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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가족사진] 올가와 아이들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이유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9. 22:52

올가와 아이들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이유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흑백가족사진> 스틸컷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에 백인 엄마와 인종이 다른 열일곱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백인과 유색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모두 '머저리'라고 생각하는 우크라이나에서, 올가 넨야(넨야는 'mama'라는 뜻이라고 한다)는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간다.


올가와 아이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부딪쳐야 할 벽들은 너무 많다. 옆집 남자는 "혼혈에게서는 수혈도 받으면 안된다"고 조롱한다. 올가네 아이들이 무리지어 길거리를 걸을 때면, 인종차별주의와 백인우월주위에 빠진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뾰족한 시선이 쏟아진다. 하지만 올가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아이들 역시 올가를 진심으로 믿고 따른다. 한 아이는 "친엄마가 돌아와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올가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기도 한다. 비록 타인의 편견과 조롱, 차별에 시달릴지언정 올가와 아이들은 서로를 품에 안아준 채로 그들과 맞서는 것이다.


이 영화가 단순히 올가와 아이들의 '인종차별주의 극복기'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조사관들이 올가의 집에 들이 닥친다. 그들은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올가가 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될 자격이 충분한지, 그녀의 집이 아이들의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한지를 판단한다. 물론 난방이 제대로 돌지 않는 윗층 방이나 온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화장실 등이 조사관의 눈에 들어온다. 조사관은 올가에게 이 집에서 아이들을 모두 키우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하기 위해 결연가정에 보내거나 입양을 시켜야 한다는 것. 올가는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사랑해준 자신이 죄인이 된 것 같다며 흐느낀다. 결국 조사관은 올가와 얼굴만 붉힌 채로 집을 떠난다. 이 순간 올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인자한 어머니처럼 비춰진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여기서 이야기를 멈췄다면, 아마도 교과서나 훈훈한 미담을 읽을 때 정도의 느낌에서 내 감동도 멈췄을 것이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흑백가족사진> 스틸컷


그러나 영화의 시놉시스에 따르면 "올가는 마더 테레사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볼 때의 올가는 마치 '차별'에 저항하고 유색인종의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아 보이지만, 그녀 역시 '가정'이라는 구조 안으로 들어가면 전형적인 구시대적 발상을 가진 '부모'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 중 나이가 많은 키릴과의 갈등에서 드러나는데, 올가와 키릴은 사사건건 대립한다. 올가가 아이들을 대하거나 육아하는 방식에서 자신이 교육 받은 사회주의적 가치관을 그대로 투영하는데 반해, 고등 교육을 통해 스스로 개방적인 가치관을 성립한 키릴이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흑백가족사진> 스틸컷


올가와 키릴의, 그리고 앞으로 올가의 품을 떠날 아이들 간의 대립은 이 가족이 우크라이나의 지긋지긋한 차별주의와 맞서 싸우는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이 가족이 더 와 닿았다. 올가와 아이들은 혈연이 아닌 사랑으로 가정을 이루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애정과 존경만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올가의 타박을 무시하는 키릴의 뚱한 표정에서 마치 "어제 부모님과 싸웠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친구의 표정을 발견했을 때, 이들이 '진짜 가족'이라는 게 실감 났다.


세대 간의 갈등은 국적을 불문하고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를 해결하겠답시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강제와 강압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구조적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올가와 아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한 가지 정답을 정해두는 대신, 길고 긴 해설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부딪치고 물러나고, 서로에게 다가간다면 편협한 사고에 갇힌 우크라이나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제 7회 여성인권영화제_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