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은 회복되어야 한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시체가 된 여자들> 피움톡톡


예원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지하철역 출구에서 들려온 여성들의 외침과 <82년생 김지영>에서 드러난 외침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성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고자 하는 외침이다. 9월 23일 저녁. 이 외침에 대한 두 영화가 상영됐다. <시체가 된 여자들>과 <여성 해방으로 좌회전>이 그것이다. 두 영화의 연이은 상영 이후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의 8번째 피움톡톡이 진행됐다. 송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의 진행 하에 배우 김꽃비, 영화평론가 정민아, 영화감독 홍재희가 함께 했다.


시체가 되는 여성들

“시체가 진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너무 놀랐어요.” 한 관객은 <시체가 된 여자들>을 보고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우리는 여성이 죽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다. 물에 떠 있기도 하고, 절벽에서 굴려지기도 한다. 피를 흘리기도, 깨끗하기도 하며 눈을 감거나 뜨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다루어지는 만큼, 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암사자들>, <아버지의 이메일> 등을 연출한 홍재희 감독은 <시체가 된 여자들>을 통해 시체 단역 배우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에 사용된 기존 드라마와 영화 클립들을 사전에 접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시체 장면들만을 모아 보니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 시체 자체가 포르노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젊고 예쁜 여성들이 시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영화 서사에 필수적이지 않은데도 카메라가 여성의 몸을 훑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대해 배우 김꽃비는 죽은 여성의 포르노적 소비가 비공식적으로 장르화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상력의 빈곤이 낳은 장르

그렇다면 비공식적 장르는 무엇 때문에 탄생했을까. 홍재희 감독은 ‘상상력의 빈곤’을 그 이유로 짚었다. 2000년대 초반의 영화와 오늘날의 영화에 나타나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주류 영화를 타고 흐르는 기저에는 한국 특유의 군대 문화가 있는데, 여기에서 여성의 대상화가 시작된다. 군대 문화에서 남성성을 찾고, 집단 성매매로 남성성을 확인하듯 영화에서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여 남성성을 확인하는 방식이 재현된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독립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주류 영화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유로 안정된 수익을 추구하는 영화계 관행을 지적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도 공정한 목소리들이 이러한 관행으로 인해 주류로 편입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관객은 동의한다며 자본주의와 가부장주의가 찰떡처럼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흔히 ‘여자가 나온 영화가 재밌으면 더 많이 만들텐데 그렇지 않으니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라는 비판은 ‘여성이 일을 잘하면 더 많이 채용할 텐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주도적으로 선택하기에는 영화계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와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해소할 방향은 어디일까. 홍 감독은 “개인과 싸울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철저한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홍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서 전세계가 공통으로 여성이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영화와 장르영화에서는 그 변화가 멸종되는 이유를 자본 권력에서 찾았다. 과거와 달리 영화계에 여성 인력이 대거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드는 투자자는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녀 임금격차나 남녀 빈곤율을 뒤집어보면 곧 여성들이 자본 권력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이는 곧 보편적 감수성이 남성 위주로 치우쳐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뜻한다. 한 사람이 바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에 내부의 목소리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실제로 내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감독과 여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배우 김꽃비가 시작한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 ‘찍는 페미’가 좋은 예다. 배우 김꽃비는 이를 시작으로 영화업계에 변화가 생기길 기대한다고 답했다. 

"이게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구나." <시체가 된 여자들>의 한 배우가 죽음을 연기하며 깨달은 것이라고 한다. 죽음은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반드시 어떤 여성에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그녀가 깨달은 것은 우리와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송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업계의 변화는 우리 사회 전체 성평등 개선과 관련되는 문제라고 밝혔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 스스로와도 직결된 문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끊임없이 감시할 수 있는 관객으로서의 몫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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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젠더질서를 위반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하는 여성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끝내주는 엄마들> 피움톡톡

김단비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3일 토요일, CGV 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진행 중인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부치, 젠더 질서의 교란자>와 <끝내주는 엄마들>이 상영되었다. 영화는 젠더질서를 위반하고 자기 자신으로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영화가 끝난 후, 100여 석의 관람석을 꽉꽉 채운 관람객들의 상기된 표정과 함께, ‘엄마다운 엄마 노릇’이란 제목의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가 사회를, 나임윤경 여성학자의 출연으로 구성된 이번 피움톡톡은, ‘모성 신화의 기원과 그 시대적 변화를 탐구해보자’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젠더를 위반하고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사람들

<부치, 젠더질서의 교란자>는 젠더질서를 위반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여성스러워 보이고 싶지도 않은 레즈비언 여성들, 그들의 이름은 부치다. 여자 남자 둘 중에 선택하라는 세상에게 부치들은 말한다.

“부치는 남자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자기 자신인 거죠.”


엄마는 엄마도 아니야(?)

엄마는 어때야 할까? 우리 사회는 여성이 임신·출산만 하면, 본능적으로 ‘모성’을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인스턴트 음료를 사주고,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는다면, 세상은 말한다. ‘엄마는 엄마도 아니야!’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끝내주는 엄마들>은 정말 ‘엄마도 아닌 엄마들’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임신이 기쁘기보단 지루하니까. 만삭의 임산부지만,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이니까. 




