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까지

- 픽션 <열정의 끝>, 애니메이션 <집에 오는 길> -


류희정


 <열정의 끝>, 10대의 자신의 세계. 그녀의 사소하지 않은 열정을 만나다.



 주인공 미란은 체육대회 단체 줄넘기를 연습하다가, 자꾸만 줄에 걸린다. 연습을 감독하던 담임선생님은 더 잘하는 반 친구와 그녀의 자리를 바꾸기를 원한다. 순식간에 그녀의 자리를 뺏겨버린 미란은 더 잘할 거다, 연습해오겠다고 말한다. 학교가 끝나고 미란은 매일같이 줄넘기 연습을 한다. 이전보다 그녀의 실력은 빼어나게 늘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단체 줄넘기의 걸림돌이었다. 담임선생님은 그녀의 종목을 바꾸라고 권유하다, 이내 화를 낸다. 선생님의 눈에 미란의 줄넘기는 ‘고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녀 탓에 반 친구들은 좋은 줄넘기 성적을 거두지 못할 거고, 이는 곧 체육대회 전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줄넘기는 과연 ‘고집’이었을까. 미란의 세계에서 줄넘기는 분명 ‘열정’의 조각이었을 것이다. 10대 소녀인 미란의 세계는 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학교,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 학교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욕심들. 학교가 전부인 10대 소녀에게 그것은 동시에 그녀의 세계가 된다. 그 속에서 단순한 ‘줄넘기’라는 행위는 학교 내에서-그 세계의 중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가 된다. 그녀가 매일 밤 줄을 넘을 때, 좌절했던 그 날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한 걸음씩 나아간다. 비록 타인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한 ‘넘기’일지라도, 그녀 자신에게는 스스로를 넘어야만 하는 가장 열정적인 행위-‘열정의 끝’이었던 것이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없는 단체 줄넘기와 체육대회가 시작하면서, 줄넘기에 대한 열정은 ‘끝’이 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한없이 줄을 넘으려고 했던 미란이라면, 또 다시 그 좌절의 벽을 넘어서는 열정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그것이 소녀가 소녀 자신의 세계에서 나아갔던 법이기 때문이다.


 <집에 오는 길>, 20대 그들의 세계. 일상적인 것들에 치여 사는 그녀의 세상을 사랑하다. 



 서울에는 수많은 단칸방이 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 단칸방에서 청춘을 시작했던 세대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있다. 대학은 졸업했고, 새로운 일자리도 구했지만 여전히 단칸방 인생이다. 이렇게 사는 청춘이 이 집, 저 집 서울의 야경을 채우는 불빛만큼이나 가득하다. 

 20대 주인공의 삶은 그 청춘의 삶 중에 하나의 모습이다. 팍팍하다. 작은 방에서 시작해서, 더운 날 볕 아래서 인형탈을 쓰고 홍보 아르바이트를 한다. 출근길에는 그런 일상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닥친다. 타인의 시선에서 그녀의 삶은 어쩌면 초라할지도 모른다.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했다는 그녀는 취업난 속에서 마케팅이라고 말하는 홍보 아르바이트를 한다. 꿈은 한 뼘 접혔고, 그럼에도 아등바등 살아가야만 하는 서울이라는 땅 위에서 그녀는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영화를 보고서 10대에 꿈꾸었던 20대의 모습은 어땠을까. 주인공에게도, 내게도 묻고 싶어졌다. 아마 지금의 모습보다는 더 위풍당당하고 화려한 삶이었을 것 같다. 10대 시절 책상 앞에서 꿈꾸던 것들을 직접 이루어내고, 주목받는 멋진 어른. 그러나 잘 알고 있다. 내 삶이 그렇지 않은 것을.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조금씩 생활비를 쓰고 나면, 모아둘 푼돈 하나 없이 한 달 한 달을 지내 가는 삶, 취업 준비에 막막해서 미래를 그려보기 힘든 삶. 

 그러나 주인공은 그 날 일상을 마치고서, 들어선 집에서 말한다. “그래도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해.” 타인의 눈에는 빛나지 않는 것들만 가득한, 치열한 우리네 20대의 삶을 그녀는 포근히 쓰다듬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물을 벗은 그녀의 말이었다. 출근길 사람 가득한 서울의 지하철도, 더운 날 고생에 살이 빠져서 일석이조가 되었다는 그녀의 일자리도, 단칸방 작은 그녀의 공간도 사랑한다고. 

 처음 20대의 삶을 만났을 때, 그녀도 그 때의 나만큼이나-혹은 그보다 더 크게 좌절했으리란 걸 짐작할 수 있다. 10대의 우리들이 꿈꾸어왔던 세상과 실제 세상은 너무도 달랐으니까. 하지만 그 꿈의 한 꺼풀을 벗겨내고 만난 삶과 보금자리는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만큼이나 소중하고, 아리도록 아름답다. 

