 때문에 탄생했을까. 홍재희 감독은 ‘상상력의 빈곤’을 그 이유로 짚었다. 2000년대 초반의 영화와 오늘날의 영화에 나타나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주류 영화를 타고 흐르는 기저에는 한국 특유의 군대 문화가 있는데, 여기에서 여성의 대상화가 시작된다. 군대 문화에서 남성성을 찾고, 집단 성매매로 남성성을 확인하듯 영화에서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여 남성성을 확인하는 방식이 재현된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독립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주류 영화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유로 안정된 수익을 추구하는 영화계 관행을 지적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도 공정한 목소리들이 이러한 관행으로 인해 주류로 편입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관객은 동의한다며 자본주의와 가부장주의가 찰떡처럼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흔히 ‘여자가 나온 영화가 재밌으면 더 많이 만들텐데 그렇지 않으니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라는 비판은 ‘여성이 일을 잘하면 더 많이 채용할 텐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주도적으로 선택하기에는 영화계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와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해소할 방향은 어디일까. 홍 감독은 “개인과 싸울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철저한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홍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서 전세계가 공통으로 여성이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영화와 장르영화에서는 그 변화가 멸종되는 이유를 자본 권력에서 찾았다. 과거와 달리 영화계에 여성 인력이 대거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드는 투자자는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녀 임금격차나 남녀 빈곤율을 뒤집어보면 곧 여성들이 자본 권력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이는 곧 보편적 감수성이 남성 위주로 치우쳐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뜻한다. 한 사람이 바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에 내부의 목소리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실제로 내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감독과 여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배우 김꽃비가 시작한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 ‘찍는 페미’가 좋은 예다. 배우 김꽃비는 이를 시작으로 영화업계에 변화가 생기길 기대한다고 답했다. 

"이게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구나." <시체가 된 여자들>의 한 배우가 죽음을 연기하며 깨달은 것이라고 한다. 죽음은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반드시 어떤 여성에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그녀가 깨달은 것은 우리와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송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업계의 변화는 우리 사회 전체 성평등 개선과 관련되는 문제라고 밝혔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 스스로와도 직결된 문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끊임없이 감시할 수 있는 관객으로서의 몫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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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자신만의 속도로 나이 들기

<미용실 사장님 메이블> <할머니의 운전면허 도전기> 피움톡톡

윤선혜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개막 4일 차인 9월 23일, ‘나이듦의 다른 얼굴 지혜: 성역할과 나이듦의 틀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주제로 피움톡톡이 열렸다. 정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이 진행을 맡았고, “순수하게 오리지널 싱글로 77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애순 작가와 반대로 “저는 남자와도 살아보고 여자와도 살아보고 온갖 것 다 해본 사람”이라는 최현숙 노인구술생애사 작가가 패널로 참여했다. 

피움톡톡에 앞서 상영된 영화는 <미용실 사장님 메이블>과 <할머니의 운전면허 도전기>로 8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두 영화는 기존 미디어에서 좀처럼 주목받지 못했던 노년층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최현숙 작가는 “젊은 여성 감독이 여성이자 노인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는 점이 고맙다”며 “그들이 늙어가는 모습이 섬세하게 담겨 있어 좋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다른 상영작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많은 중·노년층 여성들이 관객석을 메운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짧은 영화 두 편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에게 입체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부족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태 여성 캐릭터들은 이름도 없는 ‘여자시체’거나, 억척스럽고 희생적인 엄마거나, 젊고 아름다운 눈요깃거리로 존재했다. 그러한 미디어 환경에서 여성들은 이름이 있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그 대화가 남성과 관련된 얘기가 아니어야 한다는 소박한 기준만으로 영화를 평가해야 했다. 그래서 89세의 혈기왕성한 미용사 메이블과 86세의 초보 운전자 테레즈는 낯설고도 반가운 존재다.



소수자성 배제와 바람직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쉬워

하지만 영화의 의의를 인정하는 동시에 최현숙 작가는 소수자성의 배제를 두 영화의 한계로 꼽는다. 사실 메이블과 테레즈는 선진국의 중산층,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이다. 이들보다는 소수자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어려움과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다큐멘터리로서는 더 중요한 의제일 수 있다는 점이 최현숙 작가의 지적이다. 또한 여전히 머리를 예쁘게 단장하며 젊고 활기차게 늙어가는 두 사람만을 바람직한 노년의 모습으로 규정하는 감독의 시선도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했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 탓인지 한 관객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질문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일하는 것에는 두 작가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김애순 작가는 “일을 함으로써 희망이 생기고, 수입이 생기고,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며 나이에 상관없이 일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최현숙 작가는 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일을 해야만 사람처럼 사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관점”에는 반대했다. 장애가 있거나 너무 지쳐서 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나만의 속도를 찾아 건강하게 나이 들기

“한국 사회에서 혼자 늙어가는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객 질문에는 비혼 여성들의 롤모델로 주목받는 김애순 작가가 답했다. 단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괴물처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했던 김애순 작가는 “늙어서 외로워진다”는 주변의 걱정에 흔들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늙으면 누구나 외롭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얼마든지 스스로 메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혼자서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다. 이에 더해 김애순 작가는 여성이 혼자 살아가기 위한 네 가지 조건으로 건강, 경제력, 친구, 이웃집에 사는 친한 친구를 들었다. 

