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바꾸는 여성의 연대

네 명의 레즈비언 정치인이 일궈낸 변화 <폴리티컬 애니멀>


이소연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다! 낙태죄를 폐기하라!” 


여성의 임신중절권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보신각에 울려 퍼졌던 10월 15일 토요일,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는 네 명의 레즈비언 정치인이 일궈낸 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폴리티컬 애니멀>이 상영됐다.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외침과 몸짓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는 요즘,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가는지 눈여겨보자.




사회를 바꾸는 여성의 연대

난공불락일 것만 같았던 미국 사회가 “사랑은 사랑일 뿐”이라고 말하기까지, 티끌들의 투쟁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폴리티컬 애니멀>은 네 명의 레즈비언 정치인이 일궈낸 투쟁의 역사를 기록했다. 변화는 1994년, 레즈비언 ‘실라 쿠셀’이 캘리포니아 주에서 당선된 순간부터 시작됐다. 첫 동성애자 정치인이 1994년에야 등장했다는 사실은 괄목할 만한 변화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동성애자의 삶이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상황에서 네 명의 레즈비언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비존재의 지대에 갇혀 있는 동성애자의 삶을 공론화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동성애자의 존재를 드러냈고, 그 다음에는 그들이 겪는 불평등을 이야기했으며, 끝내는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했다. 그 결과 차별금지법, 시민결합Domestic partner registration, 동성결혼 법제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 




한국 사회가 마주했던 작은 변화

<폴리티컬 애니멀>의 상영을 마치고, 정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진행에 따라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와의 피움톡톡이 이어졌다.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는 “한국에도 이미 18대 총선 당시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정치인 최현숙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당선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변화는 시작됐다.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는 “이 선거 이후로 동성애자에 관한 질문의 양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선거 전에는 동성애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주된 질문이었다면, 2008년 선거 뒤로는 동성애자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질문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질문에서 이들의 정치 참여 가능성을 묻는 질문으로 나아갔다는 것 자체가 작은 변화인 셈이다.


변화를 위한 전략

좋은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다. 관객석에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변화의 전략은 무엇인지” 물었다.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는 “가장 중요한 전략은 변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박하고 분노할 줄 아는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네 명의 레즈비언 정치인이 미국 사회를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들이 동성애자로 살아가며 당해왔던 차별에 분노할 힘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자가 어딜 감히 나서”, “여자가 드세면 안 돼”라는 생각이 여전히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서 분노하는 여성들은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권김현영 연구자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분노하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계속 분노하다 보면 이 사회가 여성들의 정당한 분노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끝으로 정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우리는 잃을 것이 없고, 다름 아닌 우리의 일이기 때문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말했다. 영화 <폴리티컬 애니멀>은 ‘미래의 모든 폴리티컬 애니멀에게 바친다’는 문구로 끝난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우리가 바로 ‘폴리티컬 애니멀’이다. 변화는 우리에게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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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우리에겐 폭력에 대한 언어가 필요하다


〈햇살 쏟아지던 날〉 〈달팽이〉 〈십 분간 휴식〉


원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10월 15일 일요일, 서둘러 영화를 취재하러 가는 길 영화제 폐막식을 앞둔 아쉬운 때문인지 비가 발길을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극장에 도착했다.

 

이날 상영된 세 편의 영화: 유영대 감독의 〈햇살 쏟아지던 날〉과 진성민 감독의 〈달팽이〉, 이성태 감독의 〈십 분간 휴식〉은 지난 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작품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들의 의도를 담아 '한남은 어떻게 태어나는가'라는 주제로 기획된 앙코르 상영전이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유년기와 학창시절, 군 생활− 세 단계로 나뉘는 한국 남성들의 성장과정, 한남의 발생지를 유추해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도대체 분노 외에 뭐가 남는 영화일까 생각했다.


분노하는 것 외의 다른 언어가 없었다. 이민경 저자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라는 책도 출간된 바 있는데− 어떤 식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리고 나쁘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이 받아들여질 여지로서의 폭력과 이해의 언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15일 보신각에서 진행된 낙태금지법을 반대하는 검은 시위 “내 자궁의 주인은 나, 나의 자궁 나의 것” 역시 여성들의 '언어를 획득하려는 노력'이고 그런 노력을 우리는 연대의 힘으로 지속해 나가고 있지만(많은 사람들이 여성−인권이 죽었다는 의미에서 검정색을 드레스 코드로 맞추고 저마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문구는 ‘정자도 생명 암세포도 생명’ ‘엄마나 예비신부이기 전에 여자도 사람’ ‘덮어놓고 낳다보면 내 인생은 개망한다’ 등이었다. '내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라는 문구도 눈에 띄었는데, 이 폭력의 기저에는 마치 출산율 저하와 사회 노령화 문제를 여성의 자궁으로 해소하려는 뉘앙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회는 여성들의 언어를 빼앗아 왔다.