 그것은 그녀의 삶이고, 동시에 우리네 20대의 삶이다. 10대의 당신이 끝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데에 열정을 쏟았다면, 한없이 달려온 20대의 당신에게는 따뜻한 위로 한마디를 던져도 좋을 것 같다. 이젠 자신의 세계를 충분히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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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성폭력의 사회적 배경과 개선의 방향

-<7년간의 투쟁>-

스티어 프레드릭

 



범죄가 한 사건일 때는 개인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반복적으로, 한 단체 중심적으로 향하거나, 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시회적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학대를 당하는 아이를 돕고자 호주에서 온 봉사활동가인 샬롯 켐벨 스테판 (Charlotte Campbell Stephen)이  케냐에 도착한지 2개월만에[각주:1] 당한 집단 강간은 하나의 단일 범죄였다. 그러나 강간, 아동 성 학대와 기본적 생활의 필수품을 얻기 위한 생존 섹스 (survival sex)를 포함한 케냐에서의 수많은 성폭행 사건들을 모두[각주:2]살펴볼 때,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재판 때 한 피고 측 변호사가 증거물을 숨기거나 바꾸는 행위는 법정 모독이자 사법 방해죄였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면허를 잃거나 재판에 제외조차 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포기하도록 지속적으로 재판을 방해할 수 있었다는 체계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는 샬롯이 대처해야 했던 상황이며, <7년간의 투쟁>은 그의 투쟁을 다루면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나이로비의 빈곤한 근교에서 사는 케냐의 여성의 이야기도 해준다. 이들의 재판이 진행되지 못하게끔 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소가 있음은 물론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계속 방해되고 연기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새로운 판사에게 욺겨지기도 하고 재판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때도 있다. 피해자들이 또 다시 증언해야 하며 또다시 지독한 비극을 재경험해야 한다는 의미다. 케냐의 재판 절차가 기본적으로 느린 게 아니라,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재생하면서 절망을 느끼고 포기하게 하는 피고측의 의도적인 전략이 과정 내내 개입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방해들이 너무나 많아서 샬롯이 집당 강간을 당했음을 신고했을 때 경찰은 “케냐에서 강간 사건 재판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실은 케냐에서 강간을 당했더라도 대부분의 피해자는 신고조차 하지 않고, 신고해서 가해자를 기소하더라도 그들이 증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샬롯은 포기하지 않고, 정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기로 했으며 증언 과정에서 가해자를 직접 대면함으로써 많은 피해 여성에게 희망을 주었다.

<7년간의 투쟁>은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시작한다. 샬롯은 범죄 장소에 다시 돌아가서, 8시간 동안 남자 4 명한테서 강간을 당했던 침대에 다시 누워서 그 경험을 상세하게 진술한다. 다른 피해자들과 탈출하는 과정에서 살해도 당할 뻔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섬뜩했는데도 카메라 앞에서 끔찍한 범죄를 재생하면서 사실 대로 털어놓은 침착한 말투에 나는 참 놀랐다. 그리고 그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사소해보이는 일들이 나에게 제일 충격적이었다. 예를 들어 가해자 중에 한 명이 십자 목걸이를 쓰고 있었는데, 샬롯은 그 목걸이를 잡고 좀 전에 총을 입 안에 넣었던 가해자에게 “너는 무슨 기독교 신자이냐”라고 고발하면서 계속 도전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이 다큐멘터리는 샬롯의 집단 강간 사건 재판을 중심적으로 다루었으나 강간에 대한 고발과 처벌을 방해하는 법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탐구를 하기도 하며 깡패 예방 세미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 단체, 주민을 위한 법 설명회 등 사회 발전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가의 이야기도 다룬다. 범죄와 얽힌 사회 배경에서부터 뇌물, 부패, 그리고 법적 전략까지 여러 단계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7년간의 투쟁>은 이 문제를 대처하고 정의, 개혁, 그리고 평등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케냐라는 공동체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7년간의 투쟁> 상영 후에 관람한 미국의 학내 성폭력을 다루는 올해의 개막작인 <헌팅 그라운드>, 그리고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가정폭력에 대한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을 같이 보면 여러 공통점을 살펴볼 수 있다. 여러가지의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각주:3] 차별적 상황에서 여성은 더 많은 피해 입기도 한다는 것, 또한 이 상황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해결하기에 어떤 방해들이 있는지를 고려하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몇 가지 단계를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법의 문제들이 있다. 이는 부당한 사건을 예방하는 법률, 또한 사건 발생시 처벌 법률이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률 혹은 그런 법을 시행하는 기관이 비효과적이거나 아예 부재하는 상황들이다. <7년간의 투쟁>에서 나오는 운동가에 의하면 케냐에는 상당히 강한 성범죄처벌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피고측 변호사를 증거물을 반납하지 않거나 기록을 바꿀 때 고발되지 않는 것과 같이 재판 절차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다. 이 변호사는 자꾸 재판에 몇 시간 씩 늦게 도착하지만 재판에서 제외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7년간의 투쟁>에서 집단 강간 범죄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대신 '무장 강도'를 근거로 유죄가 결정됐으며, 무장 강도는 사형으로 처벌되지만 (자동적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강간은 최대 20년 징역이데다가 실제로는 2년 징역이나 봉사활동 같은 아주 경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개혁이 필요하더라도, 강간 범죄를 고발하고 처벌하는 법률 제체와 기관이 존재한다. 한 운동가는 성범죄처벌법의 힘을 강조했으나 누구도 신고하지 않고 법이 시행되지조차 않으면 어떤 법률이 아무리 강해도 무력한 법률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불평등의 두 번째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즉 법 실행의 문제이다. 경찰이 피해자의 케이스를 무시하거나, 신고를 기록하는데도 범인을 잡거나 증거를 찾지 않는 경우도 있다. 뇌물, 부패 그리고 특히 노동 문제에 포함된 보복이나 블랙리스트도 이 단계에 포함된다. <7년간의 투쟁>에서는 샬롯이 만난 모든 경찰, 기소측 변호사, 그리고 판사들이 성실하고, 정의로운 존재로 묘사되지만, 다른 사람이 같은 상황에 빠져 있을 때에는 경찰소에서 신고를 받아주지 않거나, 가해자가 경찰이나 군인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정치 기관이 없다는 사건이 흔히 언급된다.