한 관객은 두 작가에게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살다 보면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하다는 압박감에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다”는 그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지” 질문했다. 이에 최현숙 작가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은 “헛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세상은 계속 돈이 많아야, 젊어야, 친구가 많아야 행복할 것이라고 떠들지만 그런 말은 믿지 마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분명히 해야 한다.” 앞서 김애순 작가가 언급했듯이 사회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행복을 알고 따라야 한다. 이것이 두 인생 선배의 조언이었다. 

한 시간 가량의 피움톡톡을 마무리하며 인생의 마지막 목표에 관해 묻자 두 작가 모두 글을 쓰는 것이라고 답했다. 여성의 롤모델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영화 속 메이블과 테레즈, 그리고 피움톡톡을 함께한 김애순, 최현숙 작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몇 발 앞에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배들을 따라 우리 모두 자신만의 속도로 늙어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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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여자답게 강해지고 싶다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 GV 현장

메리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2일 금요일,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열린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가 3일째를 맞이하였다. 이 날 두 번째 회차에서는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그리고 <여자답게 싸워라> 네 편의 영화가 연속으로 상영되었다. 영화가 끝나자 <더 헌트>의 김덕중 감독, <동경소녀>의 박서영 감독, <노브라 해방기>의 허윤수 감독, 그리고 <여자답게 싸워라>의 이윤영 감독이 게스트로 참여하여 YTN 윤현숙 기자의 진행 하에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골목 속 터프한 러닝타임, <더 헌트>

 <더 헌트>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희순과 이화동에 새로 온 부안이 폐지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두 주인공의 전쟁 같은 골목 액션은 1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의 가슴을 쉬지 않고 뛰게 했다.

 김덕중 감독은 <더 헌트>가 “대학로에 거주했을 때 저녁 골목을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보고 야생동물과 같다고 느낀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하였다. 소외된 노인이나 빈곤 문제처럼 기존에 이미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폐지를 먼저 줍기 위해 골목을 전투적으로 달리는 두 주인공의 경쟁은 그간 미디어가 묘사했던 타인에게 의존적인 노인과는 대조된다.


특별한 대상이 되고 싶었던, <동경소녀>

 <동경소녀>는 사진 속 ‘특별한’ 대상을 동경하는 선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현실에 마음을 붙이고 있지 않은 선아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이 동경하는 대상을 바라본다, 선아의 세계에 형남이 등장하면서 만나면서 선아는 변화를 겪게 된다.

 박서영 감독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조금만 특별하다고 말해주면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소녀, 그리고 약한 어른이 소녀에게 행사할 수 있는 폭력성을 서술하고 싶었다.”고 이야기 하였다. 일부 관객은 “ 낮은 자존감과 애정결핍의 대상으로 선아를 설정하는 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사회적인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다루는 것 같아서 아쉽다,”라고 언급하면서 <동경소녀>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노브라 전사를 꿈꾼다, <노브라 해방기>

 <노브라 해방기>의 신애는 자신의 졸업 작품 <노브라 해방기>를 통해 노브라 전사를 꿈꾼다. 신애와 예빈의 술자리에 같은 과 선배 재혁이 등장하면서 현대판 ‘코르셋’인 노브라가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신애의 분노에 공감했던 영화였다. <노브라 해방기>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씌우는 사회적 프레임으로서 브래지어를 잘 그려낸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이 공감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노브라 해방기>는 허윤수 감독이 대학4년 동안 느꼈던 감정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기에 만든 영화라고 하였다. “졸업 작품으로 상영되었을 때에는 동일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반응해 준 적이 없었는데, 여성인권영화제에서 관객 분들이 웃으면서 봐주시는 것을 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다른 힘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제일 먼저 무너진 건 내 몸이 아니라 의지였다, <여자답게 싸워라>

 <여자답게 싸워라>는 남성 중심 경기장이 정해둔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플레이를 찾는 주짓수 파이터 이윤영 감독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자취방 벽에 붙은 포스트잇에 써진 ‘stay safe’ 문구가 영화 마지막에는 ‘stay strong’으로 변한 기분”이라고 표현한 윤현숙 기자의 말처럼, ‘여자답게’ 강해지고 싶어 노력하는 여성들에게 영화 <여자답게 싸워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왜 강해지는 것에 의미를 두었나요.”라는 한 관객의 질문에 이윤영 감독은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 중에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강한 여자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답하였다. 이날 관객 중에는 주짓수 파이터가 함께 참여 했었다. 관객은 남초집단에서 여성단원이 겪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윤영 감독도 동등한 단원이 아니라 여성으로 존재해야 했던 관객의 경험에 공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브라 해방기>의 허윤수 감독은 여성에게 씌워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여자답게 싸워라>에서 자신을 인정한 것처럼 ‘여자답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처럼 이날 관객과 함께했던 감독과의 대화는 주짓수라는 특수한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escape’ 하려는 여성들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였다.


‘여자다움’을 찾아 나선 영화들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는 공통으로 가부장제가 여성상을 어떻게 왜곡하려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 여성들은 골목 속 야생적 존재, 특별한 존재를 동경하는 소녀, 혹은 강해지고 싶은 파이터처럼,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수동적 모습과는 다른 ‘여자다운’ 여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가부장제가 왜곡했던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껴왔다면,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의 주인공들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해당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다면 9월 24일에 다시 만나 볼 수 있으니, 여성인권영화제 홈페이지에서 상영표를 참고하자. (http://fiwom.org/main/main.html) 영화제 기간에는 ‘감독과의 대화’부터 ‘피움톡톡’까지, 다양한 섹션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들도 진행하니 여성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은 여성인권영화제에서 함께 모여서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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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우리 이제 그건 폭력이라고 말하자

씨네토크 "데이트폭력을 말하다"


윤선혜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2일,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하는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데이트폭력, 영화로 말하다’를 주제로 시네 토크가 열렸다. 시네 토크에 앞서 여성 폭력 문제를 다루는 두 영화 <닫힌 문 뒤에는>과 <완전히 안전한>이 상영되었다. <닫힌 문 뒤에는>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폭력을 경험한 세 여성의 이야기를, <완전히 안전한>은 공동체 내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과 2차 가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 시네 토크는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의 진행 하에 유화정 젠더학 연구자, 손문숙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활동가, 김재희 변호사, 하진 데이트폭력 피해 당사자가 패널로 참여했다.