젠더 규범의 쇠몽둥이

〈햇살 쏟아지던 날〉은 그들의 놀이에서 배제되는 한 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들의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그들이 구사하는 폭력의 언어(작고 부드러운 병아리―‘여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을 “사내자식이 이딴 거 좋아해도 돼?”라는 젠더 규범의 쇠몽둥이로, 병아리를 바닥에 내던져 죽여버리는)를 그대로 모방하고 한발 더 나가 밟아 죽인다. 이 여자 아이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걸까.


나는 여자 아이의 ‘밟아 죽이는’ 행위가 남자 아이들이 병아리를 내던지는 것(폭력이 구조화되는)과 같은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은 자기가 남성이라는, 여성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부정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병아리를 내던지지만 여자 아이는 자기가 남자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그렇지만 다른) 여성스럽지만은 않다는(마찬가지로 구조화된 폭력, 그 자체로 폭력이 되는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 느끼게 되는, 젠더 규범으로서의 여성) 젠더 규범의 혼란 속에서 홀로 싸운다. 이런 혼란이 발생하는 건 애초에 “여성이면 여성답게 행동하라” 것 외에 제대로 된 여성의 언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 편의 영화의 공통점은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

‘한남은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주제로 진행된 피움톡톡에서 〈햇살이 쏟아지던 날〉에서는 소녀가 병아리를 밟아 죽이는 것으로, 〈달팽이〉에서는 교탁 위에 올라간 현우가 하의를 탈의하는 방식으로, 〈십분 간 휴식〉 이 영화를 해석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는데− 딱 뭐라고 짚어낼 수 있을 만한 ‘행동 없는 행위(복종에의 강요)’들에 대해 사회자는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는, 가장 강렬한 복수”로 해석했는데― 그들이 자라온 환경 그리고 어떤 규범 아래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언어는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달팽이〉에서 “현우가 종필이를 때려눕히는 결말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다”는 말에 동감하는데, 이 영화의 분량이 좀 더 늘어나더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물러서지 않고 비굴해지지 않는 것이 현우가 가지고 있는 언어일지 모른다.


피움톡톡에 함께한 패널들은 한남 탈출기, 남성성으로서 찌질함을 발견했던 순간을 고백하면서 자신 역시 아직 벗어나지 못했고 “(한남 퍼센티지를 매길 수 있다면?) 53%, 47% 정도로 밟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위트를 섞어 말했다. 우리는 모두 그런 퍼센티지만큼은 한남이고 꼭 그만큼 페미니스트이고,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분노를 상기하고, 그 분노를 금방 타버리는 성냥에 붙은 불씨로 얻어 나의 언어를 획득하려는 노력에 불을 당기기로 한다. 성냥불은 금방 다른 곳에 옮겨 붙이지 않으면 꺼뜨리고 만다. 꺼지기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옮겨 붙여서, 한 사람 한 사람 연대의 불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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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낡은 관습을 거부하는 단순한 지혜

그녀들의 특별한 계보, <안토니아스 라인>


지원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10.14(금) 여성인권영화제 10회를 기념해 마련된 <피움 줌인, 단순한 지혜> 섹션의 <안토니아스 라인 Antonia's Line>이 상영됐다. 여성폭력과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2016년, 페미니즘 ‘고전 영화’가 전하는 단순한 지혜에 귀를 기울여 보자.




‘다른 공동체’를 꿈꾸는 그대에게

가정과 일터,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연을 맺는 이 공동체에서 과연 여성들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가정은 ‘쉼’이 아닌 끊임없는 ‘가사와 양육’의 공간이고, 때로는 무수히 많은 폭력이 감춰지는 곳이다. 일터에서는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다. 일상의 곳곳에서 ‘여성되기’를 요구하는 사회에 지친 그녀들에게, 다른 세상에 대한 갈망은 '단순한 취향' 이상의 바람이다.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서사를 다룬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은 여성들이 ‘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대담하게 그려낸다. 안토니아는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을 바라며 청혼하는 바스에게, 아들도, 남편도 필요하지 않지만, 종종 들러 일을 돕고, 식사를 함께하는 관계를 제안한다. “아기는 갖고 싶지만, 남편은 원하지 않는” 다니엘은 도시에 나가 정말 ‘아기의 씨앗’만을 얻어오고, 자신이 첫눈에 반한 여성과 자유롭게 사랑을 나눈다. 다니엘의 딸 테레사도 딸 사라를 낳지만, 모두가 양육을 책임지는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자기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사라가 증조할머니인 안토니아와 여러 차례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아직 어린 그녀 또한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들의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연령은 ‘다름’의 조건이지만 차별의 원인이 되거나, 종속적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고요한 마을의 풍경 속에서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파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겉은 화려하지만, 내부는 여전히 낡은 고정관념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가 떠오르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속 여성공동체의 존재는 고무적이지만,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보는듯한 막연함도 자리한다.