그러나 강간 범죄를 신고하기 힘든 이유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해자임을 알게 되면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경우도 많다. 어떤 피해자들은 피해자인데도 자책하기도 하고 강제로 당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명예로 받아들이기도 하다. <7년간의 투쟁>에서는 그러한 문제들이 자꾸 언급된다. 많은 피해 여성들이 부끄러워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임을 알게 되면 다시 성폭력을 당할 확률이 높아지는 게 끔찍하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독하고 비극적인 것은, 때로는 가해자가 가족이라면 가족 내에서도 신고하는 것을 막는다. 비뚤어지게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해자를 보호하면서 (주로 여성인)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운다. 그러나 케냐뿐만 아니라 <헌팅 그라운드>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학교의 명예 혹은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해서 교직원들 그리고 다른 학생까지도 피해자를 탓하고 위협하기도 한다. 가해자는 더욱 더 심했다. 법적 제도가 아무리 발전되었어도 이러한 문화적인 요소는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하게끔 하는 꼭 바꿔야 하는 문화다.

각 단계에서의 자세한 문제는 각 문화와 법적 제도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를 살펴보면 운동가들이 더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화에서 비롯된 불편등을 법적으로 해결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불평등에 대한 문화적, 대중적인 반발이 강할 때 관리할 법적 제도가 없으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7년간의 투쟁>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한국에 거주하는 백인으로서 흥미롭던 점은, 샬롯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선택해서 소수민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모국을 떠나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법원이나 수업에서 영어를 사용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곳, 그리고 특히 샬롯이 근무하는 빈곤한 근교에서, 스와힐리어를 사용한다), 도처에 보이는 소수민족되고, 그리고 케냐처럼 생활 수준에 큰 차이가 나는, 나라로 이동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다. 한 장면에서 샬롯은 양이 많고 멀리서 보이는 언덕이 있는 들판에 앉아 있다. 그 경치를 보고 진정하고, 안심을 느끼고, 다른 데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감정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던 감정이었다. 봉사활동, 즉 이타적인 의도로 케냐로 갔는데도 2개월만에 집단 강간을 당하게 됐단 사실을 살펴보면 그녀는 케냐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인상적이다. 케냐를 원망하지 않고, 빈곤, 억압, 그리고 차별에 시달리는 케냐의 사람들을 계속 도우려고 노력한다. 너무나 괴로운 상황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투쟁해서 자신의 고통을 용기와 힘으로, 자신의 개인적 비극을 사회적 희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불만족스러운 점이 없지는 않다. 특히 민족간의 관계를 충분히 탐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고측 변호사는 인종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비난했다고 샬롯을 단 한 번 (거짓으로) 고발했고, 케냐 여자들은 백인 여자도 강간 당할 수 있음에 놀랐단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 외에는 인종 차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대중, 법체제가 부당한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샬롯을 계속 지원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와 다르단 점을 살펴보면 샬롯이 (상대적으로) 돈이 많은, 백인 호주 주민인 여성이기 때문에 다르게 취급하지 않았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피부보다도 경제적으로 강대국인 호주 (이 다큐멘터리를 지원한 나라) 에서 왔다는 게 더 중요했을 수도 있지만 <7년간의 투쟁>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분명히 다큐멘터리가 이슈에 접근하면서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 방식은 케냐 사람을 타자화할 위험을 적게 만들기는 하지만 교수와 민권 운동가인 미셸 알렉센더 (Michelle Alexander)가 주장했다시피 탈인종화된 (post-racial) 사회가 되고 싶은 목적만으로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7년간의 투쟁>은 전반적으로 잘 촬영한, 생각하게 만드는,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인 샬롯은 지독한 경험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정의를 이루고자 부당한 제체와 끝까지 투쟁하는 강하고 대단한 인물이다. “강간 사건 재판에 이기는사람이 없”는 나라에서 샬롯 켐벨 스테판은 불가능한 것을 실현했으며 그녀의 성공을 통해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수많은 피해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이 다큐는 재판을 다루는 것 외에서도 전염병인 강간을 허락하는 사회 배경을 탐구하기도 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조직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7년간의 투쟁> 은 문제를 파악하는 뿐만 아니라, 개선 방향을 제공하고, 무엇보다도 희망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1. Davey, M. ‘I will not be silenced’: fight for justice that gave Kenyan Rape victims a voice The Guardian 2015/03/12 [본문으로]
  2. 영화에 나오는 한 성폭력 예방 수업에서 아는 사람 중에 강간을 당한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모른다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본문으로]
  3. 여기서 정의롭지 못한 상황은, 범죄나 피해 그자체보다도 범죄를 고발하거나 피해를 보상하지 못하게 하는 불평등하고 부당한  체계에 대해서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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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아버지를 통해 가족사를 직면하다

- <아버지의 이메일> 감독과의 대화 -

 

 

1110일 여성인권영화제에서는, 폐막식을 진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이메일>을 상영했다. 아버지의 다사다난했던 역사들을 아버지가 보냈던 이메일을 통해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가 끝난 후, 이 영화의 연출자 홍재희 감독님과 송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가 감독과의 대화에 참가하였다.

 


 

 

Q)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영화의 아버지와 조금 비슷한데, “나는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께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A) 감독 : 용서에는 100%란 말을 쓸 수 없다 생각해요. 사람마다 온도차 있기 때문에. 다만 다큐를 만들면서 아버지라는 존재 또는 우리가 가부장제라는 제도 하에 살고 있으니까 특히나 대한민국을 이루는 사회가 남성에게 가부장이라고 하는 의미를 멍에로서 과하게 부여하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부양이나 양육이라는 것이 남성에게만 부여되는 것만이 아닌데 그게 한국사회에서는 가부장적인 또는 유교의 어떤 남성의 책임감으로 과중하게 부여가 될 때 거기서 실패하고 낙오된 남성은 마치 남성의 자격이 없는 것처럼 스스로 탓하게 되거나 자책하면서 정체성마저도 위협받는 상황까지 간 것이거든요.

