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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위의 여성들] 영토 없는 여성들의 투쟁

피움 2014. 9. 26. 08:16

 

영토 없는 여성들의 투쟁

다큐멘터리 <파도 위의 여성들> -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파도위의 여성들>

 

여성주의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그녀의 책 왜 여성사인가에서 남성중심 사회가 여성의 재생산을 통제하게 된 연원을 추적한다. 그녀에 따르면 재산이 계급으로 전환되기 위해선 상속을 통한 안정적인 신분 재생산이 필요한데, 상속에 필요한 것이 계서제, 다름 아닌 족보라는 것이다. 남성들이 탄탄한 족보를 만드는 전제 조건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러너에 따르면 서자처녀성임신중절 금지는 이런 조건과 함께 가시화 된다. 이런 조건 위에서 사회체계가 구성되다 보니 대다수의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을 통제하고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국가는 필요에 따라 공공연히 여성들의 임신중절을 제한하거나 혹은 강제로 낙태시키기를 반복해왔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이런 공간에서, 여성은 어떻게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것인가.

 

어떻게 몸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것인가

 

영화 파도 위의 여성들의 주인공 레베카 곰퍼츠 답은 간단하다. 그 공간을 떠나는 것이다. 이 간단하지만 명료한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출발한다. 국가의 영토에서 일정 거리 떨어진 국제연안에서는 국가의 주권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국제 연안에서는 해당 배가 속한 국가의 법에 따른다. 콤퍼츠의 국적인 네덜란드는 약물을 통한 임신중절을 허용한다. 때문에 낙태가 불법인 국가의 국민일지라도, 네덜란드의 배를 탄 뒤 국제연안에서 임신중절을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매우 간단한 논리지만, 사실 이 계획이 그렇게 쉽게 추진되진 못한다. 낙태를 위한 배가 항구에 닿을 때 마다, 파도 위의 여성들은 거친 반대를 마주한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시위를 조직하거나, 배에 승선하는 여성들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심지어 아예 배를 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들은 굳은 의지로 이 난관을 돌파해나간다.

   

주인공들의 이러한 실천은 큰 상징적인 효과를 낳는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몸을 통제하고,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국가를 떠날 때,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국가라는 공간이 어떤 젠더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어떤 젠더를 억압하고 있는지 말이다. 국제연안이라는 무국적의 공간은 국가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바라보았을 때, 국가는 전혀 비젠더적인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위가 단지 상징적인 수준에서 머무르지 만은 않는다. 영화에서 한 운동가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의 행위는 실질적인 결과 또한 만들어낸다. 그 결과란 여성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임신중절 과정에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죽는 여성이 10분에 한 명꼴이라고 한다. ‘파도 위의 여성들의 운동은 한 명의 여성이라도 더 안전한 임신중절을 받도록 하고, 임신중절 이슈를 가시화해 낙태가 금지된 국가의 법을 바꿔 내거나, 안전한 낙태방법에 대한 정보를 유통해 여성들의 죽음을 막아낸다.

 

‘영토 없음’의 한계를 넘어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유명한 에세이 ‘3기니에서 여성으로서 스스로에게 조국이 없다는 선언을 한다. 나는 영화의 초반, 레베카가 여성 자신의 허락만 있으면 되는 공간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때 울프의 그 말이 떠올랐다. 국가가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공간이라면, 스스로의 몸에 대해서조차 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여성은 사실상 국가 없음의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국가는 영토영공영해라는 장소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때문에 이 국가 없음의 문제는 동시에 공간 없음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말하자면 재생산에 대한, 몸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여성들에겐 영토가 없다. 여성이 스스로로서, 자기 삶을 만들어나갈 땅이 없는 셈이다. 현재까지도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낙태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영토 없음의 상황은 암울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파도 위의 여성들이 진정 멋진 점은, 이 공간 없음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자원삼아 한계를 돌파한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할당된 공간이 없었기에, 이들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해나간다. 이런 방식으로, 처음 파도 위에서 시작된 상상력은 영화의 마지막 웹 위의 여성들이라는 결실을 만들어 낸다. 이들은 국가라는, 남성 중심적인 경계에 속박되지 않은 채 각국의 여성들과 소통하고,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는다. 이들이 1년 동안 받은 메일만 10만 통을 넘는다는 사실은, 이들이 만들어낸 연대가 만만치 않음을 방증한다. 울프는 조국 없음을 선언한 다음 문장에서, ‘나의 조국은 전 세계다라는 말을 남긴바 있다. 파도 위의 여성들의 이 운동은, 이 말의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신필규