2016년, 다시 ‘안토니아스 라인’을 위하여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민아 영화평론가가 출연하고, 남은주 한겨레 기자가 진행하는 피움톡톡이 이어졌다. 유지나 교수는 안토니아가 어머니의 임종 후에 걸어온 행보에 주목하며,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계보를 끝내고, 안토니아를 시작으로 새로운 계보를 만드는 것”이라 평했다. 영화 속 안토니아의 계보는 혈연중심이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 나온 이들과 안토니아 모녀가 직접 구한 이들로 자연스레 구성된다. 정민아 평론가는 “혈연이 아닌, 연대와 자연을 중심으로 한 계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핍박받는 자들을 포용하는 넓은 대지이면서 스스로 씨를 뿌리는 주체적인 여성공동체가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설명했다. 한 관객은 “정상성이란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정을 꾸리는 안토니아의 계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출산은 여성이 하지만, 어머니의 이름은 계보에서 지워져있다”는 <맨스플레인>의 지적을 인용하여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공동체를 호평하기도 했다.


“이 긴 세월 동안의 경험으로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는 영화의 맺음말은 여전히 억압적인 현재를 살아가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여성들을 향하는 듯하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안토니아의 계보를 스스로 만들어간다면, 영화 속 공동체도 단순히 유토피아에 머물진 않을 것이다. 낡은 관습을 버리고 다른 사회를 만들어가는 상상력의 씨앗, 그것이 <피움 줌인>을 통해 찾고자 했던 단순한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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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가족의 재발견

프랑스의 동성결혼 법제화 과정을 담은 <사회학자와 곰돌이>


경은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10.14(금) 여성인권영화제의 열기가 뜨거운 대한극장에서 <사회학자와 곰돌이 La sociologue et l’ourson(SOCIOLOGIST AND POOH)>가 상영되었다. 귀여운 인형극 같은 첫 장면 뒤로, 프랑스의 동성결혼 법제화 과정에 대해 들려주는 사회학자 테리와 곰돌이들을 만나보자.




“무엇이 가족인가요?”


영화 속 사회학자 테리는 계속해서 변화해 온 가족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혼외 임신으로 고통받았던 증조할머니, 결혼을 통해 사회에 통합되고 ‘불명예스러운’ 출생을 극복한 할머니,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자기 일을 포기하고 가사에 전념했던 어머니, 그리고 결혼이 의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실용적인 이유를 위해 결혼한 자신의 이야기까지. 결혼의 관계와 의미는 계속해서 변해왔고, 여전히 변하고 있다. 결혼뿐아니라 가족의 형태와 가족을 둘러싼 가치도 변해왔다. 고대사회의 모계 가족, 부계 중심의 부족사회, 혈연 중심적이고 부계 중심적인 확대가족과 근대사회의 핵가족 등 가족에는 원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결혼과 가족이 계속해서 변해왔다는 것은 가족에 대한 고정불변의 정의와 조건이 없다는 증거가 된다.


이렇듯 변화는 항상 있었고, 동성결혼 법제화도 역사의 일부라고 영화 속 사회학자 테리는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관계의 내용이라는 말은 결혼과 가족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한다. 치열했던 싸움은 “평등!”을 외치며 결국 승리한다. 동성결혼 법제화를 통해 영화는 또 다른 변화가 현재 진행 중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영화가 보여주는 뜨거운 싸움은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진짜’ 가족의 이미지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에서, 가족의 의미를 재조명할 기회를 준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정상가족’의 신화에서 벗어나, 신화에는 쓰이지 않았던 다양한 가족들을 발굴해낸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가족제도 비틀기