피움톡톡 ‘엄마다운 엄마 노릇’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끝내주는 엄마들>을 한국 남성들이 두려워할지도 모르겠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여성들이 ‘엄마 노릇’을 박차고 나갈 때, 그것에 기생하던 수많은 한국 남성들은 그 독박육아를 분담해야 하니 말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와 나임윤경 교수가 두런두런 영화평을 주고받으며 분위기가 풀어지자,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상평을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노릇뿐만 아니라, 이후 자식이 아프고 살찌는 것까지 엄마의 문제로 돌리는 한국사회에 대한 답답함’, ‘페미니스트이지만, 초등학교 교사로서 방치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주 양육자인 엄마들을 비판하게 되는 모순적인 현실’ 등등.

나는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엄마들을 보며, 거룩한 모성애가 해체되는 듯해 통쾌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10분 내내 ‘엄마’라는 주 양육자 역할에 불성실한 ‘끝내주는 엄마들’을 보며 불편한 마음 또한 들었다. 특히 자녀들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관심 받고 싶은데, 엄마가 저렇게 지루하고 심드렁한 상태라, 서운하겠다’, ‘어떻게 임신한 사람이 저럴 수 있지’ 임신하고 양육을 주로 전담하는 여성보다는, 그 여성들에 의해 키워지는 자녀에게 감정이입하는 것, 그럼으로써 주양육자 여성들의 노동을 ‘집밥’이란 이름으로 공간화하는 것, 나를 포함한 이 사회의 시선이기도 할 것이다. 어느덧 피움톡톡의 마감 시간, 나임윤경 여성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피움톡톡을 마무리 지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다움의 규범’을 벗어난 엄마들을 낯설게 여기는 자기 자신 말이에요.”

<부치, 젠더 질서의 교란자>와 <끝내주는 엄마들>은 9월 24일 일요일, 15시 30분에도 상영될 예정이다. 또한 두 영화가 상영하기 전인 13시 30분엔 ‘여성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김윤하 음악평론가, 이윤정 현대무용가, 오지은 싱어송라이터와 함께하는 영화 <라차나> 피움톡톡이 진행될 예정이다. 

‘여자는 ~해야 해’를 벗고 ‘자기 자신’을 입고 싶은 당신,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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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이혼 후에 남겨진 것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평범한 커플들> 피움톡톡

경은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3일 오후, CGV 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제 11회 여성인권영화제가 진행되는 가운데, 영화 <평범한 커플들>이 상영되었다. 영화 상영 후에는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의 진행으로 피움톡톡이 이어졌다. 상상하기 어려운 이혼 후의 삶을 그려낸 영화 <평범한 커플들>을 바탕으로, 이혼이 낙인이 되는 사회 속에서 이혼이 갖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영화가 보여준 이혼 후 여전히 지속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시간이었다. 게스트로는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와 유지나 영화평론가가 함께 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쯤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영화 <평범한 커플들>에는 이혼한 네 커플이 등장한다. 각 커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혼한 커플들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이혼 사실에 상처받고 헤어지기 싫어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이혼한 당사자들도 이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혼을 한 사람들이라고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혼을 해놓고도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모두에게 상처가 될 때 이혼이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차차 적응해간다. 그러면서 이혼했다고 해서 관계가 단절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혼한 파트너가 현재 이룬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저녁을 보낸다든가, 이혼한 커플이 각각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가족을 이룬 다음에도 만나서 각자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장면들은, 끊어진 이전의 관계가 새로운 관계들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헤어진 후에도 이전 관계를 바탕으로 새롭고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관계 속의 모두가 깨져버린 관계로부터 갖게 된 상처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정상가족’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면서 피움톡톡이 시작되었다. 진행자와 두 게스트 모두 이혼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하고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족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지적했다. 관객들은 주변사람들에게 이혼은 여전히 두려운 문제이고,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보여주는 이혼 후의 삶이 한국에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갔다오는 게 안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며 결혼하는 친구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질문들은 역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잘 드러내는 듯 하다.


이에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습들이 한국에서 불가능하다는 점을 남자들의 태도를 들어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은, 여성에게 독박 육아, 독박 가사, 대리 효도라는 억압을 강요하는 일종의 계약으로 자리해왔다. 이제 그러한 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은, 이혼을 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말했다. 또한, 결혼을 강요하고 이혼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말들 모두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을 바탕으로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왜 우리는 하나의 정상가족만을 추구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유지나 영화평론가는, 핀란드의 과거 사회경제적 상황이 한국과 비슷했지만 현재의 제도가 달라진 것을 설명하면서, 제도와 풍습은 우리가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어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가 꼭 필요한가, 왜 이혼한 여성들은 재혼을 하면서 관계에 의존할까 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유지나 영화평론가는, 영화 속에서 모든 사람이 다 재혼을 한 것은 아니고, 이혼을 함으로써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혼자든 함께하든 이런저런 삶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답변했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롭다”며 관계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고, 부부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이 관계에 의존하는 것 같다는 질문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답변했다. 젠더화된 사회구조에서 여성은 ‘보조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배우게 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여성은, 이라는 질문보다는, 자아를 맨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젠더가 누구이며, 왜 그럴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이혼 당사자 모임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당시 모임에서 내세웠던 캐치 프레이즈 중 하나가 “이혼 자녀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잘 살고 있다”였다고 말했다. 즉, 반드시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그 과정을 겪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화 <평범한 커플들>이 주는 메시지는, 관계를 어떻게 겪고 그 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피움톡톡이 끝났다.