아직 한국 사회에는 데이트폭력의 범주에 대한 정확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데이트폭력을 ‘연인 관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관계를 포함한 친밀한 관계에 있는 상대에 의해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등의 폭력’으로 정의한다. 이때 데이트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이유로 감춰졌던 여성폭력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명명한 것이지 법률적인 개념은 아니다.

여성폭력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층위의 폭력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을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데이트폭력은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엄연한 범죄이지만 정신적, 언어적 폭력 등 가시적인 폭력을 관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없다. 물리적 폭력 외의 데이트폭력이 법의 사각지대에 갇혀버린 것이다.

사회적 인식 또한 데이트폭력의 처벌을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데이트폭력 피해 당사자인 하진은 소송 과정에서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었다고 털어놨다. 주위에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 그 후에 이어지는 2차 가해를 견디는 것,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와 판사가 지닌 편견에 맞서는 것까지. 가해자의 곁을 떠났다고 해서 피해자의 고통이 끝나는 건 아니다. 데이트폭력에 관한 사회적인 편견은 피해자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동시에 가해자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손문숙 활동가는 “어디에 가해자 학교가 있는 것 같다”며 데이트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이 보이는 몇 가지 특징을 설명했다. 가해자들은 폭력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이며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심지어는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 맞을 짓을 했다며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그들은 피해자를 폭행한 뒤에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 등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피해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한편,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유화정 연구자도 ‘가해자 학교’라는 표현에 크게 공감하며, 데이트폭력의 첫 번째 신호로 ‘맨스플레인’을 꼽았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피해자를 훈육의 대상으로, 자신은 피해자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폭력은 훈육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피해자를 폭행한 것은 더 나은 상황을 위한 것이므로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하진은 “가해자들이 절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가해자가 됐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상대방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동등한 권력 관계 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태도다. 따라서 데이트폭력은 애초에 둘 사이에 전제된 젠더 권력 차이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한 관객의 질문에서처럼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권력이 없는 동성 커플의 경우에도 데이트폭력은 발생한다. 애초에 폭력은 다양한 관계 내에서 발생한다. 경제적 위계, 사회적 지위 등에서 비롯되는 권력 관계 또한 폭력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동성 커플을 인정하지 않는 법적, 사회적 인식 탓에 오히려 더 보이지 않는 곳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으니 일반인과 쉽게 구분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특징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김재희 변호사에 따르면 고소 과정에서 주변인들이 증언하는 가해자는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다. “명문대를 나왔다”거나 “집안이 좋다”며 그를 옹호하는 지인들의 탄원서가 쏟아지기도 한다. 가해자가 알코올중독이거나 분노조절 장애일 것이라는 등의 흔한 편견은 변명에 불과하다. 김재희 변호사는 특히 여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증언에 단골로 등장하는 ‘분노조절 장애’에 의문을 제기한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들만큼 분노 조절을 잘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분노 조절을 피해자에게만 한다.” 한 사람만을 향하는 분노, 그 분노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교묘하게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가해자의 특징이다.

데이트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으로 폭력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점과 우리 모두 어릴 때부터 이러한 폭력을 ‘사랑’으로 학습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쟤가 널 좋아해서 괴롭히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자란 여성에게 남자의 사랑은 원래 그런 것으로 여겨진다. 여자 주인공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끌거나 벽에 밀쳐 강제로 키스하는 드라마 장면을 박력 있고 로맨틱한 것으로 소비하면서 ‘폭력=사랑’이라는 공식은 더욱 견고해진다.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를 허물며 미디어와 사회 전체가 데이트폭력 가해자를 길러내는 학교로 기능한다. 거대한 학교 속에서 모든 남성은 개개인의 폭력적 성향과 무관하게 폭력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학습한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데이트폭력은 연인간의 사소한 다툼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엇일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한 관객의 말이 그 답이 될 것이다. 데이트폭력은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사람들만 겪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폭력이다. 다만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특징 때문에 쉽게 은폐되어왔을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런 일(데이트폭력)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객의 질문과 그 답은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데이트폭력의 존재와 그 의미를 인지하고 내가, 혹은 주변 사람이 피해를 입었을 때 ‘데이트폭력’이라고 정확하게 명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사적인 일, 사랑싸움이 아니고 분명한 폭력이라고 말하자. 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소개해주는 등 실질적인 도움과 더불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돕겠다는 신뢰감을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준 사람이지만 동시에 피해자가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채 가해자와 다시 연락하거나 만나기도 한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피해자의 태도에 주변 사람들이 인내심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순간 다시 가해자에게 돌아갈 확률이 굉장히 높아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언제든 도움을 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무엇보다 데이트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기 위해서는 예민함으로 폄하됐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느꼈던 이상하고 불편한 느낌을 좀 더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피해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자. 피해자의 언어가 일상화될 때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비로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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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결국 여성은 시민이, 인간이 될 것이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폐막작 <거룩한 질서>