<사회학자와 곰돌이> 상영 후 곰돌이들이 전해준 가족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파헤쳐 보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김순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가 초대되었고, 정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진행을 맡았다. 결혼과 가족의 역사, 아이 양육의 문제 등 영화가 다양한 주제를 다룬 만큼 피움톡톡의 열기는 뜨거웠다. 관객들과 출연자 모두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성소수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은 경험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동성애 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 김순남은 우리 사회의 동성애 혐오는 곧 불안함의 표현이 라고 말했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성애 중심성, 혈연 가족 중심의 정상성 등이 위협받는 것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동성결혼이, 결혼과 가족 제도를 통해 유지되었던 젠더체계와 이성애 중심주의를 의심하게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자연스러움'과 ‘당연’한 것들에 대한 질문은, 동성결혼 법제화가 논의되어야 하는 방향과 연결된다. 김순남에 따르면, 동성 결혼의 의미를 어떤 이야기로 채워나갈 것인지는 매우 정치적이고 복잡한 문제이다.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국가들에서는, 결혼 여부가 더는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개인이 갖는 관계가 개인의 자유로 존중될 만큼 다양성과 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이미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동성결혼이 단순히 인정과 불인정의 궤도 속에서 결혼제도로 '진입'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뛰어넘어야 한다. 김순남은, 특히 동성결혼 법제화 논의가 기존의 고정적인 성역할을 비틀고, 이성애 중심적 가족제도를 공론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사회학자와 곰돌이>를 통해 좀 더 평등한 관계문화에 접근하는 기회도 얻길 바란다고 전했다. 동성결혼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 입장을 넘어서, 새로운 가족과 관계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한다면 영화를 더욱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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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소수자들의 반란

<이브>, <정글>, <여름밤>, <몸값>


경은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정글>, <이브>, <몸값>, <여름밤>은 주체적인 여자주인공들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10.13(목) 열린 감독과의 대화에서 영화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누가 팔리는가-<몸값>, 그 여름밤 작은 희망을 보았다-<여름밤> 


<몸값>은 원조교제를 위해 한 남자가 여고생인 주영을 찾아오면서 시작 된다. ‘처녀’임을 재차 확인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한국사회 남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잘 반영한다. 처녀도, 여고생도 아님을 확인하자, 남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 가격을 흥정한다. 하지만 사실 진짜 흥정을 하는 쪽은 주영이다. 주영이 보여주는 반전의 줄거리는 관객들의 허를 찌르려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주영은 남성과 사회가 원하는 대로 소비되었던 여성의 이미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한편, <여름밤>에서 취업준비생인 소영과 고3 수험생 민정은 과외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난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버텨내고 있는 둘은, 과외시간을 조정하는 문제로 부딪히게 된다. 민정의 시간변경 요청은 소영의 일상을 연쇄적으로 헝클어놓고, 뒤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소영은 책임감으로 민정과의 약속을 지키려 애쓴다. 각자의 사정만으로도 버거운 세상 이지만, 민정과 소영의 만남은 아직 작은 희망은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주체적인 두 주인공의 만남을 통해 삭막한 일상에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상영 후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는 <정글>의 박병훈 감독, <이브>의 오은영 감독과 함께 진행되었다. 관객들은 연출의도, 영화에서는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인가, 동물인가-<정글> 


대학원생인 소미는 교수의 요구에 따라 등산을 왔다. 더운 날씨에 산에 가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지만, 논문을 위한 면담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한편 측량기사인 우진은 상사에게 무시당하며 혼이 난다. 두 사람이 산에서 만난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약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산이 바로 ‘정글’이다. 우진은 소미를 화풀이 삼아 신체적으로 제압하려 한다. 하지만 소미는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폭력을 당하면 당한만큼 반격한다.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다가도 이내 무기를 찾아들고 다시 그 공포에 맞선다. 


<정글>의 박병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인가, 동물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전했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하거나 만만 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이 정글과 같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산이라는 설정 아래서 소미를 마음대로 괴롭히는 등산객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진 역시 과장과 동료에게 무시당하면서 도, 자신이 잘 아는 산 속에서는 맹수가 된 것처럼 소미를 공격한다. 등산객과 우진의 모습은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약자혐오의 단면이다. 


예수의 땅을 떠나 비로소 찾은 자유-<이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을 두었지만, 감독은 교인들과 교회에 위선 을 느낀다. 결국 종교를 믿을 수 없다고 엄마에게 고백하지만, 엄마는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원을 떠난 이브는 어디에든 갈 수 있게 되었다. 교회 를 떠난 주인공 역시 주체적으로 선택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영화는 비 단 종교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천국에 가는 착한 여자가 되는 대신, 우리 모두 자유를 얻는 여성이 되자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브>는 오은영 감독의 사적인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규정하는 것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고, <이브>가 탄생 했다고 전했다. 감독에게는 가족과 종교가 그러했고, 여성이라는 위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종교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 고민할 때,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받아온 여성차별을 빼놓고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고 한다. 여전히 감독은 교회를 나가지 않고, 어머니는 감독이 다시 교회 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신다. 하지만 감독은 또 다른 이브가 되어 어디 로든 가는 삶을 살고 있고, 감독의 다음 작품들 역시 감독의 행보를 따라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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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자

— <델마와 루이스> 피움 톡톡 취재



지혜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의 네 번째 날인 10월 13일 저녁,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1)가 상영되었다. 여성인권영화제는 피움 줌인(FIWOM ZOOM IN)의 고전 부문으로 이 작품을 선정했다. 페미니즘 로드무비의 선례를 남긴 <델마와 루이스>, 2016년 서울의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트는 것엔 어떤 의의가 있을까. 