관계 속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결혼과 이혼이 모두를 옥죄는 사회에서 관계 속의 모두가 행복할 리 없다. 영화 <평범한 커플들>은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이혼이 특별할 것도 없고, 평범한 커플들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말해준다. 영화는, 가족을 유지함으로써만 행복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영화는 이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영화가 보여준 가능성은 다른 관계들에 대한 고민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고독도, 관계 맺기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별로부터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영화 <평범한 커플들>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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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장을 깨고 나온 세상의 모든 앤지를 위하여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무한테도 말하지마> 피움톡톡


경은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3일 낮, CGV 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진행 중인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영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가 상영되었다. 상영 후 김현 여성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피움톡톡이 있었다. 게스트로는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와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 함께했다. ‘불법’ 이민자 신분인 앤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바탕으로, 사람의 존재를 ‘불법’으로 만드는 시대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존재하지만 존재를 삭제당하는 사람들

영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는 미국에서 ‘불법’ 이민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앤지의 이야기이다. 앤지와 앤지의 엄마는 사회보장번호가 없고, ‘불법’이라는 낙인을 받는다. 영화 속에서 앤지는, 사회보장번호를 받지 못하면 운전면허도 딸 수 없고, 취업도 할 수 없으며, 학교에서 아무리 우수한 성적을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단지 법의 인정을 받지 못 했다는 이유로, 삶을 구성하는 모든 일상적, 사회적 생활이 그들에게는 불가능하다. 이미 정착해서 몇 년을 살아도 ‘불법’이라는 지위는 그들을 살아 있지 않은 사람으로 만든다.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비빌 자리는 없다고 법은 끊임없이 경고하는 것 같다.

더 이상 뒷걸음질 할 수도 없을 것 같은 벼랑에서, 앤지는 계속 싸웠다. 자신과 다른 이민자들을 위해서 조직을 만들고, 전략을 짜고, 끊임없이 소리쳤다. “나는 서류 미비자이고 두렵지 않다”고,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는 생존자이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앤지는 ‘불법’ 이민자라는 그늘에서 나옴으로써,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나누고 모두의 문제를 끌어안았다. 앤지의 목소리는 많은 ‘불법’ 이민자들의 목소리를 끌어냈고, 그들은 함께 싸웠다. “투명인간”처럼 살면서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앤지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산다는 것

피움톡톡은 영화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되었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와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모두 영화를 영화만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국의 이주민들이 처한 상황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게스트에 따르면, 앤지가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도 바로 추방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출입국 사무소 앞에서 ‘불법’체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소리치면 추방될 위험이 높다. 이렇듯 법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구멍도 많다. 복수국적자여서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가도, 출생연도에 따라 그냥 인정을 받기도 했다는 관객의 발언은 그러한 한국의 법체계를 잘 보여주는 듯했다.


이민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출생등록 문제 역시 한국이 더 심각하다. 한국의 경우, 한국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살아도 한국인이 될 수 없다. 부모가 모두 서류 미비자이면 자녀도 서류 미비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제도상에서 아이 아버지의 국적이 무엇인지만을 따지는 것도 문제라고 게스트들은 지적했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는 한 네팔 여성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합법적 체류 자격이 있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존재하게 되었어도, 아버지의 국적이 무엇인지가 아이의 존재 가능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이주 아동 출생등록과 관련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차별받지 않을 수 있도록,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른들이 만든 사회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두 게스트 모두, 성인이든 아동이든, 이주민들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부정되지 않아야 함을 강조했다.


복잡한 존재의 그물망 속에서


이주민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다른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 앤지는 ‘불법’ 이주민이면서도 여성이고, 성폭력 피해생존자이다. 앤지가 말했듯, 서류 미등록 이민자 중에는 여성, 성 소수자, 노숙자 등 다양한 존재가 있다. 이렇듯 차별은 하나의 방향으로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차별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다.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행동 위원장은, 그런 배경을 두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은 대로 살 자유와, 사랑하고 싶은 대로 사랑할 자유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특별히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삶이 가능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이란, 바로 그런 삶이 가능한 세상이라고 두 게스트 모두 강조했다. 이어서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는, 최근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들을 상대로 저지른 폭력과 학대에 대한 사실인정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을 언급했다. 이러한 사례처럼,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어야 하고, 여성운동이 더 다양한 언어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여전히, 앤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씨름하고 있다.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정책적인 변화까지 끌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앤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과 함께 소리칠 수 있게 되었다. 치열하게 싸워 온 우리는, 늘 출발점에 서 있고 다양한 곳으로 눈을 돌림으로써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영화는 끝났지만, 앤지와 피움톡톡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양한 인권에 대한 고민과 소리침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출발점에 선 세상의 모든 앤지들에게 이 영화가 용기가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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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고통을 힘으로, 우리 함께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시티 오브 조이> 피움톡톡

린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3일,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시티 오브 조이> 상영 후 영화 주제에 관련된 게스트가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인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구원하는가’를 주제로,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오래뜰’의 서경남 시설장과 아내폭력 피해 생존자 수기집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에스더, 붉은노을이 함께했다.