 

제 아버지라는 한 사람을 떠나서 보편적으로 일반적인 의미의 사회 구조적문제를 인식하게 되면서 제 아버지를 아버지로서의 증오나 미움이아니라 한 인간, 한 남성의 이야기로서 이해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용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 이해는 머리랑 가슴으로 할 수 있지만 용서는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다르게 온 것 같다. 용서는 다큐를 만들면서 이메일의 행간을 읽어나가며 서서히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

 


 

Q) 아버지가 만약 살아 계시고 술을 마시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생각하면 감독님은 아버지께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A) 감독 :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아버지 같이 먹읍시다.”라고 얘기할 거예요. 지금은 그럴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아버지가 낯설고 멀고 어려운 존재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맞술을 먹어도 지긋지긋함을 느끼거나 환멸을 느끼는 것이 아닌 노인분과 같이 대접을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예전에는 가족 중 아무도 아버지와 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있으신 관객이라면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계속 봐야 할 때 생겨나는 무관심?’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 도피나 회피의 방식으로 철저히 무관심이 되는 상황을 아실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마지막에 말년의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것이 과거와는 달리 대화하고자 하는 요청이었을 수 있는데 아버지 당신도 타인과 피를 나눈 가족과 대화하는 방식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자신이 아닌 가족 또는 여성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집안에서 철저히 좀비나 시체 혹은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죠.

 


 

 

Q) 다큐의 재연장면에 본인이 직접 나오시기도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재연장면들을 어떻게 기획하셨고 어떤 생각이셨는지 궁금합니다.

 

A) 감독 : 다큐라는 게 현장성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상황을 재현할 때 사용한 방법이 재연이라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진정성이 깨진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렇게 가야겠다는 확신 아닌 확신이 있었던 이유는 이 이야기가 아버지의 인생이기도 하고 그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세대의 이야기기도 하고 억압받고 살아온 여성의 이야기기도 하고 집안에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자로 군림하는 남성의 이야기기도 하고요. 그 가해자인 남성 역시 시대의 한 희생양이자 피해자라는 이야기기도 하고 그 세대 자식들의 이야기기도 하고. 제 자신의 이야기기도하고. 내 가족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기 때문에 내 자신을 직면해야 된다는 생각에 내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촬영감독이 연기가 어색하다고 하긴 했지만 저는 그렇게 대답했죠. 나 연기가 안 된다고!” 이 상황은 내가 감독으로서 재연하고 있는 이 상황은 홍재희라는 이가족의 딸로서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없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찍어 달라 라고 말했었죠. 결과적으로는 내 자신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저를 남처럼 타인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저의 가족사조차도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송란희(여성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 아버지의 이메일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좋아했는데, 이 꼭지가 피움 줌아웃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있는데, 개인의 일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미뤄서 두고 보면 보편성이 획득된다. 그럼 본질을 명확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항상 개인이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개인이 구성되는가. 거기서 개인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변화시킬 수 있는가 혹은 좌절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감독님의 영화가 이 메시지와 잘 부합했다고 생각한다.

 


 

Q) 아버지가 인터넷을 배우게 된 계기는? 

 

A) 감독 : 첫 번째로는, 아버지가 기록하시는 것을 부단히 해오셨는데, 어머니께서 그걸 계속 버리셔서 이메일로 저에게 보내려고 배웠던 것 같다. 두 번째로는, 동생이나 내가 갈 때마다 아버지께서 인터넷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는데, 귀찮아서 핀잔을 줬더니 앞으론 부탁을 하지 않으시더라. 나중에 고교 동창을 인터뷰 하려고 갔었는데, 구청의 컴퓨터 교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세 번재로는, 재개발 비대위때 아버지께서 혼자 사무실에 남으실 때가 많았다. 그 장소에 컴퓨터가 한 대 있었는데, 이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을 또 공부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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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아버지의 이메일]