정윤하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1789년. 라파예트는 프랑스 혁명 중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다. 제1조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함을 골자로 한다. 시민사회가 태동하던 시대였지만, 그가 선언한 인간에 여성은 없었다. 인간과 시민은 남성으로 치환됐고 그 권리 또한 남성의 전유였다. 동시대의 여류 작가 올랭프 드 구즈는 이에 반대하며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으나, ‘여성에게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렸다는 죄목’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여성에게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연단 위에 설 수 있는 권리도 누려야 한다.” 올랭프가 남긴 말은 이후 유럽 전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격동시킨 강력한 불씨가 되었다. <거룩한 질서>는 유럽의 마지막 주자로 여성참정권을 도입한 1971년 스위스를 배경으로 한다.

뒷모습이 익숙한, 여성의 헌신

주인공 ‘노라’는 삼대가 모여 사는 집에서 가사를 전담한다. 집안 안팎에서 사람들은 노라를 아끼는 듯하다. 그는 매일 살뜰한 며느리로, 남편을 성실히 내조하는 아내로, 아들들에게는 지혜로운 어머니로 인정받고 있다. 그 집안이 늘 청결을 유지하고 남자들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노라의 덕이다. 부모와 잦은 불화를 겪는 조카딸 ‘한나’도 그와는 말을 섞는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계속된다. 사랑하는 남편 ‘한스’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알아보는 노라에게 자신의 허락(permisson) 없이 취직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다. 노라의 시숙 ‘워너’가 딸 한나를 보호소에 보낼 때도 한나의 엄마인 ‘데리스’와 숙모인 노라에게는 이를 막을 권한이 없다. 집안의 문제는 가부장이 결정하는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This is law.'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사회의 관습법 앞에서 노라의 헌신과 재능은 한순간에 무가치한 것이 된다.


여성이 투표할 권리를 얻는다는 것

여성에게 투표용지가 주어진다는 것. 그건 단순히 선거 기간에 할 것이 생기는 것 이상의 일이었다. 투표는 시민이자 인간으로서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공적’으로 존재를 인정받는 상징적 의례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짧은 러닝타임에 노라와 그 주변 여성의 서사를 통해 세계 여성사의 격변기를 담아낸다.

17, 18세기 서유럽의 시민혁명이 품고 있던 ‘인간의 자연권’, 그것이 발명한 공공의 영역과 그곳에 참여하는 ‘시민’, 그럼에도 여전한 남성의 독무대. ‘그렇다면 왜 여성에게는 인간의 자연권인,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허용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예견된 역사였을지 모른다. 19세기부터 여성의 교육권, 재산권, 그리고 참정권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인 1971년 스위스는 그 모든 파랑의 현장이었다. “Women's Rights are Human's Rights!" 취리히 도심에서 당대 여성인권 의제들이 쏟아져 나오는 집회 장면이 이를 응축한다.


여성이 한 사람으로서의 시민이 되기까지

승리를 예견할 수 있는 영화는 짜릿하다. 인물의 절절한 시련을 마주해도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낙관을 놓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이미 알고 있으니 이 영화도 그러리라 짐작할 수 있겠다. 노라와 그 친구들은 인간으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게 될 것이다. 여성도 남성처럼 공적 영역에 진출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박수를 치며 영화관을 빠져나오려는 관객들을 다시 붙잡는다. 승리가 노출된 이후에도 러닝타임이 아직 남아 있다.

오늘날 참정권을 획득한, 남편의 허가 없이도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수많은 여성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 아직도 여성은 육아와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의무를 상기하며 일터에 나가고 있다. 성 경험이 많은 여성을 업신여기는 멸칭들이 여전히 무성하다. “애들 잘 챙길 거야.“ 일을 하고 싶다며 남편의 동의를 구하던 노라와, 마을의 잡배들과 난교를 하고 다닌다며 ‘공공자전거’라는 주홍글씨가 붙은 한나는 아직도 현재에 살고 있다.

“대체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노라는 “난 한 번도 오르가즘에 오른 적 없어!”라고 일갈한다. 언뜻 보면 동문서답일지 모를 대목이지만, 영화의 마지막과도 이어지는 이 장면은 우리가 마저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여성이 꿈꾸는 것은 남성성의 기준에 맞는 시민이 아니다. 공사의 영역이 무너지고 여성이 누군가에게 통제받지 않는 오롯한 한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영화가 끝날 것이다. <거룩한 질서>의 마지막 포커스. 행복에 겨운 노라의 표정이 언젠가 관객에게도 옮겨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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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가족, 다 알지는 못하지만


<지구별>, <가을단기방학>, <숨바꼭질>, <못, 함께하는>


정윤하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2일 금요일, CGV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진행되는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가 3일째를 맞이했다. 이날 오후 3시 경쟁부문 출품작 <숨바꼭질>, <지구별>, <가을단기방학>, <못, 함께하는> 등 4편의 영화가 연속으로 상영됐다. 이어 김진아(숨바꼭질), 박경은(지구별), 정가영(가을단기방학), 이나연(못, 함께하는) 감독이 참석한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이주현 씨네21 기자가 사회를 맡았다.