  


더 ‘행복한 삶’을

<시티 오브 조이>는 콩고 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은 생존자들의 쉼터이자, 그들을 공동체의 리더로서 양성하는 기관인 ‘시티 오브 조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영화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인 ‘수동적이고 약한’ 모습 대신, 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풀어가며 살아가는 생존자들을 비춘다. 센터의 이름이 ‘시티 오브 조이’인 것도 처음에는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생존자들이 센터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경험을 나누고 연대하며, 자신의 ‘보지’를 그리고 자기방어 교육을 받는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럼으로써 여성들은 콩고 안에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맞닥뜨릴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대처하게끔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리더로 성장하는 것이다. 

 

잔인한 현실, 그 너머로 나아가기

영화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때때로 화면에서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끔찍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난 후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매 말을 잇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이 보였다. 서경남 시설장은 “처음 볼 땐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고, 다 보고 잘 때는 계속 악몽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에스더는 “저도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 영화를 보면서 고통이 그냥 치유되지 않는 상태로 남는다면 고통으로만 남는데, 저런 공동체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치유되면 힘으로 바뀌고, 여성들이 리더로 변할 수 있게 되는 걸 보면서 제가 쉼터에서 겪은 경험도 인생을 바꾸고 힘을 얻을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고 덧붙였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잊히는 가운데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밝게 다가와 영화가 힘 있게 느껴졌다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공동체에서의 치유, 그리고 그 이후의 삶

서경남 시설장은 콩고의 ‘시티 오브 조이’가 한국의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하면서, 붉은노을과 에스더에게 쉼터에서의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질문했다. 붉은노을은 “쉼터에 가기 전까지는 남편이 제가 잘못해서 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했다”며 쉼터서 처음 들은 말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었고, 그때부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 전에는 저 자신이 종이인형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하던 모습에서 쉼터의 경험이 그녀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에스더는 “사람들이 고통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하는데, 그렇게 고통을 담아 두다 보니 곪아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 같다”며 영화에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것처럼 고통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서경남 시설장은 “영화에 등장하는 ‘시티 오브 조이’ 졸업생들도 센터에서 나간 이후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며 ‘쉼터 이후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붉은노을은 “이혼한 후 3년 동안은 계속 걱정하면서 지냈는데 그런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이들과 저 모두 안정을 찾고 자기 삶을 실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더는 “얼마 전에 둘째 아이가 친구들에게 배려를 잘 하는 아이라는 칭찬을 학교 선생님께 들었다”며 쉼터에 있었던 경험이 아이에게 나빴을 거라는 생각만 했는데, 사람에 대해 더 다양한 시각을 얻을 수 있어 좋은 면도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 처음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털어놓을 때 눈물을 보이던 것과 달리 더 안정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시티 오브 조이’에서 여성들은 서로의 경험에 귀를 기울인다. 늘 숨겨야만 했던 감정들을 드러내며 연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여성들은 피해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성폭력 피해는 분명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고통이 피해자의 삶을 침묵 속에 가둘 수는 없다. 삶은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며 여성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피해자의 삶은 <시티 오브 조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고 에스더와 붉은노을이 그랬듯이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수많은 여성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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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자신만의 속도로 나이 들기

<미용실 사장님 메이블> <할머니의 운전면허 도전기> 피움톡톡

윤선혜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개막 4일 차인 9월 23일, ‘나이듦의 다른 얼굴 지혜: 성역할과 나이듦의 틀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주제로 피움톡톡이 열렸다. 정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이 진행을 맡았고, “순수하게 오리지널 싱글로 77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애순 작가와 반대로 “저는 남자와도 살아보고 여자와도 살아보고 온갖 것 다 해본 사람”이라는 최현숙 노인구술생애사 작가가 패널로 참여했다. 

피움톡톡에 앞서 상영된 영화는 <미용실 사장님 메이블>과 <할머니의 운전면허 도전기>로 8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두 영화는 기존 미디어에서 좀처럼 주목받지 못했던 노년층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최현숙 작가는 “젊은 여성 감독이 여성이자 노인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는 점이 고맙다”며 “그들이 늙어가는 모습이 섬세하게 담겨 있어 좋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다른 상영작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많은 중·노년층 여성들이 관객석을 메운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짧은 영화 두 편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에게 입체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부족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태 여성 캐릭터들은 이름도 없는 ‘여자시체’거나, 억척스럽고 희생적인 엄마거나, 젊고 아름다운 눈요깃거리로 존재했다. 그러한 미디어 환경에서 여성들은 이름이 있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그 대화가 남성과 관련된 얘기가 아니어야 한다는 소박한 기준만으로 영화를 평가해야 했다. 그래서 89세의 혈기왕성한 미용사 메이블과 86세의 초보 운전자 테레즈는 낯설고도 반가운 존재다.