남성 권력으로부터 탈주하기


 붉은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초록색 오픈카 한 대가 평원을 가로지른다. 카메라는 익스트림 롱쇼트로 자동차의 질주를 담아낸다. 오픈카에는 두 젊은 여성,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루이스(수잔 서랜든)가 타고 있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후 멕시코를 향해 도망가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 남자친구, 자신을 강간하려던 이름 모를 남성으로부터 도망가는 중이지만. 사뭇 들뜬 그들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는 동안, 경찰차 한 대가 화면에 잡힌다. 경찰차는 경적을 울리며 오픈카를 추격한다. 하지만 이들은 경찰에게서 총을 빼앗고, 경찰을 경찰차 속에 감금해버린다. 델마는 말한다. “난 뭔가를 이미 건너왔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이들을 쫓아오는 ‘남자’들의 수는 늘어난다. 무장 군인들과 경찰차, 헬리콥터의 추격이 이어진다. 일반적인 살인 사건이나 절도 사건의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치고 지나치게 많은 병력이 두 여성을 향한다.



우리는 이미 페미니즘을 건너왔다


 <델마와 루이스> 상영 이후, 게스트를 초대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피움 톡톡’이 진행되었다. 게스트로 여성학자 정희진이 초대되었고 고미경 여성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토크는 21세기에 <델마와 루이스>를 다시 보는 의미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었다. 한 관객은 “난 이미 뭔가를 건너왔고, 돌아갈 수 없어”라는 델마의 대사를 인용하며 페미니즘을 접하고 난 뒤 자신이 그렇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영화가 지금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온 나라가 나서서 두 여성을 가부장제의 울타리 안으로 돌려놓으려 하는 영화 속 풍경이, 온 사회가 페미니즘을 접한 여성들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지금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른 관객 하나는 “페미니즘을 이제 막 접했는데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언제나 질식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페미니즘을 배우고 전에는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되니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희진은 “나 역시 분노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간의 행복, 불행은 (의외로) 페미니즘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모르기 전으로 되돌아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 페미니즘을 하든 하지 않든 인간의 삶은 힘든 일 투성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모르고 시종일관 권력을 행사하는 중년 남성의 삶에도, 주체가 되기를 거부한 채 남성 권력에 순응하는 여성의 삶에도, 고통이나 불행은 존재한다. 


 정희진의 말은 지금 이 시기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고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적 사유는 현실적 장벽으로 인해 순간순간의 번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불행은 아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페미니즘과 관계없이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미 페미니즘을 건너왔고, 페미니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는 페미니스트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도 숨어있다. 델마를 떠올려보자. 친구와 여행가는 간단한 문제조차 남편의 눈치를 보던 델마는, 자신을 희롱하는 사람을 응징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섹스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이처럼 페미니즘적 사유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델마 옆에 루이스가 있었듯, 페미니즘적 사유를 즐겨 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 역시 그런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고, 우리는 일종의 동료로서 서로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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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소수자들의 반란

<이브>, <정글>, <여름밤>, <몸값>


경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정글>, <이브>, <몸값>, <여름밤>은 주체적인 여자주인공들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10.13(목) 열린 감독과의 대화에서 영화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누가 팔리는가-<몸값>, 그 여름밤 작은 희망을 보았다-<여름밤>


<몸값>은 원조교제를 위해 한 남자가 여고생인 주영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처녀’임을 재차 확인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한국사회 남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잘 반영한다. 처녀도, 여고생도 아님을 확인하자, 남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 가격을 흥정한다. 하지만 사실 진짜 흥정을 하는 쪽은 주영이다. 주영이 보여주는 반전의 줄거리는 관객들의 허를 찌르려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주영은 남성과 사회가 원하는 대로 소비되었던 여성의 이미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한편, <여름밤>에서 취업준비생인 소영과 고3 수험생 민정은 과외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난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버텨내고 있는 둘은, 과외시간을 조정하는 문제로 부딪히게 된다. 민정의 시간변경 요청은 소영의 일상을 연쇄적으로 헝클어놓고, 뒤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소영은 책임감으로 민정과의 약속을 지키려 애쓴다. 각자의 사정만으로도 버거운 세상이지만, 민정과 소영의 만남은 아직 작은 희망은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주체적인 두 주인공의 만남을 통해 삭막한 일상에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감독과의 대화는 <정글>의 박병훈 감독, <이브>의 오은영 감독과 함께 진행되었다. 관객들은 감독들에게서 연출의도, 영화에서는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인가, 동물인가-<정글>