날것의 아이들을 그려낸 영화

네 편의 영화는 엄마와 이별한 이혼 가정의 자녀들을 그린다. 아동에게 ‘엄마 있음’을 정상성으로 요구하는 사회는 이혼가정의 자녀를 소수자로 내몬다. 미디어와 영화산업은 종종 여기에 편승한다. 구김살이 ‘의외로’ 없거나 무조건 있고, 일찍 철이 들거나 비행에 빠지는 표상에 아이들이 멋대로 담겨진다.


<지구별>에 재밌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내내 집에서 말대꾸 한 번 않던 주인공 ‘별이’가 낮잠을 자는 아빠에게 물세례를 내린다. 박경은 감독은 “친언니 같은 친구가 생겼으니까,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떠날 때 자녀들은 주눅이 든다. 그렇지만 매일 주눅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아니어도 아이들이 사랑을 배울 곳이 많다. 한 관객은 “<가을단기방학>의 연주가 친구들과 딱지치고 노는 모습이 참 명랑해 보였다”며 “극단적인 발랄함이나 슬픔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고 덧붙였다.




가족의 순간은 어렵게만 지나간다

입체적인 주인공이 돋보이는 영화지만 극영화 <숨바꼭질>, <지구별>, <가을단기방학>의 아이들은 어딘가 닮아 있다. 집에서 말수가 유난히 적다. <지구별>의 박경은 감독은 “표현을 최대한 줄였다”며 “사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나. 주인공 ‘별이’가 엔딩 전까지 아빠에게 외치는 대사도 ‘싫은 건 아빠잖아!’ 한 마디뿐”이라고 설명했다. <숨바꼭질> 김진아 감독도 “아내 폭력 현장에서 소은이가 할 수 있는 것도 옷장에 숨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부모와 친구, 자신을 둘러싼 무감각한 세계에 어린 아이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가을단기방학>의 정가영 감독은 다른 점을 꼽는다. “지금 그 때의 이야기를 풀다 보니 외로움을 깨달았지, 나도 그 시절은 순간순간을 지나보냈다”는 것이다. 제때 풀 수 있었을지 모를 일들이 쌓여 이별이 이루어지듯, 아이들에게도 가족의 순간은 어렵게만 지나간다. <가을단기방학>의 첫 씬이 책상에 엎드린 연주의 무표정인 것도 비슷한 이유다. 정가영 감독은 “연주가 울거나 내놓고 슬퍼하는 장면이 없다. 짜증을 표출하는 정도”라고 말한다. 비슷한 가족사를 가진 친구를 향해 ‘엄마 없다’는 뒷담화가 들려와도, 어느 날 찾아온 아빠의 여자 친구를 마주해도 연주는 짜증이 날 뿐이다. 어떤 괄시와 무심함이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것인지는 한순간에 다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서로를 생각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못, 함께하는>의 시간은 좀 더 길다. 영화의 시점은 세 자매가 엄마와 이별하고 6년이 흐른 현재를 가리킨다. 그동안 자매는 각기 다른 곳에서 부지런히 자랐다. 이나연 감독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때마다 찍어 뒀던 영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지나간 순간을 뒤늦게 떠올린다. 자매는 왕래가 적었던 아빠와 옛 얘기를 풀어나간다. 수 년 간 대면할 생각도 없었던 엄마의 입장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감독은 “선악의 구도보단 각자의 입장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미워하는 입장에서는 엄마가 악인이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그 입장도 있었음을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매는 엄마와 아직 ‘못’ 함께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랑 동생들과, 카페에서 아빠 여자친구와 영화를 한 번씩 봤다”는 감독에게, 씨네21 이주현 진행자가 가족들 반응을 물었을 때였다. 그는 “다들 울었는데, 그냥 밥 먹으러 가자며 어찌저찌 지나갔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관객들 모두가 지나온 유년기를 그린 상영이어서인지, GV가 진행된 한 시간 동안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이런 영화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는 진행자의 응원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네 감독 모두 행사 시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앞으로도 모두에게 쉽지 않은 가족을 들여다보는 작품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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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나누고, 싸우고, 이기는 ‘말하기’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말하기의 힘> 피움톡톡


린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2일,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말하기의 힘> 상영 후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영화 제목과 같은 ‘말하기의 힘’을 주제로, 재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국장과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나누었다.

<말하기의 힘>은 브라질에서 진행되었던 ‘말하기의 힘(FACES OF HARASSMENT)' 캠페인을 주제로 한다. 영화는 참여자와 촬영 장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26명의 여성의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영화에 담긴 증언은 일부고, 실제로는 140명의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으며, 이후에도 더 많은 여성이 캠페인에 참여했다고 한다. 영화의 구성은 무척 단순하다. 상영 시간 내내,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그 피해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털어놓고 자리를 떠난다.



간섭 없는 ‘말하기’

한 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울거나 말을 잇지 못하는 여성들을 보며 가슴이 아프기도, 내가 겪은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공간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저런 기회가 있었다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실컷 울 수 있었을 텐데 싶어 부럽기도 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그러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도 힘들었지만, 주변의 반응 역시도 상처가 될 때가 많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뭐 그렇게 사소한 거 가지고 그래?”, “왜 그렇게 예민해?” 같은 반응들.