소수자성 배제와 바람직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쉬워

하지만 영화의 의의를 인정하는 동시에 최현숙 작가는 소수자성의 배제를 두 영화의 한계로 꼽는다. 사실 메이블과 테레즈는 선진국의 중산층,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이다. 이들보다는 소수자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어려움과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다큐멘터리로서는 더 중요한 의제일 수 있다는 점이 최현숙 작가의 지적이다. 또한 여전히 머리를 예쁘게 단장하며 젊고 활기차게 늙어가는 두 사람만을 바람직한 노년의 모습으로 규정하는 감독의 시선도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했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 탓인지 한 관객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질문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일하는 것에는 두 작가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김애순 작가는 “일을 함으로써 희망이 생기고, 수입이 생기고,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며 나이에 상관없이 일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최현숙 작가는 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일을 해야만 사람처럼 사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관점”에는 반대했다. 장애가 있거나 너무 지쳐서 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나만의 속도를 찾아 건강하게 나이 들기

“한국 사회에서 혼자 늙어가는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객 질문에는 비혼 여성들의 롤모델로 주목받는 김애순 작가가 답했다. 단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괴물처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했던 김애순 작가는 “늙어서 외로워진다”는 주변의 걱정에 흔들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늙으면 누구나 외롭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얼마든지 스스로 메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혼자서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다. 이에 더해 김애순 작가는 여성이 혼자 살아가기 위한 네 가지 조건으로 건강, 경제력, 친구, 이웃집에 사는 친한 친구를 들었다. 

한 관객은 두 작가에게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살다 보면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하다는 압박감에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다”는 그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지” 질문했다. 이에 최현숙 작가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은 “헛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세상은 계속 돈이 많아야, 젊어야, 친구가 많아야 행복할 것이라고 떠들지만 그런 말은 믿지 마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분명히 해야 한다.” 앞서 김애순 작가가 언급했듯이 사회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행복을 알고 따라야 한다. 이것이 두 인생 선배의 조언이었다. 

한 시간 가량의 피움톡톡을 마무리하며 인생의 마지막 목표에 관해 묻자 두 작가 모두 글을 쓰는 것이라고 답했다. 여성의 롤모델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영화 속 메이블과 테레즈, 그리고 피움톡톡을 함께한 김애순, 최현숙 작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몇 발 앞에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배들을 따라 우리 모두 자신만의 속도로 늙어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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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여자답게 강해지고 싶다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 GV 현장

메리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2일 금요일,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열린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가 3일째를 맞이하였다. 이 날 두 번째 회차에서는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그리고 <여자답게 싸워라> 네 편의 영화가 연속으로 상영되었다. 영화가 끝나자 <더 헌트>의 김덕중 감독, <동경소녀>의 박서영 감독, <노브라 해방기>의 허윤수 감독, 그리고 <여자답게 싸워라>의 이윤영 감독이 게스트로 참여하여 YTN 윤현숙 기자의 진행 하에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골목 속 터프한 러닝타임, <더 헌트>

 <더 헌트>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희순과 이화동에 새로 온 부안이 폐지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두 주인공의 전쟁 같은 골목 액션은 1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의 가슴을 쉬지 않고 뛰게 했다.

 김덕중 감독은 <더 헌트>가 “대학로에 거주했을 때 저녁 골목을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보고 야생동물과 같다고 느낀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하였다. 소외된 노인이나 빈곤 문제처럼 기존에 이미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폐지를 먼저 줍기 위해 골목을 전투적으로 달리는 두 주인공의 경쟁은 그간 미디어가 묘사했던 타인에게 의존적인 노인과는 대조된다.


특별한 대상이 되고 싶었던, <동경소녀>

 <동경소녀>는 사진 속 ‘특별한’ 대상을 동경하는 선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현실에 마음을 붙이고 있지 않은 선아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이 동경하는 대상을 바라본다, 선아의 세계에 형남이 등장하면서 만나면서 선아는 변화를 겪게 된다.

 박서영 감독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조금만 특별하다고 말해주면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소녀, 그리고 약한 어른이 소녀에게 행사할 수 있는 폭력성을 서술하고 싶었다.”고 이야기 하였다. 일부 관객은 “ 낮은 자존감과 애정결핍의 대상으로 선아를 설정하는 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사회적인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다루는 것 같아서 아쉽다,”라고 언급하면서 <동경소녀>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노브라 전사를 꿈꾼다, <노브라 해방기>

 <노브라 해방기>의 신애는 자신의 졸업 작품 <노브라 해방기>를 통해 노브라 전사를 꿈꾼다. 신애와 예빈의 술자리에 같은 과 선배 재혁이 등장하면서 현대판 ‘코르셋’인 노브라가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신애의 분노에 공감했던 영화였다. <노브라 해방기>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씌우는 사회적 프레임으로서 브래지어를 잘 그려낸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이 공감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노브라 해방기>는 허윤수 감독이 대학4년 동안 느꼈던 감정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기에 만든 영화라고 하였다. “졸업 작품으로 상영되었을 때에는 동일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반응해 준 적이 없었는데, 여성인권영화제에서 관객 분들이 웃으면서 봐주시는 것을 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다른 힘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제일 먼저 무너진 건 내 몸이 아니라 의지였다, <여자답게 싸워라>

 <여자답게 싸워라>는 남성 중심 경기장이 정해둔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플레이를 찾는 주짓수 파이터 이윤영 감독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자취방 벽에 붙은 포스트잇에 써진 ‘stay safe’ 문구가 영화 마지막에는 ‘stay strong’으로 변한 기분”이라고 표현한 윤현숙 기자의 말처럼, ‘여자답게’ 강해지고 싶어 노력하는 여성들에게 영화 <여자답게 싸워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왜 강해지는 것에 의미를 두었나요.”라는 한 관객의 질문에 이윤영 감독은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 중에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강한 여자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답하였다. 이날 관객 중에는 주짓수 파이터가 함께 참여 했었다. 관객은 남초집단에서 여성단원이 겪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윤영 감독도 동등한 단원이 아니라 여성으로 존재해야 했던 관객의 경험에 공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브라 해방기>의 허윤수 감독은 여성에게 씌워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여자답게 싸워라>에서 자신을 인정한 것처럼 ‘여자답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처럼 이날 관객과 함께했던 감독과의 대화는 주짓수라는 특수한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escape’ 하려는 여성들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였다.