용서는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객관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나의 아버지를 정의해 보자면 대략 이렇다. 전쟁을 겪은 부모님 세대를 위로하고,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주역이었으며, 근면 성실한 태도로 자녀들을 부족함 없이 부양한 베이비부머 세대. 그러나 개인적이고 감정적으로 그를 바라보면 어느 새 자랑스러운 한국사회의 주역은 미움의 대상으로 바뀐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아버지를 무척 미워했고 사이도 좋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아예 아버지를 망각해 버리고 말았는데 그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까닭이다. 그의 기일마다 별 수 없이 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려야 하긴 했지만 제사가 끝나고 나면 나는 다시 내 기억을 봉쇄해 버렸다. 불편한 마음을 상기하기 싫었고 망각은 여러모로 편리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이런 망각의 늪에서 끌어올린 것이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이다. 딸이 아버지의 죽음 후 그가 보낸 43통의 이메일을 통해 아버지의 인생과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형식의 이 영화에는 내 아버지와 같기도 다르기도 한 또 한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공부를 하겠다며 이북에서 목숨을 걸고 월남한 이래, 그 한 개인의 인생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파병, 중동건설 붐, 88올림픽, 그리고 재개발 붐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흘러간다. 북한에서 월남한 아버지의 부친이 다섯 번의 재혼을 거듭한 덕분에 아버지는 계모들의 모진 구박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것도 모자라 20대 청년이 된 아버지가 사업에 크게 성공하자 계모는 소송을 냈고 이것은 그의 첫 성공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베트남 파병에 자원하여 경제적 재기를 꿈꿨으나 때 이른 철수로 실패했고, 사우디에서 일하며 호주로의 이민을 시도하지만 아내 집안으로 인한 연좌제 때문에 그 시도 역시 실패하고 만다. 이렇듯 계속되는 실패에 낙심한 그는 방에 앉아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해 버린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술을 마셨고, 아내와 자식들을 폭행했으며 직업을 갖지 않음으로써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내던진다. 그리고 알콜중독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이렇듯 영화는 한 개인과 국가의 역사를 촘촘히 엮으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이 세밀하게 잘 짜인 내러티브 덕분에 영화는 개인과 역사, 가장과 인간 존재, 남자와 아버지 사이를 오가며 풍부한 결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훌륭한 아버지이기는커녕 지탄받아 마땅한 나쁜 아버지가 분명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인 딸은 물론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버지가 보낸 43통의 이메일 때문이다. 그 이메일들은 이 구제불능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진실, 혹은 속마음을 우리로 하여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만드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글로 표현되는 이메일이 아버지라는 곤혹스러운 존재와 직면하는 데에 완충제 역할을 하는데, 거리두기의 방식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를 좀 더 객관화 시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점점 감독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메일들을 통해 그가 비록 수십 년간 가족들을 괴롭히는 무능한 가장이었고 가해자였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 현대사라는 풍랑에 휩쓸려 희망을 거세당한 채 살아야 했던 피해자이기도 함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역시 아버지의 이메일이 보내 온 화해의 손길을 담담하게 잡아주려 하고 있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바라본다면 조금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 나는 내 깊은 무의식 안으로 구겨 넣었던 아버지를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그랬기에 용서는 기억하기에서 시작된다.”는 영화 속 내레이션은 특히 가슴을 울렸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용서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안에서 아버지의 부인으로 오랜 시간 고통 받았던 감독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폭행 당한 후 도망치듯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감독의 언니는 말한다. “남의 상처를 들춰서 아프게 하지 말라.”.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하는 그들을 보며 깨닫는다.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우리가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듯 아직 용서나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가족들 역시 존중받아야 함을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그녀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싶을 때 과거의 가 아니라 현재의 로 하여금 고통을 준 상대방을 만나게 하라고. 과거의 고통 받은 나 자신은 당연히 상대를 용서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지만, 현재의 는 고통을 이겨냈고 그만큼 성장했으니 말이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언제고 상처받던 그 때의 나로 수십 번씩 돌아가던 내게 상당히 깊었던 대목이었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아버지의 이메일> 속 아버지는 이메일을 통해 남은 가족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지난 날 고통받은 시간에 대해 사과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이해하는 한편 이메일을 통해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간 치유 받는다. 한국의 아버지 담론이 내포하는 무심하고 무능한 많은 아버지들. 그러나 사실은 그들도 영화 속 아버지들처럼 사회의 풍랑 속에서 표류하고 있진 않을까. 용서와 화해를 위해 그를 기억해 보려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마음의 눈을 크게 떠보리라 다짐한다. 나의 아버지가 언제고 나에게 보냈을지 모를 이메일들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에 답신하기 위해서 

 

 


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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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아버지의 이메일] 아버지, 무엇을 원망해야 하나요

 

    

    대한민국처럼 크지 않은 땅덩어리 내에서, 짧은 역사 속 이렇게 시대적 격변을 맞이한 국가가 어디 있을까. 식민 통치 이후 분단의 아픔, 이념 대립으로 인한 6.25 전쟁과 베트남 참전까지. 대략 반세기 안에 별의별 일이란 일은 다 겪고, 더불어 경제 성장까지 이룩해 내어야 했으니 안 힘들리 없다. 그리고 이 격동의 세월 속 정말 힘든 삶을 살아오신 세대가 바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다. 이제는 인생의 노년기에 접어 들어 삶을 마무리 할 준비를 하는 수많은 역경의 자화상들. 그 중에서도 영화는 이북 실향민이었던 한 아버지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살아 생전 한번도 가족의 일에 제대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어느날 돌아가셨다. 그리고 메일을 통해 둘째 딸에게 43통의 일생 회고식의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산산조각 나서 다시는 맞출 수 없게 된 가족사진 액자에 찔린 것처럼 아픈 이야기지만, 영화는 담담하고 유쾌하게 아버지의 삶을 통해 자신의 가족의 모습을 재조명한다. 늘상 참다운 길은 '돈'을 버는 삶이라 생각하여 좁은 남한이 아닌 다른 터전에서 제 2의 삶을 꿈꾸셨던 아버지. 감독의 아버지는 이민에 실패하고 인생의 반 이상을 술로 얼룩진 채 가족에게는 등을 진 채 사셨다.  '실향민.' 어쩌면 그분에게는 그 단어가 평생의 명찰과 같은 역할을 한, 다시 말해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 버린' 상태에 놓여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평생 술을 벗삼으며 고독과 외로움을 남과 공유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떠나갔다. 영화에서 감독은 '나쁜 남편이자 배울 것 없는 아버지였던 아버지' 로 기억되는 그의 삶을 이메일을 통해 자세히 깨닫고 이를 계기로 남은 가족들과 새로이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버지의 이메일> 스틸컷

     사실을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라 해도 자신의 가족사와 같은 내면을 면밀히 관찰하고 되짚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영화는 시종일관 솔직하고 담담하다. 인생의 허허로움이 전이되면서 동시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전쟁의 참변을 겪은 사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고난을 겪은 한 가족을 엿보면서 공감되고,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같은 시대를 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필자의 가족 생각에 새삼 감사함마저 느껴졌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용서'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단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를 하기까지에는 지금까지 지속된 그들의 고통이 너무 컸음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이들은 알리라. 가족 중 누구도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괴로웠던 순간이 있을지언정 그를 부정할 수는 없고. 그만의 책임으로 모든 것을 돌리기엔 사회 또한 너무 각박했음을. 그 누구에게도 진정 속내를 터놓고 대화하지 못했던 아버지. 그는 남편이기 이전에 가진 것 없는 한 탈북자였고, 그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오래동안 살던 집을 내주기 싫어하는, 유일하게 자신의 정착을 받아준 곳에 애착심을 가진 외로운 한 사람이었다. 작품이 끝날 무렵 아버지가 북으로 돌아가 잊고 지냈던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꾸었다는 감독의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 어찌 원망만 하며 살 수 있겠나. 이제 원망조차 할 아버지도 떠나고 말았는데. 아니, 애초에 그들은 무엇을 원망하며 살아야 했던 걸까, 라고.