피해자의 목소리로

피움톡톡에서는 많은 관객이 공감되었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한 관객은 “우리가 좀 더 쉽게 우리의 경험을 말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브라질 다큐멘터리지만, 한국 여성으로서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부분이 많았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한 관객은 “중간에 경찰관이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피해를 부정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최근에 국회의원이 ‘젠더가 뭐냐’고 질문했다는, 그런 이야기도 생각나며 겹쳐 보였어요. 경찰관이나 국회의원처럼 이런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젠더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교육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매 부소장은 “이 영화의 원제가 <FACES OF HARASSMENT>인데, 여기서 ‘face'라는 단어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민낯, 실체적 진실을 고발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는 질문에는 “저희가 2003년부터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열었는데, ‘말하기’를 위해서는 들을 사람의 존재, 태도, 그리고 들을 시간과 공간의 확보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라며 “요즘 드는 생각은, 듣기 참여자의 태도에 대해서 피해자가 ‘그렇게 들으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볼 가능성도 있겠다 싶더라고요.”라고 마무리했다. 한 관객은 “말하기에 어떠한 방식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듣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재 국장은 “스스로 자유롭게 피해를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더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영상 제작 공부 중이라고 밝힌 한 관객은 “요즘 보면 영화에서 성폭력을 묘사하는 장면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렇게 피해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오매 부소장은 “영화 등에서 피해자를 묘사할 때 역시 피해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담는 게 아니라, 이야기 맥락을 잘 살리는 노력, 즉 피해자의 존엄을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라며 피해자 자신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한 관객의 “말하기가 단순히 말하기로만 끝나지 않고 사회 변화로 이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재재 국장은 “해시태그 운동들도 그렇고 ‘말하기’를 아카이빙하고, 이 영화처럼 기록해서 사회 구조까지 지적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말은 끊임없이 부정되고 의심받는다. 그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라는 요구에 많은 피해자는 침묵 속에 갇히곤 한다. 영화는 그 침묵을 깨뜨린 결과를 보여준다. 오매 부소장은 “이 영화처럼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반성폭력 운동을 하면서 피해자에게 힘이 생겼다고 느낄 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해줄 때, 작게나마 이겼을 때 등 ‘이런 운동을 하길 잘 했다’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 순간을 위해 우리가 말하고, 또 듣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재재 국장은 “더 많은 사람이 ‘말하기의 힘’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피움톡톡을 마무리했다.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말하고 또 듣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 대신 힘 있는 말하기를 택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우리에게 그러한 변화를 향한 희망을 준다. 자리에서 일어서던 관객들의 모습에도 힘이 실린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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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당신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 <꽃피는 편지>, <페루자>, <여름의 출구>, <동백꽃이 피면> -

지원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1일 목요일, CGV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진행되는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가 두 번째 날을 맞았다. 이날 ‘피움 초이스’ 부문에서 강희진 감독의 <꽃피는 편지>, 김예영·김영근 감독의 <페루자>, 안정연 감독의 <여름의 출구>, 심혜정 감독의 <동백꽃이 피면> 네 개의 작품이 연이어 상영됐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는 남은주 한겨레 기자의 진행으로, 각 작품의 감독들과 <페루자>의 주인공 ‘페루자’가 참석한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들의 ‘보내지 못한 편지’를 대신하여 - <꽃피는 편지>


<꽃피는 편지>의 주인공 ‘금’과 ‘은’은 저마다의 이유로 북한을 떠나 남한 땅을 밟았다. 북한에서 녹록하지 않았던 생활 형편을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 도전' 삼아 고향을 떠나온 ‘금’과 남한에서는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주저 없이 월남을 결정한 ‘은’. 남한의 현실 또한 팍팍하고 경쟁은 치열했지만, 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사람을 만나며 행복한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이들에게 ‘새터민’이란 이름을 붙일 때, 이들의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단순하게만 바라봤던 건 아닐까. 이 다큐멘터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꽃피는 편지>의 강희진 감독은 “‘꽃피는 편지는 북한 이탈 주민의 수기를 보고 따온 제목"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작품을 만들면서, ‘정착해야 할 사람’의 눈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포용력이 있는 공간인가를 고민하게 됐고, 실제로 꽃이 펴야 하는 건 정주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 - <페루자>

<페루자>는 신혼여행으로 세계 일주를 떠났던 부부가 에티오피아의 외딴 마을에서 소녀 ‘페루자’를 만나고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인터넷은커녕 주소도 없는 오지 여행지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익힐 정도로 총명했던 페루자. 에티오피아의 ‘조혼 풍습’과 가부장적 문화는 과거에 그녀와 그녀의 엄마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페루자가 꿈꾸는 자유로운 ‘미래’ 또한 가로막으려 한다. 하지만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공부하고 싶은 그녀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예영 감독은 작품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 “한국에 돌아온 뒤 페루자와 영상 통화하는 장면”을 꼽았다. 감독은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올 때 페루자를 두고 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페루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녀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안도감, 뿌듯한 감정을 전했다. 이 자리에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페루자도 함께 했기에 더욱 특별했다. 올해 스무 살이 되어 대학 생활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에게, 비슷한 시기에 꿈에 대해 고민하는 20대 관객들의 질문이 있었다. 페루자는 “한국에 온 것 자체로 꿈이 이뤄졌다기보단, 이분들(김예영·김영근 감독)을 만난 뒤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졌다는 점에서 이미 꿈을 찾은 것 같다"고 답했다. 많은 관객의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에 페루자는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을 했지만, 용기 있는 페루자의 모습에 그 자리의 관객들은 되려 꿈을 꿀 힘을 얻어가지 않았을까.