‘여자다움’을 찾아 나선 영화들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는 공통으로 가부장제가 여성상을 어떻게 왜곡하려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 여성들은 골목 속 야생적 존재, 특별한 존재를 동경하는 소녀, 혹은 강해지고 싶은 파이터처럼,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수동적 모습과는 다른 ‘여자다운’ 여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가부장제가 왜곡했던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껴왔다면, <더 헌트>, <동경소녀>, <노브라 해방기>, <여자답게 싸워라>의 주인공들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해당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다면 9월 24일에 다시 만나 볼 수 있으니, 여성인권영화제 홈페이지에서 상영표를 참고하자. (http://fiwom.org/main/main.html) 영화제 기간에는 ‘감독과의 대화’부터 ‘피움톡톡’까지, 다양한 섹션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들도 진행하니 여성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은 여성인권영화제에서 함께 모여서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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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우리 이제 그건 폭력이라고 말하자

씨네토크 "데이트폭력을 말하다"


윤선혜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2일,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하는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데이트폭력, 영화로 말하다’를 주제로 시네 토크가 열렸다. 시네 토크에 앞서 여성 폭력 문제를 다루는 두 영화 <닫힌 문 뒤에는>과 <완전히 안전한>이 상영되었다. <닫힌 문 뒤에는>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폭력을 경험한 세 여성의 이야기를, <완전히 안전한>은 공동체 내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과 2차 가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 시네 토크는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의 진행 하에 유화정 젠더학 연구자, 손문숙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활동가, 김재희 변호사, 하진 데이트폭력 피해 당사자가 패널로 참여했다.

아직 한국 사회에는 데이트폭력의 범주에 대한 정확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데이트폭력을 ‘연인 관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관계를 포함한 친밀한 관계에 있는 상대에 의해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등의 폭력’으로 정의한다. 이때 데이트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이유로 감춰졌던 여성폭력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명명한 것이지 법률적인 개념은 아니다.

여성폭력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층위의 폭력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을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데이트폭력은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엄연한 범죄이지만 정신적, 언어적 폭력 등 가시적인 폭력을 관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없다. 물리적 폭력 외의 데이트폭력이 법의 사각지대에 갇혀버린 것이다.

사회적 인식 또한 데이트폭력의 처벌을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데이트폭력 피해 당사자인 하진은 소송 과정에서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었다고 털어놨다. 주위에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 그 후에 이어지는 2차 가해를 견디는 것,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와 판사가 지닌 편견에 맞서는 것까지. 가해자의 곁을 떠났다고 해서 피해자의 고통이 끝나는 건 아니다. 데이트폭력에 관한 사회적인 편견은 피해자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동시에 가해자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손문숙 활동가는 “어디에 가해자 학교가 있는 것 같다”며 데이트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이 보이는 몇 가지 특징을 설명했다. 가해자들은 폭력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이며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심지어는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 맞을 짓을 했다며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그들은 피해자를 폭행한 뒤에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 등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피해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한편,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유화정 연구자도 ‘가해자 학교’라는 표현에 크게 공감하며, 데이트폭력의 첫 번째 신호로 ‘맨스플레인’을 꼽았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피해자를 훈육의 대상으로, 자신은 피해자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폭력은 훈육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피해자를 폭행한 것은 더 나은 상황을 위한 것이므로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하진은 “가해자들이 절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가해자가 됐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상대방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동등한 권력 관계 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태도다. 따라서 데이트폭력은 애초에 둘 사이에 전제된 젠더 권력 차이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한 관객의 질문에서처럼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권력이 없는 동성 커플의 경우에도 데이트폭력은 발생한다. 애초에 폭력은 다양한 관계 내에서 발생한다. 경제적 위계, 사회적 지위 등에서 비롯되는 권력 관계 또한 폭력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동성 커플을 인정하지 않는 법적, 사회적 인식 탓에 오히려 더 보이지 않는 곳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으니 일반인과 쉽게 구분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특징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김재희 변호사에 따르면 고소 과정에서 주변인들이 증언하는 가해자는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다. “명문대를 나왔다”거나 “집안이 좋다”며 그를 옹호하는 지인들의 탄원서가 쏟아지기도 한다. 가해자가 알코올중독이거나 분노조절 장애일 것이라는 등의 흔한 편견은 변명에 불과하다. 김재희 변호사는 특히 여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증언에 단골로 등장하는 ‘분노조절 장애’에 의문을 제기한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들만큼 분노 조절을 잘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분노 조절을 피해자에게만 한다.” 한 사람만을 향하는 분노, 그 분노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교묘하게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가해자의 특징이다.