 

대학원생인 소미는 교수의 요구에 따라 등산을 왔다. 더운 날씨에 산에 가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지만, 논문을 위한 면담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한편 측량기사인 우진은 상사에게 무시당하며 혼이 난다. 두 사람이 산에서 만난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약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산이 바로 ‘정글’이다. 우진은 소미를 화풀이 삼아 신체적으로 제압하려 한다. 하지만 소미는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폭력을 당하면 당한만큼 반격한다.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다가도 이내 무기를 찾아들고 다시 그 공포에 맞선다.


<정글>의 박병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인가, 동물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전했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하거나 만만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이 정글과 같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산이라는 설정 아래서 소미를 마음대로 괴롭히는 등산객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진 역시 과장과 동료에게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이 잘 아는 산 속에서는 맹수가 된 것처럼 소미를 공격한다. 등산객과 우진의 모습은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약자혐오의 단면이다.


예수의 땅을 떠나 비로소 찾은 자유-<이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을 두었지만, 감독은 교인들과 교회에 위선을 느낀다. 결국 종교를 믿을 수 없다고 엄마에게 고백하지만, 엄마는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원을 떠난 이브는 어디에든 갈 수 있게 되었다. 교회를 떠난 주인공 역시 주체적으로 선택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영화는 비단 종교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천국에 가는 착한 여자가 되는 대신, 우리 모두 자유를 얻는 여성이 되자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브>는 오은영 감독의 사적인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규정하는 것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고, <이브>가 탄생했다고 전했다. 감독에게는 가족과 종교가 그러했고, 여성이라는 위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종교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 고민할 때,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받아온 여성차별을 빼놓고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감독은 교회를 나가지 않고, 어머니는 감독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신다. 하지만 감독은 또 다른 이브가 되어 어디로든 가는 삶을 살고 있고, 감독의 다음 작품들 역시 감독의 행보를 따라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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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소녀들의 거친 성장기

-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토끼의 뿔/열정의 끝/집에 오는 길/청춘이냐!]


세경_한국여성의전화 대학생 기자단



성장한다는 것은 순간순간 찾아오는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상영작 속 성장기에 있는 10대 여자아이들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내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고난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만 하고, 다시 시작해야만 했던 소녀들의 다양한 순간을 소개한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토끼의 뿔> 스틸컷



세상의 현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 <토끼의 뿔>, 한인미 


12살. 이제 막 몸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 여자 아이들은 변화가 시작된 서로의 가슴을 만져본다. 세상으로 발을 처음 내딛는 12살 희정이에게 현실을 몰랐던 대가는 가혹하다. 희정이는 단지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모으려고 했고, 책방 오빠의 친절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뿐이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호되게 혼이 나고, 오빠에게는 성폭행을 당한다. “너도 그랬어?”라고 친구 새봄이에게 물어보는 희정이의 모습은 마치 “세상은 원래 다 이런 거야?”라고 물어보는 듯하다. 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가슴 아프다. 하지만 아직 희정이의 가슴은 다 자라지 않았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열정의 끝> 스틸컷



현실 속 좌절의 순간 - <열정의 끝>, 곽은미


체육 대회에서 단체 줄넘기에 참가하기로 한 미란이는 계속 줄에 걸린다. 담임선생님은 미란이에게 단체 줄넘기에서 빠질 것을 권유하고 미란이와 선생님 사이 갈등은 극에 달한다. 줄넘기를 하지 말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오기를 부리듯 계속해서 하겠다고 말하는 미란이는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이일까. 줄넘기를 못하는 미란이를 잘하는 다른 아이와 기계 부품을 바꾸듯 교체해서 단체 줄넘기를 ‘잘’하게 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체육대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담임선생님의 체육대회를 향한 열정의 끝은 무엇이었을까.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집에 오는 길> 스틸컷



그저 덤덤하게 살아내야 하는 순간 - <집에 오는 길>, 오상아 


26살 주인공은 강남역에서 소주병 모양의 인형탈을 쓰고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일을 마케팅의 일종이라고 그러니 자신은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무심한 듯 말한다. 일할 곳은 있었지만 연봉이 적어서, 집에서 거리가 멀어서 하지 않았다는 말은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 창문으로 보이는 한강 주변 야경을 보면 자신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는 그녀. 한강 주변 야경을 너무 좋아한다는 말이, 서울에서 ‘서울러’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이 여자 홀로 치열한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이 고단하다는 말로 들리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집에 오는 길> 스틸컷



다시 시작해야하는 순간 - <청춘이냐!>, 유아람


주인공은 부상을 당해 삶의 전부였던 달리기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고시원을 떠나는 날, 주인공은 그동안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방안의 창문을 열어보기로 한다. 주인공의 모든 삶, 미래까지도 달리기에 맞추어져있었다. 하지만 달리기라는 틀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자신의 전부였던 틀이 사라져버리자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은 처음에는 쉽게 열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여는 방법은 쉬웠다. 그저 창틀에 있는 긴 막대를 치워버리기만 하면 된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창문 밖에서 어떤 풍경을 보았을까. 