백번의 망설임뿐일지라도 - <여름의 출구>

여름은 덥다. 나의 ‘지금’이 너무 갑갑하고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그 더위는 더욱 괴롭기 마련이다. <여름의 출구>에서 건물 미화원 ‘현자’를 둘러싼 세상이 그렇다. 집은 수도가 끊기고, 부당 대우를 모른 척 넘어가라는 회사의 회유는 나날이 심해진다.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 세상을 떠난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회사에 맞서 같이 싸우자는 동료 ‘경화’의 목소리로 ‘현자’의 마음은 복잡하다. 세상에 처음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한다면, 누구나 ‘현자’처럼 숨 막히는 여름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 않을까.


<여름의 출구>에선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인 중년 여성의 ‘망설임'이 느껴진다. 안정연 감독은 “아무리 극영화라 해도, 급작스러운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며 인물의 심경이 천천히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작품 내내 나타나는 ‘현자’의 망설임에 대해 “막상 직접 해보면 곧잘 할 수 있음에도,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은 무언가 시도해보는 걸 두려워하도록 자라왔다"고 설명하며 영화의 주제를 풀어갔다. 어떤 선택이 ‘현자’가 겪는 지난한 여름을 끝내줄 수 있을지는 단정 짓기 어렵다. 다만 마침내 그녀가 두려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에, 그 길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 <동백꽃이 피면>

<동백꽃이 피면>의 ‘연화’는 동백꽃 하나가 떨어진 어느 날 이모의 부음을 듣게 된다. 다소 담담해 보이는 ‘연화’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이모를 두고 온갖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자 그녀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모가 어떤 삶을 살았다 한들, 그 삶에 대해 함부로 평가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을까. ‘연화’는 이모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이모와의 작은 기억, 이모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이모가 좋아했던 동백꽃을 떠올린다.


심혜정 감독은 “‘이모'는 “사랑을 따르며 살았던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작품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사랑을 막고 있는 낡은 권력과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동백꽃-‘연화’의 생리혈-이모의 빨간 잠바로 이어지는 ‘붉은 이미지’는 ‘연화’가 이모의 삶과 사랑에 교감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연화’의 아버지는 이모의 사랑을 질타하고, ‘연화’의 남편은 ‘연화’가 이모로부터 전이되는 사랑을 방해한다. 자신의 삶과 사랑에 ‘지나치게’ 솔직한 여성은 주변으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게 되며, 왜 그런 시선을 받아야만 하는가? 작품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네 편의 작품은 누군가의 지난 생애를 다시 읽게 하고,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길법한 ‘타자’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가져오기도 한다. 더불어 그녀들이 꿈꾸는 ‘미래’를 함께 응원하며 작품을 보는 ‘나’의 삶에도 용기를 불어넣는다. 위의 상영작은 9월 24일 일요일 12:00에도 만날 수 있으니 많은 관심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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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너무나 가벼워 보였지만실은 사소하지 않았던

11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작 <손의 무게> GV 현장

린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1일,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에서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작 <김장>, <손의 무게>, <미열>이 상영되었다. <김장>은 성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이 김장을 위해 할머니댁에 갔다가 다시 가해자인 이모부와 마주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손의 무게>는 고등학교 여학생의 자살을 중심으로, 데이트폭력을 현실적으로그려내는 영화이다. <미열>은 오래전 성폭력을당한 여성이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겪는 고통을 다뤘다. 이렇게 세 영화가 연달아 상영된 후, <손의 무게>의 이수아 감독과 슬아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이함께한 영화제 첫 GV가 진행되었다.

 


숨겨진 진실, 그 속의 폭력

<손의 무게>는 행복해 보였던 소미와 지훈 사이에 사실은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는 몇 가지 장면과 대사를 교차시킴으로써 데이트폭력이 쉽게 은폐되고 피해자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끝난 후 GV가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영화 구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첫 번째로 질문한 관객은왜 주인공을 청소년으로 선정했는지 물었다. 이에 감독은 “학교라는공간의 특성상, 굉장히 좁고 모든 사람이 작은 일이라도 서로 다 알게 되는 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고싶었다”고 답했다. 데이트폭력 가해자인 지훈을 왜 모범생으로설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꼭 평소에도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훈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계속 나왔는데, 감독은 “지훈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슬아 활동가는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에게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변명이 ‘사랑해서그랬다’는 건데, 지훈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서 스스로가 잘못했다고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고 덧붙였다. 감독은 “지훈은 여자친구가 죽은 걸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그것 역시도 ‘사랑의 기억’으로 포장하는 겁니다.”라고말을 이어갔다.

 

그건 로맨스가 아니야

영화에서 시사하려던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객의 질문에 감독은 “데이트 폭력이 나쁘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지만, 우리 주변에서 정말흔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해자와 주변 사람들 모두 지금 일어나는 일이 데이트폭력이란것조차 인식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데이트폭력은 여러 형태의 폭력 중에서도 사랑으로 포장되기쉬운 폭력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달콤하게 들리는 말들이 사실은 무서운 집착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고도 덧붙였다.

 

현실 속의 데이트폭력

영화가 무척 현실적이어서 공감하며 봤다는 반응도 많았다. 한 관객은 “요즘 청소년들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이 저희 때와는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속 소미의 주변 사람들이 소미의 행실을 탓하는 걸 보니 저희 때와 크게 달라진게 없는 것 같아 놀랐습니다.”라며 이러한 현실이 바뀌려면 어떤 개선 방안이 있을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감독은 “남자친구가 나에게 해코지할지 모른다, 주변에서 나를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며 “친한 가족이나 친구조차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말을 연애하면서생기는 푸념이나 행실을 잘못해서 일어난 일로 치부하는데, 이런 분위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더 두려워하는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슬아 활동가는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가 정착한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더 개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마무리했다.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는 데이트폭력을 ‘사랑하니까 연인 사이에서 흔히 있을 수있는 일’로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시각으로 인해, 분명히폭력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폭력을 폭력이라고 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아주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도 많은 데이트폭력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딘가에 소미와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소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관객들은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수아 감독과 함께 데이트폭력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사회적 인식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 내 주변에도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묻어 버린 폭력이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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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성별 이분법을 시원하게 박살내는 언니들

<부치:젠더 질서의 교란자> 피움톡톡


명희수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여성이 스스로를 진정 여성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이 많아. 여자란 건 무슨 의미지?