데이트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으로 폭력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점과 우리 모두 어릴 때부터 이러한 폭력을 ‘사랑’으로 학습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쟤가 널 좋아해서 괴롭히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자란 여성에게 남자의 사랑은 원래 그런 것으로 여겨진다. 여자 주인공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끌거나 벽에 밀쳐 강제로 키스하는 드라마 장면을 박력 있고 로맨틱한 것으로 소비하면서 ‘폭력=사랑’이라는 공식은 더욱 견고해진다.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를 허물며 미디어와 사회 전체가 데이트폭력 가해자를 길러내는 학교로 기능한다. 거대한 학교 속에서 모든 남성은 개개인의 폭력적 성향과 무관하게 폭력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학습한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데이트폭력은 연인간의 사소한 다툼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엇일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한 관객의 말이 그 답이 될 것이다. 데이트폭력은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사람들만 겪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폭력이다. 다만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특징 때문에 쉽게 은폐되어왔을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런 일(데이트폭력)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객의 질문과 그 답은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데이트폭력의 존재와 그 의미를 인지하고 내가, 혹은 주변 사람이 피해를 입었을 때 ‘데이트폭력’이라고 정확하게 명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사적인 일, 사랑싸움이 아니고 분명한 폭력이라고 말하자. 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소개해주는 등 실질적인 도움과 더불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돕겠다는 신뢰감을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준 사람이지만 동시에 피해자가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채 가해자와 다시 연락하거나 만나기도 한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피해자의 태도에 주변 사람들이 인내심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순간 다시 가해자에게 돌아갈 확률이 굉장히 높아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언제든 도움을 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무엇보다 데이트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기 위해서는 예민함으로 폄하됐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느꼈던 이상하고 불편한 느낌을 좀 더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피해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자. 피해자의 언어가 일상화될 때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비로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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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결국 여성은 시민이, 인간이 될 것이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폐막작 <거룩한 질서>


정윤하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1789년. 라파예트는 프랑스 혁명 중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다. 제1조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함을 골자로 한다. 시민사회가 태동하던 시대였지만, 그가 선언한 인간에 여성은 없었다. 인간과 시민은 남성으로 치환됐고 그 권리 또한 남성의 전유였다. 동시대의 여류 작가 올랭프 드 구즈는 이에 반대하며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으나, ‘여성에게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렸다는 죄목’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여성에게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연단 위에 설 수 있는 권리도 누려야 한다.” 올랭프가 남긴 말은 이후 유럽 전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격동시킨 강력한 불씨가 되었다. <거룩한 질서>는 유럽의 마지막 주자로 여성참정권을 도입한 1971년 스위스를 배경으로 한다.

뒷모습이 익숙한, 여성의 헌신

주인공 ‘노라’는 삼대가 모여 사는 집에서 가사를 전담한다. 집안 안팎에서 사람들은 노라를 아끼는 듯하다. 그는 매일 살뜰한 며느리로, 남편을 성실히 내조하는 아내로, 아들들에게는 지혜로운 어머니로 인정받고 있다. 그 집안이 늘 청결을 유지하고 남자들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노라의 덕이다. 부모와 잦은 불화를 겪는 조카딸 ‘한나’도 그와는 말을 섞는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계속된다. 사랑하는 남편 ‘한스’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알아보는 노라에게 자신의 허락(permisson) 없이 취직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다. 노라의 시숙 ‘워너’가 딸 한나를 보호소에 보낼 때도 한나의 엄마인 ‘데리스’와 숙모인 노라에게는 이를 막을 권한이 없다. 집안의 문제는 가부장이 결정하는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This is law.'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사회의 관습법 앞에서 노라의 헌신과 재능은 한순간에 무가치한 것이 된다.


여성이 투표할 권리를 얻는다는 것

여성에게 투표용지가 주어진다는 것. 그건 단순히 선거 기간에 할 것이 생기는 것 이상의 일이었다. 투표는 시민이자 인간으로서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공적’으로 존재를 인정받는 상징적 의례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짧은 러닝타임에 노라와 그 주변 여성의 서사를 통해 세계 여성사의 격변기를 담아낸다.

17, 18세기 서유럽의 시민혁명이 품고 있던 ‘인간의 자연권’, 그것이 발명한 공공의 영역과 그곳에 참여하는 ‘시민’, 그럼에도 여전한 남성의 독무대. ‘그렇다면 왜 여성에게는 인간의 자연권인,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허용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예견된 역사였을지 모른다. 19세기부터 여성의 교육권, 재산권, 그리고 참정권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인 1971년 스위스는 그 모든 파랑의 현장이었다. “Women's Rights are Human's Rights!" 취리히 도심에서 당대 여성인권 의제들이 쏟아져 나오는 집회 장면이 이를 응축한다.


여성이 한 사람으로서의 시민이 되기까지

승리를 예견할 수 있는 영화는 짜릿하다. 인물의 절절한 시련을 마주해도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낙관을 놓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이미 알고 있으니 이 영화도 그러리라 짐작할 수 있겠다. 노라와 그 친구들은 인간으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게 될 것이다. 여성도 남성처럼 공적 영역에 진출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박수를 치며 영화관을 빠져나오려는 관객들을 다시 붙잡는다. 승리가 노출된 이후에도 러닝타임이 아직 남아 있다.

오늘날 참정권을 획득한, 남편의 허가 없이도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수많은 여성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 아직도 여성은 육아와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의무를 상기하며 일터에 나가고 있다. 성 경험이 많은 여성을 업신여기는 멸칭들이 여전히 무성하다. “애들 잘 챙길 거야.“ 일을 하고 싶다며 남편의 동의를 구하던 노라와, 마을의 잡배들과 난교를 하고 다닌다며 ‘공공자전거’라는 주홍글씨가 붙은 한나는 아직도 현재에 살고 있다.