18일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에서, <토끼의 뿔> 한인미 감독은 ‘작년에도 제 작품이 초청되었는데, 여성인권영화제와의 인연이 깊은 것 같다’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청춘이냐!> 유아람 감독도 여성인권영화제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모두 10대 소녀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데,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냐는 물음에 한인미 감독은 “아이들이 몸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사회의 벽에 부딪힌 후, 세계관이 바뀌는 순간을 다루고 싶었다”고 밝혔다. 유아람 감독은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을 당시 20살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처럼 창밖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던 제 자신과 주변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한인미 감독은 주인공의 친구 캐릭터가 갖는 의미에 대한 관객의 질문에, “새봄이는 희정이보다 더 성숙하다. 발육도 더 빠르고 성적 접근에 대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잘 모르는 희정이에게는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동경할 일이 아닌 데도 친구를 동경하게 되는 장면을 넣어서 긴장을 유발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유아람 감독은 주인공 외의 인물을 동물로 표현한 이유에 대해, “사람으로 그리고 나니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게 보였다. 사람들 마다 모두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확실하게 표현하고자 동물들로 캐릭터를 바꿨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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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우리의 엄마들에 대하여
-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생선구이 다리집/엄마의 사연첩
]



세경_한국여성의전화 대학생 기자단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족 안에서 엄마는 당연히 참고 인내하고 희생하는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하지만 엄마도 한 사람일 뿐이다. 엄마의 삶 속에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힘든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엄마는 우리와 똑같이 삶을 살아내고 있다.





엄마에게도 삶은 어렵다 - <생선구이 다리집>, 김봉주

주인공은 바람을 피우다 이혼당하고 엄마가 운영하고 있는 ‘생선구이 다리집’에 얹혀살고 있다. 방학을 맞아 찾아온 아들 은찬이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모습은 아들을 둔 엄마이지만 마치 사춘기 아들과 비슷한 또래 같아 보인다. 짜증을 내고 성질을 내고 엉엉 울어버린다. 주인공에게도 삶은 매 순간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왜 비린내 나는 생선구이집을 할까, 엄마는 왜 바람을 피웠을까 엄마가 싫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엄마에게, 아들 은찬이는 주인공에게 비린내가 난다고 짜증을 내지만 이미 자신들에게서도 비린내가 나는 것은,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아도 또 그렇게 엄마를 닮아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한 엄마의 이야기이자 모두의 엄마 이야기 - <엄마의 사연첩>, 고동선

살다가 보면 좋든 싫든 엄마의 모습을 닮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와 잘 지내고 싶고 엄마를 더 이해하고 싶어 엄마의 사진 속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영화 속 엄마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의붓아버지와 살고, 엄마의 엄마는 자살하고, 남편을 바람을 피우고 모든 엄마들이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극히 개인적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엄마를 발견한다. 남성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가고, 가부장적인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아이를 낳고 엄마라는 역할을 맡아 묵묵히 그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

<생선구이 다리집>의 은찬과 <엄마의 사연첩>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아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엄마와 닮았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은찬, 엄마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 은찬, 엄마에게 해코지 하는 남자와 싸우는 은찬, 자신에게 비린내가 나는지 냄새를 맡아보는 은찬의 모습은 <엄마의 사연첩> 속 자신이 모르는 엄마의 삶을 궁금해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아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어릴 적 기억 속 엄마의 모습과 맞추어보는 그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엄마를 떠올리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아있다.

샌드백같은 엄마와 나의 관계

9월 18일 금요일에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에서, <생선구의 다리집>의 김봉주 감독은 “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뒤틀린 순간을 맞는데, 이 때에도 화해가 필요없는 관계인 가족에 대해 나의 경험으로 시나리오를 풀어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평소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실제로 영화의 주인공의 성격이 저와 많이 닮았다. 저는 엄마와 자식 간의 관계를 서로 번갈아가면서 오갈 수 있는 치고받는 샌드백 같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엄마의 욕이 더 힘이 될 때가 있다”고 밝혔다.