<부치:젠더 질서의 교란자>에는 4명의 부치가 등장한다. 체크셔츠와 짧은 머리 그리고 적극적인 태도로 대표되는 부치들은 젠더 질서에 교란을 준다. 남성의 특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전유하면서도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부치는 다양한 의심을 받는다. 남녀 이분법의 질서를 위반하고 도전하는 이들의 삶에 사람들은 “남성 흉내를 낸다”, “트랜스젠더가 분명하다” 등 편견 섞인 말을 던진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부치들은 그 오해와 편견들에 대답하며 또 다른 교란을 가져온다. 그 재치있는 대답은 결국 남녀 이분법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위선적인지 고발한다.

여성인권영화제 첫날의 마지막 작품은 <부치, 젠더 질서의 교란자>였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관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피움톡톡의 끝까지 함께했다.

이날 ‘피움톡톡’에는 김순남 성공회대 교수와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정이 패널로 참여했다. 정은 “당사자로서, 오늘 피움톡톡을 위해 체크무늬 셔츠도 준비했다. 관객 분들을 보니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는 말로 피움톡톡을 시작했다.


화장실만이라도 좀 편하게 가고 싶다

진행을 맡은 정은 “영화에도 나왔듯이, 많은 부치들이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에 애로사항이 있다.”며, 우선 관객들의 개인적 경험을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 관객은 “저는 워낙 편한 것을 좋아해서 머리도 항상 짧게 유지하고 옷도 크게 입고 다닌다. 원래는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얼마 전부터는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여성분들이 저를 보고 놀라더라. 이전까지는 여성성, 남성성의 이분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에 무관심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제 경험을 떠올리자 ‘그것도 차별이고 억압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연관되어,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관객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알릴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김순남 교수는 “사실 여성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사회에서 성중립화장실을 도입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선, 여성과 남성을 그저 분리하는 것이 과연 완전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질문해 봐야 한다. 누가 봐도 여성으로 패싱이 불가능한 부치들이 산부인과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밖에서 화장실을 갈 수가 없으니, 무조건 참다 보니 병이 나는 거다. 분리를 통해 안전성을 획득하려고 하면 그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공간이 전혀 안전할 수 없다. ‘안전’을, 그 안전을 정의하는 권력을 다시 상상하고 질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남성성을 체현하는 여성의 ‘불연속적인 삶’

한 관객은 “영화에서 젊은 부치와 나이든 부치의 연결, 부치로 살아가는 노하우 이야기가 나온다. 혹시 이런 부분을 공유해 주실 수 있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정은 “부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적으로 적기도 하지만 미디어에서 가시화되지 않고, 정보도 없다 보니 세대 간 연결이 어렵다. 혹시 부치들의 삶이 조명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를 함께 질문했다. 


김순남 교수는 '부치‘라는 정체성의 교차성을 이유로 꼽았다. “중산층 이상 계급의 직업을 가지려면 직장에서 특정한 젠더 표현을 요구한다. 현재 60대가 된 부치들 중 계속 기계공, 전기공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이 처음 직업을 구할 때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은 경리 등 ’여성적 외모‘, ’여성적 태도‘를 요구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 분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나이든 여성의 삶을 조망할 때 아무래도 전문직, 중산층의 모습올 보여 주려고 하다 보니 비전문직, 노동계급 여성들의 삶은 다시 한 번 소외된다. 영화에 소개된 사례의 경우에는 인종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에서는 청소년기의 여자아이가 ’남성적‘ 특성을 보일 경우에는 그 행동을 교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여성이 남성성을 전유하려고 하면 굉장이 불편해하고, 행동을 교정하려고 한다. 어떠한 기존의 질서가 계속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고 누군가의 행동을 교정해야만 온전히 유지될 수 있다면 그 질서가 누구의 권력에 기능하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며 ’남성성‘과 ’여성성‘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음을 환기했다.


내가 나로서 안전할 수 있는 공간

김순남 교수는 “결국 이 영화는 ‘나다운 것’에 대해 말한다. 각자 스스로답게 살고 싶어 하는데, 왜 특정한 외모나 특정한 행동 양식은 사회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가. 규범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 그 삶에서 얻어지는 가치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정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국에도 부치들끼리 이야기할 수 있는,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며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언니들을 한 번 이겨봐야 하지 않겠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끝나고 연락 부탁드린다.”고 피움톡톡을 마쳤다.

‘결국 이 영화는 나다운 것에 대해 말한다’는 김순남 교수의 말처럼, 사실 ‘부치’라는 단어도, ‘남성적’이라는 수식어도, 이들의 정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시도들도 결국 ‘나답게 사는 삶’이라는 키워드 안으로 융합될 수 있다고 느껴졌다. 젠더 질서를 교란하고, 사회의 공고한 성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균열을 내며, 매일 화장실 가기를 불편해하는 모든 부치들이 함께 이 영화를 보고 공감과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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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