“대체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노라는 “난 한 번도 오르가즘에 오른 적 없어!”라고 일갈한다. 언뜻 보면 동문서답일지 모를 대목이지만, 영화의 마지막과도 이어지는 이 장면은 우리가 마저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여성이 꿈꾸는 것은 남성성의 기준에 맞는 시민이 아니다. 공사의 영역이 무너지고 여성이 누군가에게 통제받지 않는 오롯한 한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영화가 끝날 것이다. <거룩한 질서>의 마지막 포커스. 행복에 겨운 노라의 표정이 언젠가 관객에게도 옮겨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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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가족, 다 알지는 못하지만


<지구별>, <가을단기방학>, <숨바꼭질>, <못, 함께하는>


정윤하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2일 금요일, CGV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진행되는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가 3일째를 맞이했다. 이날 오후 3시 경쟁부문 출품작 <숨바꼭질>, <지구별>, <가을단기방학>, <못, 함께하는> 등 4편의 영화가 연속으로 상영됐다. 이어 김진아(숨바꼭질), 박경은(지구별), 정가영(가을단기방학), 이나연(못, 함께하는) 감독이 참석한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이주현 씨네21 기자가 사회를 맡았다.




날것의 아이들을 그려낸 영화

네 편의 영화는 엄마와 이별한 이혼 가정의 자녀들을 그린다. 아동에게 ‘엄마 있음’을 정상성으로 요구하는 사회는 이혼가정의 자녀를 소수자로 내몬다. 미디어와 영화산업은 종종 여기에 편승한다. 구김살이 ‘의외로’ 없거나 무조건 있고, 일찍 철이 들거나 비행에 빠지는 표상에 아이들이 멋대로 담겨진다.


<지구별>에 재밌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내내 집에서 말대꾸 한 번 않던 주인공 ‘별이’가 낮잠을 자는 아빠에게 물세례를 내린다. 박경은 감독은 “친언니 같은 친구가 생겼으니까,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떠날 때 자녀들은 주눅이 든다. 그렇지만 매일 주눅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아니어도 아이들이 사랑을 배울 곳이 많다. 한 관객은 “<가을단기방학>의 연주가 친구들과 딱지치고 노는 모습이 참 명랑해 보였다”며 “극단적인 발랄함이나 슬픔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고 덧붙였다.




가족의 순간은 어렵게만 지나간다

입체적인 주인공이 돋보이는 영화지만 극영화 <숨바꼭질>, <지구별>, <가을단기방학>의 아이들은 어딘가 닮아 있다. 집에서 말수가 유난히 적다. <지구별>의 박경은 감독은 “표현을 최대한 줄였다”며 “사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나. 주인공 ‘별이’가 엔딩 전까지 아빠에게 외치는 대사도 ‘싫은 건 아빠잖아!’ 한 마디뿐”이라고 설명했다. <숨바꼭질> 김진아 감독도 “아내 폭력 현장에서 소은이가 할 수 있는 것도 옷장에 숨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부모와 친구, 자신을 둘러싼 무감각한 세계에 어린 아이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가을단기방학>의 정가영 감독은 다른 점을 꼽는다. “지금 그 때의 이야기를 풀다 보니 외로움을 깨달았지, 나도 그 시절은 순간순간을 지나보냈다”는 것이다. 제때 풀 수 있었을지 모를 일들이 쌓여 이별이 이루어지듯, 아이들에게도 가족의 순간은 어렵게만 지나간다. <가을단기방학>의 첫 씬이 책상에 엎드린 연주의 무표정인 것도 비슷한 이유다. 정가영 감독은 “연주가 울거나 내놓고 슬퍼하는 장면이 없다. 짜증을 표출하는 정도”라고 말한다. 비슷한 가족사를 가진 친구를 향해 ‘엄마 없다’는 뒷담화가 들려와도, 어느 날 찾아온 아빠의 여자 친구를 마주해도 연주는 짜증이 날 뿐이다. 어떤 괄시와 무심함이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것인지는 한순간에 다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서로를 생각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못, 함께하는>의 시간은 좀 더 길다. 영화의 시점은 세 자매가 엄마와 이별하고 6년이 흐른 현재를 가리킨다. 그동안 자매는 각기 다른 곳에서 부지런히 자랐다. 이나연 감독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때마다 찍어 뒀던 영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지나간 순간을 뒤늦게 떠올린다. 자매는 왕래가 적었던 아빠와 옛 얘기를 풀어나간다. 수 년 간 대면할 생각도 없었던 엄마의 입장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감독은 “선악의 구도보단 각자의 입장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미워하는 입장에서는 엄마가 악인이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그 입장도 있었음을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매는 엄마와 아직 ‘못’ 함께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랑 동생들과, 카페에서 아빠 여자친구와 영화를 한 번씩 봤다”는 감독에게, 씨네21 이주현 진행자가 가족들 반응을 물었을 때였다. 그는 “다들 울었는데, 그냥 밥 먹으러 가자며 어찌저찌 지나갔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관객들 모두가 지나온 유년기를 그린 상영이어서인지, GV가 진행된 한 시간 동안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이런 영화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는 진행자의 응원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네 감독 모두 행사 시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앞으로도 모두에게 쉽지 않은 가족을 들여다보는 작품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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