 

 


제 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조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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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잔인한 나의, 홈 - 감독과의 대화(GV)


 

감독 인사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전작은 내 이야기로, 성폭력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 놈에게 복수하는 법>이라는 전작을 보고, GV가 끝나고 나서 돌고래가 찾아왔다. 이 영화를 만들게 해 준 영화제니까, 감사하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잔인한 나의, 홈> 스틸컷

 

‡ 1

Q. 영화를 찍는 다는 것은 주인공과 무언가를 함께 해야 한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기 싫어하는 친족성폭력의 과정을 함께하면서 어떻게 감정이나 에너지를 조절했는지 궁금하다.

A. 비슷한 질문을 좀 받는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고, 답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몇 번의 질문을 받고 생각을 해봤는데, 만드는 과정 자체가 노는 것이었다. (돌고래와) 성격이 비슷해서 어떤 심각한 고민을 안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과정은 둘이 노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 2

Q. 보면서 감정이 잘 안 추슬러졌다. 영화제 제목이 직면이다. 첫 영화제 때 출품했던 작품 얘기를 하셨는데, 찍으면서 어떤 직면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A. 제 자신을 잘 못 보는 사람이어서 순간순간의 느낌을 잘 설명 못하는 사람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영화를 다 만들어 놓고 상영을 하면서 이렇게 상영을 하고, 이렇게 주인공이 얘기를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해서 다 공감해주시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역 상영회를 돌 때마다 많은 어머니들이 돌고래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하신다. 처음에는 어떻게 돌고래를 믿느냐, 나는 영화를 다 봐도 돌고래를 이해할 수 가 없다.”고 말씀을 하셔서 그 분이 특별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영을 할 때마다 많은 어머니들이 돌고래가 엄마와 여동생의 피해자를 낳은, 집안을 말아먹은 또 다른 가해자다.”라고 얘기를 하시 길래 그 때의 분위기가 어쩌면 이 공간에서 많은 어머니들이 저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하시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그제야 현실에 대한 직면의 순간을 맞닥뜨렸다.

 

많은 지역에서 성폭력 예방 영화라고 초청을 했다가 친족 성폭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가족까지 그럴 수가 있어. 이건 말도 안 되는 영화다.”라고 해서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생각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멀리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직면을 이제야 하고, 이제 이 상영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 시점이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 3 

Q. 친족성폭력 문제가 어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직면하기 어렵게 하는 어떤 게 있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감독님도 공동체 상영을 하시면서 그러한 부분이 걸리셨다고 했는데 그런 걸 돌파할 수 있는 것을 찾으셨는지, 찾고 계시고 있는지 궁금하다.

A. 이 영화를 만들고서 가끔씩 돌고래 가족들이 비난을 받는 상황이 불편한 지점이다. 어떻게 해아 하나 고민이 있지만, 어쨌거나 제가 알고 있는 친족 가해자가 남편, 아들, 딸일 경우에 대부분이 돌고래의 엄마와 같은 모습을 취했다. 가족뿐만이 아니라 제가 알고 있는 유명한 조직 내에서도 대부분 모른 척 하고 넘어가는 게 태반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표현하는 방식이 모른척하는 방식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계속 고민 중인 상황이다. ‘영화를 틀지 말아야 되나?’라는 고민까지 하는 상황에 와있다.

 

‡ 4

Q. 돌고래와 돌고래의 어머니의 관계가 영화를 찍고 난 후에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싶다.

A. 2년 정도 지났는데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건이 있고나서 추석 때 내려가고 그 이후의 기간 동안 엄마와 돌고래가 카톡한 내용을 돌고래가 보여줬다. 그 내용이 굉장히 쓸쓸했던 게, 일상적인 내용을 보낸다. “내가 요즘에 난을 키웠어.” 뭐 이런 이야기를 하시거나 또 어떨 때는 되게 화가 나신 이야기를 하시거나

 

그래서 이 모든 감정들을 봤을 때 판단하기로 돌고래 같은 경우는 성폭력을 맞닥뜨린 순간에 감정 기복들이 심해서 지금까지 폭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면, 어머니나 여동생들은 이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해서 그동안은 부인만 했으면 됐을 텐데 감옥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 감정기복이 심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도 카톡으로 가끔 주고받는 상황이다. 슬픈 것은 그 전까지는 (돌고래가) 막내 동생과 이야기를 안 하고 있다가 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메일로 너는 우리 가족을 파탄한 악마야라는 식의 연락을 받았다. 동생 또한 감정을 다친 부분이 있다.

 

‡ 5

Q. 친족 성폭력을 영화화한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를 통해서 어떤 영향을 미치길 원했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A. 원래는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이 70~80%라고 하길래 그 주제로 아는 사람에 의한 3명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학교 친구, 직장 동료, 친척에 의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 3명에 대한 이야기를 기획을 하고 제작 지원을 받고 거의 시작부를 만들고 있었는데, 한 명씩 한 명씩 못하겠다고 한 순간이었고, 마지막 한 명만 남았다. 그랬을 때 돌고래를 영화제에서 만났다.