<엄마의 사연첩>의 고동선 감독은 엄마를 영상에 담게 된 계기에 대해,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엄마한테 짜증도 많이 내고 자주 다투었다. 엄마와 잘 지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엄마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또한 영화를 찍으며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냐는 질문에는 “항상 속에 담고 참는 엄마를 닮아가는 것이 싫었다. 엄마가 교회에 다닐 것을 강요하시는 것도 너무 싫었고 상처였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엄마의 좋은 면들을 더 생각하고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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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2016년 10월 10일(월)~10월 16일(일)

 

상상으로 그려낸 현실세계

<23도씨>, <우리 공주님> -

 

18회차에 상영한 영화는 한국 단편모음으로, 외로운 노년 여성을 그린 <23도씨>, 딸을 지키고자 살인을 저지른 <우리 공주님>, 외모로 성적을 평가하는 재치있는 내용의 <외모등급>,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 대한 자전기를 담은 <친밀한 가족>이다. 
감독과의 대화에는 <23도씨> 탁세웅 감독과, <우리공주님> 사희옥 감독, 그리고 배우 한지수가 함께했다.

 

 

<23도씨>

 

23이라는 숫자는 인간이 따듯함을 느끼는 최소한의 온도이자, 가장 사랑받는 성경구절인 시편 23편에서 따왔다고 한다. 감독은 <23도씨>라는 제목을 통해 주인공 할머니가 느끼고 싶었던 최소한의 사람의 온도를 은유적으로 나타냈다.
영화 속 외로운 할머니의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외로울 때마다 119를 불렀던 할머니. 가족도 이웃도 아무도 오지 않는 할머니와 접촉하는건 119대원들과 사회복지사 뿐이다. 이 장면에서 한 관객은 “사회복지사, 구급대원들의 개입에서 오히려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사회적인 개입’이 할머니에게 더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있는것 같다”는 질문을 했다. 이에 감독은 제도가 필요없다는 의미가 아닌 인간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더 초점을 맞췄으며, 할머니가 원했던 것은 함께 나누어 먹는 따듯한 밥 한 끼, 따듯한 애정과 관심이었다는 영화의 의미를 전달하였다.


괜히 출동했다는 표정을 짓는 119대원에게 밥 한 끼만 먹고 가라는 할머니의 대사는, 일찍 출근하는 내게 밥 한 숟갈만 먹고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 아닌 부탁을 떠올리게 한다. 이른 출근을 하는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밥 한 끼를 차리는 엄마의 모습, 이를 외면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멀어져 가는 우리들의 목소리는 영화 속 할머니가 자식에게 했던, 그리고 그 자식이 외면했던 환상 속 과거와 맞물리며 우리들이 쉽게 지나쳤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성냥 하나에 타오르는 할머니의 추억, 기억, 그리고 그 끝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홀로 돌아눕는 외로운 얼굴뿐이었다. 그녀는 결국 싸늘한 죽음이 되어 119대원에게 발견된다. 처음 각본을 받았을 때 성냥팔이 소녀가 떠올랐다는 탁세웅 감독은, 노년의 외로움과 슬픔, 가난, 처절함을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연출했다.


아름답게 그려져 더욱 슬펐던 이 장면은 “환상적이기에 더 비극적인 상황”을 표현했다는 감독의 설명과 함께 씁쓸한 현실을 되새기게 하였다. 이는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인간으로써 다가가는, 그리고 따듯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우리 공주님>


“아이구 우리 공주님-” 흔히 아빠들이 딸에게 하는 말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사희욱 감독은, ‘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피해자라고 생각할까?’ 이 의문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쾌한 감독님의 답변 덕분에 유독 질문이 많았던 이 영화는, 주인공이 자신의 딸을 괴롭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학생을 살해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감독은 착각이 빚어낸 살인이 마치 '사이코패스'로 착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영화의 내용을 조금 수정하기도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누구보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택시기사 순철이 살인마가 되는 과정까지는 어쩌면 점점 잔인해지는 사회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의 배우인 한지수씨는, 첫 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겁 없는 반항끼 어린 10대의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된 할머니와 자녀를 위한 살인자가 된 아빠. 상상으로 그려냈지만 영화가 끝난 뒤 느껴지는 씁쓸한 마음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느 영화들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약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극도한 불신과 불안이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느껴지면서, 내게 반추한다. “나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119대원이었다면 가스가 끊긴 할머니를 위해 밀린 가스비를 다 내어줄 수 있었을까. 나의 자식에게 끔찍한 일을 하려는 가해자를 태운 택시기사였다면 순순히 그의 말을 들었을까. 쉽게 나오지 못하는 대답 속에서, 현실과 이와 다르지 않을거라는 막막한 감정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황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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