 

솔직히 말하면 돌고래가 왔을 때는 조금 고민했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이 왜 일어날까?’라는 가벼운 질문으로 만들어가면서 답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두 명이 빠지고 친척에 의한 피해자와 돌고래가 남았는데, 그러면 친족 성폭력에 의한 성폭력을 이야기해야 했다.

 

말 그대로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던 주제였고, 그런데 이 고민을 되려 제가 고민해보겠다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왜냐하면 또한 돌고래의 아버지 이야기니까. 남의 아버지 이야기를, 남의 가족사를 파헤치는 이정도 그릇은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 그대로 성폭력 이야기는 해도 되지만 친족 성폭력은 내가 좀 버겁다는 생각을 했던 부분인데, 인터뷰 하면서 너무 매력적인 친구여서, ‘이 친구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고민을 하다가 일주일 후에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보시는 분들이 이 영화는 믿음을 잃은 사람이 믿음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어쨌거나 주인공 캐릭터는 그렇게 잡긴 했다. 가족에 의한 피해를 입은 친구들이 정말로 사람을 못 믿는다는 말이 너무 많아서, 어쨌거나 영화를 편집할 때, 만들면서 생각이 계속 바뀌는데, 가족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가족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각각의 가족이 다 다르지만 도대체 우리가 가족에 대한 기준을 무엇에 두어야 되느냐라는 고민을 하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믿음이 기본적으로 가족의 중요한 모태라면, 믿음만 있으면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 6 

Q. 여성인권영화제의 카테고리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부분이 여성의 하나의 인물적인 부분보다는 우리 국민 모두가 인식을 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영방송이나 이런 데 보면 틀어주는 영화가 있다. 그런데 왜 그런 곳에는 홍보가 안 되는 건지, 심의가 안 되는 건지 궁금하다.

A. 일부러 안하는 부분이다. 그 고민 지점이, 이 영화가 알려졌을 때, 단편적으로 돌고래 가족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돌고래 가족들이 안 다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해야하느냐가 고민이다. 방송에 내보낼 생각은 없다.

 

‡ 7

Q. 돌고래가 시나리오가 없냐고 묻는 장면처럼 정말 시나리오나 스토리 라인이 없었나?

A. 카메라가 돌고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로 말다툼 씬 중에 하나가, (영화에는 안 넣었지만) 너 카메라가 없었으면 이 얘기를 했을 거냐였다. 그런데 안 했을 거라는 거다. 자연스럽게 와서 타로를 봤을 거라는 거다. 그래서 제가 싫다고 대답했다. 카메라 때문에 네가 굳이 와서 이야기 하는 거 자체가 싫다고, 어쨌거나 영화를 편집하는 과정 중에서 카메라가 들어가는 순간, 촬영이 되는 순간, 이것 개입 자체도 영화화 되어야 한다는 거를 제가 잊고 있었던 부분이다.

 

영화를 총 3년을 만들었는데, 원래 계획은 2년이었다. 1, 2심을 엔딩으로 계획을 했다. 그 엔딩이 무죄든 유죄든. 둘 다 무죄면 무죄만으로도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고, 유죄인 경우는 보는 사람들에게 더 기쁨을 줄 수 있으니까. 만약에 무죄로 끝났다면 관객분들이 도가니처럼 들고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어쨌거나 영화 편집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영화를 3년 내내 찍고 1년 동안 편집을 해서 3심까지 다 찍을 수 있었다. 대략적인 이야기로는 재판으로는 크게 틀은 잡았지만 계획적인 것은 없었다.

 

‡ 8

Q. 계속 여성폭력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가고 계시고, 그래서 더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요즘 공동체 상영회 하고 계시는 부분이나 마지막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리겠다.

A. 영화 상영 중일 때 밖에서 돌고래한테 카톡으로 돌고래 요즘 어떻게 지내요?’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답을 할까라고 생각을 했다. 돌고래는 한 1년 넘게 비폭력 대화라는 과정을 이수했고, 오늘은 어떤 워크숍에 가있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고, 연극 영화에 관심이 있고, 예술 분야에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 <잔인한 나의, > 블로그가 있는데, 그 블로그에 감상후기를 항상 검색해서 올린다. (돌고래가) 그 감상 후기를 보고 행복해하고 있으니 꼭 감상후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드리겠다.

 

앞으로는 뭘 찍을 지는 고민 중이다. 공동체 상영을 잘 모르실 수 있는데, 직장이나 학교 등 소규모로 들고 가서 트니까, 블로그에 자세한 내용 있으니까 신청 많이 부탁드린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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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플레이스] SOUL, 어긋난 퍼즐의 마지막 한조각

 

 

 

 

       이 영화는 꿈과 자유, 그리고 사랑받는 삶을 찾기 위해 캐나다로 떠났던 문숙이 비혼모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것에서 시작한다. 어머니는 문숙이 홀로 아기를 키우기 어렵다면 자신이 키워주겠다며 웃었고, 아버지는 "문숙이가 캐나다로 갔을 때 무슨 사고가 나도 하나 날 줄 알았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오빠는 카메라를 들었다. 렌즈 안에 문숙과 뱃속에서 숨쉬는 아기를 담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싱글맘에 대한 이야기일까? 오빠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렌즈 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오빠도 가족의 곁에 걸어가 스스로 피사체가 되었다.

 

<My Place> 싱글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남들과 '같은' 울타리 안에서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온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고학생이었고 학비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해 무작정 큰누나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향했다. 어머니는 엔지니어였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늘 '보조'여야 했다. 어머니는 한계를 넘기 위해 캐나다로 향했다. 캐나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혼했고 문칠과 문숙을 낳아 가정을 이뤘다. 마침내 캐나디언 드림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가족은 한국으로 역이민을 갔고, 가족 모두에게 낯설어진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여기서 문칠과 문숙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문칠은 한국의 학교에 적응하려 노력했고 모범생 길을 걸은 반면, 문숙은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학교를 그만뒀다. 문숙은 한국행을 결정한 어머니를 미워했고, 아버지는 한국을 거부하는 문숙에게 화를 냈다. 시간이 더 흘러 남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문칠은 번듯한 직장을 얻었고 문숙은 캐나다로 향했다. 그리고 문숙은 임신한 채 한국으로 돌아온다. 결혼 없이 아기만 낳아 캐나다에서 기를 생각이었던 문숙은 남자친구와 뜻이 어긋나 헤어지고 결국 한국에 머무른다. 정석의 길을 걷던 문칠도 일탈을 시작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 일을 시작한 것이다.

 

문칠은 내레이션을 통해 문숙과 부모님의 남들과는 '다른' 역사를 담담히 읽어준다. 남들과 달랐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를 누구보다 바랐던, 결국은 완전히 삐걱대고 어긋나야 했던 가족의 역사를 말이다.

 

다행히 어긋난 가족 퍼즐은 문숙의 아기 '소울(SOUL)'이가 세상에 나오면서 완벽한 그림을 이룬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문칠도, 모두 문숙과 소울이를 아낌없이 사랑한다. 소울이 덕에 이해의 창이 열린 것이다. 아버지는 한때 자신이 '사고'의 결과라 불렀던 소울이를 껴안아주며 딸에 대한 애정표현을 대신했고, 어머니는 소울이를 돌봐줌으로써 자신이 이루지 못한 학업의 꿈을 딸이 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국에 적응하기를 강요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래서 부모님을 몸서리치게 미워했던 문숙 역시 소울이의 엄마로서 자신의 부모님을 이해한다. 문칠은 소울이가 "'내'가 에일리언이 아닐 곳"을 꿈꿨더 문숙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기 편'이었으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 역시 '정석'의 길을 걸었던 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결국 사랑스러운 소울이 덕에 스크린 안에도, 그리고 그 바깥 객석에도 행복한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제 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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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마이 플레이스>

 

    어느 날 캐나다에 유학 갔던 여동생이 임신한 채 돌아온다. 그리고 혼자서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선언한다. 캐나다도 아닌 엄연한 한국에서 미혼여성이 아이를 키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동생은 고집을 굽히지 않고, 가족들은 혼란스러워 한다. 엄마는 선뜻 내켜하진 않지만 동생의 뜻을 따른다. 아빠는 주위에 알려질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전긍긍해한다. 여동생의 오빠이자 여동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이 영화의 감독도 여동생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여동생은 아들 소울을 낳는다. 영화는 여동생을 따라, 여동생의 현재와 여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의 과거를 되짚어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안은 문제의 핵심이었던 소울로 인해 더욱 화목해진다. 엄마는 여동생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 소울을 돌봐주며 여동생과 유년시절에 미처 나누지 못했던 유대감을 나눈다. 소울을 못마땅해 하던 아빠조차 소울을 끔찍이 아낀다. 더불어 여동생과도 가까워진다. 영화의 끝에선 싱글맘의 삶을 사는 여동생이 부끄럽지 않으며 미혼모를 돕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영화는 가족이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서로의 과거와 상처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역이민을 온 여동생이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했었음을, 자신의 마음을 붙일 수 있는 마이 플레이스가 가장 절실했지만, 그때 그 누구도 여동생에게 그것을 내주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그랬기에 여동생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 자기편인 아이를 갖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리고 여동생 뿐 아니라, 가족들과 자신도 안온한 마이 플레이스가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유능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성차별을 견디다 못해 더 큰 꿈을 안고 캐나다로 갔지만 고향과 가족이 그립고,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자식들에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껴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와야 했던 엄마. 학벌과 지연과 집안이 중시 되는 한국사회를 떠나 캐내디언 드림을 이루었지만 다시 돌아와야 했던 아빠. 그리고 오랜 시간 한국에 잘 적응했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자신을 숨기고 있었던 자신. 가족 모두 사실은 여동생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지 여동생은 굴복하지 않고 저항 했을 뿐. 여동생은 말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무엇이냐고.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마이 플레이스> 스틸컷

 

물론 캐나다에서의 삶도 쉽지만은 않다. 그토록 그리던 캐나다로 돌아갔지만, 13년 간의 한국생활로 인해 여동생은 다시 캐나다에서 외지인이 되어 버렸다. 한국에도 캐나다에도 마음 편히 안주할 수 없는 여동생, 취업난과 공부와 육아를 병행하는 싱글맘의 고된 나날이지만, 이제는 이해해주고 함께 하는 가족이 있기에 여동생의 앞으로의 삶은 밝아질 수 있을 거라고, 여동생만의 마이 플레이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이처럼 감독은 자신의 가족사를 영화로써 풀어놓으면서 관객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마이 플레이스를 갖고 있느냐고. 또 이 사회가 개인이 마이 플레이스를 갖는 데에 얼마나 큰 장벽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성별, 인종, 학벌, 지연, 가족형태, 정상, 비정상 등의 단어로 편견과 기준의 잣대를 들이밀기 전에 이해와 포용이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마이 플레이스'를 찾지 못해 상처 받거나 방황하지 않는, 누구나 마이 플레이스를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플레이스가 되지 않을까.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김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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